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전환점으로 읽는 제2차 세계대전
필립 M. H. 벨 지음, 황의방 옮김 / 까치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12 전환점으로 읽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니 12개의 전투를 골라 전투 양상과 의의를 개괄하는 그렇고 그런 책이겠거니 했다. 표지를 보니 마치 20년 전에 나온(!) 책인 듯했다. 하지만 이 책은 2011년에 나온 최근 책이었다(최신 연구성과를 반영한다는 뜻이다). 번역은 2012년에 됐다. 차례를 보면서 ‘아 괜찮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고른 12개의 전환점은 다음과 같다.


1 히틀러의 득세: 프랑스의 붕괴, 1940년 5-6월

2 “가장 좋았던 시간”: 영국 전투, 1940년 7-9월

3 바르바로사 작전: 독일의 소련 공격, 1941년

4. 진주만, 1941년 12월: 세계대전이 되다

5 미드웨이 전투, 1942년 6월 4일

6 스탈린그라드 전투, 1942년 7월-1943년 2월

7 호송선과 잠수함: 대서양의 결전, 1943년 3-5월

8 “압도적 힘의 적절한 이용”: 공장들의 전투

9 테헤란 회담, 1943년 11월 28일-12월 1일: 대연합을 위한 전환점

10 D-데이와 노르망디 전투, 1944년 6-7월

11 “운명적인 회담”: 얄타, 1945년 2월 4-11일

12 일본의 패배와 원자폭탄, 1945년


중요한 전투를 적절히 골랐을 뿐만 아니라 군수품 생산, 연합국의 막후 정치 등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읽으면서 기대를 초월한다는 생각이 거듭 들었다. 중요 전투의 전개 양상과 전쟁에서의 전략적 의의만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전쟁의 흐름과 당시의 정치 상황 등이 잘 버무려져 있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2차 세계대전사에 입문하는 사람에게는 이보다 좋은 책이 없겠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너무 많은 전투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큰 흐름을 따라 갈 수 있고, 그 배경이 되는 전략적, 정치적 상황들이 언급되며, 개인의 일기까지 인용하는 전쟁사 책: 별 다섯이 아깝지 않다. 400페이지가 채 안 되는 분량에 이러한 정보를 담은 저자의 필력에 감탄한다. 저자인 필립 벨은 영국 리버풀 대학의 명예 역사 교수라고 하는데, 아마 평생의 독서와 연구가 이 책으로 나왔으리라 짐작한다. 


저자가 결론에서 강조하는 것은, 지나고 나서 보면 2차 세계대전은 결국 연합국이 이길 수 밖에 없는 전쟁이었다고 보통 생각하지만, 전쟁이 언제 어떻게 종결되는지와 그 결과에 따른 세계정세는 매우 유동적이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노르망디 상륙작전만 해도 날씨에 엄청난 영향을 받았다. 만약 실제 일어났던 것처럼 하루만 연기된 것이 아니라, 다음에 상륙이 가능한 날짜인 2주 정도 연기되었다면 아마 실패의 가능성이 매우 컸으리라고 지적된다. 그렇다면 나치의 패망은 더욱 느려졌을 것이고, 심지어는 항복이 아니라 강화로 전쟁이 끝났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아마 현재는 PKD의 소설 <높은 성의 사내>에 나온 것과 같은 세상일 수도 있다. 아니면 적어도 소련이 점령한 유럽의 영토가 더 넓어져서 서유럽까지 공산화가 됐을 수도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지도자와 국민 여론의 중요성이다. 아무리 물량으로 우세해도 국민이 싸우고자 하는 의지가 없으면 소용이 없다(저자는 미국의 베트남 전쟁, 소련의 아프간 전쟁을 그 예로 든다). 종종 간과되는 이러한 사실도 전쟁과 역사를 사람이 일구어간다는 측면에서 보면 잊으면 안 되는 중요한 요소이다. 


역자는 기자 출신의 번역가인데, 번역 용어 선택에서 간혹 아쉬운 측면이 있다. 가령, 일본해군의 ‘항공모함 1사단, 2사단’의 표현이 있는데, 영어로 carrier ‘division’이라고 하더라도 이것을 ‘사단’으로 옮기지는 않는다. 일본 원어를 따라 ‘항공전대航空戰隊’라고 쓰던지, 아니면 요즘 표현으로 항모전단航母戰團’이라고 쓰는 것이 나을 것 같다. torpedo bomber는 ‘어뢰 폭격기’라기보다 ‘뇌격기’로 적는다. 독일군 탱크의 이름도 영어식으로 ‘타이거’, ‘팬더’로 적었는데, 통용되는 이름은 독일식으로 읽은 ‘티거’, ‘판터’이다. ‘마르크 IV’ 탱크도 보통 ‘4호 전차’라고 적는다. 종종 ‘통신’이 언급되는데(예를 들어 ‘통신선’, ‘통신 센터’) communications을 통상적 의미로 번역한 모양이지만, ‘병참’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맞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해도, 이 책은 매우 유용하고 좋은 책임에는 틀림없다. 제2차 세계대전의 중요한 전투 및 전쟁의 전개 양상을 빨리 파악하고자 할 때, 국내에 번역된 책 중 이것보다 좋은 책은 없는 것 같다. 3권의 <2차 세계대전사>로 번역된 책을 쓴 제러드 와인버그의 입문서 <World War II: A Very Short Introduction>도 괜찮은데 번역은 아직 안 되어 있다. 와인버그의 입문서는 전체 전쟁 양상을 다루는데 중점을 두므로, 개개 전투의 세세한 전개 양상은 거의 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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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3 2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04 1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7-05-03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서방 세계에서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나치의 패망을 이끌어냈다는 설이 정설로 받아
들였었죠.

하지만 노르망디 상륙전 이래 지지부진하던 전세
가 스탈린이 기획한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동부
전선을 압박하면서 서부전선에 있던 독일 병력이
더 급박한 동부전선으로 이동하면서, 서방 연합군
의 숨통이 틔운 것을 보면 제2전선의 영향력에 대
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이후 몽고메리가 기획한 마켓가든 작전이 처참하게
실패하면서 조기 라인강 도하작전은 물 건너가고
나치의 패망이 더 늦춰지게 된 점에 대해서는 저자
가 어떻게 생각했을 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blueyonder 2017-05-04 11:07   좋아요 0 | URL
이 책의 저자도 동부전선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은 아닙니다. 유럽전선에서 대부분의 전쟁은 1944년까지 동부전선에서 치러진 것이 맞습니다. 저자는 스탈린그라드 전투 후 독일군이 계속 수세에 몰렸다는 견해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독일군이 공세를 벌인 적도 있지만 대세에 영항을 미치지는 못했다는 것이지요. 프랑스에서의 패퇴 후 서유럽에 발을 붙이지 못하던 연합군이 1944년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통해 제2 전선을 열어 서부전선으로 독일 병력을 끌어들인 점이 이 전투가 중요한 전환점으로 선정된 이유겠지요. 만약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실패했다면 소련도 독일을 패퇴시키는데 더 큰 희생을 치러야했을 겁니다. 어쨌든 저자도 12 전환점에 무엇을 고르느냐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결국 의견의 영역이겠지요.

blueyonder 2017-05-04 11:11   좋아요 0 | URL
마켓가든 작전은 잠깐 언급됩니다. 지금은 독일의 패배가 당연시되지만 그게 그렇게 당연한 것만은 아니었다는 예가 되겠지요.

blueyonder 2018-07-06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인버그의 입문서 <World War II: A Very Short Introduction>이 <제2차세계대전>이라는 이름으로 18년 3월 교유서가에서 출간됐다.
 

Melanesian Choirs: The Blessed Islands의 찬송을 들을 때마다 "spiritual"이란 말이 생각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인간의 모든 염원이 모여있는 소리, 정말 하늘에 가서 닿을 것만 같다. 


전쟁은 그 염원이 극대화 되는 장소이다. 인간이 만든 비극의 현장에서 인간은 염원한다. "The Thin Red Line", 내게는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이다. 삶과 죽음을, 그리고 영원을 생각하게 한다. 


"Jisas Yu Holem Hand Blong Mi"의 영어 번역은 "Jesus, You Hold My Hand"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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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유명한 통사들이 몇 권 출간됐다. 예전에 출간된 책들에 더해, 그만큼 선택의 여지가 늘어났다. 최근 번역된 유명한 2권은 제러드 와인버그의 <2차 세계대전사 1, 2, 3 A World at Arms>와 앤터니 비버의 <제2차 세계대전The Second World War>이다.










































제러드 와인버그의 책은 상당히 딱딱하다. 지도도 별로 없고, 긴 문장도 많다(원문도 그렇다). 하지만 와인버그의 책은 전쟁의 배경, 최상층 지휘부의 생각, 세계 전쟁의 상호 연관성 등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다. 일면, 이 책은 '역사가의 역사책'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전문적인 느낌이 강하고 일반 독자에 대한 배려가 적다. 번역된 책은 1208 페이지의 원서를 3권으로 나누어 번역했다. 1권 432 페이지, 2권 456 페이지, 3권 384 페이지이다. 읽다 보면 직역이 많아 좀 아쉽다. 개인적으로, 예전에는 직역을 선호했는데 요즘에는 가독성 좋은 의역이 좋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원문이 길면 문장을 나누어 번역해도 좋다. 번역자인 홍희범 선생은 월간 플래툰의 편집자 겸 필자라고 하니, 군사사 분야에서 전문성이 문제될 일은 없겠다. 하지만 번역은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탈자도 가끔 눈에 띈다.  


이에 반해 앤터니 비버의 책은 잘 읽히고 친절하다. 지도도 필요한 만큼 있다. 비버의 강점인, 전쟁에 참여한 개인들의 이야기가 양념처럼 들어가 있어서 전쟁의 참상을 실감할 수 있다. 번역서는 863 페이지의 원서를 1288 페이지의 한 권으로 옮겼다. 


두 저자 사이에 의견 차이가 있는 부분은 제2차 세계대전이 과연 언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느냐이다. 와인버그는 3개 이상의 나라, 여러 대륙에서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고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그의 책도 독일의 폴란드 침공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기 전에도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중국의 전쟁이 진행되고 있었다(중일전쟁, 일본측 표현을 따르면 지나사변). 와인버그는 이 전쟁이 양국 간의 분쟁일 뿐이며 아시아에서만 일어났으니 세계전쟁이 시작되었다고 말하면 안된다고 주장한다. 반면 비버는 그의 책을 소련과 일본이 맞붙은 노몬한(할힌골) 전투부터 시작한다. 중일전쟁이 일어나는 과정도 기술한다. 1930년대부터 시작된 세계전쟁(분쟁)의 전모를 파악하기에는 비버의 책이 더 낫다는 것이 개인적 생각이다. 


예전에 출간된 다른 2권의 제2차 세계대전 통사도 있다. 존 키건의 <2차세계대전사The Second World War>와 제프리 주크스 등 여러 저자가 쓴 글을 모은 <제2차 세계대전The Second World War>이다. 



























키건의 책은 비교적 짧고 핵심을 잘 짚은 기술이지만, 태평양전쟁 부분의 기술이 매우 빈약하다. 최근에는 보급판도 나왔던데, 초판에서 지적되었던 여러 오탈자가 얼마나 수정되었는지 궁금하다. 주크스 등의 책은 비교적 친절하고 컬러 지도 등을 포함해 독자를 좀 더 배려한 느낌이 있다. '바다에서의 전쟁' 등 주제별로 기술한 장도 있다. 여러 저자가 쓴 글이니 아무래도 통일성은 좀 떨어져 보이지만, 비교적 간결하게 기술된 내용을 통해 전쟁의 상황을 파악하기에 수월한 측면도 있다. 


보통 영미권의 제2차 세계대전 통사가 지적 당하는 부분이 독소전과 태평양전쟁이 큰 관심을 못 받는다는 것인데, 와인버그나 비버의 책은 그래도 예전의 책보다는 훨씬 낫다. 그에 반해 키건의 책은 비난 받는 옛날 책에 가깝다. 


냉전이 끝나면서 소련의 많은 비밀문서들이 해제되었고 이에 따라 독소전의 전모를 더 자세히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연구의 결과로 나온 책이 데이비드 글랜츠의 <독소 전쟁사 1941~1945 When Titans Clashed>와 리처드 오버리의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Russia's War>이다.




























마지막으로, 어찌 보면 우리에게 더 중요한 일본이 벌인 전쟁에 관한 책이 있다. 권성욱 선생의 책 <중일전쟁>이 있는데, 정말 노작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앞으로 이런 책이 더욱 많이 출간되기를 희망한다. 관련하여 읽으면 좋은 일본 저자의 책 <쇼와 육군>도 같이 리스트한다.
















최근 존 톨랜드의 <The Rising Sun>이 <일본 제국 패망사>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2019.08.12). 이 책은 태평양 전쟁을 일본 내부의 사정을 자세히 살펴보며 기술하고 있어서 유용하다.
















일본역사학연구회에서 종전 후 얼마 지나지 않아(1953년) 펴냈던 <태평양전쟁사> 전 5권이, 1, 2권은 <태평양전쟁사 1>로, 3, 4권은 <태평양전쟁사 2>로 번역되어 나왔다(2020.01.09 추가). <태평양전쟁사 1>은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사 2>는 그 이후의 본격 태평양 전쟁을 다룬다. "패망의 잿더미에서 토해 낸 일본 지성의 참회록"이란 부제가 붙어 있는데, 전쟁에 관한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들의 관점과 반성을 엿볼 수 있다. 전쟁사이니 전황이 물론 나오는데, 그 외의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한 논의도 있다. 이 책의 단점은 사회주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한다는 점이다. 소련과 중국 공산당에 대한 일관된 찬사가 눈에 띈다.
















그 외에는 만화책으로 다뤄진 것도 있다. 주간지 <시사인>에 시사만화를 연재하는 굽시니스트의 (매우 마니아적인) <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 1, 2>, 그리고 중국에서 나온 것을 번역한 <그림으로 읽는 제2차 세계대전> 12권의 시리즈이다. 




















와인버그의 짧은 책 <제2차세계대전>이 출간됐다(212페이지). 정세와 전쟁의 흐름을 파악하기에 이만한 책이 없는 것 같다. 오른쪽은 원서이다(2018.04.14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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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쓸모
김경윤 지음 / 생각의길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강연을 엮은 책이라 잘 읽힌다. 주말에 진득히 앉아 읽으면 끝낼 수 있는 철학 입문서이다. 저자는 일산 자유청소년도서관 관장이며 청소년, 학부모,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동서양 철학자를 한 명씩 골라 그들의 삶과 시대를 살펴보고, 관통하는 주제를 톺아보며 오늘의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성찰하고 있다. 총 5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공자와 플라톤을 다루는 1강, 맹자와 루소를 살펴보는 2강은 정치론이라고 할 수 있겠다. 3강은 노자와 스피노자를 통해 펼치는 신론이다. 4강은 장자와 디오게네스의 삶에서 배우는 자유론, 한비자와 마키아벨리를 다루는 5강은 군주론, 법치주의에 대한 강의이다. 


새로운 정보도 있었고 나름 재미있었다. 예를 들면, 저자는 공자를 평민이면서 귀족이 되고자 갈망한 사람으로 기술한다. 또한 화이부동(君子 和而不同)을 (계급적) '조화를 추구하고 평등을 거부한다'고 해석한다. 노자와 스피노자를 다루는 3강은 기대와 달리 조금 실망스러웠다. 노자와 스피노자가 이렇게 간단했던가?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장자와 디오게네스를 다루는 4강이었다. 몇몇 구절을 다음에 기록한다.

인문학의 최종 목표는 인문학을 버리는 겁니다. 지식을 버리는 것이지요. 아는 것을 자기 삶으로 증명해내는 겁니다. 딱 그만큼이 인문학입니다. (187~188 페이지)
디오게네스가 원래부터 가난했던 것은 아닙니다. 어느 날 디오게네스의 노예가 도망을 쳤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노예가 도망쳤는데 왜 안 잡느냐고 물었죠. 디오게네스가 가만히 생각하다가 "노예는 나 없이도 잘 사는데, 내가 노예 없이 못 산다면 누가 노예냐?"라고 되물었답니다... 그래서 노예를 잡으려고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 '위대함'은 아무나 못하는 것을 하는 게 아니라, 아무도 안 하는 것을 하는 능력입니다. (201, 202 페이지)

장자의 아내가 죽자, 혜시가 조문을 갔다. 장자는 마침 두 다리를 키처럼 벌리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질그릇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것[삶과 죽음]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운행하는 것과 같지. 저 사람이 우주라는 큰 집에 누워 편안히 자고 있는데, 내가 크게 소리 내어 곡을 한다면, 그것은 명()을 모르는 것일세. 그래서 곡을 멈춘 것이라네." (203 페이지)

디오게네스는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은 물욕에 집착이 심하면 허약해진다. 그리고 스스로 결박을 한다. 언제든지 죽음을 생각해보는 사람만이 참된 자유인이다. 이미 죽음을 예감해본 사람은 어떤 욕망도 그를 노예로 할 수 없고 그 아무 것도 그를 결박하지 못하니까."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을 아시나요? 죽음을 기억하라!....[이] 정신을 다르게 표현하면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 되겠네요. 오늘을 살아라! ...

... 죽음을 기억하라는 것은 그것 때문에 우울하게 살라는 말이 아니라 언젠가 죽는데 그 죽음이 언제 닥칠지 모르니까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자기답게 살라는 말이지요. (204~205 페이지)


저자는 '들어가며'에서 철학의 쓸모를 '물음이고 의문'이라고 말한다.  

... 철학은 해결책이 아닙니다. 물음이 끝나는 곳에서 철학의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물음이 시작되는 곳에서 철학은 발원합니다. 그리하여 철학은 물음입니다. 좋은 답을 얻는 것이 철학이 아니라, 잘 묻는 것이 철학입니다.


그러면 철학의 쓸모는 무엇일까요? 너무나 당연히도 철학의 쓸모는 물음이고 의문입니다. 철학은 상식의 확인이 아닙니다. 다수가 동의하는 것을 따르는 합의도 아닙니다. 차라리 철학은 상식에 대한 반격이고, 다수결에 대한 의문이며, 진리에 대한 회의입니다. 이 물음의 대상에서 권력도, 재력도, 심지어 진리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모든 것에 질문할 수 있는 것이 철학입니다. (6 페이지)


책을 다 읽고 나니, 장자를 더 읽고 싶어졌다. 나는 아직도 자유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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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모르텔 2019-01-22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의 쓸모... 잘 읽고 갑니다.

blueyonder 2019-01-29 12:37   좋아요 0 | URL
방문과 댓글 감사합니다~^^
 















영화 '컨택트'의 원작인 '네 인생의 이야기'를 읽었다. 원작 소설은 영화보다 훨씬 더 철학적이고 일어나는 사건은 영화와 달리 별로 없다. 묘사되는 외계인과의 조우 장면들도 좀 다르다. 소설을 각색하여 각본으로 만든 사람과 화면으로 창조한 감독이 대단하다는 생각... 소설과 영화는 참 다른 장르이구나 하는 생각도 다시 한 번 든다. 그래도 전달하는 메시지는 비슷하다. 


일생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기도 하다. 나이를 먹고 쌓인 추억이 많다 보니 예전 일들이 종종 떠오르는데, 특히 소설에서 딸에 대해 얘기할 때 부모로서 깊은 공감... 영화 볼 때 공감했던 것도 마찬가지 이유겠지. 


시간이란 무엇일까. 미래에도 결코 이해가 안되는 문제일 거다. 만약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도 헵타포드의 세계관을 갖게 될 수도... 소설에서 페르마의 원리가 중요한 모티브로 설명되는데, '가능한 최선의 세계'를 비슷한 시기에 읽은 것은 무슨 우연일까...


I remember a converation we'll have when you're in your junior year of high school. It'll be Sunday morning, and I'll be scrambling some eggs while you set the table for brunch. You'll laugh as you tell me about the party you went to last night.

   "Oh man," you'll say, "they're not kidding when they say that body weight makes a difference. I didn't drink any more than the guys did, but I got so much drunker."

   I'll try to maintain a neutral, pleasant expression. I'll really try. Then you'll say, "Oh, come on, Mom."

   "What?"

   "You know you did the exact same thing when you were my age."

   I did nothing of the sort, but I know that if I were to admit that, you'd lose respect for me completely. "You know never to drive, or get into a car if--"

   "God, of course I know that. Do you think I'm an idiot?"

   "No, of course not."

   What I'll think is that you are clearly, maddeningly not me. It will remind me, again, that you won't be a clone of me; you can be wonderful, a daily delight, but you won't be someone I could have created by myself. (pp. 107-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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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17-08-03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가 고2 때 우리가 나눌 대화를 나는 기억한단다. 그때는 일요일일 거고, 브런치를 위해 네가 테이블을 차리는 동안 나는 스크램블 에그를 하고 있을 거야. 넌 지난 밤에 갔던 파티에 대해 내게 얘기하며 웃겠지.
너는 얘기할 거야. ˝몸무게가 차이를 만든다는 말이 정말 농담이 아니라니까. 다른 사람처럼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내가 더 취한 거 있지.˝
나는 중립적이고 유쾌한 표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할 거야. 난 정말 그럴 거야. 그러면 너는 얘기하겠지. ˝엄마, 제발 좀.˝
˝뭐?˝
˝엄마도 내 나이 때 똑같이 했잖아요.˝
난 그런 일은 하지 않았어. 하지만 내가 그걸 인정하면 네 존경심을 잃을 거라는 걸 난 알아. ˝너 운전하면 안 된다는 거 알지, 차에 타도 안돼, 만약...˝
˝헐, 물론 알아요. 내가 바보인줄 알아요?˝
˝물론 아니지.˝
난 네가 분명히, 화가 날 정도로, 내가 아니라고 생각할 거야. 그건 네가 나의 클론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겠지. 넌 경이로우며 나날의 기쁨일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넌 나 혼자 창조할 수 있는 누구는 아닐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