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드셨어요?"
"먹었지, 지금이 몇 신데 여태 안 먹어.
그런데 울 선상님은 안 먹었나? 어째 목소리가 기운이 없어~!"
차마 졸다가 일어나서 기운이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고,
"당근, 먹었지요."
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이 어매 曰,
"당근을 먹었다고?
젊은 사람이 당근으로 점심을 떼우면 어쩌나? 밥을 좀 먹어야지."
라고 하신다.
울 선상님 또는 젊은 사람이라는 호칭으로 불리운 나는 점심밥을 빵빵하게 먹어주신 후다.
할매, 할배들이랑 하루종일 이러고 놀려면 당근 따위만 먹어선 버틸 수가 없다.
"엄마~, '당근'은 '당연히 먹었다'는 뜻이다.
'당근'을 다른 말로 뭐라 그러는줄 아나?"
"뭔데?"
"말밥."
"뭐라고, 알밥이라고?"
"푸하하하하~, 알몸도 아니고 알밥이라고~?
엄마, 말이 뭐 먹나?"
"당근."
"그러니까 당근이 말밥이라고~!"
내일이 크리스마스 이브니까,
오늘은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어야지 하다가,
h모님이 성탄카드 대신 그림책을 선물한다는 페이퍼를 보았다.
더 이상 무엇이
이외수 지음 / 김영사 /
2016년 12월
그것도 참 좋은 방법이다 싶어, 이리저리 웹서핑을 다니다가 이 책을 만났다.
'더 이상 무엇이'라는 제목으로 '이외수 연애시집'이라는데,
그동안 이외수의 시화집이라던지, 시집 따위를 보면 감성이 참 이뻐서 분홍분홍하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그렇지, 나이 칠십, 옛날로 치면 古來稀라고 할 나이에 '연애시집'이라니 말이다.
'연애'는 '남녀가 서로 그리워하고 사랑함'이라는 말을 담고 있는 반면,
사랑이라는 말은 좀 더 확장시켜 적용 가능하니 사랑 시집 따위의 명명이 낫지 않을까, ㅋ~.
암튼 그동안 이외수가 썼는지 골랐는지, 는 모를 사랑시 47편에다가,
그가 정성스럽게 그린 손그림들을 넣어서,
뜯어 쓸수 있는 그림 엽서 형태라는데, (아이디어 좋고, ㅋ~.)
참 이쁘다~^^
"SNS로 타인과 가까워졌지만 마음의 거리는 더 멀어진 세상에 감성의 연금술사가 띄우는 연애편지. "라는게 출판사 책 소개이다.
저 위의 '당근, 말밥'은 극단적으로 보이지만 내가 오늘 겪은 실화이다.
얼굴을 마주 보고 눈을 맞춰가며 나누는 얘기였고,
호칭은 저렇게 '엄마'라고 했어도 내가 부르기 편하자고 그런거고, 채 60이 안 됐었다.
그랬는데, 파파 할아버지, 파파할머니가 아닌데도 이렇게 비껴가는데,
SNS의 발달로 인하여 과연 타인과 가까워졌는지, 앞으로 가까워질 수 있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지만, 뭐~(,.)
기실, 소싯적엔 이외수의 문장들에 열광했었지만, 언제부턴가 시큰둥이었다.
어린 마음에 읽는 그의 글들은 파격적인 것이 임팩트가 강했는데,
나이가 들어 다시 보니, 책의 내용이나 줄거리는 다른데 그의 어록이라고 해야할까, 명문장들은 그 문장이 그 문장인거라.
살짝 실망을 해주고,
그렇다고 해도 이외수의 문장들은 이 추운 겨울 날 대세이고 진리인 것만은 확실하다, ㅋ~.
벽
제게 이마를 기대고
밤새도록 우셔도 괜찮습니다
바람꽃
태어나서 처음으로
언 땅을 뚫고 올라와
눈 부시도록
새하얀 자태로 피어있는
바람꽃을 보았다
너와 함께 보지 못했으므로
정말 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기부전
젊었을때
사랑도 밥도
굶은 죄밖에 없는데
그게 무슨
큰 죄라고
이제 와서
고개조차 들지를 못하느냐
'발기부전'같은건 '연애시집'의 정서에는 좀 안 어울리지만,
나이 칠십의 그의 기지랄까, 혜안이 엿보이는 것 같아서,
말 그대로 '큭~^^'하고 웃을 수 있었다.
오늘의 '1일1그림'은 '울 선상님 또는 젊은 사람'되시겠다.
쓸쓸하다고 해야 하나, 시리다고 해야하나,
오늘같은 날씨에,
고작 이깟 노래 한곡 듣고 시려죽겠다고 엄살을 떨면,
한겨울엔 어떡할래?
응?
연애시집을 읽고 분홍분홍해지는게 나을까,
아님 감성 발라더의 노래 한곡을 듣고 시리거나 쓸쓸해 죽겠는게 나을까.
두개 다는 안 되는걸까?
바이폴라 소리 좀 들으면 어때?
듣고 말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