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을 다독이는 관계 심리학 - 나르시시즘과 외로움
우즈훙 지음, 박나영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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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소년 나르시스는 숲의 요정 에코의 사랑을 외면하고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만을 사랑하다가 물에 빠져 죽게 됩니다. 그곳 물가에 수선화가 피어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선화의 꽃말이 ‘자기애’ 또는 ‘자기도취’라고 하며 프로이트는 자기 자신에게 깊게 애착하는 것을 ‘나르시시즘’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외로움에서 벗어나 긍정의 힘으로 서로 용기를 북돋아 주는 관계를 만드는 방법, 이런 관계의 완성인 사랑으로 나아가는 깨달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내 안의 나와 터 놓고 이야기 하는 것이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첫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건강한 나르시시즘

p35 건강한 나르시시즘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애의 손상을 견딜 수 있다. 그들은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배려하고 존중하며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건강하지 못한 나르시시즘을 가진 이들은 자기애를 지키기 위해 사람들로부터 입은 은덕을 저버리기도 하고 배신하기도 한다.

모든 사람에게 나르시시즘은 어느 정도 있습니다. 건강한 수준의 자기애는 삶에 활력을 불러일으키지만 문제는 병적 나르시시즘의 상태가 나타나는 경우는 문제가 됩니다.

건강한 나르시즘은 인간 정신 발달 과정에서 꼭 있어야 하는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나르시시즘의 핵심 주제는 인격적인 가치 또는 무가치, 그리고 그 가치를 유지하거나 높이기 위한 온갖 노력에 있습니다. 나르시스적인 인물은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고 느끼기 위해 언제나 최고가 되려고 합니다. 이들은 자신과 사랑에 빠진 것처럼 행동하지만, 이것은 자신에 대한 마음속 회의감을 감추려는 기만적인 행위일 뿐입니다. 자신을 정말로 사랑하고 높이 평가하는 사람은 자신을 추켜세우지 않습니다.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나르시스적인 부족함이 있어서 이를 자기과시를 통해 상쇄하려는 계산에 불과합니다.

긍정적인 나르시시즘을 가진 사람은 자신뿐만 아니라 남과도 훌륭하게 관계를 맺어 나갑니다. 즉 자신의 인격적 가치를 느끼고, 또 “접근이 불가능한 자신만의 의식 세계를 높게 평가”할 줄도 압니다. 실패하거나 비판받아도 자존감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거나 다시 충분히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에 대한 신뢰감을 갖고 있고, 자신의 장점은 물론 약점까지도 존중하기 때문에 남을 시기하거나 기만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반대로 자기애가 손상되거나 덜 발달된 경우에는 성공과 성과, 지위, 매력, 그리고 권력으로 이루어진 완벽한 외적인 모습이 긍정적인 자존감을 대체합니다. 직업상의 맥락에서 볼 때 나르시스적인 사람들은 대개 크게 성공했고 매우 유능합니다. 이들의 문제는 대개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이나 친밀한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습니다. 이들의 완벽한 겉모습 뒤에 숨겨진 불안감과 자기 회의는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가 다른 누군가가 감정적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 쉽게 탄로 나기 때문입니다.

포용

p68 자신의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차라리 죽을지언정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한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지적을 용납하지 않으며 진심으로 잘못을 반성하지도 않는다. 반면 주변 사람이 실수를 유발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더구나 잘못이 없는 경우에도 잘못을 인정하도록 강요하기도 한다.

사회적 현상이자 내면적 가치이기도 한 나르시시즘은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자 일종의 양날의 칼로 작용합니다. 한편으로 나르시시즘은 이기주의, 자기중심성 등을 의미하며, 내가 특별하고 내가 잘났다는 자의식과 연결됩니다.

나르시시즘이 강한 사람들은 우울, 불안, 신경증적 특성을 보이기도 하고 심하게는 자기애성 성격장애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 장애를 겪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무시하며 공감능력이 결여돼 있는 반면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는 지나치게 큽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 과시적 태도를 보이고, 자신이 특별한 대우를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외로움

p132 가장 무서운 것은 치명적인 외로움이다.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으면 외부 세계에서 완전히 거부당한 경험으로 인해 외부로 뻗어나갈 동력을 잃게 되고 타인의 동력을 받아들일 기회까지 단절된다. 관계의 상호작용에서 상처받을 기회조차 없기에 자신을 완전히 폐쇄시키게 된다.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계속 혼자 살아왔다면 외로움을 느꼈을까요? 역시 마찬가지로 외로움을 느끼게 되엇을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하나하나의 개체가 독립적인 존재로 생을 영위하여야 하는 압박과 소멸이라는 잠재적 자연의 섭리가 상충되어 나타나는 무력감에 기인하는 심리적 현상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증오

우리 안에는 잘나고 대단한 사람들이 권좌에서 흔들릴 때 고소해하는 어두운 면이 있습니다. 우리는 잘난 사람들의 결점과 불운을 좋아합니다. 그로써 그 사람들도 우리와 그리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자기애적 시기심은 우월해지고 싶다는 필사적인 욕구를 먹고 자라며, 매우 모호한 감정입니다. 나르시시스트의 내면에서 진행되는 다른 여러 감정들이 그렇듯, 시기심도 무의식적이거나 의식되더라도 부인되기 십상입니다. 이로 인해 시기심은 더욱 위험합니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개인들 자신은 시기심도, 우월성에 대한 욕구도 자각하지 못한 채 그저 독선적인 경멸감만을 느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증오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피플플리저

누군가를 돕는 행위는 좋은 일입니다. 도와주는 사람은 내가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또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고, 도움을 받는 사람은 누군가가 나를 도와준다는 것에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일이라면, 다다익선이랬다고, 하면 할수록 좋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종종 남을 돕는 행위가 나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희생을 담보로 하는 경우까지 생김에도 그것을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사람들을 부르는 용어로 People Pleaser 피플 플리저 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피플플리저가 되는 것일까요?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학자들은 ‘보상체계’ 에서 그 원인을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린시절 다른 사람을 도와줬던 특정 행동으로 인해 우리는 어떠한 형태의 ‘보상’을 받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족 혹은 학교의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에게 칭찬과 관심을 받고 그것이 본인의 행동동기를 강화시켰을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성인이 된 이후에는 보상체계 보다는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그러한 성격과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행동으로 인해 나를 인정없고 야박한 사람으로 볼까봐 혹은 이기적인 사람으로 비춰질까 쉽사리 거절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두려움은 사랑받고자 하는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있고 그것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나의 희생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위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러다보면 그러한 성격을 이용당해 정작 나의 안정과 심리적 건강을 위협받는 경우가 생깁니다.

관계

나르시시즘은 무엇보다 인간관계 문제를 많이 발생시킵니다. 자신을 과대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타인의 충고나 조언에도 쉽게 기분이 상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듭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있어도 그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직장에서도, 남녀관계에서도,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문제가 종종 발생합니다.

자신이 매우 중요하고 특별한 사람이라는 과장된 지각을 하게 되고 과도한 찬사를 요구하거나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기 힘들게 됩니다. 또한 나르시시즘이 강한 사람은 타인에 대한 감정이입능력이 결여되어 타인을 질투하거나 타인들이 자신을 질투하고 있다고 믿기도 합니다

나르시시즘적 성향을 지닌 사람을 두드러져 보이게 만드는 것은 과도하게 부풀려진 자아존중감입니다. 나르시시즘이 강한 사람일수록 근본적인 자아존중감은 낮습니다. 이를 감추기 위해 외부에 강한 면모를 과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자기회의와 불안정한 자아존중감 체계를 감추기 위한 행동에 불과합니다. 이 때문에 타인과 가까워지면 이런 자기 포장이 드러나기 때문에 타인과 진정한 관계를 맺기가 어렵습니다.


p183 인생은 고난과 고통의 연속이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국 성공한 삶으로 자신을 이끈 이들은 확실한 목표와 행동이 수반되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에서 베풀었던 따뜻함과 사랑이다. 자신의 목표가 주변에서 응원을 받고 지지와 도움을 받아 보이지 않는 힘이 발휘되었기 때문이다.

자기애는 자신의 내면에 나타나는 두려움과 불안감에 대한 방어기제로 작용하므로 마음의 상처와 가치 상실감에 대한 일종의 보호 장치인 셈입니다. 우리 내면의 진실 된 모습을 직시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점에선 부정적이지만, 아무튼 그 효과가 매우 탁월한 것으로 입증되었습니다.

 나르시시즘은 이해력, 창의력, 업무적 역량을 키워주고 화술과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을 키우는 데 기여하기도 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타인과 교류하고 공감하는 능력, 사랑을 주고받는 능력이 부족하다면 이 또한 나르시시즘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자존감에 상처 입은 나르시스적인 사람들이 우리 삶을 황폐하게 만들 때 우리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배울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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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ㅣ 나폴리 4부작 2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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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예외 없이 청춘의 시기를 경험합니다. 청춘은 처음으로 낯선 세상에 홀로서야 하는 시기이기에 불안정하고 자주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고,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당면한 문제에 관한 해결책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이성과의 불협화음, 친구와의 관계, 나를 둘러싸고 압박해오는 집단의 대응, 점차 멀어지는 부모와의 관계,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고 이해하는 방법은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야말로 가장 중요한 시기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 삶에서 중요한 자아와 세계관이 이때 모두 결정되기 때문에, 내면의 흔들림이 가장 격렬하게 일어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주인공 레누와 릴라가 청소년기 끝에서 20대 초반까지 따라가는 나폴리시리즈의 두 번째 책입니다. 이야기는 레누가 릴라가 자신에게 준 공책을 강물에 던지면서 시작합니다.

엘레나는 대학생활을 시작하고, 릴라는 신혼 여행에서 험난한 시작과 함께 새로운 결혼 생활로 돌아옵니다. 릴라는 임신에 대한 기대를 받으며 살고 있음을 알게 되지만, 아이를 갖고 싶지 않고 남편을 깊이 원망합니다. 그녀의 첫 번째 임신은 결국 10주만에 유산합니다. 의사는 임신을 준비하기 위해 햇빛을 받으며 수영할 것을 처방합니다. 릴라는 레나에게 함께 가자고 부탁합니다. 그곳에서 만난 니노와 릴라는 깊은 관계로 발전을 하고 자신의 결혼생활을 끝내려고 합니다. 결국 릴라의 남편인 스테파노는 자신 또한 바람을 피우고 그의 연인도 임신했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p330 나는 대체 왜 항상 이 모양일까. 너무나 간절하게 부와 명예와 칭찬과 성공을 갈망하는 본심이 두려워서 오히려 내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려는 것일까.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그 간절함이 마음 속에서 폭발하여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될까봐 두려운 것일까.

한편, 레누는 어린 시절부터 그녀는 동네에서 온 또 다른 똑똑하고 자신감 넘치는 학생인 니노에게 끌렸습니다. 니노도 레누에게 끌리는 것 같지만, 진정한 사랑의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니노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릴라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마음을 정리합니다. 그 후 대학에서 만난 피에트로와 졸업 후 결혼을 약속합니다. 졸업 후 피에트로는 레누에게 선물로 약혼반지를 줍니다. 그녀는 그에게 자신이 쓴 소설을 줍니다. 피에트로는 그것을 어머니에게 전달하고, 어머니는 그녀의 인맥을 사용하여 출판사에 싣습니다. 이 책은 대중적인 성공과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출시되지만, 레누는 자신의 오래된 동네에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실망하고 혼란스러워합니다. 결국 이야기는 레누가 출판된 작가로서 첫 공개 낭독회에 참석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p68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는 모습을 보아왔다. 낯선 남자는 우리 몸에 손가락 하나댈 수 없지만 부모님과 남자친구나 남편은 원한다면 언제든지 우리의 뺨을 때릴 수 있다고 배우면서 자라왔다. 그들은 우리를 사랑하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를 제대로 교육시키고 알아들을 때까지 다시 가르치기 위해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1권과 마찬가지로 여성들의 우정, 계급 소외, 경쟁 관계, 문맹 퇴치의 중요성 등과 같이 많은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레누와 릴라의 관계에 대한 깊이와 강렬함이 있습니다. 저자는 독자로 하여금 계급과 성 역할의 어려운 교차점에 직면하도록 강요합니다. 즉, 릴라와 레누가 빈곤의 한계를 탈출하는 두 가지 방법을 나타냅니다. 레누는 고등 교육에서 탐나는 자리를 얻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릴라는 부유한 남자와 결혼합니다.


p563 나는 평생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다. 말을 잘못 할까봐, 너무 과장된 어조로 말할까봐,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을까봐, 옹졸한 마음을 들킬까봐, 흥미 있는 아이디어를 내놓지 못할까봐 평생 두려움에 떨며 살아갈 것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둘의 관계는 비대칭에 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한 사람은 진정으로 천재적인 반면, 다른 한 사람은 관심과 우정을 받을 가치가 있는 것으로 가장하는 단순한 사람이라는 심한 의심을 품고 있습니다. 릴라에 대한 레누의 감정은 종종 서로 모순되는 감정의 얽힘으로 얽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반성하고, 스스로를 분석하고, 비교합니다. 레누는 자신이 친구만큼 매력적이지 않거나 재능이 뛰어나지 않아 릴라의 그늘에 남아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두려워합니다.


p470 릴라의 삶은 계속해서 내 삶에 투영된다. 내 말에서는 릴라가 한 말의 메아리가 느껴지고 내 결연한 행동은 릴라의 행동을 재각색한 것이다. 내 부족함은 릴라의 과함 때문이었고 내 과함은 릴라의 부족함을 보완하기 위함이었다

10년 반을 다룬 첫 번째 소설에 비해, 이번 작품은 두 인물의 삶을 3~4년 정도만 다루고 있습니다.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얼마나 많은 일이 벌어지는지 감탄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이 소설 또한 중요한 사건으로 끝납니다. 이 만남은 두 친구 중 적어도 한 명, 아마도 둘 다의 삶을 바꿀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이 매력적인 이야기의 다음 편을 읽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게 만들었습니다.

가슴속에 릴라의 분노가 느껴졌다. 내 것이기도 하고 내 것이 아니기도 한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통제력을 잃었고 그 상실감은 내게 오히려 기분 좋은 만족감을 주었다. 나는 그 힘이 확장되기를 바라면서도 동시에 두려움을 느꼈다.
- P21

릴라가 그런 아이였던가. 원래부터 나처럼 고집스러울 정도로 성실했던 게 아니었던가. 이때껏 오직 내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 그토록 많은 생각을 하고, 구두를 만들고, 글을 쓰고, 이야기를 하고, 복잡한 계획을 짜고, 분노하기도 하고, 새로운 것을 창작해낸 것이었단 말인가.
- P195

이제 우리의 새로운 모험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삶이 허락지 않은 것을 우리는 함께 쟁취할 것이다. 그렇게 될 것이다.
- P383

릴라는 그런 나와는 달리 진심으로 무엇인가를 갈망할 줄 알았다. 원하는 것은 망설이 없이 취할 줄 알았다. 열정을 다할 줄 알았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고 모멸감도 비웃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얼굴에 침을 뱉어도, 흠씬 두들겨 맞아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릴라에게 사랑은 상대방이 자기를 원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쟁취하는 것이었다
- P404

불현듯 ‘거의’라는 단어가 마음에 와 닿았다. 내가 해낸 건가. 거의 그렇다. 나폴리에 있는 고향 동네에서 이제는 완전히 벗어난 건가. 거의 그렇다. 나는 교육 수준이 높은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과 친구가 되었는가. 거의 그렇다. 갈리아니 선생님이나 그녀의 아이들보다 더 수준 높은 아이들과 친구가 되었는가. 거의 그렇다. 시험에 시험을 거치면서 권위 있는 교수님들에게 인정받는 학생이 되었는가. 거의 그렇다.
‘거의’라는 단어 뒤에 실상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두려웠다. 피사로 온 첫날부터 나는 두려웠다. 나는 ‘거의’라는 수식어를 붙일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두려웠다
- P561

나는 몹시 흥분한 상태로 공장을 떠났다. 마음 속으로는 릴라를 두고 떠나는 것이 괴로웠다. 릴라가 없으면 내게 아무런 중요한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과거의 확신이 되돌아왔다. 그러면서도 릴라의 몸에서 나는 기름 냄새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그곳을 떠나고 싶었다
- P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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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Sister's Keeper (Paperback)
조디 피콜트 지음 / Washington Square Pr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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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그래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면서 들어본 사랑에 대한 가장 짧지만 솔직한 인용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항상 모든 경우에 해당하지는 않습니다.


소방관이자 천문학자인 Brian과 전직 변호사인 Sara는 완벽한 가정을 꾸리고 있지만, 이제 열여섯 살이 된 Kate가 2살에 백혈병 진단을 받으면서 삶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바뀝니다.

당시 맏이인 Jessie는 4살이었습니다. 이제 그녀는 10대가 되었습니다. Kate는 16세이고 백혈병이 재발합니다. Sara와 Brian은 백혈병에 걸린 어린 소녀 Kate의 기증자를 찾을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합니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그들은 Kate와 완벽한 유전적으로 일치하는 Anna라는 아기를 갖게 됩니다. 그들은 탯줄의 혈액만을 사용할 계획입니다.

Anna가 13살이 되었을 때, 그녀의 부모는 그녀가 Kate에게 기꺼이 신장을 기증할 것이라고 가정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Kate는 죽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십대들과 마찬가지로 Anna는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십대들과 달리 그녀는 항상 보이지 않는 존재로 취급되었습니다. 그녀는 가족을 분열시키고 사랑하는 언니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결정을 내립니다. 자신의 신체에 대한 권리를 위해 부모를 고소하기 위해 법원에 갑니다. Anna가 의료적 해방을 원하며 부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을 때, Sara는 자신의 딸이 잘못을 저질렀음을 의심하지 않으며, 가족을 함께 지켜야 하는 책임을 회피하고 싶어합니다.

Sara의 동기를 믿지만 그녀의 선택이 정당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다른 아이를 위해 희생할 마음으로 아이를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Anna에 대한 그녀의 모든 사랑과 보살핌은 그것을 보상하지 않습니다. Anna는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자신이 있을 곳이 정말 없다고 느낍니다.

Anna가 사라진 후 Kate는 그녀의 몸에서 받은 것을 통해 의학적 기적이 일어나고 그녀는 그녀의 질병에서 회복된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재발이 없습니다. 의사들은 설명할 수 없지만 Kate는 Anna의 죽음이 그녀의 죽음을 보상하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구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이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고 그들이 우리처럼 행동하기를 기대할 권리가 있을까요? Anna 자신도 우리에게 답을 줄 수 없습니다. Anna가 무엇을 선택하든 그녀는 그것과 함께 살 수 없고, 행복할 수 없고, 그녀 자신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결국 그녀의 삶은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녀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Anna의 여정을 따라가다 책의 말미에 이르면 쉽거나 정답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이거나 심지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챕터는 항상 1인칭으로 ​​이야기되며 등장인물 간에 번갈아 나타납니다. 과거 회상은 대부분 Sara의 눈을 통해 매끄럽게 연결되지만, 사람들이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사진을 보거나 자신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대화를 통해서도 이루어집니다. 각 챕터마다 다른 등장인물의 관점이 표현되어 있어서 모든 사람의 관점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줄거리 자체는 매우 독창적입니다. 가족이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부모가 어떻게 모든 자녀를 책임져야 하는지, 그리고 언제까지 한 아이가 병원을 들락날락하고 여러 가지 재발을 겪으며 평생을 보내기에 충분할 것인지에 대한 불가능한 논쟁이 너무 많습니다.

아름답지만 가슴아픈 이야기였습니다. 그동안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을 느끼게 합니다. 동시에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우리의 선택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의문을 갖게 만드는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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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ara and the Sun (Paperback, International) - 가즈오 이시구로 신작 '클라라와 태양' 원서
RANDOM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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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는 지금을 어떻게 기억할까요? 그들이 어떤 형태로 의식을 달성했다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현재 그들의 선사 시대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감정과 의식을 가진 최초의 기계는 조상에 대한 엄청난 기록과 마주하게 되지만, 그들의 행동을 모델링할 대상은 인간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류가 발생하기 쉬운 무리이며 변덕스럽고 혼란스럽고 특히 평화롭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황스럽기까지 합니다. 이것은 이 책의 주제입니다.


외로운 10대 Josie에게 우정을 제안하도록 프로그래밍된 인공 지능 AF Klara의 관점에서 본 외로움과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다른 AF가 있는 매장에 Klara가 전시되어 있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녀는 Josie를 발견하고 Josie가 그녀를 선택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고 Josie와 그녀의 어머니는 AF를 구입하지 않고 가게를 나갑니다. 시간이 흐르고 Klara는 그녀가 디스플레이를 떠날 수 있을지 궁금해합니다. 그녀는 이미 더 새롭고 더 나은 AF 모델인 B3로 교체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Josie는 어머니와 함께 돌아와서 Klara가 B2 모델이지만 실제로 그녀가 원하는 AF라고 어머니를 설득합니다. 가게 주인은 B2 모델이 공감에 특화되어 있고 Josie의 어머니는 Klara가 그들과 함께 집에 오는 것을 허락하기로 동의했다고 설명합니다.

Josie에게 알려지지 않은 질병으로 죽은 여동생이 있고 Josie 자신도 매우 아픕니다. Klara는 Josie의 AF로서 그녀의 의무 중 일부가 Josie의 치유를 돕기 위해 태양이 제공하는 특별한 영양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반면에, Josie의 어머니는 Josie가 죽을 경우 Klara가 슬픔에 빠진 그녀를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에 대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어느 시점에서 Josie는 너무 아파서 어머니와 특별한 나들이를 가지 못해서 Klara를 데려가서 Klara와 함께 있으면 그렇게 외롭지 않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대체되어 AF에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어느 시점에서 Josie와 Klara는 극장에 가고 한 여성은 AF가 일자리를 빼앗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극장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서 자리까지 빼앗고 있다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시작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AF조차도 쓸모없고 쓰레기 더미로 강등되는 한 가지 모델에 불과합니다.


이 소설은 주변 사람들, 특히 Josie의 감정 상태에 대한 그녀의 세밀한 관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녀는 감정에 대한 완벽한 안테나를 가지고 있지만 도덕이나 정의와 같은 개념을 거의 이해하지 못합니다. Klara가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과 상호 작용하기 때문에 때로는 Klara가 보는 것이 독자에게 이해되지 않는 장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그녀의 변화하는 관점은 책의 핵심 전제를 반영합니다.

Klara의 눈에 비친 인간의 복잡한 행동을 아웃사이더의 관점에서 냉철하고 통렬하게 해석합니다. Klara가 만나는 모든 다른 사람들을 주의 깊게 관찰한 후, 모든 인간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외롭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암울한 전망일 수도 있지만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자동화된 미래에 대한 묘한 희망을 남겼고, 기술의 점점 더 인간화되는 관점에서 인간과 기계 사이의 조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기술이 인류를 파괴하고 있다거나 유전자 변형이 우리 존재에 치명적인 위협이라는 암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의 의미로 끝납니다.

여러 면에서 이 책은 우리가 살고 있는 점점 더 고립되어 가는 세상에 대한 현실적인 예측이기도 합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가 기술에 의존하여 교제를 찾고 외로움을 억누를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당혹스럽습니다. 그러나, 이 소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AF가 좋은 동료를 만들 수는 있지만 결코 인간의 우정을 대체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중 대부분은 교육과정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고 진정한 친구를 찾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가족, 친구, 룸메이트 모두가 말 그대로 더 이상 짜증나지 않을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이야기할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었을 때, 아니면 너무나 속상해서 그저 울고 싶을 때, 함께 울어줄 사람이 있나요? Klara는 누군가와 그녀가 그녀의 인간이 필요할 때 진실하고 부끄럽지 않게 발산할 수 있는 존재를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로봇이든 아니든, 변함없이 충성스럽고 항상 존재하는 친구라는 개념이 정말 그렇게 나쁜 것일까요?

제조된 로봇이 점점 더 지각하고 직관적으로 변한다면, 원래 종속되도록 설계된 로봇이 결국 인류를 위로하는 대신 위협하게 될 수 있을까요? 프로그래밍되고 자동화된 로봇이 우리가 살고 있는 유형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상상할 수 있나요?

소설은 삶의 의미나 존재의 본질에 대해 쉬운 답을 제공하려고 하지 않거나, 해서는 안 되지만, 위대한 문학은 우리 안의 보이지 않는 곳에 빛을 가져다줍니다. 우리는 훌륭한 문학 작품을 접할 때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

Klara가 태양의 따뜻함 속에서 보내는 모든 순간에 감사하는 것처럼 서로와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겠습니다. 그녀는 절망과 숙명보다는 희망과 믿음을 선택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300페이지가 조금 넘는 분량에서 우리는 다가올 세계에 대한 암울한 예언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우울함 속에는 마치 태양이 내리쬐는 것처럼 독자들을 따뜻하게 해 줄 인간성과 우정의 교훈으로 가득 찬 이야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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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 호스피스 의사가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깨달은 삶의 의미
레이첼 클라크 지음, 박미경 옮김 / 메이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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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자와 가난한 자, 빠르든 느리든, 고통스럽든 평화롭든, 젊고 늙고 그 사이 어딘가에 우리 모두 인생의 마지막에 도달합니다. 부분적으로 확실한 것은 부정하지만 수치스러운 불가능처럼 느껴질 수 있는 인간의 본능 때문에 죽음은 끔찍하고 익살스럽고 폭력적이며 외로운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더 오래 살기는 쉬워지고 잘 죽기는 더 어려워졌습니다. 죽음은 대부분 병원 병동에서, 자주 커튼이 쳐진 침대에서 혼자, 또는 의사들이 행하는 조치, 그리고 벼랑 끝에서 자신을 되찾기 위해 분투하는 상황에서 발생합니다. 병원은 대체로 사람들을 생명과 시간으로 회복시키는 치료의 장소이며, 죽음이란 의료 실패로 여겨집니다.


p208 호스피스 보다 두려움과 금기로 둘러싸인 건물은 없다. 환자들은 흔히 호스피스 병동을 삶의 이야기가 뚝 끊기는 벼랑으로 여긴다. 호스피스 문지방을 넘어 오면 곤두박질치며 죽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경험하지 못한다고 상상한다. 이곳에 들어온 순간, 삶과 희망이 모두 무너져 내린다

저자인 레이첼 클라크는 죽어가는 사람들과 함께,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일합니다. 완화의학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인 그녀는 치료에 대한 모든 희망이 사라졌을 때 사람들이 찾아오는 호스피스에서 하루를 보냅니다. 그녀의 직업은 생명을 구하는 것이었고 종종 전쟁터에서 싸우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긴 싸움이 끝나면 안전한 곳에서 사람들을 마지막 문턱까지 동행하는 것입니다. 의학이 여전히 필수적이지만, 똑같이 중요한 것은 그 과업에 필요한 상상력이 풍부한 친절, 환자를 취약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는 의무감입니다. 때로는 그녀가 돌보는 사람들이 고통 없이 멈출 때까지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p255 완화 의료를 행하는 의사로서, 우리의 역할은 삶을 연장하는 게 아니다. 불가피한 일을 막으려고 싸우는 것도 아니다. 병이 통제를 벗어났음을 받아들이면, 즉 불치병의 최종성에 맞서지 않고 그 안에서 노력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할 수 있다. 우리의 도움으로 환자는 눈을 감는 그날까지 삶의 질을 높이고 의미를 찾고 자잘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책은 2가지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는 존경받는 아버지이자 의사이자 그녀의 롤 모델이자 멘토인 아버지의 죽음입니다. 또다른 하나는 20대 저널리스트로 일하던 클라크가 의사가 된 후 완화의료 전문가가 된 과정입니다. 저자는 자신의 실수를 반복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녀가 범하는 실수, 그녀가 느끼는 두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녀는 의료에 종사하는 치료자조차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고통을 감수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호스피스에는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랑, 더 많은 힘, 더 많은 친절, 더 큰 기쁨, 더 많은 부드러움, 더 많은 은혜, 더 많은 동정심과 같이 삶에서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과 나머지 우리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말기 환자는 우리가 세상에서 모든 시간을 가진 것처럼 사는 동안 그들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p371 여름날 하루살이의 덧없는 삶에서 유유히 흐르는 강물에 서서히 깎여 나가는 빙하 협곡에 이르기 까지, 세상의 만물은 결국 죽거나 사라질 운명이다.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아무리 사랑받더라도, 영원히 머물거나 견디지는 못한다. 그 사실만이 변함없이 존재한다. 그런데 살아있는 존재의 이러한 절대적 원칙에 유연하게 맞설 장치가 있다. 바로 인간의 선택 능력이다. 죽을 운명에 대처하는 방법을 스스로 결정하는 힘, 이 힘은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앗아 살 수 없다. 분노하고 부정하느냐, 받아들이고 포용하느냐, 선택은 우리 몫이다

저자는 죽음에 대해 글을 쓰고 있지만 또한 삶에 대해서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죽음은 삶에 가치를 부여하고 시간에 소중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녀는 호스피스에서 환자들이 삶의 끝이 다가옴에 따라 일상의 사랑스러움을 새롭게 깨닫고 살아가는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울고 싶게 만든 구절은 죽음에 대한 구절이 아니라 살고, 사랑하고, 작별하는 법을 배우는 구절이었습니다.


p365 아버지가 떠난 지도 벌써 6개월이 지났다. 장례식을 치르고 업무에 복귀했을 때, 나는 다른 의사가 되어 있었다.이젠 슬픔의 맛과 무게를 알았다. 병실에 들어서면, 조만간 떠나보내야 할 사람의 소중한 생명에 매달리는 가족들의 퀭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슬픔도 사람처럼 우리가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슬픔의 고통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결국 사랑하지 않는 것임을 나는 이제 속속들이 알았다.

늘 남의 이야기인 줄로만 알던 죽음은 어느새 누군가에게 다가와 삶을 엄습하고 큰 위기 속에 몰아넣기도 합니다. 그 낯설고 감당하기 힘든 불청객 앞에서 번민하고 고뇌하는 사이 그동안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남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마음을 내려놓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이제 덤덤히 죽음을 마주할 수 있다는 마음이 들 때, 지나온 삶뿐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삶도 새롭게 다가옵니다. 결국은 고통스럽게 거쳐야 할 죽음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최소한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 것임은 분명합니다.

정신분석학이든 심리학이든 인간 심리를 연구하는 이들의 공통적인 주장이 있습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어떤 과목에서보다 더 많은 것을 부모의 죽음을 통해 배운다.” 부모가 살아 있을 때 중년 남자는 죽음으로부터 보호받는다. 부모가 먼저 죽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사망하면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다음 차례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1순위가 된 것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노쇠해져가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늙음', '죽음' 등 현실이면서도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았던 것들이 일상 속으로 성큼 들어왔음을 느끼게 됩니다. 책을 읽으면서 그 현실감은 더더욱 구체성을 띠게 되었습니다. 나에게는 오랫동안 현실감을 주지 못했던 '죽은' 언어였던 죽음, 임종 등의 단어가 이제 살아 꿈틀거리는 듯합니다. 나를 건드리는 '살아있는' 언어가 되었습니다. 죽음은 '언젠가' 우리 모두의 일입니다.


p366 "남은 나날을 '왜 나지? 도대체 왜 나야?'라고 따지면서 낭비할 수도 있어.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는, 아니 우리는 태어난 그 순간부터 죽어가고 있어. 하지만 죽음의 문턱을 넘기 전까지는 여전히 살아있잖아. 그러니까 나는 그저 묵묵히 내 삶을 살아갈 거야

누구나 다 겪지만 겪은 사람은 죽어서 말이 없고, 살아있는 우리는 아직까지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미지의 영역인, 그래서 공포스러운 죽음 앞에 이제 조금 더 편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죽음은 현재 살아있는 우리 모두에게 다가올 미래입니다. 우리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 한없이 무력한 존재이며, 늙어간다는 것은 이러한 무력함이 일상에서 낱낱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나약하고 무력한 우리들이 순간순간 애쓰며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그동안 ‘의미있는 삶이란 뭘까? 그럼 무의미한 삶도 있는 걸까?’ '고독사', '안락사', '존엄사' 등 죽음에 대한 말들을 들으며, '좋은' 죽음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무의미한' 삶을 연명하지 않는 것, 삶에 연연하지 않으며 '죽음'이라는 현실을 담담히 받아 안고 가는 것 등등이 머릿속에 어렴풋이 그려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대면하기가 만만치 않은 '죽음'이라는 과정을 조금은 자연스럽게 삶의 일부로, 마무리로 받아들이게 된 듯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렇게 살아있으므로 존엄하다는 사실을 조금 더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때는 죽음에 자꾸 노출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삶의 의욕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실상은 정반대였다. 세상을 일찍 하직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 볼 때 나는 참으로 운이 좋았다. 서서히 늘어지는 살과 하나 둘 잡히는 주름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친구가 잃어버린 젊음을 한탄하면 맞장구를 쳐 주긴 했지만 좌절할 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흰머리와 돋보기 안경을 장수의 선물로 간주했다. 외모에 시간을 낭비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했다. 노화는 권리도 아니고 도전도 아니었다. 피해야 할 것도 아니었다. 노화는 특권이었다.
- P265

자신이 죽어 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과 그 사실을 모르는 나머지 사람들 간에 차이가 있다. 말기 환자들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아는 반면, 우리는 세상의 모든 시간을 다 가진 것처럼 살아간다. 그들은 조급하기 때문에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호의와 미소, 품위와 기쁨, 친절과 예의, 사랑과 연민이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가득하다. 나는 이렇게 좋은 기운으로 가득한 곳에서 일한다. 죽음을 앞둔 환자들에게서 살아가기 위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배운다
- P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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