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하면 의례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인 '인연'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이 가까워진 관계로 불교의 인연설이 떠오른다. 딱히 불자는 아니지만 부처님 말씀이나 성서의 말씀이나 공자님의 말씀은 모두다 인간에게 유익하며 인생의 지혜를 담도 있는 말씀들이라고 생각한다. 그 말씀들을 제대로만 따른다면 세상은 지금처럼 그렇게 황폐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는 그런 사람일 뿐인 것이다.
불교는 인연을 매우 중시한다고 들었는데, 인연설은 세상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들은 아무런 조건이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존재할만한 조건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존재하게 된다는 뜻으로 이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이는 인과관계의 상호의존적 성격을 잊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그 상대방이 누구이든, 그 무엇이든지간에....이는 곧 나의 존재에 이유가 있듯이 타자의 존재에도 그만한 이유가 있은 것이니 타자의 존재에 대한 경외감을 잃지 말고 소중히 하라는 뜻을 담고 있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일을 이해하기란 참으로 설명이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차라리 만나지 않았더라면...하고 후회스러운 경우가 있는데 우리는 흔히 이를 악연이라고 한다. 반면, 이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하는 인연도 있다. 만남을 무척이나 다행스럽게 여기는 만남이 바로 그와 같은 인연일 것이다.
살다보면 셀 수도 없는 많은 사람과 만나고 또 헤어지지 않을 수 없다. 부모와 자식, 형제 자매, 그리고 부부의 인연은 말할 것도 없으니 논외로 해야 할 듯하다. 사실은 나로서는 감당할 수조차 없는 성스러운 영역이라는 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니 말이다…….
인연은 생각지도 못했던 하나의 끈으로부터 시작하는 것 같다. 이를 우연이라고도 하는데, 정말 우연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이유가 있는 듯하다. 그러나 우연한 인연이라 생각하지만 필연적인 인연이라고 여기는 경우도 상당히 많으 것이 사실이다. 사실 우연이라고 칭하기에는 너무나도 인생에 중요한 만남이 되는 경우를 흔히 경험해보신 분들이 계실 것이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어준 사람은 특히나 그러하지 않은가. 이런 경우가 바로 우연처럼 느껴지지만 어쩌면 필연일 지도 모르는 일이다.
되돌아보면 아…….이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그렇게 아찔아찔한 생각마저 들게하는 분들과 만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얼마나 많을까…….
나에게도 그렇게 나 자신을 아찔거리게 만드는 분들이 계신다. 일생의 스승님으로 모시는 분들과의 만남이 그러하고, 마치 스승님처럼 여기며 끊임없는 배움을 얻을 수 있는 분이 바로 그분이다.
최근에는 그렇게 여생을 두고 존경하며 배울 수 있는 분을 만났다. 부처님 오신 날은 그렇게 그분과의 만남 또한 그만한 인연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다시 한 번 그 인연을 소중히 하지 않은 수 없다는 가르침을 주기에 충분한 날인 것이다.
벌써 읽기를 마쳤지만 리뷰를 쓴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는 책이다^^ 그러나 정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행여 기철학을 알고 싶다거나 오해하고 계신 분이라면 권해드리고 싶을 정도이다. 아직 우리의 사유속에는 기철학를 소홀히 다루는 측면이 있지 않나 싶다. 理論 중심으로 연구되고 발전해온 성리학은 사실 氣論과 理論을 분리하여 사유할 수 없는 학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론은 여전히 홀대를 받고 있는 처지이다. 독자의 한사람으로 이현실은 안타깝기만 하다. 하여 구상이 끝나면 리뷰를 써볼까 한다.
최근에 만난 그 분은 몸이 아픈 사람을 치료해주시는 분이다. 인체내부를 타고 흐르는 기의 흐름을 파악하고 병의 근원을 찾아 그 막힌 부분을 회복시켜 치료를 해주시는 분인 것이다. 나 역시 기의 흐름이 좋지 않은 탓인지, 최근에는 병원 한편에 자리를 잡고 한동안 밥만 축낸 경력이 있는 사람으로 건강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어찌어찌해서 그분을 찾아가게 된 것이다. 사실은 벌써 알고 지낸 분이지만 그분이 병의 근원을 다스려 원상태로 돌려놓는 분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막상 직접 치료를 받아보니 그 효과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치료를 해주신 분께는 몸소 체험한 그 효능을 이미 말씀드렸기 때문에 이 글을 보시면 아마도 아하하~ 웃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사람마다 병의 근원이 다양하지만 특히 마음에서 비롯되는 병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만병의 근원이 마음에서 온다더니 딱 그 말씀을 해주시는 것이다. 이 분을 보면서 또 한 가지 느낀 것은, 치료를 해주는 사람은 질병의 근원인 마음을 다스려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분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마음속에 근원을 둔 병을 물리적으로만 다스린 다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만병이 마음에서 오는 것은 아니겠으나 정작 마음이 근원이라면 마땅히 마음을 다스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분께서 연구하는 수많은 자료 중 하나인 '황제내경'이다. 황제 내경에 수록된 이론들을 수많은 임상을 통하여 연구해 오셨다. 물론 이는 연구의 일부이지만 대단히 배울 점이 많은 책이라 설명하신다.
그분의 말씀 중에는 우리의 신체 내에는 ‘심포(心包)’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심포가 병이 나면 사람의 ‘심보’가 나빠진다고 덧붙이셨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심보가 나쁘다’는 말이 바로 그 心包에서 왔다는 설명을 곁들이셨다. 듣고 보니 참 흥미롭고도 지혜로운 이치가 아닌가 싶다. ‘심보가 나쁜’ 것은 ‘심포가 나빠서’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심포가 나빠지면 마음과 생각이 삐뚤어지기 십상이라고 한다. 자신의 심포가 불편하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니 매사가 짜증스럽기 마련이다. 하여 특별한 이유 없이 화가 올라오고, 주변의 모든 일들이 부담스러우며 결국 신경질이 늘고 대인관계에도 악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심포에 문제가 생기면 그것이 밖으로 표출 될 수밖에 없고 그 사람을 이해하는 타자는 성질이 나쁘다고 판단 할 수도 있는 문제이다. 좋은 인연은 이럴 경우 찾아오기가 어려울 만것 같다. 결국 화를 자주 내거나 심포가 부실한 사람은 장수하는데 큰 지장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하여 ‘심포’라는 한의학 용어를 언뜻 이해하기 어려워 좀 더 알아보려고 검색을 해봤다. 검색 중, 재미있는 질문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시골 한의원에서도 심포 뚫어주나요? 이었다.^^
그에 어느 분께서 친절하게도 답을 주셨다. 계모임에서 돈을 떼이거나, 절친과 싸움을 했거나, 돈을 잃어버렸거나 하는 상황에서 이를 소화를 해내지 못하고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으면 심포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대답이었다. 결국 병의 근원이 마음속에 있다는 말인 것이다. 질문이 좀 웃기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대답을 들으니 돌연 심각해진다.
심포의 사전적 의미: 심포(心包): 심장(心臟)을 싸고 있는 막. 결합(結合) 조직(組織)으로 안팎의 두 막으로 되었는데, 외막은 심외막(心外膜)으로서 심장(心臟)에서 나가는 큰 핏줄의 밑부분(-部分)을 싼 뒤에 뒤집히어 심장(心臟)의 바깥 부분(部分)을 느슨히 싸고 있음
‘심포’는 한의학에서는 ‘무형의 장기’라하는데, 이 심포는 심장을 보자기처럼 감싸고 있는 것이라 보는 설도 있고 해부학적 규명이 안되는, 기능상으로 가정된 조직으로 보는 설이 있다고 한다. 아마도 물리적으로 확인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물리적인 실증만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아니니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여하튼 그분과의 인연을 또한 설명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만한 인연이 있어 만나게 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하는 불교의 설명은 그러므로 매우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그분께서 치료 하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그야말로 한사람의 생명을 살린다는 마음으로 치료에 임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의사에게 치료를 맡긴 사람의 심정을 사실 의사는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 간절함과 절박한 환자의 심정을 말이다. 내 몸이 ㅇ프지 않으니 어찌 아픈 환자의 마음을 모두 알 수 있을 것인가...그러나 이 분께서는 어찌나 진지하고 마음을 다하여 치료에 임하시던지....바로 이러한 모습을 성스럽다 하는 것은 아닐까... 이 성스러운 하나의 장면에서 전해오는 것이 바로 감동이 아닐런지...그렇게 나는 감동하고 말았다..
그 모습 하나만으로도 나는 그분을 존경하지 않을 없다. 그토록 인연을 중시하며 마음을 다해 치료에 임하는 분을 내가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
게 그분과 나는 서로에게 그만한 인연으로 만났으니 그 인연의 중요성을 애써 불교의 인연설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가히 깨달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분은 자신을 찾아 치료를 맡긴 아픈 사람들에게 정성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아름답고 아름답다.
중용을 공부하면서 ‘고명(高明)’과 ‘박후(博厚)’라는 말을 언뜻 하늘의 것으로만 알고 있었더랬다. 중용의 26장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博厚 所以載物也 高明 所以覆物也 悠久 所以成物也
박후 소이재물야 고명 소이부물야 유구 소이성물야
박후하기 때문에 만물을 실을 수 있고, 고명하기 때문에 만물을 덮을 수 있고 유구하기 때문에 만물을 완성 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때 만물을 실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의 땅(地)이요, 만물을 덮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의 하늘(天)이다. 그 땅과 하늘이 만나 만물을 완성시켰다는 우주의 이치를 설명하는 공자님의 말씀인 것이다.
그리하여 이어지는 장구는...
天地之道 可一言而盡也 其僞物不貳
천지지도 가일언이진야 기위물불이
하늘과 땅의 도를 한마디 말로써 다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니, 그 물(物)됨이 두마음이 없다는 것이다...로 이어지게 된다.
자연의 섭리는 그렇게 두마음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두 마음이라면 자연의 법칙은 성립불가능한 것이며 인간이 발견해내는 모든 과학적 이론들은 말 그대로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는 그 얼마나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울 것인가... 그러나 자연은 절대로 두 마음이 아니니, 인간을 비롯 모든 세상의 만물들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사실 가까운 사람이 두 마음을 먹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 서로 멀어지는 경우가 흔한 일이다. 초지일관 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지행은 보다 추구해야 할 인간의 덕목이 아닌가 싶다. 이 역시 스승님의 말씀과 같은 말씀이니 어찌 따르지 않을 수 있을까...
중용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바로 나의 인연이 되는 분에게서 고명과 박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분의 마음이 늘 한결같은
其僞物不貳(기위물불위)를 행하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한다면 중용의 그 높은 뜻을 오해한 것이라 말하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찌 하늘과 땅의 이치가 오로지 하늘과 땅 에게만 해당될 것인가. 인간도 그 하늘과 땅의 일부이며 하늘과 땅의 이치로 살아가고 있는 존재이니 인간에게서 그 고명함과 박후함을 발견하지 못한다는 법이 따로이 있을까...
나는 그렇게 그분께 나의 스승을 발견했다. 흔히 말하는 아름다운 마음, 인격을 갖춘 분, 도량이 넓은 분등의 말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여기는 것은 바로 이때문이다. 특히무엇보다 훌륭한 것은 사람을 진정 사랑할 줄 안다는 점이다. 하여 그분께는 고명, 박후라는 말을 써드리는 것이다. 이토록 훌륭한 분을 만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님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있다.
그렇게 나는 고명함과 박후함의 이치를 그분에게서 발견했으니 그분과의 인연을 그어찌 소중하다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토록 아름다운 한 인간이자 나의 스승에게 나는 지극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존경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을 드릴 것이다... 이 글을 보시지는 못하시겠지만 정녕 당신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