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습관 : 1.행위를 오랫동안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익혀진 행동 방식. 
            2.<심리>학습된 행위가 되풀이되어 생기는, 비교적 고정된 반응 양식.

 

* 중독 : 1.생체가 음식물이나 약물의 독성에 의하여 기능 장애를 일으키는 일.

            2.술이나 마약 따위를 지나치게 복용한 결과, 그것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병적 상태.

            3.어떤 사상이나 사물에 젖어 버려 정상적으로 사물을 판단할 수 없는 상태.

 

그러니까 어제 아주 낯선 장소와 상황에서 눈을 떴다.

그렇지 않아도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해서 고생을 하는데,

낯선 장소와 낯선 상황에서 눈을 뜬다는 것 자체가...뭔가 심상치않은 기류가 느껴졌다.
방의 풍경도 낯설었지만,

내 옆에 누워 있는 인물들도 의외였다.

동생의 딸인, 울보 공주들은 잠잘때 잠투정이 더 심해  내가 하나 뿐인 고모이긴 하지만 한번도 같이 자본 적이 없었다.

방문을 슬그머니 열고 거실로 나가니 거실 풍경은 더 가관이었다.
아빠와 남동생과 남편이 시체처럼 널부러져 있었다.

"아휴~"

하는 탄성의 원인이 그 광경을 보고서 였는지, 내 머리가 흔들려서였는지 확실치 않았다.

화장실을 찾아들던 나는, 때마침 화장실에서 나오던 동생의 처, 올케와 마주쳤다.

"형님, 일어나셨어요?"

평상시 같으면 나를 붙들어 세우고, 거실의 풍경에 대하여 열번은 '블라블라~'거리고도 남았을 올케와 나는 평소 죽이 잘 맞아 '형님'이라는 호칭 대신 언니, 동생하는 사이였다.  

난 채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닭살 돋게 웬 형님?"

하고 의아해 했다.

"어제, 아니 새벽에 형님이 그러셨잖아요."

올케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 심드렁하다.

"언니라고 부르지도 말라고 하셨잖아요!

 언니,동생은 피를 나눈 자매처럼 가까운 사이에나 사용하는 호칭이라고...

 우리 아빠 달랑 마른김에 깡소주 마시게 하는 못된 올케에게 언니로 불리우고 싶지 않다고 그러셨잖아요!"

사태파악을 채 못하고 애먼 눈을 이번엔 껌벅거렸다.

 

"저~언~혀 기억 안나는 거예요?"

나는 '저~언~혀'를 강조하기 위하여 고개를 위아래 끄덕이려다가 골이 흔들려 이내 멈칫거리고는 시선을 돌려 거실을 가리켰다.

"새벽에 저한테 전화하셔서, 울아빠가 마른김에 깡소주를 먹고 있는거 아냐고 하면서 막 우셨잖아요."

"고모부한테는 전화하셔서, 너네 아빠 우리 아빠 하면서 우셨대요."

"내가 초딩이야?"

"그러게 말예요. 아니면 고단수이던가...

 혼자 사신지 6개월밖에 안되는 니네 아빠한테는 왜 자주 연락하라고 하면서,

 평생 혼자 살다시피한 우리 아빠한테는 전화 한번  안하냐고 따지셨대요."

얘기인 즉슨, 엊그제 누군가를 만나러 나갔다가 음주를 해 주셨(?)고,

대부분의 음주는 약한 자와 길치에 대한 배려로다 동네에서 이루어지는데, 아니었나 보다.

귀가 길에 집과 두어정거장 떨어진 친정아버지 댁에 들르게 되었는데,

때마침 심심하셨던 아빠가 마른김에 깡소주를 드시고 계신 걸 보게 된다.

동네방네 전화해서 울고불고 통곡을 하고 난리를 치고는, 혼자서만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잠이 든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새벽에 자다가 전화를 받은 남동생 내외와 남편은 놀라서 달려왔고,

내가 한 얘기가 틀린 얘기는 아닌지라 각자 나름대로 회개와 성찰과 반성을 하고,

술파티를 하다가 저렇게 널부러지게 되었단다.

 

 

그렇게 그렇게...지우개로 깨끗이 지워낸  듯한 머릿속을 이리저리 조각맞추기를 하고 있을때, 이번엔 시아버님이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셨다.

시아버님께서 내 핸드폰 번호를 알고 계시는지 조차 의문일 정도로 한번도 내게 먼저 전화를 하신 적이 없으셨다.

늘상 나를 향하여 말을 많이 아끼신다는 느낌이었고,

며느리를 부르는 호칭도, 박사도 아닌 나를 '서박'으로 부르셨다.

"...속은 좀 어떠냐?"

호칭은 생략하고, 다짜고짜 본론으로 들어가셨다.
"네?...네."

"아범한테 콩나물국이라도 끓여달래서 먹어라. 딸깍."

 

 

"새벽에 사돈어른한테 전화해서 가관도 아니더라...내가 흉내 내보랴?

 아버님, 아버님 하지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아버님, 있잖아요...저희 친정 아빠는 말이죠~

 저희 올케한테 '아가야~'이렇게 다정하게 부르는데 말예요.

 아버님은 왜 저 박사도 아닌데 무뚝뚝하게 서박이라고 하세요?

 아버님은 제가 미우신거죠?"

아빠는 고개를 모로 꼬며 흉내를 낸다.

"아휴, 창피해~ㅠ.ㅠ 그래서?"
"아무리 미워도 대놓고 밉다고 하시겠니?

 역시 선비 집안은 뭐가 달라도 다르더라.

 대대로 선비 집안이어서 가정교육을 엄하게 받아놔서 그렇다...뭐, 그렇게 달래시는 거 같더라.

 넌, 거기다 대놓고...

 아버님, 저희도 양반 집안이예요.
 OO서씨 OO공파 OO대손이요,

 그렇지만 저희 아빠는 올케한테는 '아가야~', 저한테는 '따알~'이러고 부르세요.'이러더라구."

하면서 입술을 실룩거리며 말아올린다.

"ㅎ,ㅎ...아버님이 창피하시다고...형님 또 한번 그러시면, 짐 싸들고 애너벨리(유료 양로원)로 들어가신대요."

올케는 옆에서 깔깔거린다.

남편은,

"너 어제 나 모르는 누굴 만나더니, 뭔가 사줄 받은게 틀림없어."하며 툴툴거린다.

올케는 나중에야,

"언니, 난 술 취한 언니 모습 처음 보지만...그래서 언니가 오히려 인간적이랄까...더 가깝게 느껴졌어요."

라고 한다.

 

가까워지고 멀어지고 따윈 지금 중요한게 아니다.

술을 먹고 필림이 끊기는 건 알콜리즘의 시초이다. 

예전부터 술을 아무리 먹어도 행동이나 자세가 그다지 흐트러지지 않아 사안의 중대성을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다.

술을 끊어야 하는데...이제 끊기엔 술이 너무 달다.

 

습관이나 중독이나 되풀이된다는 점에선 같다.

단지 장애나 병적이나 비정상 상태일태 우리는 '중독'이라고 이름 붙인다.

술이 중독이 아닌 습관이 되게 할 방법은 정녕 없는건가?

 

 

 

 

 

 

 

 

 

 뜨겁게 안녕
 김현진 지음 / 다산책방 /

 2011년 12월

 

몸이라는게, 조금 놀아보면 그 맛을 기가 막히게 알아서 계속 편하게 살려고 그래요. 자꾸자꾸 게으름 피우게 놔두면 막 놀고 자빠지고 싶어 해. 아주 습관이 돼서 놀려고만 드니까 좀 후둘겨 패서라도 움직여줘야 돼요.ㆍㆍㆍㆍㆍㆍ그래야 아 이거 내가 해야 되는구나, 싶어서 하지.(104쪽)


김현진은 지금 알콜 치료 전문 기관에서 치료를 받는단다.

그녀의 책을 읽다보면 술은 술이상의 어떤 것, 이를테면 '소울 푸드'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때문에 중독되지만 않는다면 습관정도는 공존 가능할 것도 같은데 말이다.

 

ㆍㆍㆍㆍㆍㆍ의사선생님은 독을 한 컵 마시나 한 병 마시나 뭐가 다르냐고 대꾸했다. 사실 그 말이 맞았다. 그리고 얼울할 것도 없었다. 평생 마실 술을 지난 십 년 동안 죄다 마셔 버렸으니까. 내 몫뿐이 아니라 평생 술 한잔 입에 대지 않고 살아오신 부모님 몫까지 카드빚 당겨쓰듯 싹 쓸어 마셨으니 끊어도 억울할 것 없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이를 악물고 버틴다. 그 좋아하는 술을 어떻게 끊느냐고, 같이 술 마시고 싶다고 간 크게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고맙기는 한데 사실은, 너무 사랑해서 차마 가까이 갈 수 없는 마음을 아십니까. 이 애절한 마음을.(256쪽)

 

김현진의 '뜨겁게 안녕'의 부제가 '88만원 세대 에세이스트 김현진이 전하는 도시의 힘없는 영혼들에 대한 뜨거운 공감과 위로!'이다.

88만원 세대하면, 우석훈이 생각나고, 우석훈의 새 책 '1인분 인생' 도 나올 예정이란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종류의 수필집이란다, 기대된다.

 

 

 

 

 

 

 

 

  1인분 인생
  우석훈 지음 / 상상너머 /

  2012년 2월

 

 

보람의 의미와 보람의 가치, 우린 그걸 너무 잊고 살아가고 있다. 개인들에게 ‘보람 있는 삶’이 사라진 자리를 ‘보람상조’가 대신 채우고 있는 게 아닌가? 뭘 해야 보람 있는지는, 그거야말로 “그때그때달라요”다.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보람 있는 삶을 살겠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순간, 행복은 파랑새와 같은 것이라는 걸 문득 깨달을지도 모른다. 참 멋진 얘기 아닌가? 집 안에 있는 파랑새를 두고 세상을 헤매고 다녔던 치르치르와 미치르처럼 “돈 좀 원 없이 있으면 좋겠다”고 IMF 이후 10년을 “부자 되세요”를 입에 달고 살았던 우리들은 하마터면 집 안에 있는 파랑새를 굶겨죽일 뻔했다.(193쪽)

 

 지금 즐겁지 못한 삶이 언젠가 즐거울 수 있을까? 지금 즐거운 사람이 나중에 즐겁게 공부할 수 있고, 또 즐거운 일들로 자신의 삶을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지금의 고통을 참는 사람, 그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행복은 그리고 마음의 평온은 그렇게 해서 오지 않는다. 지금 행복해야 나중에도 행복하고, 지금 행복을 찾지 못하면, 영원히 행복을 찾지 못한다. 자신이 고통을 참고 있으므로 남에게도 고통을 참으라고 말하는 사람. 아마 그 사람이 지옥에 먼저 가지 않을까? (2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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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7 1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바람 2012-02-27 20:19   좋아요 0 | URL
자연스럽게 그려주신 풍경이 전 왜 부러울까요?
한번도 그래 본적이 없고 그럴리 없는 옆지기, 그럴리 없는 시댁 그래서 일까요
그런데 그렇게 술을 많이 드셨는데 속 괜찮으세요?

쉽싸리 2012-02-27 20:34   좋아요 0 | URL
흠, 술 자시고 그럴 정도는 좀 걱정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약간 자제하심이...
매일 조금씩? 마시는 것도 좋아요. ㅎㅎ 그러면 습관 됩니다.

2012-02-28 00:12   좋아요 0 | URL
ㅋㅋ재밌게 읽었습니다. 그나저나 저는 위가 넘 안좋아서 알콜릭도 될 수 없는 사람인데 다행인지 불행인지...ㅠ

마노아 2012-02-27 21:59   좋아요 0 | URL
진정 취중진담이었나봐요. 그래도 하고 싶은 말 다 하셔서 조금은 위안이 되지 않았을까요. 아무튼 건강 조심이요!!!

잘잘라 2012-02-27 22:23   좋아요 0 | URL
후후훗. 김동률의 취중진담, 오랜만에 불러봅니다. ♪그래~ 난 취했는지도 몰라~ 실수인지도 몰라 아침이면, 까마득히, 생각이 안나, 불안해할지도 몰라아아앙~~~

프레이야 2012-02-27 23:20   좋아요 0 | URL
헉, 양철나무꾼님 필름이 끊어져 기억이 안 나실 정도면 좀..
그래도 이쁘게 다들 봐 주시는 거 보면 그동안 님이 어떻게 하고 살아오셨는지 감이 오네요.^^
제 동서도 일전에 술 취해 완전 필름 끊기고 난리난 적 있는데 저와 다른 사람 한 명만 그 현장을 똑똑히
기억하거든요. 그래도 동서가 워낙 착하게 잘 해와서 이해하는 쪽으로 기울어졌어요, 제가요.

아무개 2012-02-28 10:13   좋아요 0 | URL
김현진씨 책 읽고 오히려 더 술이 땡겨서...금주중이라는 작가를 꼬드겨서 함께 마시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었어요^^:::
두달정도 하루도 안 쉬고 마셔 본적도 있고, 아닐땐 일주일에 4일 이상 계속 마셔왔는데 이주전쯤 부터 왜인지 술이..글쎄 맛이 없는겁니다. 심지어 엊그제 제 생일엔 생맥주 두잔으로 끝을 냈어요. 왜인지 모르겠지만 술이 안땡기니까...내가 죽을때가 됐나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ㅜ..ㅜ 습관과 중독은 어휘상의 차이일 뿐이지 특히나 술 문제에 있어서는 습관은 곧 중독이 될 바로 아주 바로 전단계라고 생각합니다. 위험하죠.... 저도 술마시거나 책보거나 그게 제 여가의 전부이거든요.그래서 뭔가 몸을 움직이는 활동적인 일을 찾아보려고 노력중이에요.

글샘 2012-03-01 20:40   좋아요 0 | URL
음악이 정말 열정적이고 뜨겁네요. 술마시고 필름 끊어지는 일이야 병가지 상사이거늘... ^^
나중을 위해 고통을 참고 있으라고 말하는 사람... 그래요, 지옥으로 보냅시다. ㅎㅎ

같은하늘 2012-03-06 02:52   좋아요 0 | URL
취중진담~~~~~~
저도 얼마전 무지하게 속상한 일이 있었는데 이 방법을 써 볼걸 그랬나보네요.
만약 그랬다면 우리시어머니는 어떤 반응이 나오셨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