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책이 있어 기록해 놓는다. 벤 길리랜드Ben Gilliland가 쓴 '우주탄생의 비밀How to Build a Universe'이라는 책이다. 길리랜드는 영국의 그래픽 에디터라는데, 풍부한 그래픽으로 우주의 탄생과 진화, 그리고 종말을 흥미롭게 풀어냈다. 중고등학생들이 읽으면 딱 좋은 책인데, 우주와 우주론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이 봐도 좋을 것 같다. 그림(또는 사진)이 많은 책을 영미권에서는 '커피 테이블 책'이라고 얘기하는데, 커피 테이블 위에 놓고 심심풀이로 보기에 좋은 책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 책은 그 정도로 그림이 많지는 않지만 거의 버금간다고 얘기할 수 있겠다. 대개 어려운 주제의 책은 마음먹고 처음부터 읽다가 어렵다는 생각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그냥 흥미가 있어 보이는 부분부터 읽는 것이 이러한 난관을 피해나가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 책은 눈길을 잡아 끄는 부분부터 읽으면서 차차 앞으로 뒤로--마치 커피 테이블 책처럼-- 읽어도 괜찮을 것 같다. 우주론과 물리학에 관심이 있지만 부담으로 인해 시작하지 못한 이라면 이 책으로 시작해도 좋을 것 같다.


인류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에 잠겼을 때만 해도 세상은 인류에게 적대적이었다. 작은 유목 집단을 꾸려 수렵과 채집을 하면서 살아가던 초기 인류는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없었다. 따라서 자신의 운명이 신의 뜻에 달려 있다고 상상함으로써 통제력을 구하려고 했다. 고되고 덧없이 어둡기만 한 삶을 헤쳐 나가는 데는 기적이 일어나리라는 희망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과학이란 것이 생겨나 증거를 수집하고 개념을 시험하는 과정을 통해 우주를 지배하는 자연의 법칙과 메커니즘을 밝혀냈다. 제 아무리 기적 같은 일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미신 같은 기적들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과학은 결국 모든 기적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기적을 밝혀냈다. 바로 ‘당신‘이다. - 7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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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노벨 과학상 발표 시즌이다. 거의 테크닉에 가까운, 하지만 응용성이 큰 레이저 기술에 수여한 물리학상도 눈길을 끌지만,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또 한 명의 일본인 노벨상 수상자 기사가 곱씹을 만하다. 제임스 엘리슨 미국 텍사스 주립대 교수와 함께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게 된 혼조 다스쿠 교토대 특별교수는 기자회견에서 어린 학생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고 한다.


“연구자가 된다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알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이상하구나 생각하는 마음을 소중히 하는 것입니다. 교과서에 써 있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항상 의심을 가지고, 진실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마음을 소중히 합니다. 즉 자신의 눈으로 물건을 봅니다. 그리고 납득합니다.” (https://news.v.daum.net/v/20181002113347893)


이런 인터뷰를 보면 우리와 일본 사이에는 학문적으로 여전히 상당한 격차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이 우리보다 근대과학을 훨씬 먼저 시작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문화적으로도 우리가 아직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일본은 전문가--장인--을 우대하는 사회이다. 그것이 도자기 장인이든, 국수 장인이든, 과학자이든, 본인은 장인의 의미를 자각하고 그 길을 이어가고자 한다. 일반인들은 그들을 존중한다. 부끄럽게도, 우리 마음 속에는 모든 것이 잘먹고 잘사는 길로만 이어져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교과서에 써 있는 것을 믿지 않는다”는 말은 교과서를 써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교과서에 쓰일 만한 연구를 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아직도 대부분의 분야에서 다른 사람이 쓴 교과서를 배우기만 하는 우리로서는 가야 할 길이 한참 남았음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우리 입시는 어째야 할까. 일본도 입시는 우리와 마찬가지라는데... 언젠가 우리에게도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그 노벨상은, 노벨상 받으라고 밀어준 스타 과학자보다는,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호기심을 붙잡고 이름 모를 연구를 한 사람이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노벨상은 목표가 아니라 성취의 부산물이다. 노벨상 못 받으면 또 어떤가. 우리의 과학 저변이 확대되면 노벨상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 그 때까지 우리는 각자 할 일을 하자. 묵묵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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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10-04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이 없으니까 언론이 과학 분야의 노벨상 후보에 관심이 생긴 것 같아요. 노벨상 시즌이 되니까 노벨상 수상이 가능한 과학자들을 예측하고, 호들갑 떨며 소개하는 언론의 태도가 꼴사나워요.. ^^;;

blueyonder 2018-10-04 19:48   좋아요 0 | URL
요새 올림픽 금메달에 대한 흥분도 예전 같지 않은 것처럼 노벨상에 대해서도 일희일비 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압축성장을 하면서 결과에만 치중하는 습성이 생겼는데, 이제 사회전체적으로 질적인 변화가 생길(생겨야 할) 시점인 것 같습니다. 비하하지도 말고 자만하지도 말고 냉정해지면 좋겠습니다.
 
Artemis: Weir Andy (Paperback) - 『아르테미스』원서
앤디 위어 / Ballantine Books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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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션The Martian>의 작가 앤디 위어Andy Weir가 그의 두 번째 소설을 냈다. 화성에 남겨진 식물학자가 어떻게 기지와 용기를 발휘하여 살아남는지를 그려 화제가 됐던 그의 첫 번째 소설에 비해, 이 두 번째 소설의 주인공은 '아르테미스'라는 달의 도시에 사는 사우디 국적의 젊은 여성이다. 입은 거칠고, 반항적이며, 똑똑하지만 그 재능을 살리지 못했다는 얘기를 듣는 매력적인 배달원--실제로는 밀수업자--가 화자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마션>에서 화성에 대해 배웠다면 <아르테미스>에서는 달에 대해 배울 기회가 있다. 아마도 제일 먼저 지구 밖 우주기지가 생길 달에 대해, 그 달에서 사는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어떤 생각으로, 어떤 경제를 이루며 살지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준다. 여기에 활극이 더해진다. <마션>은 책을 읽고 영화를 봤을 때 조금 실망했었는데, 이 책은 영화화가 더 기대된다. 누가 우리의 주인공 역을 맡을지 매우 궁금하다.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SF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 책을 읽지 않음으로써 잃는 건 별로 없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냥 나중에 영화를 보시라. 킬링타임용으로... 재미는 보장한다(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았는데? ㅎㅎ). 


'ZAFO'가 이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핵심 단어이다(궁금하면 책을 보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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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6 1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이젠베르크의 양자역학, 불확정성의 과학을 열다 작은길 교양만화 메콤새콤 시리즈 4
이옥수 지음, 정윤채 그림 / 작은길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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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젠베르크를 주인공으로 한 양자역학에 관한 교양 만화이다. 우리나라 저자--현직 물리 선생님--이 쓴 글에 우리나라 만화가가 그렸다. 하이젠베르크를 화자로 하여 그가 회상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버트란드 러셀을 주인공으로 하는 <로지코믹스Logicomix>를 생각나게 하기도 한다.) 


중간 중간 '메타-인포'라는 이름으로 글로만 된 설명이 들어가서 만화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있으며, 나름 깊은 내용을 담고 있다. 하이젠베르크가 양자역학(행렬역학)을 만들 때의 과학적 상황과 배경을 만화의 장점을 활용하여 생동감 있게 잘 보여주고 있다(상당 부분, <부분과 전체>의 내용으로 읽힌다). 하이젠베르크의 회상록 <부분과 전체>가 너무 어려운 사람은 이 만화를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책은 하이젠베르크가 핵 연구를 한 2차 세계대전 시기를 거쳐 전후 독일 과학의 재건을 위한 그의 노력까지 보여준다. 


책에 오타가 조금 있는 것이 아쉽다. 특히 플랑크 상수 h를 2pi로 나눈 h-bar와 h를 제대로 구별 못하고 있다. 교정 노력의 부족이라고 생각한다. 


하이젠베르크 찬양 위주라는 것도 아쉬운 점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다. 2차 세계대전 시기 하이젠베르크가 독일 핵무기 개발을 주도한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여러 증언으로 볼 때, 단순한 수동적 가담자 수준을 넘어선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 싶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퀀텀스토리>나 <E=mc^2>에 언급되어 있다. 


위에서 지적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양자역학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선택의 범위를 넓혀주고 새로운 재미를 안겨 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여러 장점을 지니고 있다. 이런 책이 출판된다는 것이 매우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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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많이 언급되는 통계학 지식 중 이것만큼 유용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책을 읽고 이해한 것을 다음에 정리한다.


간단히 말하면, 베이즈 정리는 어떤 사실을 알았을 때 그 사실에 연관된 다른 사실이 일어날 확률을 계산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 가장 좋겠다. 보통 많이 나오는 예는 이렇다. 


내가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검진 결과 어떤 병의 양성 판정을 받았다. 만약 검진이 아무 오류 없이 100% 정확하다면 내가 그 병에 걸려 있을 확률은 100%이다. 하지만 모든 검진은 완벽하지 않고 오류가 있다. 이 검진이 건강한 사람도 병에 걸려 있다고 판정할 확률을 5%라고 하자(즉, 건강한 사람 100명 중 5명이 양성 판정을 받는다). 반면, 실제 병에 걸려 있는데 검진이 양성으로 판정할 확률은 간단히 100%라고 하자(이 확률도 실제로는 100%보다 작을 수 있다). 지금 양성으로 판정 받은 내가 실제 병에 걸려 있을 확률은 얼마일까?


이 확률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중요한 정보가 더 필요하다. 실제 이 병이 발병할 확률이다. 이 병이 발병할 확률을 1%라고 하자. 100명 중 1명 정도로 이 병이 발병한다는 뜻이다. 왜 이 확률이 필요하냐 하면, 100명 중 99명은 건강하지만, 이 중 5%가 양성으로 판정되기 때문이다. 이 숫자는 꽤 크다. 대상 인구를 그냥 100명으로 잡으면, 99명x0.05 = 4.95명이다. 반면 100명 중 1명은 실제로 발병한 사람이고, 이 사람은 검진시 양성으로 판정된다. 그럼 내가 실제 발병한 사람에 들어갈 확률은 1/(1 + 4.95) = 0.168, 즉 16.8%이다. 아주 높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할 확률도 아니다. 


베이즈 정리는 위의 계산을 다음처럼 규칙화 해 놓았다. 


P(발병|양성) = P(양성|발병)xP(발병)/P(양성) 


의미는 이렇다. 좌변의 P(발병|양성)은 ‘조건부 확률conditional probability’로서 검사에서 양성으로 나왔는데 실제로도 발병한 확률이다. 이게 우리가 알고 싶은 확률이다. 이 확률을 조건부 확률이라고 얘기하는 이유는 ‘양성’을 ‘조건’으로 해서 실제 ‘발병’한 확률을 따지기 때문이다. 주의할 점은 조건을 세로줄 다음에 적는다는 것이다. 이게 영어식 표현이라 영어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영어식으로 말하면 P(발병|양성)은 ‘Probability of 발병 for the given condition of 양성’이다. 양성의 조건일 때 실제로 발병한 확률이다. 


그 다음 우변의 P(양성|발병)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정보이다. 앞과 마찬가지로 해석하면, 발병했는데 양성 판정을 받을 확률이다. 위의 예에서 이 확률은 1이다(100%).


P(발병)은 발병할 확률이다. 이 확률은 0.01이다(1%). 


마지막으로 P(양성)의 확률이 필요하다. P(양성)은 양성이 나올 확률이다. 양성이 나올 확률은 두가지 경우가 있다. 실제 발병해서 양성이 나올 확률이 있지만 건강해도 양성이 나올 확률이 있다. 식으로 적으면 이렇게 된다. 


P(양성) = P(양성|발병)xP(발병) + P(양성|건강)xP(건강)


P(양성|발병)xP(발병)은 실제 발병해서 양성이 나올 확률이다. 발병할 확률[P(발병)]에 발병한 사람이 양성으로 판정 받을 확률[P(양성|발병)]을 곱했다. 각 사건event[1]이 독립적일 경우 위와 같이 각 확률을 곱한다(책에서는 이것을 ‘직적시행’이라고 했다). 


한편, P(양성|건강)xP(건강)는 건강하지만 양성 판정을 받을 확률이다. 전체 P(양성)은 각 사건이 나올 확률을 더한 것이다. [두 사건이 중첩되는 부분(교집합)이 없을 경우, 각 확률을 그냥 더하는 것을 ‘확률의 가법법칙加法法則’이라고 한다.] 


위와 같은 베이즈 정리를 이용해서 문제를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P(발병|양성) = (1)(0.01)/[(1)(0.01) + (0.05)(0.99)] = (0.01)/(0.01 + 0.0495)

               = (0.01)/(0.0595) = 0.168


위에서 얻은 답과 정확히 일치한다. 


베이즈 정리를 좀 더 일반적인 기호로 적으면 다음과 같다:


P(A|B) = P(B|A)P(A)/P(B).


말로 표현하면, B일 때 A일 확률[P(A|B)]은, A이면서 B일 확률[P(B|A)P(A)]을 B일 확률[P(B)]로 나눈 것(B일 확률로 정규화normalization[2]한 것)이다. 때때로 P(A)를 prior(사전 확률), P(A|B)를 posterior(사후 확률)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건 B의 관찰로 인해 P(A)가 P(A|B)로 바뀌기 때문이다. 사전 확률 P(A)를 사후 확률 P(A|B)로 바꾸어 주는 것은 P(B|A)/P(B)이다. 앞의 예를 이용하면, 검사 전에 발병 확률(사전 확률)은 1%[P(발병)]였지만,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후에 발병 확률(사후 확률)은 16.8%[P(발병|양성)]로 증가했다고 말할 수 있다. 발병 확률이 양성 판정으로 인해 약 17배 증가했다. 


베이즈 정리는 현대에 여러 분야에서 정말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베이즈 통계의 역사와 활용에 대해서는 다음의 책을 참조해도 좋겠다.
















[1] 이 책에서는 사건(event)을 ‘사상事象’이라고 했다. 사상은 예전에 쓰던 말이라고 한다. 통계전공자가 책을 감수해서 요새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와 함께 영어 표현도 적어주면 120%일 뻔했다. '직적시행', '가법법칙', 너무 어렵고 안 와 닿는다.

[2] 가능한 확률을 모두 더했을 때 1이 되도록 만드는 과정이 확률에서의 정규화이다. P(B)로 나누어 정규화한 것은 B가 발생했다는 상황을 전제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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