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시사인) 제796호 : 2022.12.20
시사IN 편집국 지음 / 참언론(잡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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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 들고 봉쇄 깬 시진핑의 아이들" 기사에서:

   톈안먼 항쟁은 사실 중국인에게 '잊혀진 반란'이다. 당국의 역사 검열 교육을 받아온 젊은 세대에게는 더욱 그렇다. 톈안먼 항쟁 사진을 본 중국 학생이 "이거 한국의 5.18 사진이죠?" 하며 물었다는 일화도 있다. 동시에 '실패한 반란'이기도 하다. 톈안먼 항쟁을 연구해온 서울시립대 하남석 교수(중국어문화학)는 "1978년 베이징 시민들이 민주와 인권을 요구하며 벽에 대자보를 붙인 '민주의 벽' 사건 이후 축적된 중국 시민사회 동력이 톈안먼 무력 진압 이후 사라졌다. 톈안먼 항쟁이 오히려 중국이 신자유주의로 나아가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도 있다"라고 말했다. 중국의 비판적 지식인 첸리췬 전 베이징대학 교수는 톈안먼 항쟁 이후 중국 사회가 '가장 나쁜 사회주의와 가장 나쁜 자본주의의 결합'이 되었다고 비판했다.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이번 백지 시위가 중국 사회에 어떤 기억으로 남을 것인가. 일단은 방역 완화 조치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톈안먼 항쟁처럼 실패한 반란으로 잊히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이미 시작된 시위 참가자 색출 작업을 통해 저항세력을 '외부의 적'으로 몰아세우며 고립시킬 공산이 크다. 국내 중국 연구자들은 조만간 대대적인 피바람이 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중국의 현대사항을 연구해온 조경란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는 "시진핑 퇴진 구호가 베이징 중심가에서 터져 나왔다는 건 분명 중요한 민심의 변화다. 그러나 규모가 크고 사람이 많은 중국은 변화가 늦다.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38 페이지)


역시 재미있는 굽시니스트의 본격 시사만화: 신진검사대부의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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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의 섬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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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의 책이 늘 그렇듯, 이 책도 상당히 다기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가는 역사적 배경을 바탕에 두고 있다. 전반적으로는, 주인공인 로베르토가 난파한 배에 갇혀 남긴 글을 발견한 화자가 상상을 덧붙여 쓴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군주의 계승을 둘러싼 전쟁, 경도 180도에 있는 '전날의 섬', 경도를 알아내는 방법, 천동설과 지동설, 공간과 시간, 그리고 이룰 수 없는 사랑 등에 대한 얘기들이 날줄과 씨줄처럼 얽혀 있다. 한 마디로, 당대 한 귀족 지식인 청년의 내면을 통해 시대상을 그리고 있다. 


우리말 번역은 이윤기 선생이 했는데, 이전 글들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아쉬움이 있다. 편집상의 아쉬움(오타 등)도 있고, 번역 자체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이윤기 선생이 '옮긴이의 말'에서 고백하듯 악전고투하신 것 같은데, 이제 <장미의 이름>처럼 직접 다시 다듬으실 수도 없으니 또 다른 번역이 나오면 좋을 듯 싶다. 


움베르토 에코의 이 책에서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에코의 지식에 대한 사랑과 그가 지닌 지식의 방대함. 주인공 로베르토를 통해 느끼는 삶의 유한함과 헛됨. 당시의 사회상. 사랑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큰 주제 중 하나인데, 솔직히 현대의 사랑과 너무 달라서 공감하기 힘들었다. 결국, 난파한 배 속의 로베르토는 우리 자신의 운명을 빗대고 있는 것이 아닐지. 유한한 지구에서, 무언가를 (헛되이) 갈망하며 사는 우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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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2-12-12 18: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장미의 이름과 함께 다시 이탈리아어 전공자의 번역으로 다시 출간해야 합니다!!!!!!
21세기에 리버블릭 오브 코리아에서 이게 뭡니까!

blueyonder 2022-12-13 08:56   좋아요 0 | URL
이윤기 선생의 번역본이 출간된 지 이제 30년 가까이 됐으니, 새로운 번역이 나올 때도 된 거 같습니다. 이탈리아어 전공자의 번역이면 좋겠네요. ^^
 















<전날의 섬>에는 공간과 시간에 대한 대화도 들어 있다. 파리의 철학자 동아리에서 파스칼(1623~1662)로 생각되는 청년도 함께 참여해서 했던 논의를 회상하는 부분이다.


  ... 자유 사상가 동아리 중의 하나가 그 말을 받았다. ⌜... 허공은 시간과 같아. 시간은 질량의 운동이 아니라네. 왜냐? 운동은 시간에 종속되어 있지만 시간은 운동에 종속되어 있지 않거든.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무한한 것, 창조의 대상이 아닌 원천적인 존재인 것, 영속적인 것이거든. 시간은 공간의 결과가 아니야. 시간은...... 말자자면 그 자체로서의 그것인 것, 허공도 마찬가지라네. 역시 그 자체로서의 그것인 것이라는 말이네.⌟ (594~595 페이지)


   “... The Void is like time,” one of the Roberto’s libertine friends commented. “Time is not the quantity of movement, because movement depends on time and not vice versa; it is infinite, increate, continuous, it is not an accident of space... Time is, and that is that. And the Void is. And that is also that.” (p. 432)


절대공간, 절대시간에 대한 생각이 위의 진술에 들어있다. 번역이 좀 어렵긴 하지만 원문의 뜻을 전달하고 있다. 디뉴 신부가 부연한다.


   누군가가, 어떤 사물을 설명하면서 정의에 접근하지 않고 <그 자체로서의 그것인 것>은 정밀하지 못한 태도라고 항변했다. 거기에 대해 디뉴 신부가 이런 말을 했다. ⌜여보게들. 옳은 말이네. 공간은 시간도 물체도 아니고 기(氣)도 아니야. 굳이 설명을 요구한다면 무형물이라고 해도 좋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네. 시간과 공간은 어떤 원인의 우유적(偶有的)인 결과도 아니요, 그렇다고 해서 실체인 것도 아니야. 그런데도 불구하고 천지창조 이전부터 있어 오던 것, 어떤 우유적인 결과나 실체에도 선행하는 것, 모든 실체가 그 모습을 감추고 난 뒤에도 계속해서 존재하게 될 어떤 것이라네. 그 안에 무엇을 어떻게 넣건, 시간과 공간이라는 것은 바꿀 수 없는 것, 변경시킬 수 없는 것이라네.⌟ (595 페이지)


   Some protested, saying a thing that is and that is that, without having a definite essence, might just as well not be. “Gentlemen,” the Canon of Digne then said, “it is true, space and time are neither body nor spirit, they are immaterial, if you like, but this does not mean they are not real. They are not accident and they are not substance, and yet they came before Creation, before any substance and any accident, and they will exist also after the destruction of every substance. They are immutable and invariable, whatever you may put inside them.” (p. 432)


20세기 초, 상대성 이론은 절대공간, 절대시간이란 개념을 부숴버리고 새로운 개념—시공간—을 도입했다. 이제 공간과 시간은 더 이상 절대적이고 변하지 않는 존재가 아니다. 어쨌든 과학혁명이 시작되어 곧 뉴튼의 만유인력 법칙으로 절정을 맞게 될 시점에서, 이들의 논의를 지켜보는 것은 흥미롭다. 


에코는 이후, 로베르토를 통해 의식과 영혼에 대한 상념을 이어가며 돌의 생각에 대한 언설도 늘어놓는다.


   하느님 맙소사...... 나에게 영혼이 있다는 것이 대견하다. 돌도 영혼이 있다는 것을 대견하게 여길 것이다. 그런데 나는 돌에게도 영혼이 있다는 바로 그 사실에서, 내 영혼이 내 육신을 살려 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나는 왜 돌 노릇을 즐기면서 돌에 대한 생각을 계속하는가? 죽으면 나에 대한 것은 아무것도 모르게 될 터인데...... (660 페이지, 밑줄 추가)


위의 번역에서는 잘못된 부분(밑줄)이 있다. 


   My God, I could enjoy the soul, and even the stones could enjoy it, and precisely from the soul of stones I learn that my soul will not survive my body. Why am I thinking and playing at being a stone, when afterwards I will know nothing further of myself? (p. 480, 밑줄 추가)


“my soul will not survive my body”에서 “survive”는 ‘~보다 오래 살다’의 의미이므로 결국 ‘내 육신이 죽으면 내 영혼도 사라진다’는 말이다. 이렇게 번역해야 뒤의 “죽으면 나에 대한 것은 아무것도 모르게 될 터”라는 문장이 잘 이어진다. 의식에 대한 현대의 ‘물리주의’적 관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로베르토와 그의 “자유 사상가” 친구들의 우주와 인간에 대한 생각이 매우 현대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기 위해 에코가 의도한 바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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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2-12-12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건 이탈리아어, 불어, 영어, 한국어로 삼중역 됐을 때의 오류를 지적하시는 거.... ㅎㅎㅎ 맞습니까? 오, 아닌 거 같군요. 제가 아는 이윤기의 삼중역은 그리스인 조르바 밖에 없습니까요.
음. 다른 게 아니고요, 이 작품은 정말 다시 번역해야 한다는 걸 강조하려다 말이 좀 심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_-;;

blueyonder 2022-12-13 08:48   좋아요 0 | URL
네, 삼중역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아닙니다. ^^;; 저는 영역본과 국역본만 가지고 있는데, 영역본은 이탈리아어 원본을 바로 번역한 것으로 보입니다. 영역본의 역자 후기를 보면 에코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말씀하시는 뜻은 잘 알겠습니다~

2022-12-15 17: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15 2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16 1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16 14: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 최신 과학으로 시간의 정체를 밝힌다!, 완전 개정판 뉴턴 하이라이트 Newton Highlight 134
일본 뉴턴프레스 엮음 / 아이뉴턴(뉴턴코리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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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발행된 완전 개정판인데, 이전 판과 달리 생물학적 시간을 제일 앞에서 소개하고 있다. 스몰린과의 인터뷰가 있어서 반갑지만, 개정하며 빠진 내용 중 아쉬운 것도 있다. 파인만의 관점에 따르면 반물질이 시간을 역행하는 물질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흥미로운 내용이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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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의 섬>이 펼쳐지는 시대적 배경인 1643년은, 코페르니쿠스(1473~1543)와 갈릴레이(1564~1642), 그리고 케플러(1571~1630) 등에 의해, 2천여 년 동안 지속되어 오던 아리스토텔레스적 세계관에 결정적 균열이 생긴 이후이다. 1643년은 아이작 뉴튼이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에서 우주는 세속적이며 변화하는 지상계와 영원하며 변하지 않는 천상계로 나뉘어져 있다. 움직이지 않는 지구가 지상계의 중심이며, 천상계는 이러한 지상계를 돈다. 지상계와 천상계의 경계는 달이며, 달의 위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천상계에는 태양, 행성들, 그리고 별들이 박혀 있는 천구가 있다. 우리 주변에서 무거운 것은 아래로 떨어진다는 관찰을 전체 우주에 적용하여 위와 같은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이것이 지구중심설(천동설)이며, 이를 대체하여 새롭게 나온 세계관이 태양중심설(지동설)이다. 


<전날의 섬>에는 이와 같은 변혁의 시기에 여전히 지구중심설의 세계관을 고집하는 카스파르 신부의 다음과 같은 말이 나와 있다. 


   ⌜그래서? 그대가 신봉하는 갈릴레이주의자들[이]나 코페르니쿠르스주의자들은, 지구가 중심에 버티고 있고, 천체가 거대한 원을 그리면서 돌고 있다는 생각 대신, 태양을 우주의 중심에다 고정시키고, 모든 행성들이 거대한 원을 그리면서 돌고 있다는 생각을 고집한다. 어떻게 Dominus Deus(주 하느님)께서 태양을, 휘황찬란하고 영원한 별들에 둘러싸인, 타락한 지구의 가장 낮은 자리에 두시겠는가? 그대 생각의 어디가 잘못 되었는지 이제 알겠는가?⌟ (421 페이지, 밑줄 추가) 


위의 글에서 밑줄을 그은 “태양을 ... 타락한 지구의 가장 낮은 자리에 두시겠는가?” 부분이 이상하다. ‘태양을 지구의 가장 낮은 자리에 둔다’는 말은 태양이 지구의 속(중심)에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영역본을 보자. 


   “So! And your Galileans or Copernicans want to have the sun in the center of the universe fixed and making move all the great circle of the planets around, instead of thinking the movement from the great circle of the heavens comes, while the earth remains still in the center. How could Dominus Deus put the sun in the lowest place and the earth, corruptible and dark, among the luminous and aeternal stars? Understand your error?” (pp. 304-305, 밑줄 추가) 


영역본은 어떻게 태양을 가장 낮은 곳(우주의 중심)에, 타락한 지구를 영원한 별들 사이에 두겠느냐, 이상하지 않냐고 카스파르 신부가 물어봄을 보여준다. 지구중심설의 세계관에 따르면 태양중심설은 정말 이상한 얘기이다. 하지만 세계관을 바꾸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우리는 지금 그러한 세계관 속에서 살고 있다. “타락한 지구”와 같은 형이상학적 생각은 이제 사라졌다. 


지구중심설의 세계관에 맞게 다음처럼 고치면 카스파르 신부의 질문이 더 잘 이해된다. 


   “그래서? 그대의 갈릴레이주의자나 코페르니쿠르스주의자들은 태양이 우주의 중심에 고정되어 있고 행성들이 커다란 원을 그리며 태양을 돈다고 주장하지. 움직이지 않는 지구를 중심으로 천체가 돈다고 생각하지 않고 말이야. 어떻게 주 하느님께서 태양을 가장 낮은 곳에 두시고, 타락하고 어두운 지구는 밝게 빛나고 영원한 별들 사이에 두시겠나? 뭐가 잘못 됐는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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