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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입자를 찾아서 -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을 넘어
이종필 지음 / 마티 / 2015년 4월
평점 :
품절
'개정판 서문'을 보면 이런 얘기가 있다.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아 옮긴다.
이 책을 낸 이후로 나는 다른 책들도 냈고 여기저기 투고도 했으며 대중강연도 많이 다녔다. 그때마다 내가 항상 듣던 요구사항은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주세요."였다. 2013년 10월, 그해 노벨상 수상자로 피터 힉스와 프랑수아 엥글레르가 유력했을 때는 한 방송사에서 (이들이 수상한다는 가정하에) "이번 수상의 의미를 한 문장으로 요약해주세요."라고 주문했었다. 2014년 봄 남극의 전파망원경이 태초의 중력파를 검출했다는 발표가 나왔을 때는 "유치원생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달라는 방송사도 있었다[*].
처음에는 나도 이런 요구에 순순히 응했고 내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머지않아 여기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초등학생'을 요구하는 분들에게는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이유를 초등학생이 과연 이해할 수 있는가 하고 되묻기 시작했다. '한 문장'을 요구하는 분들에게는 조선왕조실록을 A4 용지 한 장으로 요약할 수 있느냐고 항변했다. 이 세상에는 초등학생이 이해할 수는 없어도, 또는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는 없어도 지성인으로서 꼭 알아야 할 가치 있는 것들이 무수히 많다. 나는 현대 물리학의 많은 내용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이런 고민에 한 줄기 빛을 던져 준 사람이 있었으니,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레너드 서스킨드였다. 서스킨드는 『블랙홀 전쟁』에서 현대 물리학이 구축될 당시 세기의 천재들조차 생각의 회로를 다시 배선했어야 할 정도로 큰 낭패감을 맛보았다고 썼다. 『블랙홀 전쟁』을 번역하면서 나는 '재배선rewire'이라는 단어를 잊을 수가 없었다. 인류 진화의 역사는 짧게 잡아도 10만 년이 넘고 길게 잡으면 300만 년을 오르내린다. 그렇게 기나긴 세월에 걸쳐 형성된 사고의 방식이 자연의 근본 질서를 이해하는 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겨우 100여 년 전이다. 나는 이것이 현대 물리학의 가장 큰 가치라고 생각한다. 자연의 이치를 이해하려면 그 오랜 진화의 압력을 거슬러 억지로 생각의 회로를 바꿔야 한다. 천하의 아인슈타인조차 실패했던 일이다.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현대 물리학은 쉽지 않다. 초등학생은 이해할 수 없다. 한 두 문장으로도 도저히 요약할 수 없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현대 물리학은 엄청난 지적 고통을 감내하고서라도 배울 가치가 있다. (8~9 페이지)
현대 물리학까지는 아니어도 과학을 알면 세상을 훨씬 깊게 바라볼 수 있다. 현대 물리학까지 알면야... 학교에서 기초적 과학을 배움에도 불구하고 왜 과학을 이렇게 어려워하게 되었는지, 왜 문과 출신은 졸업하고 나면 과학적 지식은 모두 잊어버리는 백지 상태가 되는지, 반드시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기자들의 무지와 뻔뻔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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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중에 데이터를 잘못 해석한 것으로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