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산문답·계방일기 - 인간과 만물 간의 경계를 넘어 우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클래식 아고라 3
홍대용 지음, 정성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두 책의 저자 홍대용 하면 떠오르는 것은 단연 "실학자"다. 학창 시절 실학은 기존의 성리학적이고 이론 편향적인 학문에 반기를 들고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문, 즉 실생활에 필요한 학문이라고 배웠다. 한편으로는 실학자들이 실학을 연구하게 된 계기 중에는 벼슬의 제약이 있던 서얼 출신이거나 중인 출신이 많다는 것 또한 배웠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실학자는 신분적으로 제약이 있던 인물이겠거니... 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 얘기는 다르게 말하자면, 그들이 실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다시 보게 만들기도 한다.

홍대용은 유력한 가문에 주류라 일컬어지는 집안 출신이지만 비주류의 학문을 연구하는 실학자가 되었다. 그는 원리원칙을 따지는 전형적인 선비 같은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런 그의 일생의 전환점이 된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왜 실학자가 된 것일까? 중국 연행 덕분이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갇혀 있던 곳에서 벗어난 세상은 참 크고 달랐다. 그렇게 그는 눈이 바뀌고 새로운 세계관을 지닌 인물이 된다.

이 책 안에 수록된 의산문답과 계방일기는 홍대용의 생각과 사상을 마주할 수 있는 저서다. 의산문답은 가상의 인물인 허자와 실옹이 등장한다. 중국 요녕성에 있는 의무려산을 오르며 나눈 이야기를 담은 책이 바로 의산문답이다. 허자는 공리 명분만을 중시하는 인물로, 실옹은 실학자를 상징하는 인물로 그려졌는데 이 안에 담긴 주제는 우주와 만물에 대한 내용으로 스케일이 상당히 크다. 지동설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사람과 동물, 식물 중 누가 중요한가? 태양과 달 지구 등의 태양계를 비롯한 우주에 대한 이야기, 땅과 바다 자연현상 등 과학적 이야기도 상당수 담겨있다. 의산문답을 읽으며 놀랐던 것은 곳곳에서 누가 중심이냐에 따라 바라보는 내용 또한 달라진 다는 것이었다. 실학을 하는 인물이라도 그가 살고 있는 시대는 여전히 조선시대다. 신분이나 성별의 차이가 여전히 존재하는 사회였다. 그럼에도 홍대용은 실옹이라는 인물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다. 인간이 중심이 되면 동물과 식물의 가치는 인간의 눈에 맞게 결정된다. 하지만 동물이 중심이 된다면 어떨까? 세상에 귀하고 천한 것은 없다. 안과 밖, 자국과 오랑캐는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나뉘는 것이지 그 본질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두 번째 등장하는 계방일기에서 계방은 홍대용이 맡았던 세자익위사의 다른 이름을 말한다. 세자익위사는 세손(훗날의 정조)을 호위하는 벼슬이었는데, 홍대용이 세자익위사를, 한정유 등의 인물이 교육을 담당하는 세자시강원을 맡았다고 한다. 첫날의 일기부터 솔직히 놀라웠다. 정조가 북송의 정호와 정이라는 학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들의 집안에 두 번 시집간 딸의 절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그에 대해 홍대용은 다른 개념에서 절개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찌 보면 시대를 역행하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그 뜻을 잘 풀어서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마음의 수양에 관한 이야기도 찾아볼 수 있다. 범중엄과 여이간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여이간의 명과 암을 드러내면서 마음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심성의 수양은 책 곳곳에서 등장하기 때문에 여기서도 홍대용의 속내를 알 수 있다.

의산문답과 계방일기는 이번에 처음 마주하게 되었는데, 홍대용이라는 이름만 알고 있는 실학자의 사상과 그가 가지고 있던 깊이 있는 생각까지 마주할 수 있었다. 3세기 이상 지난 지금에도 홍대용의 사상은 여전히 실제적이고 와닿는 부분이 많았다. 내 기준으로 상대를 잘못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가? 기후 위기로 여러 가지 재앙적 사고들이 일어나는 요즘. 시대를 앞서간 그의 철학이 우리에게도 여전히 묵직한 교훈을 주는 이유를 깊이 있게 마주할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