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다 브렌트 이야기 - 어느 흑인 노예 소녀의 자서전 뿌리와이파리 알알이 2
해리엇 제이콥스 지음, 이재희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내 인생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열다섯 살 흑인 소녀가 세상을 향해 맞서면서 하는 말이다.

 

이 책의 주인공 린다 브렌트는 노예였다. 태어나서부터 당연한 노예였다. 그녀가 남북전쟁이 발발하기 직전까지 겪었던 참담하고, 구역질 나는 노예생활을 자서전 형식으로 발표해 세상에 노예의 실상을 밝혀낸 이야기이다.

린다는 세 살 때 재산의 하나로 양도되었다. 린다는 자신의 주인 아가씨의 아버지 플린트에게 끝없는 괴롭힘을 당한다. 19세기 당시 노예는 하나의 전리품이었고, 재산가치였고, 노리개였다.

19세기 노예제와 참담한 노예 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거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노예 여성들이 겪었던 성적인 억압까지 대부분 알고 있는 이야기이지만, <린다 브렌트 이야기>는 그 억압을 직접 겪어내고 오랜 세월을 견디고 드디어 자유인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있는 그대로 적어내려 간 자서전이라는 점에서 주목받는 책이었다.

 

저자 해리엇 제이콥스는 자신의 이야기를 '린다 브렌트'라는 가명으로 출간한다. 그녀는 자신을 끊임없이 짓밟으려는 악덕한 주인에게 성적 괴롭힘을 당하지만, 그의 협박 때문에 누구에게도(이웃에 살면서 자신의 기둥이 되어주는 할머니에게조차) 말하지 못하는 세월을 괴롭게 보낸다. 그녀는 비록 노예의 신분이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있었고, 어려움을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현명함이 있었다. 악덕한 폭군에게 자신을 짓밟히게 놔두 차라리 자신이 사랑하는 백인 남자에게 자신을 내어준다. 당시 순결을 종교만큼이나 중요시하던 때였음을 생각할 때 린다의 선택은 용감하고 세상을 향해 도전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또한, 자신을 갖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악독한 플린트에게 복수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그녀는 두 명의 자녀를 낳았다. 하지만, 플린트의 집착은 병적으로 심했다. 결코, 그녀를 놔주지 않았다. 자신의 아이들과 할머니 그리고 이모, 삼촌 등 린다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볼모로 린다를 협박한다.

결국, 린다는 자신의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이 도망쳐 사라졌다는 시나리오로 6년 11개월을 숨어지내게 된다.

그녀가 선택한 길은 자유주로의 도망이 아니라 원수 같은 플린트가 있는 마을, 자신의 할머니 집 헛간 지붕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생활을 자그마치 7년여를 견뎌낸다.

나무판자 사이로 보이는 자신의 아들과 딸에게 말 한 마디 못하고,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고, 쥐와 벼룩이 득실대는 그 장소에서 뻥 뚫린 지붕을 통해 내리는 비를 맞으며 그 세월을 견뎌낸다. 불의 온기도 없이 겨울을 보낸다. 뜨거운 여름밤에는 온갖 해충에 물어 뜯겨도 제대로 피할 수도 없다.

 


가끔은 자비로운 신께서 내가 당하는 고통으로 내 죄를 사해주시리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때로는 신의 처분에 공정함이나 자비심이라곤 아예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노예제 같은 악행을 왜 두고 보시는지, 어릴 때부터 줄곧 내가 왜 이렇게 박해받고 부당한 취급을 당해야 하는지 대답해달라고 호소했다. 이런 생각은 오늘날까지도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아 있다. 내세에나 풀릴 수 있을지 모른다.(p188)


그녀가 겪은 우여곡절은 보태지도 않고 빼지도 않는 그녀의 서술로만 이루어져 있다.

때론 자신의 독백처럼 이어지는 글이 있고, 때론 독자에게 말을 거는 듯한 표현도 있다. 또는 마치 세상을 향해 주장하는 구호를 외치는 각성과 행동을 추구하는 느낌도 있어서 현대인들이 읽기에는 매끄럽지 못한 점도 있다. 하지만 이는 있는 그대로를 전하려는 저자와 그의 뜻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당시 편집자와 이 세상 독자들에게 당시의 느낌을 그대로 전하려는 옮긴이의 뜻이라 생각하면 된다. 

그녀는 마침내 자신의 아이들을 찾아내고, 자유주로 도주하는 데 성공을 했다. 노예가 자유주로 무사히 도망을 쳤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놀라게 할 사건이지만, 린다가 겪었던 그 세월의 사건들은 당시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고 남았을 이야기이다.

저자는 남부를 탈출한 후 그동안 겪은 일을 익명으로 연재하지만 도망노예가 혼전임신이라는 파격적인 주제로 글을 썼다는 점 때문에 연재는 중단되고, 3년 후에 백인 여성 편집자 리디아 마리아 차일드의 도움으로 책으로 출간된다. 당시 사람들은 글의 문체를 보아 노예가 썼다는 점을 믿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여성 편집자가 쓴 소설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런 논란은 120년이 지난 1981년 진 페이건 옐린이 편집자와 저자가 주고받았던 편지 다발을 찾아내므로 끝났다고 한다.

 

<린다 브렌트 이야기> 속의 주인공 린다는 당시 사회적인 배경을 고려해볼 때 상당히 적극적인 여성이었다. 비록 자신은 노예였지만 세상을 향해 노예제가 주는 문제점, 특히 노예 여성들이 당하는 성적착취와 이 일련의 과정을 여성이라는 입장 때문에 삼키고 참아야 했던 안주인 백인 여성의 입장도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당시로써는 상당히 민감한 사항을 건드리는 위험한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자신의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악독한 플린트를 교묘하게 속이는 계획도 성공한다. 그리고 자신의 처지가 위험할 때에도 목적을 위해서라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거는 용기도 보여준다.

 

<린다 브렌트 이야기>에는 수많은 노예 여성들이 겪는 끔찍함이 있다. 자신의 아이가 죽어나가도 주인의 아이를 키워야 한다. 어쩌다 아이를 가진 노예 여성을 아이를 낳자마자 또 주인의 시중을 들어야 한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새해가 돌아오면 엄마는 자식들이 노예 경매장을 통해 팔려가는 것을 봐야한다. 어디로 가는지조차 모른다. 주인의 더러운 욕망의 노리개가 되고, 안주인은 주인의 눈에 띄었다는 이유로 발가벗겨 채찍질을 당해야 한다. 자신의 이부자리조차 편하게 쉬질 못하고 자다가 물을 찾는 주인을 위해 주인 침실 현관 바닥에서 잠을 자야 한다.

 

<린다 브렌트 이야기>에 나오는 노예제는 남부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노예제를 반대하고 있는 북부에서도 오히려 남부인보다 더 악독하게 노예사냥을 하는 북부인들이 있었고, 자신의 이익만을 우선으로 하는 백인들 역시 있었다. 노예제가 있던 당시의 미국을 남부와 북부로 나뉘어 노예제 찬반으로 대립했다는 표면적인 시대적 배경보다는 그 노예제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노예 여성들의 이야기를 주목해야 한다.

 


자유도시 뉴욕에서 인간이 팔리고 있다! 매매계약서는 증거로 기록되어 있으니 후대 사람들은 19세기 말 기독교를 믿는 나라의 도시, 뉴욕에서 여성들이 매매 대상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p304)


그녀는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남자, 아이들의 아버지였던 남자, 그래서 자신의 아이들을 구하는데 도움을 청했던 샌즈 씨에게도 배신을 당한다.

글쎄, 당시의 상황으로써는 백인 남자가 흑인 여자를 위해 얼마나 힘을 쓰고, 얼마나 도움을 줬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 일로 린다는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믿게 된다. 누구도 믿기 어려워함은 후에 좋은 백인 친구들을 만나면서 잠깐의 의심을 하는 대목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린다의 자비로운 신은 린다의 기도를 들어주었다. 그녀가 자유시로 무사히 도망을 오고 나서 그녀에게는 좋은 백인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그녀 역시 완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그 먼 곳까지 자신을 잡으러 오는 플린트의 족쇄를 피해 도망 다니고 피하고, 숨는 여정이 반복적이지만 그래도 그녀를 사람으로 대해주는 백인 친구가 있었다.

 


감격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어릴 때 불쌍한 아버지가 내 자유를 사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그리고 그럴 수 없었을 때 얼마나 낙심했는지가 떠올랐다. 그의 영혼이 하늘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기뻐하시기를 바랐다. 할머니가 말년에 나를 사기 위해 열심히 돈을 모았던 것, 그리고 그 계획이 번번히 실패로 돌아가 얼마나 상심했는지도 떠올랐다. 사랑으로 가득한 그 신실한 할머니가 나와 내 아이들이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된 것을 보면 얼마나 기뻐할 것인가? 나를 구하려는 내 가족들의 모든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하느님은 낯선 사람들 중에 한 명의 친구를 보내 내가 그토록 오랜 시간 바라오던 귀중한 선물을 선사하도록 해주셨다. 친구! 흔한 만큼 때로는 쉽게 쓸 수 있는 말이다. 다른 좋고 아름다운 것들처럼 함부로 다루다가 그 의미가 훼손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브루스 부인을 내 친구라고 말할 때 그 말은 성스러운 의미를 지닌다. (p305)


1863년 노예제가 폐지되고 나서도 린다는 해방 노예의 자립을 돕고 여성권리신장을 애쓰다 1897년 생을 마감했다.

그녀는 "노예제 속박 아래 나와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아니 그보다 더 극심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2백만 남부 여인들의 처지를 북부 여성들이 깨닫게 되었으면”하는 바람을 담아 이 책을 출간했다.

하지만, 이 시절, 21세기에 읽어보는 <린다 브렌트 이야기>는 현대에는 여성의 성 착취에 대한 사회적 반응, 남성의 반응은 어느 정도인가 생각해볼 만한 시간을 주기도 한다. 비록 노예제라는 무시하고 더러운 제도는 없지만, 여성 스스로 노예제의 속박에 잡혀 사는 것은 아닌가, 남성 스스로 여성을 속박하는 위치에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점을 독자들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사랑이라는 변명하에 여성을 억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남성이 속박하려는 것을 여성을 보호하려 한다고 착각하며 놔두는 여성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이 문란한 세상에 독자들이 따끔하게 생각하고 깨우쳤으면 하는 권유를 하고 싶다.

 

비록 노예제를 피해 먼 길을 도망 다니고, 자식들 위해 그 험난한 길을 참아냈지만, 그녀가 겪었을 그 암담한 고통은 세상에 글로 보고를 함으로써 조금은 위안이 되지 않았을까라는 점도 떠올려본다.

열다섯 살, 주인이 저지르는 억압에 당당하게 맞서고, 자신을 노예제에 속박하려 했던 세상을 향해 맞서고, 자신을 지켜냈던, 자신의 자존심을 지켜냈던 그리고 자식의 운명을 지켜냈던 린다 브렌트, 해리엇 제이콥스에게 오랜 시간이 지난 이 세월의 독자가 박수를 보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 - 꿀벌이 전하는 지구 환경 보고서 지식 보물창고 2
로리 그리핀 번스 지음, 엘런 해러사이모위츠 사진, 정현상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벌집군집붕괴현상'이라고 들어보셨나요?

벌들이 자기 집을 버리고(벌통) 사라져버리는 현상입니다. 꿀과 꽃가루를 채집하러 나간 일벌들이 둥지로 돌아오지 않아, 둥지에 남은 여왕벌과 애벌레 및 미성숙 벌들까지 하나의 벌집이 몰살당하는 현상입니다.

 

2006년 미국 플로리다주에 있는 데이브 아저씨는 깜짝 놀랍니다. 벌통 안에 있어야 할 20,000마리의 꿀벌들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입니다.

데이브 아저씨는 꿀벌 과학자들에게 긴급 연락을 하게 되고, 과학자들은 꿀벌이 사라진 원인을 조사하게 됩니다.

과학자(일명 꿀벌탐정)들은 꿀벌들을 표본으로 채집해서 꿀벌의 몸을 해부하기도 하고 꿀벌 집의 내부를 조사하게 됩니다.

꿀벌의 몸을 해부하여 바이러스의 감염, 기생충의 기생, 무분별한 농약 사용 때문에 꽃가루와 벌집의 오염 등 여러 가지 원인을 조사하게 됩니다.

 

독자들은 여기에서 꿀벌의 모든 것을 낱낱이 볼 수 있습니다. 꿀벌의 집은 6각형 모양으로 밀랍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벌방(봉방)이라고도 불립니다. 이 벌방을 만드는 밀랍은 벌의 복부 아래에 있는 특별 분비선에서 나옵니다. 수천 개의 방을 만들어 음식 저장 공간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어린 벌의 집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꽃이 필 때나 꽃이 피지 않을 때나 모든 벌 식구들이 먹을 만큼 충분한 꽃가루와 꽃꿀들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어른 벌에는 독자들이 알고 있듯이 수벌, 일벌, 그리고 여왕벌이 있습니다, 가장 큰 여왕벌은 알을 낳는 기계과 같은 종류입니다. 수벌은 남자 벌입니다. 오로지 여왕벌과 개체 수를 늘리는 일만 하는 아주 게으른 벌입니다. 벌통 하나에 평균 5만 마리의 벌들이 살게 되는데 이 중 단 한 마리가 여왕벌이고 2,000마리는 수벌, 그리고 나머지 4만 7,999마리는 일벌입니다. 일벌은 여성입니다. 6주간의 짧은 생을 살지만 어린 벌들을 보호하고 먹기고, 밀랍으로 벌집을 짓고, 수리하고 하는 가장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일벌입니다.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어느 날 갑자기 벌들이 사라져버린 현상을 연구하고 원인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꿀벌에 대해 과학적으로 세분된 정보를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벌들에 대해 과학적 깊이를 더한 내용을 읽게 됩니다.

꿀벌이 사라진 원인은 결국 인간의 욕심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왜 그럴까요? 왜 인간 때문에 꿀벌들이 사라져버린 것일까요?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자연환경을 인간 마음대로 움직이려고 하다가 자연이 파괴되는 과정을 보면서 인간이 자연을 거스르는 일이 얼마나 큰 결과를 안겨주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생각의 시간을 줍니다.

벌은 단순히 꽃가루를 이용해 꿀을 만들기만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꽃가루 매개자인 벌은 곡식이나 과일의 열매를 맺게 해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자연을 생각하자는 말을 하면서 정작 자연에 대해 몰랐던 독자들은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를 읽음으로 자연을 어떻게 알아야 하고, 어떻게 보호를 해야 하는지 제대로 생각하는 능력이 생길 것입니다.

 

<꿀벌이 사라지는 세상>은 언제든지, 어느 곳에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일입니다. 모든 꿀벌이 이 지구 상에서 사라지고 위기를 느끼기 전에 우리 인간들은 꿀벌들, 자연환경을 보호하고 서로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방법을 행동으로 보여야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 풍경과 함께 한 스케치 여행
이장희 글.그림 / 지식노마드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태어나고 자라고 늘 함께했던 서울이다. 지금은 경기도에 살고 있어 가끔 친정집 나들잇길에 보이는 서울의 거리를 보면서 그때의 기억을 새록새록 떠올려 본다. 서울의 묘미를 제대로 느꼈던 때가 그래도 내가 한창이라고 하던 그 나이 때였다. 나름 멋을 찾는다고, 나름 시간의 여유를 만끽한다고 친구들과 어울려 서울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던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은 월드컵 상암경기장과 주변 공원이 들어서 너무나도 멋지게 변해버린 난지도의 그 황량했던 모습을 떠올린다. 쓰레기 매립지로 도시의 경관을 망치는 하나의 쓸모없는 땅이었던 그곳이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변했단다. 친구와 수다 떨다가 제때 내리지 못해 가게 된 상암동 구석진 버스 정류장, 질퍽한 진흙탕을 겨우겨우 빠져나오던 기억이 떠오른다. 종로의 피맛골은 동기생들, 선후배들과 늘 함께 들러 나름의 시국을 논하고 과거를 비판하고 미래를 바라보던 패기의 장소이고, 낭만의 장소였다. 지금은 없어진 종로서적에서는 설레이는 마음으로 그 누군가를 기다리던 장소였다. 조금 더 멋을 내자면 관철동에서 근사한 카페를 찾아내는 것도, 창가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조금은 비쌌던 커피를, 파르페를 먹던 맛도 참 좋았다.

그래. 나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 이런 시간이 있었다.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는 나에게 그런 느낌을 새록새록 떠올리게 하는 여행 에세이다.

서울에 관한 많은 서적을 보면서 아..그래 이 장소, 맞다..여기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데..라고 생각을 하곤 하지만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는 마치 내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 기억을 표지가 바랜 일기를 뒤져보면서 그때의 감정과 그때의 느낌을 고스란히 몸으로 느끼는 그런 책이라고 할까?

사진으로 깔끔하게 보이는 서울의 모습보다는 연필로 선을 그어가면 하나하나 완성해가는 그 작업이 얼마나 꼼꼼하고 시간의 여유를 가져야 완성됨을 알기 때문에 더 정겨운 여행이야기가, 서울의 숨은 이야기가 쏙쏙 들어온다.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는 터벅터벅 걸어가는 느낌이다. 서울의 한 모습을 담기 위해 그 장소를 쳐다보고 시간에 쫓김이 없이, 차로 지나가면 그저 커다란 덩어리만 봤을 서울의 구석을 걸어가야 찾을 수 있는 표지석과 한 번 더 손으로 짚어보고 찾아냈을 벤치며, 사람들에게 한 번 더 물어봐야 알 수 있는 옛 서울의 자취를 찾아내는 여행을 독자들은 참 재미있게 따라다니게 된다.

 

찰나의 순간을 잡아내는 스케치는 밋밋하고 싱겁지 않을까 염려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주는 묘한 매력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채색하고 명암을 넣은 그림은 멋있지만, 때론 모든 것을 다 아는 듯한 느낌이 들어 쉽게 질릴 때도 있다. 스케치는 보면 그림 전체가 보이고, 또 한 번 보면 그린 이의 터치가 보인다. 여백을 준 공간을 보면 꼼꼼하게 펜으로 메워나간 부분도 보인다.

스케치라는 매력을 충분히 양념해주는 글도 좋다. 마치 그림에 말을 걸듯 써넣은 메모이다.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는 그런 매력을 주는 에세이다. 마시다 남겨진 커피 자국에 나름의 변명도 써넣어보고, 보이지 않는 구석을 화살표로 설명도 넣어보고,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아주 정감이 가는 여행 에세이다.

 

학생 땐 역사가 왜 그렇게 어려웠나 모르겠다. 연도별로 사건별로 외우라고 하는 것이 어쩜 그렇게 안 외워지고 지난 과거를 알면 뭐하냐라는 빈정담은 반항심도 들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인가. 시간을 바라보는 여유가 생겨서인가. 역사의 숨은 이야기를 읽는 것이 참 재미있게 느껴진다.

경복궁, 명동, 수진궁, 효자동, 광화문 광장, 종로, 청계천, 우정총국, 정동, 혜화동, 숭례문, 경교장, 딜쿠샤, 인사동...서울을 떠올리는 곳이다. 서울을 떠올리는 단어이다.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는 일러스트 작가인 저자가 5년 동안 서울의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보고, 그리고, 서울에 대해 공부한 것을 묶어낸 것이다.

서울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우체국 건물 중의 하나가 있다. 1884년 11월 18일에 우정총국의 업무를 시작했지만 12월 4일 개화파가 일으킨 갑신정변으로 스무날 정도만 우정 업무를 본 곳이기도 하다. 윤선도의 서울집이 있던 곳이 바로 진고개, 명동성당이 있는 언덕바지라는 것이 새삼스럽게 들린다. 김구 선생이 해방 후 머물다 생을 마감한 경교장이 많은 사람이 다니는 병원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다.

 

어느 가수의 노래 '광화문 연가'로 정동길은 꼭 다녀와야 하는 우리에게 낭만을 주는 거리였다. 덕수궁 뒷길을 거닐다가 정동극장에서 연극을 보던 기억이 난다. 이화여고 유관순 기념관에 무슨 공연을 보러 갔던 기억도 떠오른다.

서울의 발전을 세계에서 모두 주목하고, 과찬을 하고 있다. 짧은 시간에 큰 변화를 보인 도시는 서울만 한 것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 개발의 물결 속에 우리네의 진정한 자존심은 슬그머니 미뤄놓고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게 한다.

역사를 알고 전통을 알자고 하면 너무 과하게, 크게 말하는 것이라 여겨진다면 우리가 늘 지내왔던 생활, 우리가 늘 지내왔던 거리를, 변화하기 전의 모습을 그대로 남겨보고 싶은 책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가벼울까?

나는 현재진행형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지금 이 시간 충실할 수 있다는 이 단어는 참 많은 의미를 줄 수 있다.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를 통해서도 현재진행형인 서울의 모습을 새롭게 들여다볼 수 있다. 이 책에 남겨진 스케치는 시간이 지난 지금 변화를 하고 사라졌을 수도 있겠지만, 남겨진 이야기만은 독자들에게 오랜 느낌을 들 것이다.

오랜만에 참 포근하고, 재미있고, 추억속에서 달콤함을 느낄 수 있는 독서 시간을 가져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 나 또 올게 - 아흔여섯 어머니와 일흔둘의 딸이 함께 쓴 콧등 찡한 우리들 어머니 이야기
홍영녀.황안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친정엄마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눈물을 흐르는 이가 있다. 친정엄마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포근함과 편안함을 느끼는 딸들이 많다. 늘 기대고 싶고, 늘 투정을 부려도 언제나 넓은 가슴으로 받아주는 친정엄마의 이미지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모습이다.

 

<엄마, 나 또 올게>는 책이 나오게 된 배경 자체만으로도 마음이 짠함을 남긴다. 홍영녀 어머니는 70세가 되어 한글을 떼고 그때그때의 일기를 서툰 글씨로, 서툰 표현으로 남겼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10년이 지난 80세에 생애 첫 번째 책을 세상에 선보이게 되었다. 

어느 날 친정 엄마의 옷장에서 8권의 일기장을 발견한다. 평생을 무학으로 살아오신 어머니이고 병환으로 몸 고생을 하던 중이었다. 딸은 어머니의 글을 읽는다. 맞춤법도 틀리고, 서툰 글씨였지만 그 속에 담긴 어머니의 심경은 읽은 딸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딸은 이 글을 책으로 펴낸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이 책을 통해 어머니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이 책이 나온 계기로 <인간극장> 프로에 나오기도 했다. 딸 황안나씨는 교직 생활을 접고 제2의 인생을 멋지게 꾸려가는 홍영녀 여사의 맏딸이다. 72세의 그녀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블로그에 연재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얼큰한 감동을 전해주었다.

 

<엄마, 나 또 올게>는 힘들고 고된 인생을 보내고 외로움과 시간의 덧없음을 느끼는 어머니의 심경이 짧은 글에서 자식에게 보내는 글에서 느껴진다. '엄마'라는 단어는 모두에게 따뜻함을 준다. 포근함을 준다. 하지만, 또 다른 면으로는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나이의 덧없음과 인생의 허망함을 느끼는 엄마의 심경을 느낄 수 있다. 늘 강인한 모습으로 자식을 품에 안는 엄마이지만 가슴의 아픔을 삭이고 또 삭히는 엄마의 심경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된다.

 

<엄마, 나 또 올게>를 읽고 이해인님은 '엄마가 한없이 그리워지는 책을 읽었습니다. 오늘은 저도 하늘나라에 전화를 걸고 싶어집니다'라는 추천사를 남겼다.

추천사의 말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 세월의 한을, 그 세월의 흔적을 삐뚤삐뚤 적어내려 간 홍영녀 어머니의 마음이 오히려 독자의 심금을 울린다. 그렇게라도 흔적을 남기고 싶었던 무언의 소리였을까? 언젠가는 떠날 이 세상에 대한 정리였을까?

자식이 그리워 보고 싶어하다가도 바쁜 세상 바쁘게 살아가는 젊은 사람들에게 괜한 투정을 부리는 것이라 자신을 타박하는 어머니, 몸도 아프고 마음도 외로워 오래간만에 보는 자식들에게 괜한 성질을 내고 후회하고 또 후회하는 어머니, 온종일 적막강산인 방안에서 외로움을 혼자 견뎠을 어머니. 짧은 글 속에서 보이는 어머니의 마음은 자식으로서 참 후회하고 안타깝고 부끄러움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칠순을 맞이하는 나의 친정엄마가 겹친다. 아직도 나는 엄마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제대로 해주질 못했다. 그저 나 사는 것이 팍팍하다는 이유로 그저 나만 우선으로 생각하고, 나의 상황을 우선으로 생각했을 뿐이다. 친정엄마는 지나간 세월을 그저 이야기하면서 추억 속에서나마 화려하고 당당했던 엄마의 자신을 찾고 싶었을 뿐인데 딸인 나는 귀찮다는 이유로, 반복되는 이야기라는 이유로 엄마의 감정을 무너뜨렸나 보다.

 

"엄마, 나 또 올게"

오랜만에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고 잠시 앉아 있다가 엄마에게 말을 하면서 집을 나선다.

출발하는 차 뒤에 서서 끝까지 손을 흔들어주는 친정엄마의 모습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뭉클함과 함께 떠오르는 것일까?

그저 그 마음을 그대로 읽어주는 그런 딸이 되어주어야겠다. 내일 날이 밝으면 엄마에게 전화해야겠다.

 

<엄마, 나 또 올게>는 딸의 뾰족한 마음을 선하게 누그러뜨리는 그런 에세이다. 늘 그곳에 있을 거라 믿는 엄마를 나이가 들어 힘이 빠진, 약하디약한 엄마로 다시 떠올리게 하는 그런 아련함의 글이다.

늘 시골집에서 딸의 뒷모습을 마중하던 엄마에게 하던 "엄마, 나 또 올게"라는 말은 이젠 산소를 뒤에 남겨두고 오는 말이 되었다. 하지만, 그 어머니의 질팍한 인생은 하나의 책으로 그리고 딸의 글로 남아 있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독자들은 아흔여섯의 엄마와 일흔둘의 딸이 서로 잡고 있던 그 끈끈함을 고스란히 전해 받는다. 뭉클함과 함께. 오래 세월이 지나 나도 나의 친정엄마도 이런 끈끈함이 있음을 기억하고 싶다. 남기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나라 가족여행 바이블 100]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우리나라 가족여행 바이블 100 - 주말마다 즐거운 사계절 행복충전소 프리미엄 가이드북
유철상 지음 / 상상출판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가족여행을 하려면 은근히 준비할 일이 많습니다. 제일 처음 여행지를 선정하는 곳부터 고민스럽죠. 가족의 상황에 따라, 교통편에 따라, 그리고 준비할 수 있는 물품등등..하나하나 생각을 하다 보면 막상 가족여행이 고생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이왕 하게 되는 가족여행이라면 행복하고 그 행복을 충분히 충족할 수 있는 여행으로 만들어야겠죠. 행복한 가족여행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아이가 동행하고, 나이 드신 부모님이 동행하는 가족여행이라면 모든 것을 꼼꼼하게 챙겨야 합니다.

흔히 말하듯이 가벼운 가방 하나 둘러메고 자연을 벗 삼아 다녀올 수 있는 가족여행을 좀 더 알차게 보내고 싶은 독자들에게 필요한 책이 <우리나라 가족여행 바이블 100>입니다.

 

사계절 내내 주말마다 골라보는 가족여행의 노하우를 <우리나라 가족여행 바이블 100>에서 소개합니다.

하나, 떠나기 전에 잠자리 계획부터 세운다.

둘, 맛있는 여행은 만드는 것이다.

셋,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테마를 찾는다.

 

<우리나라 가족여행 바이블 100>은 편안하게 온 가족이 함께 자연 속에서 어울려 지내다 올 수 있는 그런 장소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행의 묘미를 찾아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특징을 고스란히 찾을 수 있는 장소를 분류했습니다. 전국의 숨은 장소를 추천하기도 하고, 가까운 인근의 장소도 추천하고 있습니다. 가족여행이라고 짐을 싸들고 가는 것도 좋겠지만, 가볍게 드라이브 삼아 가는 여행지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봄에 선택할만한 가족여행지로 광양 섬진강과 매화마을, 이천 산수유 마을, 제천 청풍호반, 용인 한택식물원, 춘천국제마임축제, 고성 화진포와 건봉사등이 있습니다.

여름의 장소로 담양 소쇄원, 양평 보릿고개 마을, 영종도 드라이브, 시흥 갯골생태공원 등 가을의 장소로 고양 원당종마목장, 수원화성, 합천 가야산 단품, 문경새재, 인천 소래포구 등을 추천합니다. 겨울의 아름다움을 맘껏 느낄 수 있는 곳은 함평 돌머리 해수찜, 해남 땅끝여행, 태백 눈꽃열차, 예산 덕산온천과 수덕사등등 100가지의 가족여행지를 소개합니다.

 

가족여행의 묘미는 한 장소에서 쉬는 것도 좋지만, 그 길을 찾아가는 여정도 참 재미있고 추억이 남기 마련입니다. 각각 여행지를 소개하면서 코스 가이드까지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짧은 일정을 알차게 보낼 수 있답니다. 여행관련 비용, 숙박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홈페이지 주소까지 꼼꼼하게 적혀 있어서 가족 여행의 장소를 정하고 <우리나라 가족여행 바이블 100>을 손에 쥐고 떠나면 알차고 추억거리가 가득한 가족여행을 만족스럽게 다녀올 수 있답니다.

 

휴가철에만 기를 쓰고 여행을 다닌 것은 오히려 여행을 모르는 사람들의 그것이 아닐까요? 요즘은 오히려 사람들이 몰리지 않을 때 주말에 가족여행을 계획하는 것이 더 여유 있고, 즐거움을 남길 수 있는 시간을 가

지게 되는 것이 현명한 여행 계획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가족여행을 꼼꼼하게 세워보는 그런 가이드로 <우리나라 가족여행 바이블100>을 추천해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