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이 좀 독특하여,

읽은 책은 책꽂이에 자리를 만들어 꽂아주거나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거나 하지만,

구입만 하고 미처 못 읽은 책이나 읽었더라도 다시 읽고 싶은 책은,

책꽂이에 꽂지 못하고 방 한구석에 이리저리 쌓아 놓는다.

쌓아놓은 책들이 아슬아슬하게 탑을 이루다가는,

중간에서 읽고 싶은 책을 한권 빼내는 순간 사상누각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성격이 좀 독특하여서...라는 이유로 사람들의 눈총을 간신히 비껴왔는데,

어떻게 하다, 아래 사진을 보구나선 나랑 가까운 이들도 좀처럼 이해를 하려 들지 않는다~--;

 

 

지난 주말 책탑이 무너졌을때,

울아들은 이런 사진을 카카오스토리에 찍어 올리고 '토 나온다'고 딱 한마디 코멘트를 달았다.

왜 읽지도 않은 책을 이리 많이 놔두고, 책을 또 사들이냐고 묻는 이들에게...

"나중에 보면 절판이 되고 없을까봐~--;"

라는 궁색한 변명을 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2012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내 독서 인생에 있어서...새로운 전환점이 되는 한해였다.

그동안 나는 누가 읽던 책, 헌책을  좀 멀리했었다.

그게 아무리 깨끗하더라도, 다른 누군가를 거쳤다는 사실이 좀 그랬었다.

그런데, 내가 참 좋아하는 (그 친구 역시 나처럼 책을 몹시 아끼는) 친구가 소중히 여기던 책을 줬을때의 느낌은 남달랐다.

친구는 '가장'인 것을 주고 싶었는데,

책 말고는 공통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몰랐고,

친구의 '가장'인 것이 나에게도 '가장'이 될지 어떨지 몰라 조마조마해 하는 그 마음...이 내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친구가 건네준 손때 묻은 책들이 내게도 가장 귀한 것이 되어 좋아라 애정해 주고 계신다.

가끔 ‘열하’가 미웠다. 나는 혼자 읽을 때는 이런 생각을 단 한 순간도 한 적이 없지만, 그녀가 온통 책에만 빠져, 나를 무시하고, 나와 운우지락을 나눌 때처럼 흥분할 때, 책이야말로 만만치 않은 연적이었다. 단둘이 있을 때는 책 대신 나만 보라 말할 수도 없다. 책을 질투하는 사내가 세상에 어디 있는가. 이런 내 마음이 때론 우습고 때론 한심했다. 더욱 비참한 사실은 이 책이야말로 너무 멋지고 사랑스러워, 내가 여자라도 매혹당하리라는 것이다. 그녀는 하루에도 몇 번씩 틈만 나면 책과 사귀었다. 깨끗하게 멀찍이 두고 조심스럽게 한 장 한 장 넘기는 식이 아니라 연모하는 사내 대하듯 그 책에 자신의 감정을 옮겼다. 겉표지에 입 맞추고 손바닥으로 쓸고 글자 하나하나를 검지로 만지며 내려가고 옆구리에 끼거나 젖가슴에 댄 채 잠들고 머리맡에 두었다가 새벽잠에서 깨자마자 냄새 맡고 여백에는 검지로 도장 찍는 흉내를 내며, 이 책과 영원히 함께 머무를게요 맹세했다. 그 책에 비하자면 나와의 사랑은 드문드문 허거웠다. 그녀와 나 사이에 책이 낀 것이 아니라 그녀와 책 사이에 내가 불청객처럼 찾아드는 격이다. 내가 슬쩍 책을 서안 밑으로 밀어두기라도 하면 그녀는 냉큼 책을 찾아서 품에 안고 앙처럼 웃었다.
"이 책을 만나기 전에도 분명 저는 살았었죠. 한데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아요. 제삶의 첫 자리엔 이 책이 놓였고, 그때부터 전 비로소 숨 쉬고 걷고 밥 먹기 사작하였답니다.”
내가 들은 가장 아름다운 사랑 고백이었다.(김탁환, 열하광인 상,114쪽)

 

 

 

 

 

 

 

언제부턴가 '책'은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다.

무슨 기념일이나 특정일에 제일 싫어하는 성의없는 선물 1위가 책이라고 했고,

언젠가 우리나라 성인의 월 평균 독서량은 한권 정도 수준이라고 했고,

스마트폰이 나온 지금은 아마 더 줄어음 줄었지 늘어나진 않았을 것 같다.

 

그런 '책'인데,

좋아하는 친구와 '책'이라는 취미가 겹치고,

관심 갖는 '책'의 분야가 겹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감사할 일인데...

그런 친구가 '가장' 좋아하고 아끼고 소중히 여기던 책들을 내게 선물해주며,

딸을 시집보내는 것 같다고 하는데,

내가 그 귀한 딸을 맞아들여 함부로 대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말이다.

 

"사람들이 이걸 알까?"

  아주 미묘한 소리 하나 때문에 밤을 꼴딱 새우는 일이 비일비재한 우리는 원하는 사운드를 완성한 다음 만족스런 표정으로 서로에게 이렇게 묻곤 한다. 정말 우리가 이 작은 부분을 완성하기 위해 밤을 새웠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기나 할까 싶은 것이다.

 "아마 모를 거야. 그런데 몰라도 돼."

 굳이 말하지 않는 한 그 수고를 아는 이는 드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소리 하나 때문에 밤을 새웠고, 소리를 찾았고, 한 뼘 더 성장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즐겁고 만족스럽다.

(이은미, 맨발의 디바, 126쪽)

 

 

 

 

 

 

 

성격이 독특하여,

좀 독특한 독서편력을 가지고 있고...

그 독특한 독서편력을 나 자신도 잘 모르겠는 것이,

때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짬뽕공 같을 때도 있고,

때론 마리앙토와네트처럼 천연덕스러워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 세상 어딘가에 나와 '책'이라는 취미와 더불어 관심갖는 '책의 분야'까지 겹치는

그런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하다.

 

 

그리고 이은미, 그녀가 부러웠던 건 바로 저 구절 때문이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아무도 몰라도...

자신을 알아주는 한 사람이라도, 단 한사람만 있다면...충분히 행복하다는 걸,

이제는 알겠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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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lbert O'Sullivan - Happiness is me and you

When the evening is over
Put your head upon my shoulder
And I'll tell you something
I believe is true
Happiness is me and you

In a world so distorted
Where the worst is best reported
Love may be something
That will see us through
Happiness is me and you

There may be girls that I remember
Who've made me happy for a while
But none of them compare with you my love
How ever hard they all may try

If the bus that we're taking
Has for ages kept us waiting
What does it matter
Even in a queue
Happiness is me and you

There may be days that you'll discover
I'm not the man you think I'm am
But through it all we will recover
Without the aid of any plan

When the weeks turn to hours
And in June it's April showers
I'll tell you something
I believe is true
Happiness is me and you
Happiness is me and you
Happiness is me and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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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3-01-08 19:08   좋아요 0 | URL
보통은 쌓는데, 님은 넓게 펴시는군요.... 책을 잘 버릴 줄 알아야 집이 깨끗해지고 이사가기도 쉬운데, 책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걸 잘 못하더라고요. 전 님만큼 책을 좋아하진 않지만, 버리지 못하는 건 님과 비슷한 듯 싶습니다.

순오기 2013-01-08 23:23   좋아요 0 | URL
책탑도 좋고 글도 좋고 음악도 좋아요~~ ^^
우리가 아직 서재에선 새해인사를 안 나눴네요.
해피새해~ ^__^
책탑 더 이상 쌓을 곳 없으며 작은도서관으로 보내셔요.
절판되면 장기대출도 해 드릴게요.ㅋㅋ

울보 2013-01-09 02:12   좋아요 0 | URL
새해복많이받으세요. 저도 버릴줄도 남줄지도 잘몰라서 나는정말좋아 잘읽었는데. 타인에게가서 홀대받을까봐서. ㅎㅎ

숲노래 2013-01-09 06:28   좋아요 0 | URL
사람이 귀하지 않을 때에는
책도 귀하지 못하지요.

사람을 소중히 모시자면
흙을 소중히 모셔야 하는데,
흙을 소중히 모시려면
나무와 숲을 소중히 모셔야 하는데,
나무와 숲을 소중히 모시려면
해와 바람을 소중히 모셔야 하는데,
우리 나라는... 좀... 거시기합니다.

북극곰 2013-01-09 17:34   좋아요 0 | URL
그러니깐 저게 쌓여 있다가 무너진 거예요?
아드님이 카스에 올린 한마디가 압권입니다. ㅋㅋㅋ

나무꾼님에게 받은 소중한 선물이 있어서
연말엔 꼭 보답해드려야지 했는데,
제가 몰랐던 책이나 신간들을 줄줄이 리뷰로 올리시니
책을 맘대로 골라드릴수도 없고.... 그만 해가 바뀌어버렸어요. ㅠㅠ
그래도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언젠가는! 어케든요! ^-^

감은빛 2013-01-09 18:27   좋아요 0 | URL
저도 책탑을 쌓는데는 일가견이 있습니다.
늘 저는 쌓고, 아내는 허물어 어딘가로 치워버리죠.
그런데 저는 제가 원할때 그 책을 찾지 못하면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거든요.
그렇다고 또 아내를 원망할 순 없는게,
책탑이 여러번 쓰러진 적도 있고, 보기에도 좋지 않으니까요.
스스로 치웠어야하는데, 자꾸 쌓으니까 결국 보다못한 아내가 치우는 거겠죠.

근데 저 사진은 정말 대박이네요!
구석의 기타 두 개도 눈에 들어오네요.

루쉰P 2013-01-09 23:43   좋아요 0 | URL
새해 복 마니 마니 받으세요! 아 근데 요런 걸론 부족하네요 ㅋ 뭐랄까 새해에는 책을 한번 탑을 쌓으면 쓰나미가 오든 허리케인 오든 쓰러지지 말라고 교주력의 파워로 굿을 하겠습니당 ㅋㅋ 아 그나저나 아들의 카카오스토리 문구는 대박이네여 양찰나무꾼님의 말씀 중에 책이 선물로 주면 싫어한다는 이야기 완전 공감해여 -.- 요즘 사람들은 그러더라구여 ㅎㅎㅎ 하지만 전 책 진짜 좋아한답니다 ㅋ 양철나무꾼님이 주신 책 너무나 소중히 잘 간직하고 있어여! 이제 2013년은 전 선물 받은 책 읽기에 도전할려구여! 이것은 선물받은 자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 꼭 읽을께여 반드시 반드시!!! 아 갑자기 필살 결의를 -.- 아자!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