기대 수명 시네마
노유정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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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에는 늘 두려움이 따르니까.

하지만 좋은 시도와 시작이었음을 잊지도, 잃지도 말자."

직업에 수명이 있다? 내 직업에 수명을 알려준다? 신기하고 신선한 소재였다. 장편소설이지만, 단편소설 같은, 때론 연작소설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기는 작품이었다. 주인공 송세린은 11년차 무명 연극배우다. 얼마 후 발표될 결과에 기대를 모으고 있었지만, 후배가 캐스팅된다. 정말 재능이 없는 것일까? 속이 상한 세린은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우연히 마주하게 된 기대 수명 시네마. 직업의 수명을 보여준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상영되는 작품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멋있어 보였다. 그리고 세린은 재연배우를 찾고 있다는 말에 감정적으로 자신이 그 일을 하겠다고 나선다. 세린에게 주어진 일은 색이 이상한 카드의 주인공의 삶을 살아서 카드의 원래 색을 찾는 일이었다. 그리고 세린은 그렇게 카드 속 주인공의 삶을 찾아간다. 시네마의 주인공은 다 달랐다. 퍼스널 환경 진단 전문가인 반린아, 헤드 큐레이터인 신건우, 파티시에 신연우, 비행사 권기옥, 아나운서 최은효...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좌절과 포기를 경험했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잘나가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이들 또한 고통스러운 삶의 여정을 겪었지만, 포기하고 낙오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도움을 통해 다시 일어났고 자신만의 능력을 깨달았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비행사인 권기옥과 연관이 있던 심덕희라는 인물이 있었다. 이미 사망했고, 오래전 이야기인지라 네임카드의 색은 탁하디 탁했고, 연수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냥 두기에는 뭔가 안타까움이 있었던 세린은 권기옥의 기억을 토대로 덕희를 찾아낸다. 1919년 3월을 앞둔 겨울. 일제의 감시는 심해져 가고, 여학생들이 모여서 뭔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덕희는 무서웠다. 자신의 눈앞에서 일본 경찰에게 구타를 당해 사망한 아버지와 끌려간 언니의 모습을 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날 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런 덕희에게 조국의 독립은 먼 일이었지만, 하나의 꿈은 있었다. 친구인 기옥이 비행사가 되는 꿈이었다. 과연 덕희의 꿈은 이루어졌을까? 그리고 덕희는 자신의 직업명을 찾을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며 제일 와닿았던 부분은 HBS 전직 아나운서인 최은효와 아들 권은율의 이야기였다. 엄마의 꿈을 찾아 나선 아들 은율. 그리고 자신의 꿈을 잊고, 우울감에 빠져버려 네임카드도, 수명도 완전히 잃어버린 엄마 은효. 잘나가는 아나운서 은효는 언제부턴가 방송에 얼굴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은율을 임신하고부터였다. 그리고 그렇게 은효는 아나운서를 내려놓고 오로지 은율의 엄마로만 살아간다. 우연히 갔던 기대 수명 시네마에서 잘나가는 여성의 삶에 대한 영화를 본 후 은효의 눈빛은 빛을 잃었다. 그리고 그런 엄마의 눈빛을 먼저 알아챈 것은 아들 은율이었다. 은율은 다시 기대 수명 시네마의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은효의 삶의 DNA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의뢰자가 은효가 아닌 은율이었기 때문이다. 세린과 마호는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여러 사건으로 휴직을 신청한 리나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과연 기대 수명 시네마 직원들은 은율이 원하는 영화를 개봉할 수 있을까? 은효는 다시금 눈빛을 찾을 수 있을까?

책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고민과 걱정, 좌절 속에 살고 있다. 빛나는 누군가의 삶을 보고 동경하기도, 그와 비교하며 내 삶을 비난하기도 한다. 과거 엄마가 아들에게 이야기해 준 이야기는 다시금 아들에 의해 엄마에게 돌아간다. 그래서 이 말이 그 어떤 말보다 와닿았다. 지금 힘든 삶을 살고 있는 그 누구라도 이 말에 위로를 얻었으면 좋겠다.

"각자의 생장점이 다르기 때문이야.

어떤 씨앗은 더 많은 햇빛이 필요할 수도, 어떤 씨앗은 물이 덜 필요할 수도 있어.

모두 같은 방법으로 성장할 순 없거든."

"그럼 얘네는 어떻게 해야 해?"

은율은 씨앗이 잠들어 있는 땅을 가리켰다.

"믿고 기다려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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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라탄이즐라탄탄 2023-09-22 1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믿고 기다려 줘˝ 라는 마지막 문장이 공감이 많이 되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명랑걸우네 2023-09-22 17:1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좋은하루 되세요~
 
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
이경 지음 / 래빗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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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경험한 것과, 경험하지 않은 것을 대하는 데는 큰 차이가 있다. 그중 출산과 육아는 정말 경험해 보지 않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분야가 맞는다는 생각을 매일같이 한다. 워킹맘으로 7년을 살다가 살짝 쉬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결혼을 하면 당연히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생각만 있었지,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겠다는 생각 없이 출산을 했던 나는 짧은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겪으며 참 심하게 우울증을 앓았다. 기본적인 생활(식사와 수면 등) 조차 내 뜻대로 할 수 없었기도 하고, 엄마라는 경험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3시간마다 수유를 하고(새벽이든 밤이든 상관없이),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 아이를 바라보며 정말 많이 울기도 울었다. 그래서일까? 이 책의 이야기는 마치 내 이야기를 옮겨놓은 것 같았고,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접하며 내 기억이 떠올라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이 책은 국문학 박사이자 엄마인 이경의 첫 번째 소설집이다. 책의 제목이 된 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는 단편소설 한 작품의 제목이다. 황새라는 단어를 마주했을 때 떠오른 것은 바로 "황새가 아기를 물어다 준다"라는 이야기였다. 설마... 그 뜻일까? 싶긴 했다. 물론 임신이 아닌 출산 그 이후의 이야기긴 하지만 말이다. 워킹맘이자, 복직한 지 얼마 안 된 주인공 윤혜인은 아들 이안이를 키우고 있다. 남편은 상당히 거리가 있는 곳에서 근무하고 있기에 그녀는 독박맘이다. 그렇다고 친정이 가깝지도 않다. 뭔가 일이 일어났을 때(아이가 아프거나 등의) 소위 서포트를 해 줄 사람이 누구도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일이 벌어진다. 당장 복직 첫날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아이를 맡길 데가 없는 것이다. 예전에 조리원 동기인 3형제의 엄마 예진으로부터 소개받은 황새영아송영이라는 앱. 그 앱이 떠오른 건 늦은 밤이었다. 아이와 엄마를 원하는 곳까지 데려다주는, 그것도 편하게... AI 기술과 교통의 진보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마치 드론처럼 황새가 하늘을 나른다. 그 안에는 아이와 부모의 편의를 위한 시설이 담겨있다. 그리고 사람이 아닌(하지만 사람 같은) 직원도 타고 있다. 과연 혜인은 서울에서 친정인 남해까지 황새영아송영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또 다른 작품은 이름이 참 특이했다. 한밤중 거실 한복판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난 건에 대하여... 길기도 길다. 갑작스러운 스웨덴 배우의 등장!(이 책을 보고 궁금해서 찾아봤다.) 마른하늘에 홍두깨라니...! 알고 보니 젖병소독기 보틀스가 차별화로 내세운 AI 기능 때문이었다. 육아를 하다 보면, 많은 것과 단절이 된다.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아이와 단둘이 갇혀(?) 지내다 보면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대화를 못하게 된다. 기본적인 욕구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엄마들은 심한 우울증을 경험하게 된다. 바로 그 어려움에 착안하여 잠깐씩이나마 엄마의 대화 상대가 돼 주는 AI가 탑재된 것이다. 근데 왜 많고 많은 인물 중 알렉산더 스카스가드일까? 주인공 미주는 BTS에 RM을 제일 좋아하는 데 말이다. 스웨덴 사람이지만, 유창하게 한국말을 하는 그. 그의 기능(?)은 미주의 말벗이 돼주는 것과 남은 젖병이 몇 개인 지 정도 밖에 안되지만 어느 순간, 그는 미주에게는 꼭 필요한 존재가 된다. 근데, 보틀스의 치명적인 결함이 발견된다. 그리고 미주가 가지고 있는 제품이 리콜 대상이라는 연락을 받는데...

두 작품 다 읽으면서 상당히 획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엄마이기에, 본인이 경험해 봤기에 실제적으로 작품에 대입된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공부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매뉴얼도 없다. 아이마다 케바케니 말이다. 작품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하고, 눈물이 나기도 했다. 어쩌면 육아를 하는 엄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양한 기능을 가진 기계들이 아닌 내 얘기를 들어주고 토닥여 줄 누군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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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하며 기억하는 회계 용어 도감 - 회계 일타강사가 알려 주는 가장 이해하기 쉬운 입문서
이시카와 가즈오 지음, 오시연 옮김 / 비즈니스랩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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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로 밥을 먹고 산 지 14년째다. 회계학 수업을 들으며, 마지막 수업 날. 교수님께 질문을 하며 "평생 이쪽 분야를 접할 것 같지 않아서요"라는 말이 후회가 될 정도로 오랜 시간을 일했다. 시작은 해도 해도 내가 너무 모른다는 것이었고, 우연한 기회에 관련 분야의 자격증을 여러 개 취득하게 되었다. 그리고 취업.

다시 시작하게 된 이 시점에서 오래도록 일한 회계 책을 다시 잡게 된 것은, 쓰던 것만 쓰다 보니 멍텅구리가 된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큰 그림은 보지만, 분개 같은 세세한 부분은 다 잊힌 결과 다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회계를 처음 접하게 되면 제일 어려운 게 용어인 것 같다. 낯선 용어와 숫자들 앞에서 자꾸 주눅이 든다. 책을 읽으며 대학 마지막 학기 배웠던 과목의 과제가 떠올랐다. 해외 마케팅 관련 수업이었는데, 직접 해외에서 사업을 한다고 생각하고 관련 아이템을 비롯하여 회계자료까지 만들어서 발표하는 수업이었다. 제일 당혹스러운 것은 재무제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손익계산서, 재무 상태 표가 뭔지 하나도 몰랐던 터라 도대체 수치를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 아니 도대체 이 표에서 말하는 게 무엇인 지 당황스러웠다.(다행히 대충 이래저래 서치한 걸로 제출하긴 했다.) 이제야 13번의 결산을 하면서 익숙해졌지만, 회계를 처음 접하고 회계를 1도 배운 적이 없는 사람 입장에서는 낯설고 난해하기만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거의 준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알려주기에, 생각보다 깊이 있는 회계를 접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회계를 전체적으로 훑어볼 수 있겠다 싶다. 용어 자체가 낯설겠지만,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려는 저자의 노력이 보인다. 가령 헷갈리는 용어(유동성 vs 비유 동성, 회사채 vs 주식, 경리 vs 재무, 에누리 vs 할인 등)들을 비교해서 설명해 주고 있다. 특히 재무제표는 회사 입장에서 그 해의 성적표라고 볼 정도로 중요한 정보를 많이 담고 있는데 실제 회계지식이 없다면 또 이해하기 쉽지 않기도 하다. 특히 이 책의 part2를 읽고 나면 전체적인 재무제표의 맥락과 이해가 빠를 것 같다.

저자의 말처럼 용어의 뜻을 정확히 몰라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내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흘려들었다가 낭패를 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개인적인 경험일지 몰라도, 내가 다녔던 회사에서는 영업사원들에게도 기본적인 회계 수업을 받게 했었다. 알고 영업하는 것과, 모르고 영업하는 것에서 마인드 적 차이가 크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중 한 분은 회계분야 공부를 통해 업무에 접근하는 방식이 상당히 달라지기도 했다. 어느 회사나 회계가 없는 곳은 없다. 그 얘기인즉슨, 그만큼 회계는 회사 경영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이라는 뜻일 것이다. 헷갈리고 어려운 회계 용어와 낯선 표들 때문에 고민이라면 일 독을 권한다. 한결 편안하게 회계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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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산문답·계방일기 - 인간과 만물 간의 경계를 넘어 우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클래식 아고라 3
홍대용 지음, 정성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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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책의 저자 홍대용 하면 떠오르는 것은 단연 "실학자"다. 학창 시절 실학은 기존의 성리학적이고 이론 편향적인 학문에 반기를 들고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문, 즉 실생활에 필요한 학문이라고 배웠다. 한편으로는 실학자들이 실학을 연구하게 된 계기 중에는 벼슬의 제약이 있던 서얼 출신이거나 중인 출신이 많다는 것 또한 배웠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실학자는 신분적으로 제약이 있던 인물이겠거니... 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 얘기는 다르게 말하자면, 그들이 실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다시 보게 만들기도 한다.

홍대용은 유력한 가문에 주류라 일컬어지는 집안 출신이지만 비주류의 학문을 연구하는 실학자가 되었다. 그는 원리원칙을 따지는 전형적인 선비 같은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런 그의 일생의 전환점이 된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왜 실학자가 된 것일까? 중국 연행 덕분이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갇혀 있던 곳에서 벗어난 세상은 참 크고 달랐다. 그렇게 그는 눈이 바뀌고 새로운 세계관을 지닌 인물이 된다.

이 책 안에 수록된 의산문답과 계방일기는 홍대용의 생각과 사상을 마주할 수 있는 저서다. 의산문답은 가상의 인물인 허자와 실옹이 등장한다. 중국 요녕성에 있는 의무려산을 오르며 나눈 이야기를 담은 책이 바로 의산문답이다. 허자는 공리 명분만을 중시하는 인물로, 실옹은 실학자를 상징하는 인물로 그려졌는데 이 안에 담긴 주제는 우주와 만물에 대한 내용으로 스케일이 상당히 크다. 지동설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사람과 동물, 식물 중 누가 중요한가? 태양과 달 지구 등의 태양계를 비롯한 우주에 대한 이야기, 땅과 바다 자연현상 등 과학적 이야기도 상당수 담겨있다. 의산문답을 읽으며 놀랐던 것은 곳곳에서 누가 중심이냐에 따라 바라보는 내용 또한 달라진 다는 것이었다. 실학을 하는 인물이라도 그가 살고 있는 시대는 여전히 조선시대다. 신분이나 성별의 차이가 여전히 존재하는 사회였다. 그럼에도 홍대용은 실옹이라는 인물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다. 인간이 중심이 되면 동물과 식물의 가치는 인간의 눈에 맞게 결정된다. 하지만 동물이 중심이 된다면 어떨까? 세상에 귀하고 천한 것은 없다. 안과 밖, 자국과 오랑캐는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나뉘는 것이지 그 본질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두 번째 등장하는 계방일기에서 계방은 홍대용이 맡았던 세자익위사의 다른 이름을 말한다. 세자익위사는 세손(훗날의 정조)을 호위하는 벼슬이었는데, 홍대용이 세자익위사를, 한정유 등의 인물이 교육을 담당하는 세자시강원을 맡았다고 한다. 첫날의 일기부터 솔직히 놀라웠다. 정조가 북송의 정호와 정이라는 학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들의 집안에 두 번 시집간 딸의 절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그에 대해 홍대용은 다른 개념에서 절개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찌 보면 시대를 역행하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그 뜻을 잘 풀어서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마음의 수양에 관한 이야기도 찾아볼 수 있다. 범중엄과 여이간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여이간의 명과 암을 드러내면서 마음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심성의 수양은 책 곳곳에서 등장하기 때문에 여기서도 홍대용의 속내를 알 수 있다.

의산문답과 계방일기는 이번에 처음 마주하게 되었는데, 홍대용이라는 이름만 알고 있는 실학자의 사상과 그가 가지고 있던 깊이 있는 생각까지 마주할 수 있었다. 3세기 이상 지난 지금에도 홍대용의 사상은 여전히 실제적이고 와닿는 부분이 많았다. 내 기준으로 상대를 잘못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가? 기후 위기로 여러 가지 재앙적 사고들이 일어나는 요즘. 시대를 앞서간 그의 철학이 우리에게도 여전히 묵직한 교훈을 주는 이유를 깊이 있게 마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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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예술로 빛난다 -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대답
조원재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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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내면에는 근면 성실하려는 마음이 있는 동시에 나태해지고 싶은 마음 역시 있다.

이 둘은 일상에서 항상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일을 해야 하지만 동시에 하고 싶지 않기도 하다.

그렇기에 우리 존재 그대로 사는 것이 자연스러운 삶이라면, 우리는 일정 부문 근면 성실하면서도 일정 부분 나태하게 사는 지혜를 발휘하는 조화와 균형의 삶을 '예술적으로' 구성해 가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미술이 조금은 접근하기 편안해졌다. 미술 관련 도슨트 서적도 많고, 명화와 인문학을 접목하여 편안하게 읽을 수 있게 쓰인 책들도 쉽게 접할 수 있어서 인 것 같다. 방구석 미술관의 조원재 작가의 책도 그런 역할을 했던 책이 아니었나 싶다.(아쉽게도 초반에 몇 장을 읽고 덮긴 했지만;;;) 그럼에도 예술은 참 어렵다.

얼마 전 오랜만에 티브이에 출연한 한 배우를 마주한 적이 있다. 과거 오랫동안 방영된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다. 그 배우의 출연을 두고, 함께 출연했던 배우 중 한 사람이 했던 이야기가 책을 읽는 동안 떠올랐다. "배우의 연기가 시청자 뿐 아니라 상대 배우까지 울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분이었다."라는 말이었다. 책을 읽으며 예술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해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 속에 저자가 숨겨둔, 저자가 넣어둔 감정들이 있다. 그 감정들은 작품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가 감상자의 오감과 생각을 통해 흘러 들어간다. 감상자의 상태에 따라 저마다 다른 감정일 수도 있고, 같은 감정일 수도 있다. 연기자의 연기를 보고 시청자가 느끼는 공감처럼 미술작품도 그럴 수 있다는 것. 아직은 피부로 와닿을 정도로 경험해 본 것은 아니지만, 그런 감정을 나 또한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미술작품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모든 시간은 내가 보는 것을 온전히 스스로 결정하는 시간이다.

미술작품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어떤 것을 어떻게 보라는 둥 설명해 주지 않는다.

미술작품은 그저 그곳에 있을 뿐이다.

책 속에는 다양한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공존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느끼고 보았던 저자의 삶이 글을 통해 녹아있고, 그 글을 읽으며 나 또한 저자의 감정에 공감했다. 아직은 저자의 글과 같은 연결고리가 필요하지만 언젠가 나 역시 저자처럼 예술작품을 직접적으로 마주하며 공감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많은 작품들 중 유독 기억에 남는 작품은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었다. 이미 이건희 컬렉션을 통해 한번 접했던 작가들 이어서기도 하지만, 유난히 오래 다녔던 직장을 정리하고 그동안 꿈꾸었던 하루 종일 책에 빠져 지내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요즘. 내가 꿈꾸던 시간이 마냥 좋기만 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차에 마주해서 그런지 더욱 가슴에 깊이 들어왔던 것 같다. 직장을 다니며 늘 똑같은 일상을 살면서 지겹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던 것 같다. 하루 종일 원하는 만큼 책을 읽을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았는데 똑같은 일상이 되니 그 조차도 지루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연월일을 48년간 작업했던 온 카와라 뿐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점과 선으로 작품을 완성한 이우환은 과연 같은 작업을 하면서 지루했을까? 지겨웠을까? 그 물음에 저자는 이렇게 답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새롭게 보일 수 있다고 말이다.

도서관이 휴관인 월요일. 밀린 집안 일과 함께 서평을 마무리하면서 마주하는 하늘이 참 예쁘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오늘 또한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이 될 수도, 색다른 하루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내 삶을 귀중하게 만드는 열쇠는 바로 내 손에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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