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성공'에 대해:

Our desire's most cherished object has value only if it remains inaccessible and especially unknown: it is the movement that we prize more than the objective; it is remaining mobile that makes us alive. Some people strive to avoid complete success in their domain in order to leave themselves a future and not bar its way. (p.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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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인 에릭 와이너의 철학입문서이다. 느린 여행의 상징인 기차를 타고 가서 철학자들의 흔적을 찾으며(그래서 제목이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이다), 그 자신의 상념, 그가 이해한 철학자의 논설과 철학자의 삶에 대해 얘기하는 방식이다. 머리말을 보며, 그의 글솜씨와 재기발랄함, 주제의식이 매우 마음에 들어 읽기 시작했는데, 쇼펜하우어까지 읽은 지금, 처음의 인상이 조금 바랜 느낌이다.


별 결론을 짓지 못하고 넘어가는 헨리 소로의 장에서 조금 실망했다면, 쇼펜하우어의 장을 시작하며 언급하는 도플러 효과에 대한 언설에서 평가가 한 단계 내려갔다. 그는 도플러 효과가 '청각적 착각auditory illusion'이라고 이야기한다. 도플러 효과가 인간의 귀가 일으키는 착각이라고? 기계로 측정해도 다가오는 차로부터 나오는 소리(예: 사이렌 소리)의 진동수가 커지는데?


  The whistle hasn't really changed pitch. It is an auditory illusion known as the Doppler effect. The motion of the train has conspired with my susceptible brain to make it sound as if the whistle's pitch had changed. I had misperceived reality. (p. 77)


위의 언설은 그의 자연과학에 대한 단견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가 풀어내는 철학자의 철학도 어정쩡하다. 소로나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대해 얘기하긴 하지만 비교적 짧으며 깊은 생각을 풀어내는 것은 아니다. (물론 나같은 철학 초심자보다는 깊다.) 그가 각 철학자의 철학에 전적으로 동의하는지도 의문이다. 


... While I see more clearly here, in my own private Walden, I do not have a visual epiphany, the "single expansion" Thoreau achieved. I am disappointed, but take solace in the words of--who else?--Henry Thoreau. Seeing requires not only time but distance, he tells me. "You cannot see anything until you are clear of it." (p. 75, "How to See like Thoreau"의 마지막 부분)


  I share Schopenhauer's melancholy but not his pessimism. There's a fundamental problem with his glumness: it presupposes perfect knowledge, something we humans are incapable of possessing. We may suspect we are living in the "worst of all possible worlds," but do we know for sure? Pessimism requires a certainty I lack, and for that I am grateful. (p. 91)


솔직히 이쯤 되면 그가 왜 쇼펜하우어를 선택했는지 모르겠다. 그의 음악에 대한 사랑 때문에? 쇼펜하우어가 좋아했던 로시니의 음악을 들으며, 스카치 위스키 마시며 목욕하는 것으로 장이 끝나는데, 여기서 "How to Listen like Schopenhauer"의 교훈을 얻는 것인지.


재기발랄함과 글재주 외에 인생에 대한 '지혜'를 기대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읽기를 당분간 멈추기로 했다. 너무 기대가 컸던 듯. 나중에 다시 이 책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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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2-06-02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고 있는데 블루얀더님은 영문으로 읽으시는 군요!! 저도 처음처럼 재밌지는(?) 않고 좀 실망도 하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아서 계속 읽고 있어요. 저는 지금 간디편을 읽었어요. 사실 시몬 베유편도 전 좀 실망했어요. 그건 그런데 쇼펜하우어를 고른 이유는 처음 그가 밝힌대로 구글링 해서 고른거라 그런 거라고 저는 생각했어요. ㅎㅎㅎ

blueyonder 2022-06-02 16:33   좋아요 0 | URL
기대가 커서 실망하는 것이지 여전히 좋은 입문서라고 생각합니다. ^^ 하지만 딱 거기까지인 것 같아요. 깊이와 재미 모두 갖춘 책은 정말 찾기 어렵다는 생각을 합니다.
즐거운 독서 하시기 바래요~~
 















매우 잘 쓴 글임을 알겠다. 왜 인기가 있는지도... 쉽지만 좋다. 우리는 지식이 아니라 지혜를 원한다. 지식은 '아는 것'이고, 지혜는 '이해하는 것'이다. "Knowledge knows. Wisdom sees." 간명하지만 멋진 말이다.


지혜는 우리가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 하지만 숙련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희망을 주는 말이다. 하지만 노력 없이는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니 거저 얻으려고 하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 We don’t want what we think we want. We think we want information and knowledge. We do not. We want wisdom... Information is a jumble of facts, knowledge a more organized jumble. Wisdom untangles facts, makes sense of them, and, crucially, suggests how best to use them... Knowledge knows. Wisdom sees. 

  The difference between knowledge and wisdom is one of kind, not degree. Greater knowledge does not necessarily translate into greater wisdom, and in fact can make us less wise. We can know too much, and we can mis-know. 

  Knowledge is something you possess. Wisdom is something you do. It is a skill and, like all others, one you can learn. But it requires effort. Expecting to acquire wisdom by luck is like expecting to learn to play the violin by luck. (p. xiii)

  Most schools today don’t teach philosophy. They teach about philosophies. They don’t teach students how to philosophize. Philosophy is different from other subjects. It is not a body of knowledge but a way of thinking—a way of being in the world. Not a “what” or a “why” but a “how.” (p. xvi)

  “Sooner or later, life makes philosophers of us all,” said the French thinker Maurice Riseling. (p. xv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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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음의 특권은 아직 정형화되지 않음이며,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다. 반면 인디언 서머의 특권은 정해진 결론을 속이는 것이다. 즉, 우아함과 몰락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이다. 오십이 되면 태평함의 시기는 끝이 난다. 모든 이는 되어야 할 무엇이 이미 되었으며, 앞으로 현재의 자신을 지속하던가 아니면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 내고 싶어한다. 성숙함은 한 사람 속에 상이한 우주를 쌓아 놓으며, 이 우주는 인디언 서머를 지나며 입자가속기가 섞어 놓듯 다시 섞일 것이다


  If the privilege of youth is to remain undefined, it does not know what is going to happen, whereas that of Indian summer is to cheat with the conclusion. It is the age of wavering between grace and collapse. After fifty, insouciance is over, everyone has become more or less what he was supposed to become and now feels free to continue as he is or reinvent himself. Maturity aggregates in a single person dissimilar universes that post-maturity will mix up again, like a particle accelerator. (p. 14)


  또다른 클리셰는 이렇다: 노년은 세속적 즐거움을 향한 지나친 욕구로부터 차례차례 자유로워지는 시간이다. 명상과 공부에 시간을 바쳐 권위 있는 격언으로 '신탁'을 전달하고, '장엄한 떠남'을 위해 자신을 준비하기 좋은 시간이다. 아마 요즘은 어느 누구도 이러한 이별을 매력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행복한 노년의 비밀은 정확히 반대의 일을 하는 데 있다. 황혼까지 우리의 열정과 능력을 가꾸고 어떠한 즐거움도 포기하지 않는 것, 호기심을 유지하고 불가능한 도전을 계속하는 것, 마지막까지 사랑하고 일하고 여행하고 세상과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아직 망가지지 않은 능력을 시험하는 것이다.


  Another cliche is superimposed...: great age is supposed to be the time to free oneself, stage by stage, from an excessive appetite for earthly pleasures, to devote oneself to meditation, to study, to delivering oracles in the form of definitive maxims, the better to prepare oneself for the Big Departure. It is not certain that any of our contemporaries find such a farewell attractive. In fact, the secret of happy old age resides in doing precisely the opposite: cultivating until late in life all our passions, all our abilities, not giving up any pleasure, any curiosity, setting impossible challenges for ourselves, continuing, right to the end, to love, work, travel, and remain open to the world and to other people. In a word, testing our unimpaired powers. (p.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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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만 읽었는데, 너무 마음에 든다. 이 책은 50대 이상만 읽어야 하는 책이다. 50이 아직 되지 않은 분들은 제발 참아주시기를! 


현대는 젊음을 숭상하는 시대이다. 그는 과거가 지금과는 어떻게 달랐는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19세기 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는 사회에서 성공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나이 들어 보이려고 애썼다는 것이다. 젊음은 미성숙으로 여겨졌고, 나이듦은 원숙함과 진중함으로 여겨졌다. 나이든 이들이 젊어보이고자 기를 쓰는 지금과는 얼마나 다른 세태인가. 


불과 100년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왜 젊은이들은 노년을 혐오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는가. 전쟁이 하나의 큰 역할을 했음을 저자는 말해준다. 1차 세계대전에서는 한 세대의 젊은이들이 도살장에 끌려나가듯 사라져버렸다. 월남전은 또 어떤가. 전쟁 결정은 늙은이들이 하지만 전선에서 이 늙은이들을 대신해 죽는 것은 젊은이들이다. 결국 세상을 엉망으로 만든 것에 노년들이 책임이 있었다는 것인데, 이 책임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듯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도 언젠가는 늙는다. 젊음만을 예찬하는 이들은 미래의 자신들을 저주하는 것이다. 의학의 발달로 예전보다 훨씬 길어진 노년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책은 시의적절하게, 이제 인생의 '인디언 서머'를 맞이한 이들에게 숙고할 거리를 던져준다[*]. 


우리말 번역본의 제목은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인데 영문판 제목은 <A Brief Eternity>이다. 우리말 제목의 의역은, 사실 조금 가벼워 보인다. 너무 자기계발서 같아 보이는 것이다. 반면, 'brief eternity'는 그 대조가 너무 좋지 않은가? '순간을 영원처럼', 뭐 이러면서, 나이듦이 진중함이라고 나 역시 우기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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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언 서머'란 여름 이후의 더위이다. 저자는 젊음이 지난 후 중년의 활기찬 삶을 '인디언 서머'라고 지칭하고 있다. 우리말 번역본은 챕터를 묶지 않았지만 영문판은 챕터를 묶어 part로 구별 짓고 있는데, 그 1부의 제목이 "The Indian Summer of Lif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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