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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 호스피스 의사가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깨달은 삶의 의미
레이첼 클라크 지음, 박미경 옮김 / 메이븐 / 2021년 10월
평점 :
부자와 가난한 자, 빠르든 느리든, 고통스럽든 평화롭든, 젊고 늙고 그 사이 어딘가에 우리 모두 인생의 마지막에 도달합니다. 부분적으로 확실한 것은 부정하지만 수치스러운 불가능처럼 느껴질 수 있는 인간의 본능 때문에 죽음은 끔찍하고 익살스럽고 폭력적이며 외로운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더 오래 살기는 쉬워지고 잘 죽기는 더 어려워졌습니다. 죽음은 대부분 병원 병동에서, 자주 커튼이 쳐진 침대에서 혼자, 또는 의사들이 행하는 조치, 그리고 벼랑 끝에서 자신을 되찾기 위해 분투하는 상황에서 발생합니다. 병원은 대체로 사람들을 생명과 시간으로 회복시키는 치료의 장소이며, 죽음이란 의료 실패로 여겨집니다.
p208 호스피스 보다 두려움과 금기로 둘러싸인 건물은 없다. 환자들은 흔히 호스피스 병동을 삶의 이야기가 뚝 끊기는 벼랑으로 여긴다. 호스피스 문지방을 넘어 오면 곤두박질치며 죽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경험하지 못한다고 상상한다. 이곳에 들어온 순간, 삶과 희망이 모두 무너져 내린다
저자인 레이첼 클라크는 죽어가는 사람들과 함께,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일합니다. 완화의학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인 그녀는 치료에 대한 모든 희망이 사라졌을 때 사람들이 찾아오는 호스피스에서 하루를 보냅니다. 그녀의 직업은 생명을 구하는 것이었고 종종 전쟁터에서 싸우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긴 싸움이 끝나면 안전한 곳에서 사람들을 마지막 문턱까지 동행하는 것입니다. 의학이 여전히 필수적이지만, 똑같이 중요한 것은 그 과업에 필요한 상상력이 풍부한 친절, 환자를 취약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는 의무감입니다. 때로는 그녀가 돌보는 사람들이 고통 없이 멈출 때까지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p255 완화 의료를 행하는 의사로서, 우리의 역할은 삶을 연장하는 게 아니다. 불가피한 일을 막으려고 싸우는 것도 아니다. 병이 통제를 벗어났음을 받아들이면, 즉 불치병의 최종성에 맞서지 않고 그 안에서 노력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할 수 있다. 우리의 도움으로 환자는 눈을 감는 그날까지 삶의 질을 높이고 의미를 찾고 자잘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책은 2가지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는 존경받는 아버지이자 의사이자 그녀의 롤 모델이자 멘토인 아버지의 죽음입니다. 또다른 하나는 20대 저널리스트로 일하던 클라크가 의사가 된 후 완화의료 전문가가 된 과정입니다. 저자는 자신의 실수를 반복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녀가 범하는 실수, 그녀가 느끼는 두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녀는 의료에 종사하는 치료자조차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고통을 감수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호스피스에는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랑, 더 많은 힘, 더 많은 친절, 더 큰 기쁨, 더 많은 부드러움, 더 많은 은혜, 더 많은 동정심과 같이 삶에서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과 나머지 우리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말기 환자는 우리가 세상에서 모든 시간을 가진 것처럼 사는 동안 그들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p371 여름날 하루살이의 덧없는 삶에서 유유히 흐르는 강물에 서서히 깎여 나가는 빙하 협곡에 이르기 까지, 세상의 만물은 결국 죽거나 사라질 운명이다.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아무리 사랑받더라도, 영원히 머물거나 견디지는 못한다. 그 사실만이 변함없이 존재한다. 그런데 살아있는 존재의 이러한 절대적 원칙에 유연하게 맞설 장치가 있다. 바로 인간의 선택 능력이다. 죽을 운명에 대처하는 방법을 스스로 결정하는 힘, 이 힘은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앗아 살 수 없다. 분노하고 부정하느냐, 받아들이고 포용하느냐, 선택은 우리 몫이다
저자는 죽음에 대해 글을 쓰고 있지만 또한 삶에 대해서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죽음은 삶에 가치를 부여하고 시간에 소중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녀는 호스피스에서 환자들이 삶의 끝이 다가옴에 따라 일상의 사랑스러움을 새롭게 깨닫고 살아가는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울고 싶게 만든 구절은 죽음에 대한 구절이 아니라 살고, 사랑하고, 작별하는 법을 배우는 구절이었습니다.
p365 아버지가 떠난 지도 벌써 6개월이 지났다. 장례식을 치르고 업무에 복귀했을 때, 나는 다른 의사가 되어 있었다.이젠 슬픔의 맛과 무게를 알았다. 병실에 들어서면, 조만간 떠나보내야 할 사람의 소중한 생명에 매달리는 가족들의 퀭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슬픔도 사람처럼 우리가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슬픔의 고통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결국 사랑하지 않는 것임을 나는 이제 속속들이 알았다.
늘 남의 이야기인 줄로만 알던 죽음은 어느새 누군가에게 다가와 삶을 엄습하고 큰 위기 속에 몰아넣기도 합니다. 그 낯설고 감당하기 힘든 불청객 앞에서 번민하고 고뇌하는 사이 그동안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남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마음을 내려놓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이제 덤덤히 죽음을 마주할 수 있다는 마음이 들 때, 지나온 삶뿐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삶도 새롭게 다가옵니다. 결국은 고통스럽게 거쳐야 할 죽음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최소한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 것임은 분명합니다.
정신분석학이든 심리학이든 인간 심리를 연구하는 이들의 공통적인 주장이 있습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어떤 과목에서보다 더 많은 것을 부모의 죽음을 통해 배운다.” 부모가 살아 있을 때 중년 남자는 죽음으로부터 보호받는다. 부모가 먼저 죽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사망하면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다음 차례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1순위가 된 것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노쇠해져가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늙음', '죽음' 등 현실이면서도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았던 것들이 일상 속으로 성큼 들어왔음을 느끼게 됩니다. 책을 읽으면서 그 현실감은 더더욱 구체성을 띠게 되었습니다. 나에게는 오랫동안 현실감을 주지 못했던 '죽은' 언어였던 죽음, 임종 등의 단어가 이제 살아 꿈틀거리는 듯합니다. 나를 건드리는 '살아있는' 언어가 되었습니다. 죽음은 '언젠가' 우리 모두의 일입니다.
p366 "남은 나날을 '왜 나지? 도대체 왜 나야?'라고 따지면서 낭비할 수도 있어.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는, 아니 우리는 태어난 그 순간부터 죽어가고 있어. 하지만 죽음의 문턱을 넘기 전까지는 여전히 살아있잖아. 그러니까 나는 그저 묵묵히 내 삶을 살아갈 거야
누구나 다 겪지만 겪은 사람은 죽어서 말이 없고, 살아있는 우리는 아직까지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미지의 영역인, 그래서 공포스러운 죽음 앞에 이제 조금 더 편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죽음은 현재 살아있는 우리 모두에게 다가올 미래입니다. 우리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 한없이 무력한 존재이며, 늙어간다는 것은 이러한 무력함이 일상에서 낱낱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나약하고 무력한 우리들이 순간순간 애쓰며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그동안 ‘의미있는 삶이란 뭘까? 그럼 무의미한 삶도 있는 걸까?’ '고독사', '안락사', '존엄사' 등 죽음에 대한 말들을 들으며, '좋은' 죽음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무의미한' 삶을 연명하지 않는 것, 삶에 연연하지 않으며 '죽음'이라는 현실을 담담히 받아 안고 가는 것 등등이 머릿속에 어렴풋이 그려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대면하기가 만만치 않은 '죽음'이라는 과정을 조금은 자연스럽게 삶의 일부로, 마무리로 받아들이게 된 듯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렇게 살아있으므로 존엄하다는 사실을 조금 더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때는 죽음에 자꾸 노출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삶의 의욕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실상은 정반대였다. 세상을 일찍 하직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 볼 때 나는 참으로 운이 좋았다. 서서히 늘어지는 살과 하나 둘 잡히는 주름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친구가 잃어버린 젊음을 한탄하면 맞장구를 쳐 주긴 했지만 좌절할 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흰머리와 돋보기 안경을 장수의 선물로 간주했다. 외모에 시간을 낭비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했다. 노화는 권리도 아니고 도전도 아니었다. 피해야 할 것도 아니었다. 노화는 특권이었다. - P265
자신이 죽어 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과 그 사실을 모르는 나머지 사람들 간에 차이가 있다. 말기 환자들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아는 반면, 우리는 세상의 모든 시간을 다 가진 것처럼 살아간다. 그들은 조급하기 때문에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호의와 미소, 품위와 기쁨, 친절과 예의, 사랑과 연민이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가득하다. 나는 이렇게 좋은 기운으로 가득한 곳에서 일한다. 죽음을 앞둔 환자들에게서 살아가기 위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배운다 - P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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