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는 조선 유학에 호감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중국의 사서(四書)와 조선 유학을 등가물로 바라보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여기서 유학은 주자학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원전 사서를 뜻한다. 공맹이 가르친 유학과 주자학 그리고 조선 유학은 질적으로 서로 아주 많이 다르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유학의 학문적 순수함이 조선으로 들어와 심하게 오염되었다고 생각하는 일인이다. 특히 조선 후기에 이르러 집권 세력의 유학론은 유학이기를 스스로 거부했다고 본다. 


유학(주자학)은 고려 말에 들어왔지만 이 땅에 조선이 들어서며 그 꽃을 피우기 시작했는데 기점은 '불씨잡변'이라 할 수 있다. 불교가 국교였던 불교의 나라 고려는 당시 모든 것이 썩어 있었다. 고려 말 관료들의 부패가 극에 달했다. 문벌 귀족과 권문 세족들의 사고가 썩어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보살펴야 할 백성들의 삶은 너무 나도 고단했다. 



백성들을 수탈하여 이익을 추구하는 이익집단이 바로 관료들이었고 기득권이었다. 당시의 '토지 제도'와 '수취 제도'는 백성들을 굶주림과 죽음으로 내몰았다. 교과서는 고려 후기의 이 상황을 '권문 세족의 토지 겸병과 수취 체제의 문란은 백성들의 삶을 곤궁하게 했다' 라고 적고 있다. 교과서가 이렇게 표현할 정도면 고려의 기득권들이 백성들을 수탈한 결과 백성들이 실제로 굶어 죽게 했다는 뜻이다. 



불교 또한 기득권을 등에 업고 백성들의 고된 삶을 외면했다. 사찰도 썩을 대로 썩어 있었던 것이다. 즉, 성스러워야 할 불교가 썩어있었고, 붓다의 아름다운 말씀과 실천은 지워져 있었다. 그리하여 철저하게 뿌리까지 부패한 나라 고려, 이러한 고려를 죽는 그 순간까지 지키려 했던 만고의 충신 '포은'을 나는 용서할 수가 없다. 충신이란 주군이 아니라 백성을 위해 죽어야만 진정한 충신인 것이다. 성웅 이순신 장군이 진정한 충신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하여 내게 '목은'과 '포은'은 기득권을 지키려 한 인물이며, 죽어 마땅한 만고의 충신 일 뿐이다. ('목은'과 '포은'을 존경하는 분들께는 미안합니다만, 사관이 다르면 어쩔 수 없습니다 ㅠ)



그렇게 썩은 불국(佛國) 고려의 시대가 가고, 1392년 새로운 나라 조선이 개국했다. 조선이 개국을 했지만 백성들은 조선의 백성들이 아니라 고려의 백성들 그대로 였다. 엄밀한 의미에서 국호만 바뀐 것이다. 백성들이 살아가는 터전이 바뀐 것도 아니요 생활 방식이 바뀐 것도 아니다. 사실,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삶의 질적 변화가 없다면 모든 역사적인 사건들은 중요한 의미를 갖지 못한다. 누가 왕이 되었던, 국호가 무엇이던 백성들은 권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 뿐더러 생활 역시 아무런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되려 정권 교체기에 백성들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더 클 뿐이다.



조선의 백성들은 정권의 교체와는 무관하게 수백 년 동안 그렇게 해왔듯 붓다의 말씀을 따르고 절에 나갔으며 불교 행사에 참여했다. 즉 조선 백성들의 문화와 사유는 고려 시대의 그것과 동일한 것이었다. 



기존의 패러다임에 변화를 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 인지를 신랄하게 꼬집은 사람은 '토마스 쿤'이다. 그는 '과학 혁명의 구조'에서 모든 꼰대들이 죄다 죽은 다음에나 패러다임에 변화를 줄 수 있다고 썼다. 패러다임을 변화시킨다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것이다. 토마스 쿤의 지적은 기득권의 꼰대들이 얼마나 징그럽도록 집요한 기득권 인지를 묘사하는 하나의 예일 뿐이다. 

또한 조광조의 죽음은 '훈구'를 상대로한 '위훈 삭제'가 원인이기도 하겠지만 '소격서'의 폐지라는 결정타가 뒤를 이었기 때문이다. 소격서는 도교식 기복을 담당했던 주요 관청이었다. 나아가, 오죽했으면 억불 숭유를 천명하고도 세종은 한글을 널리 알리고 정권의 정통성을 드러내기 위해 저술을 명한 책이 '월인청강지곡' 과 '석보상절'이었겠는가. 불교는 그만큼 백성들의 뼛속 깊이 자리잡은 일종의 헤게모니였던 것이다. 결국 그런 백성들에게 세종이 다가가는 유일한 방법은 유교가 아닌 조선이 금지했던 불교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헤게모니의 변화는 이토록 어려운 것이다.



사실 새로운 집단이나 국가가 과거의 헤게모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정치를 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조선의 신하들이 불교를 탄압하도록 왕에게 끊임없는 압박을 가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과거와의 이념적 단절과 새로운 헤게모니의 도입이 빠르면 빠를 수록 사회가 안정감을 찾고 격변에서 멀어질 수 있다. 나아가 사회의 안정은 지배 세력의 안정을 뜻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새로운 나라 조선에서 고려 시대의 생활 방식과 이념을  변화 대체하지 않는다면 권력의 공백을 고스란히 겪어야 한다. 이는 지도자의 권위를 상실시킬 뿐 아니라 권력을 불안하게 하고 사회를 불안하게 하는 주 원인이 된다. 사회 혹은 국가가 방향성을 잃는다면 국가 질서가 표류하게 된다. 일이 이렇게 되면 최악의 국가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결국 치안도 국방도 모두 무너지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 이념적 헤게모니의 공백 ]]] 


낡은 것은 죽어가는데도 새로운 것은 아직 탄생하지 않았다는 사실 속에 위기가 존재한다. 바로 이 공백 기간이야말로 다양한 병적 징후들이 출현하는 때다.ㅡ안토니오 그람시



'옥중 수고'라 불리는 저술에서 안토니오 그람시는 권력의 교체기를 이념적 방향을 새롭게 잡아 나아가야 할 시기라고 봤다. 이를 두고  '이념적 헤게모니의 공백'이라고도 하고, '그람시의 공백'이라고도 한다. 어느 사회든 기존의 권력이 무너지면 이를 대체하는 새로운 이념이 그 사회를 이끌어야 한다. 적절한 시점에서 적절한 이데올로기가 방향을 제시해주어야만 사회가 안정을 찾을 수 있다. 그 공백이 길어지면 정치 사회적인 불안 요인들이 발생한다. 예를 들면 파시즘의 탄생, 군부 쿠데타, 독재자의 등장, 군소 권력들 간의 충돌, 내전 등이다. 그러므로 권력의 공백 기간이 길어지면 사회는 급격하게 불안해진다.




삼봉 선생은 1398년, 태조 7년에 '불씨 잡변'을 썼다. 조선이 개국하고 7년 째가 되던 해인 것이다. 수백년 간 고려를 지배해온 불교 이념들을 조목조목 따져가며 태클을 걸었다. 이론적으로 처절하게 비판했던 것이다. 삼봉은 불교의 윤회설을 시작으로 인과 응보설, 심성론, 자비론, 지옥론, 선학론(禪學論)등을 철저하게 공격했다. 정삼봉이 살았던 시대를 고려해보면 이론에 능통한 삼봉은 사냥개 블러드 하운드나 다름이 없었다. 사실 삼봉의 이러한 시선은 현대인들에게도 여전히 해당하는 문제 제기 라는 점이 흥미롭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의 저술 시기이다. 저술 시기로 보아 조선 개국의 주역인 삼봉은 '그람시의 공백'을 미처 생각지 못했던 듯 하다. 저술이 개국 후 7년이 지난 시점이니 말이다.




[[[ 불씨 잡변의 목차이다. 심봉은 불교의 이념을 조목 조목 따져가며 심판대 위에 올렸다. ]]]

  


만약 헤게모니의 공백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삼봉 선생은 이 중요한 불씨 잡변을 개국 이전에 준비했어야 했다. 아니면 적어도 7년 씩 이나 걸리지는 말았어야 했다. 그는 일찌기 고려를 끝내고 조선을 열기로 작정한 개혁가였고 조선의 모든 설계자 였으니 말이다. 저술 시기로 보아 새로운 헤게모니의 필요성을 개국 이후에 느꼈던 것으로 보는 것은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지만 그람시는 사유를 했고, 이를 실천한 사람은 정삼봉이었던 것이다. 어째거나 내게 진정한 개혁가는 조정암이라기 보다는 정삼봉 선생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후학들의 노력으로 유학을 대변하는 '관혼상제'가 빠르게 조선에 자리잡았다. 유학의 헤게모니가 조선에 안착한 것이다. 이는 삼봉 선생이 불씨잡변으로 불교의 이념을 무너트리고 유학이 자리 잡도록 방향을 잡아준 덕분일 것이다. 또한 조선 백성들의 유연한 사고가 기여한 바가 크다고 보는 입장이다. 불교, 기독교, 도교, 전통 신앙이 함께 잘 어우러지는 사회가 조선이었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회, 아니 이런 국가가 또 없다. 다양한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되 종교간의 갈등이 없는 나라, 신의 이름으로 전쟁을 해본 역사가 없는 나라, 바로 조선이 그랬다. 오히려 나라를 구할 때는 모든 종교가 힘을 합쳐 하나가 된 나라. 3.1 기미 독립 선언은 그렇게 모든 종교 단체가 힘을 모아 완성된 것이었다. 이는 오로지 백성들의 너그러운 마음과 여유에서 오는 관대함의 발로 일 것이다. 타자를 존중하는 그 아름다움 말이다. 거룩한 대한민국 국민들이여, 정녕코 만세!!


사실 삼봉은 불교를 공격하려고 의도한 것 이라기보다는 국가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불씨 잡변을 저술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 방편으로 고려의 이념이었던 불교에 태클을 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경기 중 손흥민에게 태클을 거는 것은 손흥민이 미워서가 아니라 경기이기 때문이다. 사적으로는 얼마든지 친구가 아니겠는가. 나는 붓다를 경애하고 존경하며 마음의 스승으로 삼고 있지만, 고려의 썩어버린 현실을 개탄하며 백성들과 국가를 위한 충정어린 마음으로 불씨 잡변을 쓴 정삼봉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삼봉의 드높은 정신이여, 경탄합니다! 


관혼상제는 다들 아시다시피 관례, 혼례, 상례, 제례를 뜻한다. 유학은 관혼상제로 시작하여 그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중에서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은 '관례'이다. 현대는 '제례' 마저도 거의 사라져가는 시대이다. 현재 제대로 살아있는 유학의 상징물은 '혼례'와 '상례'이다. 상례도 이제는 그 절차를 점점 간소화하는 추세이고 혼례도 그 규모를 작게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과거에 행했던 약혼도 사라졌고, 예물, 예단, 혼수 등의 내용들도 거의 사라졌다. 스몰웨딩의 풍토가 곧 자리를 대체할 듯 하다. 이는 시대의 요구에 응하는 자연스러운 헤게모니 현상이다.


나아가 과거의 국제 경제 이념의 흐름을 간단하게 살펴보면, 중세의 '중상주의' 이념이 애덤 스미스의 탄생과 더불어 '자유 시장 경제'로, 이는 대공항으로 끝을 맺고 새로운 '보호무역' 혹은 케인즈의 탄생으로 생겨난 '정부 개입 또는 뉴딜' 이라는 이념에 자리를 내주었다가, 다시 '신자유주의', 그리고 1995년 WTO의 출현으로 '세계화' 라는 헤게모니의 변천사를 써냈다. '세계화'는 미국에게 막대한 부채를 일으키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고 현재는 그 종말에 이르렀다. 문제는  '세계화'를 대체할 헤게모니의 공백 상태라는 점이다. 그람시가 말했던 그 '공백' 말이다. 


또한 현재는 금융 자본주의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 시대이다. 새로운 헤게모니의 출현을 요구한 것은 아마도 2008 미국발 금융위기가 그 시작점 일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탈중앙화의 거대 물결이 밀려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는 이를 외면하는 듯 보인다. 지폐는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 화폐가 등장한지 오래다. 현금을 언제 써봤는지, 은행에는 언제 가봤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조만간 은행의 각 지점들이 거리에서 사라질 것이다. 또한 AI 시대가 이미 도래했고 그 추세는 가파르게 상승할 것이다. 어쩌면 곧 코인과 토큰의 시대를 맞이할 지도 모른다. 


이미 대한민국 무역 결재 금액의 10%가 스테이블 코인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제 수치는 추정치보다 늘 높기 마련이다. 추정치가 맞다 하더라도 최소 국내 무역량의 10%는 이미 탈중앙화 되었다는 뜻이다. 자국 통화가 불안한 국가들일수록 스테이블 코인 의존도는 훨씬 더 높아진다. 탈중앙화의 비율이 높다는 뜻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대한민국은 아직 자국 통화가 힘을 발휘하고 있기에 오히려 새로운 헤게모니에 둔감한 듯 보인다. 과연 대한민국의 통화가 언제까지 그 생명을 이어갈지 모르겠다. 이미 카운트 다운에 들어간 것은 아닐까...
 


 알렉스 카프의 '기술 공화국 선언'은 이 모든 것을 명확하게 장담하고 있다. 기존의 모든 질서와 이데올로기는 변화해야 할 시점을 맞이한 것이다. (알렉스 카프의 주장이 옳다거나 그르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개인 적으로는 알렉스 카프의 주장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의 견해와 주장에 결단코 찬성 할 수 없다.) 세계는 아직 새로운 방향이 온전하게 그리고 명확하게 설정되지 않은 상태이다. 아직은 권력 헤게모니의 공백기인 것이다. 



현재, 전 세계가 매우 불안해 하고 있다. 안정성이 현저하게 떨어진 상태인 것이다. 그리하여 트럼프가 새로운 파시즘을 휘두르고 있다. 힘 있는 깡패가 설쳐대는 이유는 치안이 불안하다는 증거이자 헤게모니의 공백기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트럼프라는 깡패로 인해 전 세계가 모두 피해를 입고 있다. 전 세계의 질서가 불안하며 새로운 질서 유지를 위한 공백을 메꾸어줄 그 무엇인가를 요망하는 세계, 지금이 딱 그 시점은 아닐까 한다. 과연 새로운 권력 헤게모니는 어떤 형태의 것이 될 것인가.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야 할 시기가 아주 가까이 닥쳐온듯 한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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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3-23 14: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교는 고려말에 유입된것이 아니라 삼국시대(고구려-소수림왕 태학 백제-근초고왕 박사제도 신라-통일후 국학)에 유입되었습니다.고려말에 유입된것은 유교의 한 부류인 주자학으로 충렬왕때 안향이 최초 도입하고 조선시대까지 주욱 이어졌지요.조선시대 불교는 사대부들이 탄압을 주장했지만 적어도 인종때까지 왕실에서 귿건히 믿었기에 조선왕조내내 사라지지 않은 것이지요.

차트랑 2026-03-23 15:1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카스피님,
저의 서재를 찾아주시고,
오류를 찾아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평소 카스피님의 해박한 지식과 정보력에 경의를 표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런 덕을 제가 입게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오류를 정정할 기회를 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바로 시정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덜렁이라 실수가 잦습니다.
이점 기억해주시고 혹여 또 다른 오류를 발견하시면
오늘처럼 알려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화창한 날 좋은 하루 되십시요 카스피님~

그리고 자주 찾아주시면 더욱 고맙겠습니다!!

차트랑 2026-03-23 15:13   좋아요 0 | URL
수정을 막 완료했습니다.
오류를 수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점,
다시 한 번 더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카스피님~!!

카스피 2026-03-24 00:26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항상 좋은 글 올려 주셔서 잘 보고 있습니다^^
 


서양 음악 용어인 '세레나데 Serenade' 혹은 '녹턴 Nocturne'이라는 말을 모르는 분들은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익숙한 용어이지 싶다. 


'세레나데'는 우리 시간 기준으로 술시, 즉 저녁 7~9시 사이에 가정에서 연주하던 음악으로 우리 나라는 이를 소야곡(小夜曲)이라고 번역했다. 세레나데의 근원지인 이탈리아에서는 밤이 깃든 시간에 마음에 드는 이성의 집 창문 아래에서 노래를 불러 자신의 마음을 전달했는데, 이를 'Serenata' 라고 했다고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창문 아래의 연가 였겠지만 이것이 독일, 프랑스 등으로 전이되면서 저녁 시간에 식구들이나 지인들이 함께 모여 음악을 연주하며 즐기는 형태로 확대되었다. 요즘 같으면 퇴근하면서 동료들과 포차에서 한 잔 하고 귀가하던지, 가족과 외식을 할 수도 있는 일이겠지만, 당시에는 그런 환경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잠들기 전 저녁에 시간을 보내는 방법 중 하나가 음악을 함께 즐기는 것이었다. 






[[[ 테너 황현한이 노래를 아주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마음에 든다 ]]]      



식구들끼리 혹은 지인들끼리의 연주이고, 초저녁의 소야곡인 만큼 약간은 조용하고 아주 심각하거나 무겁지 않은 음악이 주를 이루었다. 낭만적 이면서도 부드러운 음악의 형태였던 것이다. 저녁이 오고 조용한 어둠이 깔리면 이 곳 저 곳에서 아름답고 부드러우며 사랑스런 노래와 음악이 흘러나왔다. 세레나데의 시간이 온 것이다.

독일의 세레나데로는 슈베르트의  슈텐헨(Ständchen)이 아주 널리 알려져 있다. 




[[[ 대중 가수 나나무스꾸리도 이 노래를 불렀다. ]]]   


이 곡은 슈베르트가 1828년 작곡한 '백조의 노래' 라는 가곡집의 4번째 곡이다. 그런데 1828년은 슈베르트가 바로 세상을 등진 해였다. 이 곡을 쓸 때는 이미 그의 병이 깊어진 후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노래의 슬픔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데서 오는 것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게도 이 곡이 주는 애절함과 깊은 슬픔을 생각하면, 단지 사랑하는 이성에게 주는 곡이라고만 생각할 수는 없는 이유이다. 




[[[ 로스트로포비치의 제자이자 장한나의 스승, 첼로의 거장 미샤마이스키도 연주를 했다 ]]]


너무나도 아깝고 아까운 이여!
그리고, 사랑하는 슈베르트여, 안녕!


Shubert Ständchen


(가사와 해석은 인터넷에서 가져왔습니다)


Leise flehen meine Lieder
Durch die Nacht zu Dir;
In den stillen Hain hernieder,
Liebchen, komm’ zu mir!
나의 노래가 밤을 가로질러 당신에게 조용히 간청합니다.
고요한 숲 아래로 내려와 주세요, 

사랑하는 이여, 내게 와 주세요!



Flüsternd schlanke Wipfel rauschen
In des Mondes Licht;
Des Verräters feindlich Lauschen
Fürchte, Holde, nicht.
속삭이며 가느다란 나뭇가지가 달빛 속에서 살랑거립니다.
배신자의 적대적인 엿듣기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사랑하는 이여.



Hörst du die Nachtigallen schlagen?
Ah! sie flehen Dich,
Mit der Töne süssen Klagen
Flehen sie für mich.

밤꾀꼬리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나요?
아! 그들은 달콤한 탄식의 소리로 당신께 간청합니다.
그들은 나를 위해 간청합니다.


Sie verstehn des Busens Sehnen,
Kennen Liebesschmerz,
Rühren mit den Silbertönen
Jedes weiche Herz.
그들은 갈망하는 마음을 이해하고 

사랑의 고통을 아는 모든 부드러운 마음을 

은빛 같은 소리로 흔들어 깨웁니다.


Lass auch Dir die Brust bewegen,
Liebchen, höre mich!
Bebend harr’ ich Dir entgegen!
Komm’, beglücke mich!
당신의 가슴도 움직이게 하세요, 

사랑하는 이여, 제 말을 들어 주세요!
떨림 속에 그대를 기다리고 있어요.
어서 와요, 나를 기쁘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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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6-03-18 0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고등학교때 음악 실기 시험곡이라 더 기억에 남아요. 독일어로 외워서 불러야 했거든요 ㅠㅠ
피아노 연주 버전도 있는 것은 알았는데 첼로 연주곡도 있는지는 몰랐네요.

차트랑 2026-03-18 09:5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hnine님,
저의 서재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께서 슈베르르를 많이 사랑하셨던 것은 아닐까요...
이토록 아름다운 곡을 실기 시험곡으로 부르셨다니,
오.... 좋군요~!


저는 이 곡을 들을때마다
겨우 31세의 나이로 세상을 등진 슈베르트가 떠올라
늘 속이 상한답니다.
5월에 발표하고 11월에 사망했으니
유작이나 다름이 없어 더욱 그렇습니다.

비가 내리는군요.
좋은 하루 되십시요 hnine님.



2026-03-21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3-21 1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니르바나 2026-03-21 17: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차트랑님,

황현한 테너가 부르는 슈베르트의 세레나데 오랜만에 들으니 정말 좋네요.
학창 시절 음악시간에 선생님이 반주하시던 피아노 소리가 생각납니다.
제가 전에 페이퍼에서 언급했던 아이유 보다 좋아하는 가수 박인희씨가
무척이나 좋아하던 그리스 가수, 나나무스꾸리의 슈베르트 세레나데도 감동적이구요.
저도 최근에 가곡 듣기에 마음이 가서 베토벤, 브람스, 슈베트르 가곡과 함께
슈만의 <여인의 사랑과 생애> 음반을 집중적으로 반복해서 듣고 있습니다.
다만 국내 음반으론 메조소프라노 이아경의 음반 한장 뿐이어서 많이 아쉽더군요.
올려주신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를 듣다보니 사랑의 감정이 몽글몽글 되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차트랑님 잘 들었습니다.^^

차트랑 2026-03-21 19:36   좋아요 1 | URL
니르바나님 안녕하세요.

가곡을 좋아하는 분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니르바나님은 제가 아는 극 소수 중 한 분이십니다.
국내 가곡과 독일 가곡을 특히 좋아하여 자주 듣는답니다. 국내 가곡의 시대가 저물어 무척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다석 유영모선생님을 마음의 스승님으로 삼으시고 글을 읽고 깊이 감동했습니다.
길지 않은 글이었지만
그 마음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니르바나님 글로인해 다석선생님을 제대로 알고싶어졌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좋은 저녁 되십시요 니르바나님.



니르바나 2026-03-21 2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차트랑님이 궁금해 하신 방송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xQwG3yoec&t=71s

차트랑 2026-03-21 22:10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니르바나님,
잘 시청하도록 하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요~

차트랑 2026-03-22 08:26   좋아요 1 | URL
니르바나님,
알려주신 덕분에 영상을 모두 잘 봤습니다.
당주도 당주이지만
역시 풍월 최는 고전음악 전설의 큐레이터로군요.
풍월 최가 있은 후 풍월당이 있는듯요.
풍월 최가 새롭게 탄생시킬 풍월당이 기대됩니다.

LP 3천장이 물건너 주인을 찾아 왔다는 소식은
아주 의미심장하게 들리는군요.
풍월당이 어떤식으로든 오래 지속될것이라는 사인 같아서요.

니르바나님의 휴식 공간이 되어줄 것 같기도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요 니르바나님~!
 
열린사회와 그 적들 I - 개정판 현대사상의 모험 16
칼 포퍼 지음, 이한구 옮김 / 민음사 / 2006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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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의 변


이 책 '열린사회와 그 적들 (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을 읽고 감히 리뷰를 쓴다는 것은 나의 능력으로 보아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칼 포퍼의 저술이 난이도가 있을 뿐 아니라 서양 철학의 神급인 플라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첫 쪽부터 끝까지 어느 한 쪽도 무심코 읽을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다. 적지 않은 분량의 책이지만 한 문장 한 문장이 귀하고 소중하며 너무나도 알차다. 하여 철학에 약한 내게는 강한 집중력을 요구했다. 자주, 다시 읽기를 반복한 이유이다. 내게 다행인 것은 책의 절반은 각주라는 사실이다. 나아가 나의 능력이 모자라 리뷰의 첫 문장을 시작하기가 아주 고민스러운 책이었다. 불구하고 리뷰를 쓰기로 하는 것은 이 책을 한 사람이라도 더 읽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다. 그리고 부제인 'The Spell of Plato'를 역자는 '플라톤의 주.문.'으로 번역했지만 나는 '플라톤의 주.술.'정도로 해석하고 싶다. 만약 내가 역자였다면 분명 'spell'을 '주술'로 번역했을 것이다.



리뷰 ( I )


유태계 오스트리아 사람인 칼 포퍼의 소개 글은 "1937년 부터는 나치의 탄압을 피해 뉴질랜드로 망명했으며..." 라고 쓰고 있다. 칼 포퍼는 서문에 쓰기를 " 이 책을 쓰겠다는 최종 결단을 내린 것은 1938년 3월 히틀러의 오스트리아 침공 소식을 듣던 날이었다." (p. xii) 라고 했다.

칼 포퍼가 이 책을 쓰게된 동기가 확실해졌다.
나치의 탄압을 받던 그가 조국을 침탈 당하자  부아가 치민 칼 포퍼는 '과연 전체주의의 근간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저술의 이 곳 저 곳에서 칼 포퍼의 날카로워진 신경과 거칠어진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냉정함과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고 애쓴 흔적이 보이지만 확실히 칼 포퍼는 히틀러로 인해 열 받으셨다.



역사주의의 급진적 발전은 헤라클레이토스로부터 시작한다. "같은 강물에 몸을 두 번 담글 수 없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은  '모든 것은 생성ㆍ변화한다' 라는 긍정적 철학 사유의 결과물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기득귄의 질서 유지를 위한 싸움에서 패배하자 그가 환멸을 느끼며 뱉어낸 말 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약 100년이 지난 후 플라톤의 탄생은 서양 철학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플라톤이 역사 주의를 절정에 다다르게 했기 때문이다. 읽는 내내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사유했던 민주주의의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 다는 점은 다소 놀라운 부분이었다. 오히려 그는 민주주의를 혐오했던듯 보인다.



플라톤을 서양 철학의 근간이라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는 서양 철학자들에게는 정신적 지주이자 배후가 되어주는 인물이다. 마치 인간 심리를 다루는 분들이 프로이트를 신성시 하듯, 서양 철학의 세계에서 거의 신급으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 플라톤이다. 이런 점에서 플라톤은 카르텔의 구심점이며 서양 철학을 대표하는 난공불락의 성(城) 과도 같다. 플라톤을 난공불락의 성이라고 함은 자체 약점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쉴드치며 감싸고 도는 후학들이 너무나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칼 포퍼는 말한다, "정의(正義)에 대한 플라톤적인 이론과 현대의 전체주의적 이론이나 실천이 얼마나 유사한지 혼란을 겪어본 후라야 이런 문제들을 해석하는 것이 얼마나 절박한 일인지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p.7)  라고. 이는 저술 내용의 표적이 플라톤임을 분명하게 밝힌 문장이다. 한마디로 자신이 가진 총구를 플라톤을 향해 겨누겠다는 선언이다.



사실 난공불락의 요새(要塞)를 무너뜨리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결코 강력한 투석기가 아니다. 투석기는 좋은 방법이기는 하지만 결과를 장담할 수가 없다. 아무도 시도한 적이 없는 진짜 난공불락의 요새, 플라톤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지능적으로 다가가야 한다. 휴민트(humint)를 쓰는 방법이다. 잡입 요원이나 내부 첩자를 활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비용 절감은 물론 성공 확률도 매우 높다. 다행스럽게도 내부 첩자를 활용하기에는 아주 적합한 구조이다. 그의 수많은 저술들은 일반인들에게까지 널리 알려져 있으니 휴민트에 관해서라면 무방비나 다름이 없다. 다음의 내용은 플라톤이 스스로 키운 하나의 내부자 되어줄 것이다. 첩자다. 언제고 그 주인인 플라톤을 배신할 준비가 되어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가장 으뜸가는 원칙은 여자든 남자든 아무도 지도자 없이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의 마음도 전적으로 자기 스스로 무언가를 하게끔 습관화되어서는 안된다. .....중략....  사소한 일까지도 지휘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을 때에만 잠자리에 들거나 일어나거나 움직이거나 씻거나 먹거나 해야 할 것이다."  ㅡ플라톤의 법률ㅡ



이쯤되면 이 자체가 휴민트이다. 이 문장은 칼 포퍼가 라이온 킹의 목덜미를 물어 뜯을 수 있게하는 조력자로 손색이 없다. 아니, 어쩌면 맹수 칼 포퍼에게, 물어 뜯을 목덜미가 없는 덩치 큰 코뿔소가 불알을 내어주는 빌미를 제공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닫힌 사회, 전체주의의 씨앗이 되어주었던 플라톤의 저술들은 칼 포퍼에게 닿는 순간, 부메랑이 되어 플라톤 자신에게 되돌아 오기에 충분한 휴민트 요소들을 담고 있다. 위의 내용 만으로도 플라톤의 대중을 상대로 하는 압박과 통제는 히틀러의 그것보다 심하면 심했지 결코 덜하지 않으니 말이다. 플라톤의 이런 주장은 상상할 수도 없는 폭력을 반드시 동반할 것이다!! 




칼 포퍼는 '전체주의'를 '닫힌사회'로 규정했다. 그 '닫힌사회'의 정체를 폭로하기위해 그 뿌리를 파헤치니 플라톤과 조우하게 된 것이다. 다음에 해당하는 분들에게 일독을 권해본다.


1. 그동안 플라톤을 향해 의심의 눈초리를 던져왔던 분


2. 플라톤과 닫힌 사회의 긴밀한 관계를 알고 싶은 분


3. 역사 주의 및 정치 철학에 관심이 있는 분


4. 특권층의 진정한 속성을 알고 싶은 분


5. 위대한 철학자 칼 포퍼를 알고 싶은 분



플라톤을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마치 나의 연인에게 다른 연인이 생겼다는 말을 들을 때 만큼 커다란 충격에 휩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위의 내용에 해당하는 분이 계시다면 감히 추천드린다. 소설만큼 흥미 진진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왜냐면 플라톤은 칼 포퍼 앞에서 구운 오징어가 되어주니까 말이다. 칼 포퍼가 맛나게 잘 구워준 오징어를 독자들은 자신의 어금니 턱에 약간의 힘을 주어 질겅 질겅 씹어주기만 하면 된다. 칼 포퍼가 구워준 오징어의 맛은? 습도 좋고 두툼하여 식감이 대박인 갑오징어 맛이다. 이 맛은 장담할 수 있다. 솔직히 나는 속이 다 시원했다. 체증이 가라앉는 그 신박함을 느꼈으니까. 평소 나는 플라톤에게 불만이 많았던 것 같다.




리뷰 ( II.)


이 책을 읽는데 있어 '역사주의 historicism)'의 개념을 잘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주의'는 '전체주의'로 가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칼 포퍼는 p.13~22 에서 친절하게도 '역사주의'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칼 포퍼는 '역사주의'를 유신론적, 자연주의적, 정신적, 경제적, 근대적 역사주의 등으로 분류했다. '역사주의'에 무지했던 나는 이 부분을 여러 번 읽고나서야 제대로 숙지하게 되었고, 이 덕분에 끊임없이 반복 언급되는 '역사주의'로 인해 독서에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 있었음을 고백하면서 리뷰 2를 시작한다. 흥미롭게도 역사주의를 설명하는 칼 포퍼의 손가락은 모두 플라톤을 가리키고 있다. (역사주의를 잘 아시는 분들께는 너른 양해를 구합니다.)



"배타적 원리주의, 닫힌 민족주의, 집단 열광주의, 독단적 교조주의 등이 모두 열린 사회의 잠재적 적들이다. 인류의 역사는 닫힌 사회와 열린 사회의 오랜 투쟁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열린 사회와 그의 적들 1, p.vii)


"개인보다 국가를 우선할 때 실현될 수 없는 이상은 전체주의로 나타난다." (열린 사회와 그의 적들 2)



플라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헤라크레이토스의 생각을 살짝 살펴보면, "우리는 서로서로 의사를 소통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으며, 견제할 수 있다. ...중략.... 깨어있는 자들은 하나의 공통된 세계를 갖는다. 잠든 자들은 그들의 사적 세계로 빠져든다. .....중략.... 비록 그들이 듣는다 할지라도 귀머거리와 같은 것이다." (p.29)  

여기서 누가 깨어있는 자이자 선택된 자이며, 또 누가 잠든 자 인지는 보나 마나다. 이런 선민사상은 고스란히 플라톤에게 전이된다.



또한, 서양인들에게 강렬하면서도 반가운 사유의 근거를 마련해주었다 싶은 헤라클레이토스의 발언을 하나 더 언급해보면, "전쟁은 만물의 아버지요 왕이다. 전쟁은 어떤 자는 주인으로 어떤 자는 노예로 만듦으로서 어떤 자는 신이고 어떤 자는 단순한 인간임을 증명한다. 우리는 전쟁이란 보편적인 것이며, 정의, 즉 소송은 투쟁이며, 모든 것은 투쟁을 통해, 그리고 필연에 의해 발전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p.30) 이다.

이 얼마나 끔찍한 발언인가!! 서양의 '대 항해시대'는 서양의 '대 학살과 대 약탈의 시대'라고 생각하고 있는 내게는 짐승들의 본능과 일치하는 명언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적어도 인류에게 있어 '적자생존'이라는 학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나에게 적자생존의 법칙을 왜 인간에게 적용시켰는지 그 배후를 깨닫게 해준 헤라클레이토스의 명언이 아닐 수 없다. 살인과 약탈은 그들에게 정.의.이다. 타자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겠는가? 트럼프는 분명 서양 사상의 핵심에 있을 것이다. 또한, 플라톤은 이러한 자양분을 먹고 성장한 철인이라는 말로 가름하고 싶다. 



플라톤은 전쟁과 참주정이라는 공포정치를 경험했다. 참주정의 주체들인 삼촌들은 민주주의에 대항하다가 모두 목숨을 잃었다. 더구나 지극히 민주적인 절차에 의하여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는 죽임을 당했다. 플라톤은 스승을 죽음으로 몰아간 민주주의를 혐오했을 것이다. 

그는 생각했다. 역사에서 작용하는 힘은 우주적인 힘이라고. 그는 완전한 국가를 만들어 부패와 악이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국가인가. 서양의 유토피아는 동양의 무릉도원과는 본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다. 플라톤의 국가관을 뒷 바침하는 사유는 '이데아'였다. 그에게 '이데아'는 변화하여 타락하거나 부패 또는 퇴화하지 않는다. 영원 불변하니까 말이다.



그렇게 플라톤에 의해 '이상 국가'가 탄생한다. 변화와 부패와 악이 없는 국가, 그에게 이런 국가가 최선의 국가이고 완전한 국가였다.

완전 불변하는 것에 대한 그의 신념은 플라톤 철학의 엑기스가 되었고, 역사주의 정치는 사회적 기술공학을 활용하여 이데아가 지배하는 유토피아 국가를 완성하는 것이다. 칼 포퍼는 이러한 플라톤의 사유에서 정치철학의 전제주의 방향성을 발견했고, 이를 부서트리고 싶어했던 것이다. (갑자기 알렉스 카프의 '기술공화국 선언'이 떠오른다) 


독자가 보더라도 플라톤의 이상국가를 실현하기 위해서 반드시 수반할 수 밖에 없는 요인들이 있다. 바로 억제, 통제이다. 칼 포퍼가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는 지극히 폭력적인 국가이다. 그의 신념은 확고했다. 그러나 잘못된 신념이 가져오는 참담한 결과의 실례들을 특히 대한민국 국민들은 잘 아실 것이다. 대한민국 현대사는 벌써 계엄을 세 번 씩이나 경험하지 않았는가. 



플라톤이 제시한 최선국가의 3계급 구성을 보면, 수호자들, 무장한 보조원이나 군인, 노동계급이다. 이를 압축하면 교육받은 무장 지배계급과 교육이 필요 없는 노예나 짐승 같은 인간, 두 계급으로 나뉜다. 플라톤은 지배 계급이고 나를 비롯한 대다수 대중들은 노동으로 플라톤을 먹여살리다가 병들어 죽거나, 다쳐서 죽거나, 저항하다 사라지는 소모품이며 소유물이다. 체제에 반항하는 무리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득권이 똘똘 뭉치면 걱정할 것이 없다. 노동자들은 기껏해봐야 고깽이겠지만 그들에게는 총과 대포와 땡크가 있지 않은가? 특권층(특수계급)과 비특권층의 차이는 이렇게 뚜렸하다. 나아가 특수계급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순수혈통을 지켜갈 것이다.



문제는 서양 철학이 이러한 플라톤의 사회이론과 국가론등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왜그랬을까... 자신들의 기득권을 강화시키기에 매우 유용한 이론이다. 타자 혹은 타국을 약탈하고 빼앗아도 자신들에게 합리적인데 못할건 또 뭔가? 표면으로는 매우 신사적이며 매너 좋은 서구인들의 의식구조를 우리가 늘 의식해야 하는 이유이다. 일본과 조선에 총구부터 들이 댔고, 약한 나라들을 점령하여 약탈했던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국가와 자신들의 이익은 그들에게 최선(最善)이자 그들의 정의(正義)였으니까 (이것이 플라톤의 생각이었다).



서양의 기득권들이 기뻐했을 플라톤의 정치강령을 보자. "계급을 엄격히 구분한다. 국가의 운명과 지배계급의 운명을 동일시한다. 지배계급은 무기휴대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에 있어서 독점권을 갖는다." (p.147). 놀랍지 않은가?  통치 방법에 있어 히틀러도 플라톤에게는 항복해야 할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그보다 훨씬 더 지독한 정치체제이니 말이다. 이것이 플라톤이 말하는 정의(正義)이다. 

칼 포퍼는 이것을 좌시하지 않았다. 플라톤의 이러한 사유를 전체주의식 정의(正義)라며 힘주어 공격한다. 칼 포퍼는 플라톤이 진정한 정의의 신념을 알지 못했다고 표현했던 것이다. 



플라톤의 '법률'을 잠시 인용해보자. "무정부주의의 모든 흔적들은 모든 사람들의 전생애에서 뿌리째 근절되어야 한다." ( p.173). 이는 우리 민주주의의 이념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개인주의를 박탈하고자 하는 날벼락과도 같은 법률이다. 이정도 수준이면 플라톤은 민주주의와 개성을 혐오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대목에서 미쳐버린 독재자 히틀러를 연상하게되는 것은 부당한 일이 아닐 것이다. 



플라톤에게 이 모든 것은 오로지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p.233)이다. 철인은 통치하고 나머지는 무조건 따라야 한다. " 국가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고, 그들의 적과 자신들의 국민을 다 속이는 것이 국가 통치자의 일이며, 다른 어느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특권이다" (p.234)

플라톤이 말하는 '국가의 이익'은 누구의 이익을 뜻하는 것인가. 통치자 자신, 즉 플라톤의 이익을 뜻하는 것이다.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던 사람이 혹시 플라톤을 읽었을까....설마 싶지만 왠지 하는 짓이 플라톤의 주장과 일치했다.


 

히틀러는 지극히 민주적인 절차인 투표로 선출되었다. 그런데 이 통치자의 특권을 아무도 건드릴 수 없었다. 되려 동조자와 부역자가 모여들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도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당선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그통치자는 대한민국 시민들을 향해 땡크를 들이대며 총을 쏘라고 명령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근거없는 계엄을 선포하고 살생부를 만들었으며 군대를 보내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고 명령했다. 플라톤은 나라를 망가트리는 이런 결과를 과연 짐작은 했을까? 이 얼마나 순수한 플라톤의 사유던가...



이쯤에서 칼 포퍼는 열린사회와 닫힌 사회를 등장시킨다. "개개인이 개인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회는 열린사회(the open society)라 부르고자 한다" (p.293). 칼 포퍼의 이 의미는 전체주의의 대척점에 존재하는 개인주의가 존중받는 사회임을 알 수 있다. 반면 닫힌 사회(the closed society)는 원시적 사회이며 국가가 시민활동을 통제하는 사회, 개성을 짖밟는 사회이다. 이는 전체주의의 형태로 나타났다가 사라졌지만 말이다. 일제 강점기가 그랬고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그랬다. 지독한 혐오를 먹고사는 극우 또한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닫힌 사회의 붕괴 요인도 잘 설명하고 있다. 이정도면 스포에 가깝기 때문에 남겨두기로 한다.



리뷰 (III.)


플라톤의 유토피아는 대중들에게는 감옥과 다름이 없다. 플라톤은 자유를 박탈당한 개인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사람이니까. 읽는 내내 플라톤의 몸에 흐르는 피에서 온기를 느낄 수가 없었다.


작게는 진영논리도 전체주의요 크게는 히틀러가 이끌던 나치와 일본 군국주의는 대표적인 전체주의이다. 전체주의의 문제는 모든 자신의 것들은 옳고 모든 타의 것들은 옳지 않다는 태도에 있다. 파시즘은 특히나 도덕, 철학, 윤리, 정의 등은 없다. 플라톤에게도 '현대적 의미의 정의'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관심은 자신들의 이익 뿐이다. 나치의 독일이나 일제의 군국주의도 플라톤의 사유를 꼭 닮아 있다. 흥미롭게도 트럼프의 미국이나 이스라엘 역시도 역사주의에 도취된 전제주의라는 것을 쉽게 깨닫게 된다. 이 모든 전제 정치에 플라톤이 깊이 관여해있다.  


평소 서양철학의 神과도 같은 플라톤. 그가 저술 현장에 남겨둔, 그러나 철학자들조차 애써 외면해왔던 그의 DNA를 증거물로 칼 포퍼는 플라톤을 열린 사회의 적을 싹 틔운 장본인이라는 것을 천명했다. 이 저술은 그러므로 칼 포퍼를 철학사에 위대한 공적을 남긴 위인이라 평가해도 좋도록 해주었다고 본다. 플라톤 공성전에서 증거와 논리로 승리하여 플라톤이라는 난공불락의 성을 무너트렸으니 말이다. 칼 포퍼, 만세!!



나아가 칼 포퍼는 루쏘, 콩트, 헤겔, 마르크스 등을 플라톤의 역사주의를 계승한 후학으로 간주한다. 그들에게서 전체주의의 닫힌 세계를 포착한 것이다. 그리하여 제 2권은 헤겔과 마르크스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을 갈았다고 전해진다. 재판을 기다리는 독자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재판 부탁드립니다 플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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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음악의 대 선배님이자 진정한 고수(클래식 태권도 9단)께서 임미정은 동명 이인이라는 정보를 주셨습니다. 피아니스트 임미정씨가 두 분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던 저는 같은 분이라 생각을 했죠. 그리하여 동영상 속의 연주자 임미정과 알라딘 상품 음반의 임미정을 같은 인물로 오인했던 것입니다. 이에 잘못된 정보를 드린 점 이 글을 이미 읽으신 모든 분들께 깊이 사과드립니다. 종달새를 연주하신 임미정님의 음반을 검색해보니 한 장의 CD가 있네요. 그 음반으로 대체함을 알려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잘못 쓴 글은 그대로 두겠습니다.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늘 반성하고 싶으니까요. 그나저나 대선배님께서 알려주시지 않았더라면 어쩔 뻔 했을지 끔찍하군요. 고수님, 정말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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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공이 당구대 위를 흐르는 모습을 보면 그의 구력을 알 수 있고, 그림을 보면 그의 필력을 알 수 있다. 음악은 청각을 통해 감지하는 순간, 그의 내력을 알 수가 있다. 아래는 참새가 어느 방앗간을 지나다가 알게된 피아노 연주이다. 먼저, 이 자리를 빌어, 그 방앗간 주인께 감사드립니다.




[[[ 러씨아 고전 음악의 대부 '글린카'의 곡, '종달새'이다. 원래는 가곡이었으나 '발라키레프' 라는 음악가가 피아노 곡으로 편곡했다고 한다. 비교 차원에서 다양한 연주가들의 종달새를 들어봤다. 러씨아의 거장 미하일 플레트네프, 대한민국 애호가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러씨아의 예브게니 키씬, 전설의 라두 루푸, 그냥 믿고 듣는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외에도. 팔이 안으로 굽어서 그러나? 임미정의 연주를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 ]]]      



<<<< 어느 분께서 피아니스트 임미정씨의 음악을 아주 마음에 들어했다. 나는 임미정에 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러나 참새는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임미정을 검색해 봤다. 내가 임미정을 왜 모르고 있었을까.... 하고 보니 재즈 피아니스트로 더 알려진 인물이었다. 변명이지만 재즈에는 약한지라 미처 알지 못하고 있었던 듯 싶다. 직접 곡을 쓰고 연주를 한다. 만능이시네...하면서 임미정의 연주곡을 들어봤다. >>>>  


<<<<안의 내용은 고로 저의 오류가 되겠습니다. 역시 하수는 뭐가 달라도 다릅니다. 멀리서 찾을 것 없이 제 스스로를 보면 영락없습니다. 엉성하면서도 엉터리거든요. 고수께서 알려주시지 않으셨다면 저는 영영 모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고수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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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말로는 연주를 표현해 낼 길이 없다.

세상은 언어로 표현해낼 수 없는 것들이 주를 이룬다. 감각 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것들을 언어로 표현하려는 순간, 세상의 모든 것들은 그 순수함을 잃고 만다. 그러나 인간은 누군가에게 그 감동을 전달하고 싶어하고, 누군가와 소통을 하고 싶어한다.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혹여 예술은 아닐런지...언어의 한계를 극복하며 태어나는 것이 음악 혹은 미술은 아닐까...


인간은 '언어'라는 소통 수단을 가진 유일한 존재이다. 그것도 모자라 인간은 애초부터 예술 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누가 시켜서 시작한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냥, 저절로, 자신의 내면에서 밖으로 표출되는 것을 표현해내다 보니 예술이 탄생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이 무엇인지 모르고, 또 예술론이나 미학을 공부해본 적이 없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지극히 사적인 견해이지만 감동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임미정의 피아노를 들으며 떠오른 생각이다.



나아가, 음악을 말하는 능력이 부족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 얼마나 또렷한 종달새던가! 이 종달새는 참종달새다! 임미정의 손가락을 따라 열 마리의 종달새가 흑백 건반 위를 날며 노래한다. 바쁜 길을 가던 사람을 멈춰세우는 임미정의 종달새는 하염 없이 영롱하다.' 라이브라는데, 완벽한 터치를 구현해낸다. 임미정의 종달새를 한번만 듣는 사람은 없을 듯 싶다... 이제는 다 커버린, 대한민국의 귀염둥이 였던, 키씬이 연주한 종달새보다 더 좋다.


하수의 변 - 
알라딘에서 음악을 게시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듯 합니다. 고수는 본디 말이 없는 법이지요. 보통 달관의 경지에 오르면 조용히 지켜만 볼 뿐, 말이 없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진정한 고수들은 이러하지만, 어정쩡한 하수들은 말이 있습니다. 태권도 2단 짜리가 어디가서 곧잘 얻어터지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지금의 저 처럼 말이지요. 저와는 달리 태권도 9단은 결코 싸우지 않습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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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3-14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태권도 2단으로 인해 태권도 문외한도 태권도를 접하게 되지요. ㅎㅎ

차트랑 2026-03-14 20:47   좋아요 0 | URL

어정쩡한 태권도가 어디가서 얻어 터지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잉크냄새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태권도 활성화에 조금이나마 기여를 하는 바가 있군요.
다행이지 뭡니까요~^^

편안한 저녁 되십시요 잉크냄새님~





2026-03-18 2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차트랑 2026-03-18 22:08   좋아요 1 | URL
아....이럴수가....!!
제가 임미정씨를 전혀 아는 바가 없어 동명이인을 몰라봤습니다 ㅠ

알려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니르바나님~!
자세히 살펴보고 수정하도록하겠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태권도 2단짜리가
스트리트 파이터들에게 코피지고 다닌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요 니르바나님!
다시 한 번 더 감사드립니다~


 


우리 나라의 가곡(歌曲)은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전통 가곡이다. 검색해보니, 1872년 박효관과 안민영이 대원군의 후원을 받아 가곡원류(歌曲原流)를 편찬했다고 써있다. 박효관은 가객(歌客) 즉, 가수였다고 한다. 국립 국악원 소장본을 기준하면, 가곡원류(歌曲原流)에는 약 865수의 시조 작품이 실려있다고 한다. 이 시조들을 가사로하여 전통 국악의 연주와 함께 불렀던 것이다. 주로 냥반들이 즐겼는데 이를 정가(正歌) 라고도 한다. 노래를 부르는 이를 가객(歌客) 이라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이를 율객(律客) 혹은 금객(琴客)이라 했다고 한다.  이것이 우리의 전통 성악 가곡에 대한 간략한 요약이다.



두 번째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을 통해 들어온 가곡이다. 일제는 강요에 의한 것이었지만 서방과 시기적으로 빠른 교류를 한 탓에 서양 문화를 우리보다 빠르게 받아들였다. 가곡도 그 중 하나이다. 독일은 슈베르트라는 걸출한 인물 덕분에 가곡의 꽃을 피운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독일 가곡을 리트(Lied)라고 하는데, 이를 일제가 흡수하여 가르쳤다. 당시 음악에 재능이 있었던 홍난파는 일제로 건너가 일본의 대학에서 음악을 수학 했다. 재능이 뛰어났던 홍난파는 도쿄 교항악단 제 1 바이올린 단원을 거치기도 했다. 그의 혈족들은 음악에 큰 재능을 보였다고 써있다. 



[[[ 팽재유 선생이 부른 봄처녀, 팽재유 선생의 봄처녀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아래에 적습니다 ]]]


 

그는 귀국하여 교수 및 강사로 활동했고 대한민국의 슈베르트라는 이름을 얻었다. 홍난파는 가곡을 아주 많이 썼는데 그가 김형준의 詩에 곡을 붙인 것은 1920년라고 한다. 그리하여 근현대의 우리 가곡이 태어났고, 그렇게 '봉선화'는 한국 가곡의 효시가 되었다.



학교 음악 시간에 배웠던 안익태, 김동진, 현제명등과 함께 '친일 인명사전'에 올라있는 홍난파, 그리하여 애증을 함께 가진 이름 홍난파, 그는 성불사의 밤, 고향생각, 고향의 봄등 가곡은 물론 수도 없는 동요를 써냈다.

또한 아주 많은 이은상의 시에 곡을 입혔는데 대표적인 곡이 바로 '봄처녀'이다. 봄처녀는 단순한 노랫말이 아니라 시조이다 (이은상의 가고파에는 김동진이 곡을 입혔다). 이은상의 시조가 마음에 들었던지 홍난파가 스스로 곡을 붙였다고 한다.



홍난파의 '봄처녀'를 부른 성악가들이 아주 많다. 심지어 외국인들도 봄처녀를 불렀다. 봄처녀는 확실히 아름답기가 빼어난 곡이다. 그러므로 아주 많은 선택의 여지가 있다. 개인적인 선택은 봄처녀의 빠르기에 있다. 악보로 본다면 봄처녀의 빠르기는 왈츠의 3/4 박 (tempo di valse)이다. 그러나 시대 배경을 담는다면 이보다는 호흡이 좀더 길어도 좋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리하여 나는 호흡을 길게 가진 봄처녀, 테너 팽재유 선생이 부른 봄처녀를 가장 선호한다.



팽재유 선생를 선택하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팽재유는 봄처녀에서 벨칸토(Bel Canto)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봄처녀를 부르는 팽재유는 벨칸토의 정수라 할만하다. 단연 으뜸이다. 벨칸토는 반드시 레가토(Legato ㅡ저ㆍ고음을 넘나들며 음을 끊어짐 없이 부드럽게 연결하는 발성)가 뒤따라야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다양한 봄처녀 중, 팽재유 선생이 벨칸토를 가장 잘 표현해낸 성악가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플라시도 도밍고가 홍혜경과 그리운 금강산을 함께 부르며 보여주는 벨칸토의 정석. 플라시도 도밍고도 울고갈, 아름답고 정녕 우아한 미성으로 청자를 사로잡는 이가 팽재유이다.



사적으로 봄이 오는 이즘부터 한동안 가장 많이 듣는 우리의 가곡이 바로 봄처녀이다. 혹여 알라딘에 봄처녀를 좋아하는 분이 계시다면 팽재유 선생의 성악으로 들어보심은 어떠실런지....


추신: 

[[[ 뜻밖에도 최불암 선생의 부고를 접했다.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행복한 연기자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인생을 스캔들을 없이 깔끔하게 살다가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영면하소서....근데, 가짜 뉴스 였습니다 ㅠㅠ 아놔~ 가짜 뉴스를 퍼트리는 심리가 너무나도 궁금하자 진짜!! ]]]

 





[[ 최근 알라딘 중고가게에서 구입한 음반이다. 상태가 NM이라고 써있었다. 믿고 구매했다. 상품을 받아보고 정직한 판매자라는 생각을 했다. 정말 마음에 든다. 그나저나 팽재유 선생의 사인이 있는 음반을 내놓은 이 덕분에 사인반을 얻었다. LP는 시디와의 음질 차이는 확연하다. LP로 듣다가 CD로 들으면 금속성 소리가 들려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적응할 때까지 힘들다 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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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3-12 1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곡하면 주로 유럽의 클래식 가곡만 생각했는데 우리ㅏ라의 전통 음악에도 가곡(국악)이 있다는 사실을 깜빡했네요.
그리고 최불암 배우님 별세를 말씀하셔서 급하게 포털을 찾아보니 부고 기사는 없더군요.몸이 안좋아 전화 연락도 안받으시고 TV방송도 안하신다는 뉴스 기사를 뜨는데 부고 기사가 안 난 걸 보면 아며 요즘 AI로 만드는 가짜 기사에 속으신거 같아요.

차트랑 2026-03-12 17:4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카스피님,
저의 서재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가짜뉴스를 만드는 심리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ㅠ
대체 왜 그러는 건지 원

좋은 하루 되십시요 카스피님~

니르바나 2026-03-16 15: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차트랑님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팽재유 테너의 노래를 다 듣게 됩니다.
젊은 시절 테너 팽재유 선생 인물이 정말 좋으셨네요.
옛부터 전해지던 인물평인 신언서판이 훌륭하신 분 같습니다.

가곡이야기를 하셔서 몇마디 덧붙이자면,
이렇게 아름다운 가곡들을 일부러 찾아 듣지 않으면 방송에서 들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전에는 봄 가을이면 유명 성악가들이 한데 모여 가곡의 밤 연주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해서
심지어 음대교수가 아닌 MBC 차인태 아나운서도 객원으로 참여하던 가곡연주회가 있었고,
KBS나 MBC 방송국에서는 뉴스 전 짧은 시간을 이용해서 매일 내 마음의 가곡 식으로 방송한 적도 있었지요.
그만큼 한국가곡이 우리 문화생활에 밀접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지불식중 가곡이 사라졌는데 그 사실을
나중에 임웅균 교수가 방송에 나와서 하는 이야기를 듣고 알았습니다.
전국에 있는 음악대학에서 가곡 과목이 폐지되어 가곡 부를 일이 없어졌다고 하더군요.
아마 그때 쯤 해서 정기 가곡연주회도 사라졌고 더 이상 작곡가들의 신작 가곡 발표회 소식도 들을 수 없었지요.

중고등학교 시절, 음악 시간에 배운 한국가곡과 독일가곡 심지어 미국 민요등이 아직도 아련한데
왜 그 좋은 노래들을 가르치지 않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지금 청소년들은 노년이 되어서도 K- POP을 흥얼거릴까 싶기도 하구요.
(절대로 K- POP이 나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해없으시길)
팽재유 테너의 봄처녀를 들으니 아쉬운 마음에 댓글로 적어봅니다.

차트랑 2026-03-16 16:25   좋아요 1 | URL
오...이런...!
우리 가곡이 대학에서 푸대접을 받아 사장되다시피 하는군요!
어쩐지 가곡들은 중고 매장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저는 우리 가곡을 독일과 이태리 가곡 못지않게 아주 좋아했고 여전히 좋아합니다.
니르바나님께서 방송반에서 틀어주시던
엄정행은 대중 가수만큼 인기가 있었지요.
그 얼마나 아름다운 목소리던가요...

그런데 우리 가곡의 현실을 알고나니 마음이 몹시 아프군요.
저라도 늘 가까이 해야겠습니다 ㅠ

늘 궁금했던 이유를 알게되니 수긍은 가지만
아주 서운하고도 안타까운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네요...

저의 서재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니르바나님,
좋은 오후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