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의 섬>이 펼쳐지는 시대적 배경인 1643년은, 코페르니쿠스(1473~1543)와 갈릴레이(1564~1642), 그리고 케플러(1571~1630) 등에 의해, 2천여 년 동안 지속되어 오던 아리스토텔레스적 세계관에 결정적 균열이 생긴 이후이다. 1643년은 아이작 뉴튼이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에서 우주는 세속적이며 변화하는 지상계와 영원하며 변하지 않는 천상계로 나뉘어져 있다. 움직이지 않는 지구가 지상계의 중심이며, 천상계는 이러한 지상계를 돈다. 지상계와 천상계의 경계는 달이며, 달의 위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천상계에는 태양, 행성들, 그리고 별들이 박혀 있는 천구가 있다. 우리 주변에서 무거운 것은 아래로 떨어진다는 관찰을 전체 우주에 적용하여 위와 같은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이것이 지구중심설(천동설)이며, 이를 대체하여 새롭게 나온 세계관이 태양중심설(지동설)이다. 


<전날의 섬>에는 이와 같은 변혁의 시기에 여전히 지구중심설의 세계관을 고집하는 카스파르 신부의 다음과 같은 말이 나와 있다. 


   ⌜그래서? 그대가 신봉하는 갈릴레이주의자들[이]나 코페르니쿠르스주의자들은, 지구가 중심에 버티고 있고, 천체가 거대한 원을 그리면서 돌고 있다는 생각 대신, 태양을 우주의 중심에다 고정시키고, 모든 행성들이 거대한 원을 그리면서 돌고 있다는 생각을 고집한다. 어떻게 Dominus Deus(주 하느님)께서 태양을, 휘황찬란하고 영원한 별들에 둘러싸인, 타락한 지구의 가장 낮은 자리에 두시겠는가? 그대 생각의 어디가 잘못 되었는지 이제 알겠는가?⌟ (421 페이지, 밑줄 추가) 


위의 글에서 밑줄을 그은 “태양을 ... 타락한 지구의 가장 낮은 자리에 두시겠는가?” 부분이 이상하다. ‘태양을 지구의 가장 낮은 자리에 둔다’는 말은 태양이 지구의 속(중심)에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영역본을 보자. 


   “So! And your Galileans or Copernicans want to have the sun in the center of the universe fixed and making move all the great circle of the planets around, instead of thinking the movement from the great circle of the heavens comes, while the earth remains still in the center. How could Dominus Deus put the sun in the lowest place and the earth, corruptible and dark, among the luminous and aeternal stars? Understand your error?” (pp. 304-305, 밑줄 추가) 


영역본은 어떻게 태양을 가장 낮은 곳(우주의 중심)에, 타락한 지구를 영원한 별들 사이에 두겠느냐, 이상하지 않냐고 카스파르 신부가 물어봄을 보여준다. 지구중심설의 세계관에 따르면 태양중심설은 정말 이상한 얘기이다. 하지만 세계관을 바꾸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우리는 지금 그러한 세계관 속에서 살고 있다. “타락한 지구”와 같은 형이상학적 생각은 이제 사라졌다. 


지구중심설의 세계관에 맞게 다음처럼 고치면 카스파르 신부의 질문이 더 잘 이해된다. 


   “그래서? 그대의 갈릴레이주의자나 코페르니쿠르스주의자들은 태양이 우주의 중심에 고정되어 있고 행성들이 커다란 원을 그리며 태양을 돈다고 주장하지. 움직이지 않는 지구를 중심으로 천체가 돈다고 생각하지 않고 말이야. 어떻게 주 하느님께서 태양을 가장 낮은 곳에 두시고, 타락하고 어두운 지구는 밝게 빛나고 영원한 별들 사이에 두시겠나? 뭐가 잘못 됐는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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