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나는 내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그 결과 건강이 무척이나 나빠졌고, 한동안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집을 비우기도 했다. 집을 떠나 있다가 돌아 온 어느 날, 전에는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친구를 우연히 알게되었다. 지난 해의 일이다. 이름도 몰라 성도 몰라.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그 친구는 사람이 아닌 고양이라는 것. 나는 식구 중 누군가가 집안에 개나 고양이를 키우자고 한다면 반대하는 입장이다. 짐승은 밖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둘째로는 짐승을 집안에 들이는 것 자체를 별로로 생각하는 일인이다. 애완동물을 집안에서 키우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겁나 재수없다, 생각할 만한 그런 일인 말이다.
우선, 이 노래를 스트릭 랜드와 록시, 그리고 이 글을 행여 읽으시는 분들께 바칩니다.
사실 이 친구와 처음 조우했을 때 만해도 나는 시큰둥했다. 너의 자유를 만끽하라고 말이다. 강아지도 별로지만 고양이도 역시나 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 일 동안 반복해서 이친구와 조우하는 순간, 아 이 넘은 다른 길고양이와는 뭔가가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했다. 나의 출현을 어떻게 포착했는지 내가 나타나기만 하면 이 넘도 어김없이 나타나곤 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는 나의 착각일 것이다. 여하튼 어디에 있다가 또 어떻게 알고 나타나는 것일까. 그리고는 또 어디론가 소리 없이 사라진다. 언제 봤다고 서로 눈이 마주치면 쪼르르 옆으로 다가와서는 좌로 딩굴 우로 딩굴. 마치 내게, 어이-, 거기! 나 좀 봐주면 안되겠니? 하는 식 인거다.
하여, 그래? 내가 너 좀 봐주까? 하고는 시험삼이 손을 내밀어 머리부터 등허리를 쓰다듬어 봤다. 아, 근데 이 넘이 나의 손길을 즐기는거라! 해서 나는, 엇쭈~! 하고 뒹굴거리기 시작하는 이 넘의 배를 간지럽혔다. 허걱~ 자신의 배를 허락하다니! 쉬운 놈 아녀 이거?? 했더니 슬금 슬금 일어나 여유를 부리며 유유히 사라진다. 분명 어딘가에 이 넘의 아지트가 있을 것이다.
멀리서 서로 눈이 마주치면 이렇게 여유만만 내게로 다가온다 겁도 없이..
그리고는 내 앞에서 길게 쫘악~ 스트레칭을 한 번 해주신다
마지막으로 내 앞에 딱 버티고 앉아서 제대로 쉴드해 주신다. 살짝 보이는 슬리퍼는 너무 드러버서...
그러던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그 특유의 야옹~! 소리와 함께 늦은 밤에 나를 반겨주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가만? 너 혹시 배가 고픈 거니?? 잠시만 기다려봐라 하고는 집에 들어가 고양이가 먹을 만한 것을 뒤져 가지고 나왔다. 아, 이 넘이 진찌 배가 고팠네? 참치 캔 하나를 다 먹어치운다. 나는 집에 들어와 인터넷으로 고양이 전용 식사를 주문했다.
그리고는 아침 저녁으로 식사를 제공해주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길고양이들의 어려움 중 하나가 바로 깨끗한 식수란다. 물이 필요한 고양이가 갈증을 이기지 못하고 오염된 물을 먹고는 병나기 일쑤라는 것이다. 해서 이름도 성도 모르는 친구의 전용 물그릇과 밥그릇을 준비했다. 그리고는 이름을 하나 지어주었다. 그 이름은 뇨자 고양이, 록시!
그렇게 우리가 서로 잘 지내는 사이 동네에 소문이 나고 계절도 바뀌어 겨울이 온 것이다. 록시는 현관문 앞에 누군가로부터 박스 하나를 선물받기도 했다. 그 안에는 따듯한 담요도 한 장 놓여있었다. 내 친구에게 이토록 잘해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나는 모른다. 게다가 이 친구의 먹을 거리가 점점 늘어가고 있었다. 우유를 제공해주는 사람도 생겨났다. 이 친구를 소리 없이 돌봐주는 이들이 하나 둘 씩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 친구의 이름, 록시는 더욱 널리 알려졌다. 하긴, 이 친구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내 배 째시오~, 스타일인 것이다. 뻑하면 다가와 옆에 누워 뒹굴거리며 자신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표현했다. 사랑 받는 법을 아는 넘이다 확실히! 이곳에는 록시의 프라이버시를 생각해 뒹구는 모습은 생략한다.
그렇게 해가 바뀌고 살도 부쩍 올랐다. 추운 겨울도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들 덕분인지 잘 견뎌냈다. 포동포동 오른 살이 그 증거였다. 여유를 부릴 줄도 알았다. 성급하지 않은 성격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차분한 넘이다. 이런 넘은 생전 첨이다 싶은, 친화력 좋은 놈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부터인가 이친구가 보이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영 소식이 없다. 쪼르르 달려오던 모습이 사라진 것이다. 그렇게 일주일 다 지나고 있었다. 이 넘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인가...
갑자가 「달과 6펜스」의 주인공인 스트릭 랜드가 떠올랐다. 그 어느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스트릭 랜드의 사라짐. 뭣 하나 부족할 것이 없었던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가족도 그 이유를 전혀 알지 못해 당황해 했다. 소문은 무성했다. 심지어 은행의 여직원과 눈이 맞아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버렸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그렇게 사라져버린 스트릭 랜트를 찾아 나서는 ‘나’라는 인물 조차도 이유를 모르기는 마친가지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는 처음에 내 자존심에 상처를 준 소설이었다. 스트릭 랜드의 행동을 전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나’ 라는 인물이 파리에 가있는 그를 만난다. 소설 속의 '나'라는 인물은 관찰과 대화를 통해 점점 그를 이해해기 시작하지만 정작 중요한 독자인 나는 여전히 그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소설이 다 끝이 나서도 나는 여전히 그의 심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좌절했다.
그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는 하지 못했지만 대신 가장 인상적인 대목을 나는 암기해버렸다. 이는 아마도 나의 반항심이었을 것이다.
They have always a nostalgia for a home they know not. They are strangers in their birth place, and the leafy lanes they have known from childhood or populous streets in which they have played, remain but a place of passage. Perhaps it is this sense of strangeness that sends men far and wide in the search for something permanent to which they may attach themselves. Perhaps the deep-rooted atavism urges the wanderer back to land which his ancestors left in the dim beginnings of history. Sometimes a man hit upon a place to which he mysteriously feels that he belongs. Here is the home he sought, and he will settle amid scenes that he has never seen before, among men he has never known, as though they were familiar to him from his birth. Here at last he finds rest.
The Moon and Sixpence
그리고 내 입맛대로 우리말로 번역해보았다. 물론 엉터리지만 말이다.
그들은 그들도 잘 알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향수(nostalgia)를 늘 가지고 있다. 그들은 태어난 곳에서 이방인이다 그리고, 그들이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나뭇잎이 우거진 오솔길이나 그들이 뛰놀던 복작거리던 거리는 그저 스쳐가는 장소에 불과할 뿐이다. 어쩌면 그들이 애착을 가질 수 있는 영원한 그 무엇인가를 찾아 사람들을 아주 멀리 떠나도록 하는 것은 (태어난 곳에서 자신들이 느끼는) 바로 그 낯선 느낌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뿌리 깊은 격세 유전이 방랑자에게 아주아주 먼 옛날 조상이 남기고 간 땅으로 돌아가도록 재촉 하는 것 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때로 그 방랑자는 신비하게도 자신이 머물러야 할 곳이라고 느끼는 곳에 우연히 들르게 된다. 이 곳이 그가 그토록 찾던 바로 그 고향이고, 그는 전에 와 본 적도 없는 곳에서, 전에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여장을 푼다. 그들이 마치 태어날 때부터 그에게 친숙한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그는 마침내 그의 안식을 찾는다.
달과 6펜스
스트릭 랜드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당시 내 나이가 어린 학생으로 6펜스에 더 가까운 사람이었거나 달을 바라보는 시선을 이해하지 못할 만큼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차라리 그보다 먼저 읽었던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꼴리니코프가 살인을 저지르던 그 심리를 더 이해하기 쉬웠는지도 모르겠고 아니면 그보다 훨씬 이전에 ‘위프랄라’ 라는 주문을 써서는 마법을 부리던 어린 주인공과 친해서 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는 나이가 훨씬 더 들어 다시 읽었을 때는 스트릭 랜드라는 캐릭터를 어쩌면 조금은 이해할 것도 같았다. 어째거나 당시 나는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처를 입고 말았다. 덕분에 나는 저 위에 있는 문장을 영문과 한글로 모두 기억하게 되었다.
스트릭 랜드와는 전혀 이유가 달랐지만 어째든 소식을 하나 남기지 않고 훌쩍 떠나버린 것은 서로 닮았다. 하여 수소문을 시작했다. 우선 식구들에게 록시의 소식을 탐문했다. 식구들도 록시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고 관심을 가져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친구를 알만한 동네 분들에게도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얼마 전부터 이 친구에게 이성친구가 생겼다는 것이다. 한동안 이성 친구를 사귀느라 정신이 없었다는 것이다. 둘이 재미나게 지내더니 어느 날 그 둘이 함께 자취를 감추더라는 것이다. 식구들이 전해준 정보와 동네 분들의 정보가 일치하고 있었다.
아~, 이 소식을 들으니 좋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했다. 짝을 만났다 하니 좋은 일이고, 둘이서 딴 곳에 살림을 차렸다하니 서운하기도 했다. 그 곳이 어디인지 궁금할 정도로 말이다. 계절로 보아하니 소식을 남기지도 않고 이 친구가 떠난 것은 일 년 전 이맘때의 일이다. 어디서 잘 살고 있는 것이더냐? 록시, 나는 이제 스트릭 랜드의 심정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단다. 너도 잘 알다시피 이곳도 살기 좋은 곳인데 록시, 니네 부부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면 안되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