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깨우는 한자 - 한자의 부와 획에 담긴 세상을 보는 혜안慧眼
안재윤.김고은 지음 / 어바웃어북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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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라.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삶을 살면서 늘 배워야 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고 하면 너무 틀에 박힌 말일까요?

하지만 살다 보면 어린 사람에게도 배워야 할 것이 있고, 나와는 다른 분야의 일에서 배우는 것도 많습니다.

인생이라는 것이 늘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이겠죠.

 

삶에서 배우기도 하지만 대부분 글에서, 인생을 배우게 됩니다.

특히 옛글은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익혀야 하는가를 익히게 해줍니다.

하지만 옛글은 한자어라 어렵죠.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학생 때 배웠던 한자만으로도 어른이 되어 간혹 접하는 한자를 충분히 익힐 수 있는 일이지만, 간혹 익히는 한자를 통해 또 깊은 지혜를 얻을 때의 느낌은 묘한 성취감을 주기도 합니다.

한자라는 것이 하나를 알면 그 속에 담긴 뜻을 알고 싶고, 글자를 알면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도 합니다.

 

<아침을 깨우는 한자>는 바로 그런 글에 대한, 옛글에 대한, 한자와 한문에 대한 독자의 갑갑함을 시원스레 풀어주는 책입니다.

굳이 어려운 옛글을 접할 이유가 무엇이냐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만, 더구나 옛글에 대한 해석은 독자가 책 옆에 옥편을 놓고 해석하면 될텐데라고 생각도 해봅니다만  그 뜻을 앞뒤로 맞춰 잘 해석하고 번역한 글이 독자들에게 더 쉽게 각인되지 않을까요?

 

머리글의 일부입니다.

松下問童子(송하문동자) 소나무 아래에서 동자에게 물으니

言師採藥去(언사채약거) 선생님은 약 캐러 가셨다 하네

只在此山中(지재차산중) 이 산속에 계시긴 하나

雲深不知處(운심부지처) 구름이 깊어 계신 곳을 알 수 없다네

화자가 은자를 찾아가지만 만나지 못합니다. 만나지 못한 것이든, 만나주지 않는 것이든 은자는 만나기 어렵고 그것을 알기 때문에 화자는 은자를 기를 쓰고 찾는 것이죠. 은자는 동자를 내세웁니다.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동자는 스승이 깊은 산 속에 있어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불퉁한 답만 내놓고 동자는 화자의 관심은 아랑곳없이 자기 할 일만 합니다.

 

옛글을 탐함은 은자를 찾아가는 것과 같다 합니다.

옛글을 탐함은 구름 깊은 산 속에서 약을 캐는 것과 같다 합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한문을 풀어 이해하는 것은 은자를 찾아가는 것과 같다. 한자 몇 자 알았다고 대번에 깨달음이 오는 게 아니다. 한문 표현 몇 개 알았다고 문리가 트는 것도 아니다.'라고 독자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저 아침마다 한두 문장씩 옛글을 한문으로 풀어 익히다 보면 책 끝머리에서 한자에 담긴 삶의 이치를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면서 독자들을 옛글의 깊이로 이끌고 있습니다.

 

<아침을 깨우는 한자>를 통해 글의 깊이를 알고 싶은 독자나, 인생의 깊이를 알고 싶은 독자, 좀 가볍게 여긴다면 한자어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 싶은 독자들에게 아주 적합하게 익힐 수 있습니다.

옛글은 그때나 지금이나 우매한 인생에 많은 현답을 주고 있습니다.

탐욕을 이겨야 하고,

잘못을 부끄러워하며 반성하고,

끝없이 배우고 노력하는 마음을 지니고,

믿음으로 세상과 소통을 하고 배려와 용서의 온기를 채워가는 것,

그리고 안목을 밝히는 지혜를 배우려고 하고

기다림의 미덕을 일깨울 수 있는 삶의 혜안을 <아침을 깨우는 한자>가 독자들에게 일러주고 있습니다.

옛 글을 다룬다고 해서 어렵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살면서 늘 접하는 옛글에 대한 이야기를 풀이하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전하고 있는 책이 바로 <아침을 깨우는 한자>입니다.

 

세상에 맞서 당당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먼저 자기 자신에게 당당해야 합니다.

堂堂(당당)은 '떳떳하다, 씩씩하다'입니다.

堂(당)은 尙(상)+土(토)이다.

尙(상)은 위쪽에 창문을 내 집으로 '높다'를 뜻한다. 여기서는 발음 기호 역할도 하고 있다.

土(토)는 '흙, 땅'이다. 집을 짓기 위해 다진 땅, 즉 터이다.

堂(당)은 '높이 지은 집'이다. 높직한 터 위에 우람하게 지은 집은 겉보기에 당당하고 번듯하다.

堂(당)이 들어간 건축물은 위용이 당당하다.

국회의사당, 예술의 전당이 대표격이다.

 

사람은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몸을 던집니다.

바로 知己(지기)라는 말이 이에 속합니다. 知己(지기)는 나를 알아주는 사람입니다. 知(지)는 '알다' 己(기)는 '나'이므로 知己(지기)는 '나를 알아주다, 나를 인정해 주다'라는 말입니다.

知(지)는 矢(시)+口(구)다.

矢(시)는 화살이다. 예전에는 '화살'이 제일 빠른 것이었다. 口(구)는 입이다.

味(맛 미), 呑(삼킬 탄), 吐(토할 토)에서는 먹는 입이고,

告(알릴 고), 問(물을 문), 鳴(울 명)에서는 말하거나 소리 내는 입이다.

口(구)는 兄(형 형), 命(목숨 명), 君(임금 군)에서처럼 명령과 권위를 나타내기도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남을 알아보고 사물을 헤아리는 일이 남달리 빠르고 깊다. 슬기있는 사람은 입을 한번 열면 물 흐르듯 거침없이 쏟아 낸다.

知(지)는 빠른 화살인 矢(시)와 말하는 입인 口(구)를 합쳐 '지혜, 지식, 앎'을 나타낸 것이다.

知(지)가 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됨됨이를 잘 알고 사물의 이치를 잘 파악한다.

 

<아침을 깨우는 한자>는 어설프게 알았던 삶의 지혜를 확고하게 다져주는 느낌이 듭니다.

이렇게 저렇게 앎을 챙겼다 하더라도 그 깊이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런 독자들에게 제대로 알려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이들 때문에 망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끄러운 행동을 하고도 너무나 당당하게 활개치는 이들이 많습니다.

용기 있는 사람만이 제 잘못을 부끄러워할 줄 알고 고치기를 힘쓴다고 합니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부끄러움을 인정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無 羞惡之心, 非人也.(무 수오지심 비인야)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맹자>

無(무)는 '없다'다.

羞(수)는 '자신이 한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것'이고,

惡(오)는 '남이 행한 나쁜 짓을 미워하는 것'이다.

心(심)은 '마음'이다.

羞惡之心(수오지심)은 '자기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이다.

非(비)는 '아니다'다.

人(인)은 '사람'이다.

也(야)는 '단정'하는 어감을 준다.

非人也(비인야)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단정하듯 말하는 것이다.

나쁜 짓이나 못된 짓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함은 인지상정이다. 못된 짓을 한 사람을 보고도 미워하지 않는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다. 자기가 나쁜 짓을 하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면 그 또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남의 잘못을 미워하는 마음은 잠시 놓아두고 자기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에 주목해 보자.

길을 걸으면서 담뱃재와 담배 연기를 바람에 날리는 짓을 부끄러워하고, 자동차로 사람 길을 가로막는 짓을 부끄러워하고, 길바닥에 침 뱉는 짓을 부끄러워하고, 출입문 한가운데에 버젓이 서 있는 짓을 부끄러워하고, 지하철에서 다리를 옆으로 쫙 벌리고 앉아 있는 짓을 부끄러워하자.

 

옛글을 배우는 까닭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현대사회라는 이유로 옛것은 그저 과거의 시간이라는 틀에만 넣어두고 그 속에 담긴 인생의 참된 의미를 잊혀가게 하고 있다면 잠시 접어두고 옛글을 차분하게 읽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겁니다.

정신없이 하루를 시작하기보다는 잠시의 짬을 <아침을 깨우는 한자>의 일독을 권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TV를 통해 뉴스를 보는 시간을 조금 할애하고, 늦잠 자는 시간을 조금 줄여보고, 통근길에 멍한 차장을 바라보기보다는 한 장의 옛글을 읽어보길 권합니다.

혼탁한 아침을 보다는 차분함을 얻게 되는 한자어 한마디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새로운 學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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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수업 - 나이에 지지 않고 진짜 인생을 사는 법
가와기타 요시노리 지음, 장은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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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이 두렵다는 생각이 드는 그대에게.

중년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진짜 중년의 시간이 바로 코앞에 다가왔다.

이젠 80세 인생이 아닌 100세 인생을 앞두고 있다. 그만큼 의료 기술의 발달로 평균수명은 늘어나지만, 정년퇴직의 시기는 똑같다. 변화가 없다.

나이 들어 할 일 없이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중년의 시간이 길어진다는 의미이다.

직장에서 밀려나고 가정에서도 밀려나고, 막상 다른 것을 해보자니 이런저런 두려움이 앞서고, 쥐꼬리만한 퇴직금을 가지고 창업을 해보자니 그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고....

두려움이 우선 앞서는 이 중년의 시간에 대해 뭔가 준비는 해야 한다. 알고 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하는지 아득하기만 하다.

그런 느낌에 주눅이 들고 있는 중년들에게 <중년수업>은 인생의 실질적인 조언을 들려주는 책이다.

 

 

<중년수업> 가와기타 요시노리. 일본 저자이다.

저자는 100권이 넘는 저서 중 '인생을 풍요롭게 유쾌하게 살아가는 것'에 초점을 맞춘 에세이를 많이 썼다. 풍부한 인생 경험을 바탕으로 한 설득력 있는 글로 정평이 나 있는 작자이다.

1935년생인 작가는 올해 77세의 노인이다. 왕성한 집필 활동으로 모습만 노인이지 작가가 가지고 있는 인생은 젊은 못지않다.

나보다 훨씬 많은 세월을 산 인생의 선배가 들려주는 이야기이고, 지혜를 가지고 있는 주변 어른의 이야기라는 편안한 생각으로 중년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자. 제대로 알고, 제대로 이해를 해야 그 길고 긴 중년의 시간과 다가올 노년의 시간을 지금보다 두려움 없이 보낼 테니까.

 

 

<중년수업>이란 큰 제목보다 '나이에 지지 않고 진짜 인생을 사는 법'이란 부제가 눈에 띈다.

'나이에 지지 않는다.'

얼핏 멋있어 보이는 인생관이기는 한데, 궁금하다.

지나가는 세월에 대해 수긍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왕 나이를 먹는다면 이 나이에 끌려가는 인생보다는 내가 나이를 즐기는 인생에 대한 조언인가? <중년수업>은 내가 내 나이의 주인공, 내 삶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먼저 하고 이 시간을 재미있는 인생으로 만들어 가도록 조언하는 인생 선배의 지혜를 담은 것이다.

 

 

대부분 40대 후반부터는 노후대책에 대해 꼼꼼히 살펴본다. 하지만 이것은 노후가 되었을 때의 대비책이다.

노후대책이라는 단어로 수많은 권유가 남발된다.

'제2의 인생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

' 지금 준비를 해야 노후에 편하게 지낸다.'

' 나이 들어 경제력은 필수이기 때문에 지금부터 어떤 상품에 투자를 해야 한다'

'취미는 꼭 가져야 하고 더불어 봉사 활동도 정신적 여유를 말하는 것이다.'

노후 삶의 공식처럼 되어 버린 이야기를 들으면서 독자는 당연한 공감대를 가질까?

솔직해져 보자.

이제껏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뭘 또 준비하라는 것일까? 준비할 시간이나 주어졌나?

나이 드는 것도 서럽고, 일선에서 밀리는 것도 서럽고, 나이 들어 재취업하는 것도 어려워 서러운데 취미생활이 눈에 들어올까? TV의 프로에서 노년의 모습을 보여주는 내용을 보면 정말 중년에는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그럴듯한 전원주택에서 살아야 하고 취미 삼아 하는 농사일이 제2의 인생을 책임지는 경제력이 되어야 하고, 간혹 여행을 떠나야하고...

그 노년의 시간과 패기의 청춘 사이에 짧게 끼어있는 중년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보는 일은 드물다.

일하느라 바빴고, 아이들을 키우느라 바빴다.

가족 모두의 행복이 내 행복인양 그렇게 살았다.

하고 싶은 것도 양보를 했고, 가족을 위해 꿈도 포기했다.

책임감만 중요시 되고, 의무감은 필수였다.

이런 나였는데 중년이 되니 이젠 힘없고, 능력없고, 그저 밀려나는 느낌뿐이다.

 

 

<중년수업>은 이런 이들에게 말한다. 중년의 시간은 오로지 당신,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시간임을 기억하라고.

<중년수업>은 어깨가 축 쳐져버리는 중년의 시간을 즐기기 위한 터닝포인트를 제공한다.

<중년수업>은 이 모든것을 시작하기 전에 중년이라는 나이를 즐기라고 한다.

'하고싶은 것이 없다?' 없으면 굳이 찾지 않아도 된다. 나중에 찾아도 된다.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늦었다?' 절대 그런일은 없다. 내 시간은 내가 주인공이다. 내가 준비되었을 때 준비하면 되는 것이고, 내가 마음을 먹었을때 찾으면 되는 것이다.

 

 

<중년수업>은 피할 수 없는 중년의 나이를 피하기보다는 그 자체를 즐기기를 권한다. 이제껏 앞만 보고 달려온 당신이 어느덧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지는 그때 과연 어떤 것으로 이 지루한 시간을 보내게 되는지 먼저 생각해보는 시간을 줄 것이다.

<중년수업>에서 내가 주인공인 나만의 중년을 재미있는 인생으로 느끼며 살아가는 방법을 들어보게 된다.

'중년'이란 나이를 받아들이기 위해 '나이를 즐기는 9가지' ,

멋있는 나의 중년 인생을 위해 '멋있게 나이 들기 위한 7가지' ,

돈에 얽매여 살았던 인생을 중년이 되어서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걱정을 없애기 위한 6가지'를 이야기한다.

중년의 가장 큰 고민은 바로 고독이다. 나 혼자라는 고독을 이겨내기 위해 '혼자의 아름다움을 위한 9가지'

그동안의 인생이 다른 이를 위해 뛰었다면 이젠 그 시간을 나의 것으로 만들어보는 '지금'을 갖기 위한 10가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이가 들면서 가장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이 건강이지만 건강하기 위해 악을 쓸 필요가 있을까? 건강 유지도 중년답게 해보자.

젠가는 떠날 길, 아름답게 떠나는 법을 알면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집착을 버리기 위한 6가지'에서 좀 차분하게 생각한다.

 

 

<중년수업>은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이것이 젊게 사는 가장 기본적인 생각임을 들려준다.

저자는 이렇게 한마디로 정리한다.

늙은 것은 마음의 문제지. 결코, 외모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은 늙었다고 생각하면 순식간에 늙는다. 걷는 법, 먹는 법, 옷 입는 법, 그리고 피부마저 모두 영락없이 노인이 되어가는 것이다. 사람의 행동은 마음이 지배하기 때문에, 감정의 노화야말로 진짜 노화를 재촉하는 지름길이다(p90)

'중년, 이제부터 진짜 재미있는 인생이 시작된다.'

표지글의 의미를 공감하게 된다.

나 역시 중년의 시간이 바로 코앞에 다가왔다. 아이들이 다 크고 다시 시작해도 될 듯 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주눅이 들고, 기운이 빠지는 일이 있는 차에 <중년수업>은 나에게 딱 맞는 조언을 들려주고 있다.

희망을 갖는 것, 나를 제대로 알고 미래를 계획하는 것, 그리고 나이에 끌려다니지 않는 나만의 중년을 만들어 가는 것.

속 시원한 조언이 좋다.

90세 노인세대, 100세 노인세대를 앞두고 아직은 충분히 뛰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음을 각인하려 한다.

이제껏 살았던 틀 속에서 좌절이 된다면, 평소 내가 눈여겨보았던 분야에서 다시 한 번 새롭게 시작해보리라고 계획을 세워본다.

 

 

중년을 무서워하지 마라.

중년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레짐작으로 축 늘어진 어깨를 만들지 마라.

앞으로 시간은 많고. 세상은 인생의 지혜를 가진 이들에게 고개 숙이게 되어 있다.

인생의 지혜를 담기 위해 당신의 마인드를 넓게, 그리고 차분하게 가꾸기를 <중년수업>에서 찾아보길 권한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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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녀 올 에이지 클래식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지음, 전하림 옮김 / 보물창고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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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을 질투하여 못된 계모에게 쫓기고 죽음까지 당하지만 아름다운 왕자를 만나 행복하게 산다는 백설공주 이야기.

새엄마와 새언니들의 타박과 멸시 속에서도 꿋꿋하게 견디고 멋진 왕자를 만나 아름다운 신부로 거듭나는 신데렐라 이야기.

그리고 하루아침에 가난한 하녀로 전락하지만, 다시 공주처럼 제자리를 찾는다는 소공녀 이야기.

 

독자들은 위의 이야기처럼 아름다운 모습과 마음을 가진 주인공에게 홀딱 반하게 됩니다.

힘든 고통 속에서도 꿋꿋함을 잃지 않는 희망에 독자들은 감탄을 연발하게 되고, 그 와중에도 늘 주변을 배려하는 마음에 독자들은 빨리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하게 됩니다.

 

<소공녀>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가장 먼저 읽게 되는 아름다운 동화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을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해주는 아빠와 그런 풍족함에도 남을 배려하고, 도와주는 작은 소녀 사라의 모습에 독자들은 마치 내가 공주가 된 듯한 행복함을 느끼게 됩니다.

갑작스런 아빠의 죽음으로 욕심쟁이 민친 교장의 심술에 배고픔과 추위에 사는 하녀로 전락하지만 사라의 꼿꼿함은 변함없습니다. 배가 고파도 다른 배고픈 이를 먼저 생각하는 속이 깊은 아이입니다.

고통은 끝이 나지요.

사라의 후견인인 아빠 친구는 병이 들어 몸이 쇠약한 상태지만 온 세계를 뒤져 사라를 찾습니다.

그리고 사라의 따뜻한 마음은 곧 행복으로 다가옵니다.

 

작가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은 <소공녀>란 작품과 함께 '소공자' '비밀의 화원'으로 유명한 작가입니다.

작가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생계를 위한 글을 쓰게 됩니다. 생활은 궁핍하고 힘들었지만, 그녀는 상상 속의 풍요로움과 행복함, 그리고 따스함을 소설 속에서 표현하고 있지요.

늘 추위에 떨고 배고픔에 떨지만 언젠가는 부자인 후견인이 나타난다는 설정은 아마도 작가가 그리워하는 희망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작가와 소설의 이야기는 소설 원작뿐 아니라 연극이나 영화, 애니메이션으로 알려져서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사라가 보여주었던 상상력의 세계는 때론 힘든 역경을 잘 버텨가는 위로. 특히 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독자들이 눈여겨보았으면 합니다.

상상력이지만 행복을 떠올리고 어려운 환경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점은 <소공녀>가 어린이 독자들에게 많이 읽히는 이유 중에 하나 아닐까요?

작가가 어려울 때 상상의 이야기를 들려준 것처럼, 사라가 어려울 때 상상의 이야기로 버틴 것 처럼 독자들도 상상 속의 아름다움을 떠올리면서 좀 더 성장하는 기회를 느껴보길 바랍니다.

 

여기서 잠깐, '소공녀'와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의 정보를 찾던 중에 새국어소식이라는 게재물을 보았습니다.

책을 사랑하는 독자로서 이런 점은 많은 분이 알고 있어야할 정보라 옮겨봅니다.

 

(중략) 이와 유사한 예로 “소공녀(小公女)”를 하나 더 들 수 있다. “소공녀”는 미국 작가 버넷(Burnett)이 지은 소설이다. 그런데 이 소설의 제목으로 쓰고 있는 ‘소공녀’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이전에 같은 작가가 지은 소설 “소공자(小公子)”의 자매편 성격을 띠는 것이라 ‘소공자’의 상대되는 말로 대충 짐작될 뿐이다.

이 작품의 원제목은 “Sara Crewe or What Happened at Miss Minchin's”이다.  그러나 이보다는 “A Little Princess”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이는 1903년 연극으로 각색할 때 새로 바꾸어 단 제목이다. ‘소공녀’는 바로 이 제목을 일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일대일 직역하여 새로 만들어 쓰기 시작한 말이다. “A Little Princess”를 “소공녀”로 번역하는 과정에서는 이 소설이 이전에 번역한 “소공자(小公子)”(원제목은 Little Lord Fauntleroy)의 자매편 성격을 띠는 것이란 점도 고려됐을 것이다.
   ‘소공녀’의 ‘소(小)’는 ‘little’에 대응하여 번역한 것이므로 별문제가 없다. 그러나 ‘공녀(公女)’는 다소 문제가 있다. ‘지체가 높은 집안의 나이 어린 아들’을 뜻하는 ‘공자(公子)’는 우리말에 있지만 ‘지체가 높은 집안의 나이 어린 딸’을 뜻하는 ‘공녀(公女)’는 우리말에 없는 일본식 한자어이기 때문이다. “소공녀”가 쉽게 이해되지 않은 것도 다 이 때문이다. 따라서 이 소설의 제목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일본식 한자어 ‘공녀’가 포함된 “소공녀”로 하기보단 영어 제목 “A Little Princess”를 고려하여 “어린 공주”라 했어야 했다. “어린 공주”, 얼마나 이해하기 쉬운 제목인가?
   이렇듯 지금까지는 “춘희”, “소공녀” 등처럼 음악, 문학 등의 작품 제목을 우리말로 번역할 때 일본에서 한자어로 번역하여 쓴 작품명을 아무렇지 않게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대개 일본어로 번역된 작품을 다시 우리말로 중역하는 과정에서 이런 일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아직도 일부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그런 잘못된 관행에 따라 작품의 제목으로 우리말에 없는 일본식 한자어를 가져다 쓰고 있다. 앞으로 새로운 외국 작품을 소개할 때 적어도 제목만이라도 어려운 일본 한자어를 함부로 가져다 쓰지 말고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우리말을 살려 썼으면 좋겠다. (
새국어소식(2005.08월)에 게재된 것을 발췌합니다.)

 

사실 제목이 굳이 무슨 문제일까?라고 의문하는 독자들도 있겠습니다만, 시절이 바뀌고, 세월이 변하면서 알게 되는 잘못된 부분은 역시 수정하고 변화해야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요즘은 정확한 정보를 빨리 얻을 수 있고, 영어 원문 또한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독자들의 인식과 수준 또한 상당히 높기 때문에 틀린 것을 바로 잡는 일은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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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첫사랑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22
웬들린 밴 드라닌 지음, 김율희 옮김 / 보물창고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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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의 아름다운 사랑,

또는 한 번쯤 경험하는 첫사랑에 대한 설렘은 늘 미소를 짓게 하는 이야깃거리이다.

첫사랑은 지나간 이에게는 아련한 추억이 되고, 첫사랑을 이어가는 이에게는 기쁨 가득한 행복을 주며, 짜릿한 아픔을 주는 감정이다.

아픔도 있지만 설렘을 주는 것 역시 첫사랑의 아름다움이다.

그렇기에 첫사랑은 기다리고 싶은, 가슴 아프지만 오래 기억하고 싶은 그런 달콤함 아닐까?

 

보물창고의 <두근두근 첫사랑>이 아련한 첫사랑의 주인공이 되어보는, 그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청소년 소설이다.

<두근두근 첫사랑>은 사랑을 하는 한 사람의 시선만을 그리기보다는 사랑하는 줄리의 시각과 그저 그런 줄리의 관심이 부담스러워 도망가고 싶은 브라이스의 시각으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알아채지 못하는 양쪽의 심리를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줄리의 앞집에는 브라이스네가 이사를 온다. 동네에서 또래 친구도 없이 지내던 줄리는 또래 아이가 온다는 소리를 듣고 무작정 기다린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 아이를 기다린다. 드디어 그 아이를 만났다. 첫눈에 앞집에 살게 된  브라이스의 파란 눈에 흠뻑 빠져 첫눈에 그 아이를 좋아하게 된다.

그렇다면 브라이스는? 낯선 동네에 이사를 와 그렇잖아도 어수선한데 무슨 괴물처럼 등장한 줄리 때문에 기겁한다.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도 않았건만 진흙투성이의 신발을 신은 줄리는 브라이스에게 일단 들이대고 본다. 정말 질린다. 도망가야겠다.

 

<두근두근 첫사랑>은 이렇게 시작한다.

홀딱 반한 남자아이를 쫓아다니는 여자아이와 그 여자아이를 피해 도망 다니는 남자아이.

똑같은 사건을 두고 두 아이의 시선은 전혀 다르다. 사랑은 그렇다. 전혀 다른 감정으로 시작한 사소한 일이 사랑이 되고, 첫사랑의 추억이 되는 것 아닐까? 아이의 감정은 6년을 이어간다. 좋아하는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시간이 6년이 지나고, 부담스러운데 자꾸 다가오는 것을 피하는데 6년을 보내버렸다.

 

<두근두근 첫사랑>은 미국 4개 주의 청소년 독자들이 직접 선정한 도서상을 수상한 책이고 영화로도 제작된 소설이다. 이렇게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 소설이 두 아이의 첫사랑 감정만 둘러보기 보다는 두 아이의 주변이야기를 통해 두 가정의 이야기도 참 재미있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가족 간의 사랑이 우선이고, 배려가 우선인 따뜻한 식구들의 이야기와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그 뒤에 있는 진심을 알아보지 못하는 가족들의 등장을 통해 독자들은 진심에 관한 느낌까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된다.

오해하는 마음과 그것을 풀지 못하는 두 소년 소녀에게 줄리네집의 지저분한 마당과 줄리의 삼촌, 그리고 브라이스의 외할아버지는 서로 바라보고 이해하게끔 하는 계기도 된다.

 

첫사랑.

정작 나에게 다가온 사랑을 알지 못하지만, 사랑은 정해졌다고 해야 할까?

브라이스의 무심한 행동은 독자를 속상하게 하지만, 줄리가 바라보는 것, 줄리가 생각하는 것을 다시 생각하고 줄리를 바라보게 되는 브라이스의 변화에 독자는 흐뭇하고 짜릿한 첫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사랑과 사람, 설렘과 따뜻한 정을 느끼게 되는 <두근두근 첫사랑>

첫사랑을 찾아가는 줄리와 브라이스를 눈으로 내면의 아름다움을 함께 찾아보는 소설이 될 것이다. 진실한 사랑, 아름다운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을 지키려는 자신감은 바로 자신의 내면에 있는 것임을 청소년 독자들이 함께 느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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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와 만나는 세계 미술 여행 3 - 뉴욕에 가다 명화와 만나는 세계 미술 여행 3
존 맥페일 나이트 지음, 멜리사 스위트 그림, 오숙은 옮김 / 웅진주니어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샬롯은 화가인 아빠와 엄마를 따라 프랑스 지베르니에 살게 된다. '인상주의' 화법을 배우려는 아빠를 따라서 가족이 프랑스로 이주를 해 온 것이다. 19세기 당시 프랑스의 거장들의 그림을 배웠던 미국 화가들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미국의 가장 활발한 도시 뉴욕에서 그림을 그리게 된다. 미국 인상파 화가들은 워싱턴 광장 근처에 살면서 센트럴파크로 나가 인상주의 대표적인 표현인 야외 풍경을 보고 그리는 외광 회화 또는 플레네르 화법으로 그림을 그리게 된다. 미국의 인상파 화가들은 뉴욕 화랑에서 열리는 전시회를 구경하고, 미술 후원자들의 저택에 열리는 가장 무도회에 참석하기도 한다. 그리고 무더운 여름이 되면 대서양 해안을 따라 만들어진 아름다운 예술인 마을로 여행을 떠나곤 한다.

 

<명화와 만나는 세계 미술 여행>시리즈는 1890년대에 살던 샬롯이란 아이를 통해 당시 유행하던 '인상주의' 화가들의 성향이나 그들의 생활, 그리고 그들의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기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샬롯의 일상은 늘 그림과 관련되어있다. 인상파 화가들이 어떤 것을 그리려고 했는지. 당시 인상파 화가들의 유행은 어떤 것이었는지 마치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듯하다.

파리 최대의 화랑을 운영하는 뒤랑 뤼엘 씨를 등장시켜 화가들의 그림을 어떻게 찾아내고 그들을 후원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림을 전시하는기 미술계의 이야기도 들려주고 인상파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센트럴파크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등은 샬롯이 여행지에서 방문하는 느낌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어, 독자들이 그 시절, 그 시간에 함께 여행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책의 후반부에는 샬롯이 뉴욕에서 만난 화가 10여명의 인상주의 화가들과 그들의 작품세계를 설명한다. 간혹 책에서 그냥 보기만 하던 명화를 설명을 곁들여주기 때문에 더 이해하기 쉬운 인상파 회화로 기억될 수 있다. 어렵게 느껴지는 미술세계의 이야기를 샬롯의 친구가 되어 재미있는 미술 공부를 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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