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녀 올 에이지 클래식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지음, 전하림 옮김 / 보물창고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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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을 질투하여 못된 계모에게 쫓기고 죽음까지 당하지만 아름다운 왕자를 만나 행복하게 산다는 백설공주 이야기.

새엄마와 새언니들의 타박과 멸시 속에서도 꿋꿋하게 견디고 멋진 왕자를 만나 아름다운 신부로 거듭나는 신데렐라 이야기.

그리고 하루아침에 가난한 하녀로 전락하지만, 다시 공주처럼 제자리를 찾는다는 소공녀 이야기.

 

독자들은 위의 이야기처럼 아름다운 모습과 마음을 가진 주인공에게 홀딱 반하게 됩니다.

힘든 고통 속에서도 꿋꿋함을 잃지 않는 희망에 독자들은 감탄을 연발하게 되고, 그 와중에도 늘 주변을 배려하는 마음에 독자들은 빨리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하게 됩니다.

 

<소공녀>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가장 먼저 읽게 되는 아름다운 동화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을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해주는 아빠와 그런 풍족함에도 남을 배려하고, 도와주는 작은 소녀 사라의 모습에 독자들은 마치 내가 공주가 된 듯한 행복함을 느끼게 됩니다.

갑작스런 아빠의 죽음으로 욕심쟁이 민친 교장의 심술에 배고픔과 추위에 사는 하녀로 전락하지만 사라의 꼿꼿함은 변함없습니다. 배가 고파도 다른 배고픈 이를 먼저 생각하는 속이 깊은 아이입니다.

고통은 끝이 나지요.

사라의 후견인인 아빠 친구는 병이 들어 몸이 쇠약한 상태지만 온 세계를 뒤져 사라를 찾습니다.

그리고 사라의 따뜻한 마음은 곧 행복으로 다가옵니다.

 

작가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은 <소공녀>란 작품과 함께 '소공자' '비밀의 화원'으로 유명한 작가입니다.

작가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생계를 위한 글을 쓰게 됩니다. 생활은 궁핍하고 힘들었지만, 그녀는 상상 속의 풍요로움과 행복함, 그리고 따스함을 소설 속에서 표현하고 있지요.

늘 추위에 떨고 배고픔에 떨지만 언젠가는 부자인 후견인이 나타난다는 설정은 아마도 작가가 그리워하는 희망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작가와 소설의 이야기는 소설 원작뿐 아니라 연극이나 영화, 애니메이션으로 알려져서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사라가 보여주었던 상상력의 세계는 때론 힘든 역경을 잘 버텨가는 위로. 특히 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독자들이 눈여겨보았으면 합니다.

상상력이지만 행복을 떠올리고 어려운 환경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점은 <소공녀>가 어린이 독자들에게 많이 읽히는 이유 중에 하나 아닐까요?

작가가 어려울 때 상상의 이야기를 들려준 것처럼, 사라가 어려울 때 상상의 이야기로 버틴 것 처럼 독자들도 상상 속의 아름다움을 떠올리면서 좀 더 성장하는 기회를 느껴보길 바랍니다.

 

여기서 잠깐, '소공녀'와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의 정보를 찾던 중에 새국어소식이라는 게재물을 보았습니다.

책을 사랑하는 독자로서 이런 점은 많은 분이 알고 있어야할 정보라 옮겨봅니다.

 

(중략) 이와 유사한 예로 “소공녀(小公女)”를 하나 더 들 수 있다. “소공녀”는 미국 작가 버넷(Burnett)이 지은 소설이다. 그런데 이 소설의 제목으로 쓰고 있는 ‘소공녀’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이전에 같은 작가가 지은 소설 “소공자(小公子)”의 자매편 성격을 띠는 것이라 ‘소공자’의 상대되는 말로 대충 짐작될 뿐이다.

이 작품의 원제목은 “Sara Crewe or What Happened at Miss Minchin's”이다.  그러나 이보다는 “A Little Princess”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이는 1903년 연극으로 각색할 때 새로 바꾸어 단 제목이다. ‘소공녀’는 바로 이 제목을 일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일대일 직역하여 새로 만들어 쓰기 시작한 말이다. “A Little Princess”를 “소공녀”로 번역하는 과정에서는 이 소설이 이전에 번역한 “소공자(小公子)”(원제목은 Little Lord Fauntleroy)의 자매편 성격을 띠는 것이란 점도 고려됐을 것이다.
   ‘소공녀’의 ‘소(小)’는 ‘little’에 대응하여 번역한 것이므로 별문제가 없다. 그러나 ‘공녀(公女)’는 다소 문제가 있다. ‘지체가 높은 집안의 나이 어린 아들’을 뜻하는 ‘공자(公子)’는 우리말에 있지만 ‘지체가 높은 집안의 나이 어린 딸’을 뜻하는 ‘공녀(公女)’는 우리말에 없는 일본식 한자어이기 때문이다. “소공녀”가 쉽게 이해되지 않은 것도 다 이 때문이다. 따라서 이 소설의 제목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일본식 한자어 ‘공녀’가 포함된 “소공녀”로 하기보단 영어 제목 “A Little Princess”를 고려하여 “어린 공주”라 했어야 했다. “어린 공주”, 얼마나 이해하기 쉬운 제목인가?
   이렇듯 지금까지는 “춘희”, “소공녀” 등처럼 음악, 문학 등의 작품 제목을 우리말로 번역할 때 일본에서 한자어로 번역하여 쓴 작품명을 아무렇지 않게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대개 일본어로 번역된 작품을 다시 우리말로 중역하는 과정에서 이런 일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아직도 일부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그런 잘못된 관행에 따라 작품의 제목으로 우리말에 없는 일본식 한자어를 가져다 쓰고 있다. 앞으로 새로운 외국 작품을 소개할 때 적어도 제목만이라도 어려운 일본 한자어를 함부로 가져다 쓰지 말고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우리말을 살려 썼으면 좋겠다. (
새국어소식(2005.08월)에 게재된 것을 발췌합니다.)

 

사실 제목이 굳이 무슨 문제일까?라고 의문하는 독자들도 있겠습니다만, 시절이 바뀌고, 세월이 변하면서 알게 되는 잘못된 부분은 역시 수정하고 변화해야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요즘은 정확한 정보를 빨리 얻을 수 있고, 영어 원문 또한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독자들의 인식과 수준 또한 상당히 높기 때문에 틀린 것을 바로 잡는 일은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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