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텔레비젼을 잘 안보는지라, 텔레비젼을 보는 시간을 덤으로 얻는다 싶은 건 내 생각이고...
그리하여 주위보다 반박자쯤 늦는다고 하여 '형광등'소리를 듣고 산지는 좀 되었다.
아들이 유치원 다닐 때,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아이들이 자길 보고 '리틀 옥동자'라고 한다고 하였다.
난 옥동자의 사전적인 의미만 생각하고, '역시 뽀얗고 눈부신 외모를 사람들이 알아보는군' 하고 좋아했었다.
주변의 누군가, 텔레비젼에 나오는 개그맨 옥동자 머리라고 하며 웃지만 않았다면...'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 모드를 고수할 뻔 하였다.
주말에 아들과 같이 나갔다가 아들 친구를 만났다.
아들 친구가 어떤 호칭으로 부르자, 아들은 얼굴이 시뻘개지면서 화를 냈다.
내가 없었다면 한대 칠 기세였다.
아들 친구가 부른 호칭은 '세종 주니어'란다.
세종이라 하면 조선의 왕들 중 성군이었고, 업적도 많고, 독서량도 방대하고, 훌륭하다고 생각하던지라...
'멋진걸~'하였더니, 아들은 더 뾰로통해졌다.
주변에 물었더니, 요즘 텔레비젼에서 방영되는 모 드라마에서 세종대왕이 고기를 왕 사랑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어 화제라는 걸 알게 되었다.
당사자는 기분 나쁠지 모르지만, 솔직히 과한 비유는 아니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난 아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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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 어찌보면 고마운 거네. 니가 고기를 좋아한다는 취향까지 파악해 주고 말야.
니가 고기를 좋아하는 게 사실인데 어쩌겠어, 기분 나쁘더라도 삭히는 수밖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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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문자를 보냈다.
그러자 아들 녀석, 이런 맹랑한 답문자를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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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홍어삼합이에요? 삭히긴 뭘 삭혀요? 홧병들게...
내가 고기만 왕사랑하는게 아니잖아요, 이것 저것 골고루 다 잘먹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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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식성에 관해서라면...우리 아들은 누굴 닮았는지 모르겠다.
미식가에, 절대 미각의 소유자이다.
깔끔하고 정갈한 개성 손맛을 자랑하시던 친할머니와,
맛깔스럽기와 양, 모두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하시던 시어머니의 우성 인자만을 뽑아다 놓은 것 같다.
제일 근접한 사람이 내 남동생이다.
장래 희망도 남동생처럼 조리사이지만, 난 허락하기는 커녕 수긍하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남편은 내 자식을 왜 딴사람에게 떠넘기느냔다.
아들의 식성은 영낙없이 날 닮았으며,
내가 음식에 유난을 떨거나 까탈스럽게 굴지 않은 이유는...
내 입맛이 유난스럽거나 까탈스럽지가 않아서가 아니라, 그동안 입맛에 딱 맞는 음식을 공수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일축해 버린다.
암튼, '세종 주니어'라고 불리우길 거부하는 우리 아들에게 이 책을 권해 보아야 겠다.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11년 9월
이 책은 저자가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그 '조너선 사프란 포어'란 것만으로도 엄청난 이슈가 됐던 그 작품이다.<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그 감성에 흠뻑 매료되었던 나로선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이 책이 논픽션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좀 맥이 빠졌는데, 번역이 껄끄러워서 더 힘들었다.
암튼 읽고 나면 고기 먹기가 불편하다 못해 두렵기까지 하다.
내가,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고기(우리가 먹는 동물의 99% 이상)는 공장식 축산에서 나온단다.
산란용 닭은 펼친 책보다 작은 공간에서 평생을 살고,
닭고기의 80% 이상이 캄필로박터균이나 살모넬라균에 감염된 채 판매된단다.
해마다 인간에게 쓰이는 항생제는 1300t이지만, 가축에게 투여되는 항생제는 1만1000t에 달한단다.
농장 동물들은 초당 40톤의 배설물을 만들어 내는데, 이는 도시 하수보다 160배나 더 환경을 오염시키고 우리의 건강을 위협한단다.
자동차 등을 비롯한 운송 수단보다 약 40퍼센트나 더 많은 온실 가스를 배출한단다
저자는 물론 육식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동물이 살아 있는 동안 합당한 복지가 제공됐다면 먹어도 된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가 또는 우리가 실제로 구입할 수 있는 고기의 99%가 이미 공장식 축산에서 생산된 고기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미 채식주의자이다.
* 그게 무엇인지 확실히 말할 수는 없지만, 고통이란 크고 작은, 날것의 다면적인 모든 신음, 비명, 한숨의 근원에 붙인 이름이라는 것은 안다. 그것이 우리의 관심사다. 그 단어는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는가 보다는 우리의 응시를 정의 한다. (105쪽)
* 나는 고기를 먹지 않기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지만, 그 결정은 한계가 있으며, 개인적인 것이다. 그것은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내 삶의 맥락 속에서 이루어진 서약이다. (253쪽)
* 세계의 식탁에 가족과 앉아 있건, 내 양심과 함께 앉아 있건, 나에게 공장식 축산은 그저 불합리해 보이는 정도가 아니다. 공장식 축산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비인간적으로 느껴진다. 공장식 축산을 받아들인다면, 즉 내 가족에게 공장식 축산으로 생산된 음식을 먹이고, 내 돈으로 공장식 축산을 지탱한다면, 나는 덜 자신다워지고, 덜 우리 할머니 손자다워지고, 덜 아버지다워질 것이다.
"중요한 게 아무것도 없다면, 지켜야 할 것도 없는 법이란다." 라는 할머니의 말씀도 바로 이런 의미이다.(338쪽)
이 책이 나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한 이유는, 문제만 제기하고 별다른 해법이 제시되지 않아서이다.
동물이 살아있는 동안 합당한 복지가 제공된 고기가 아니라면, 채식외에는 별다른 뾰족한 대안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의미를 더 확장시키면 식물이라고 하여 생명체가 아니란 말인가?
그런 의미로 본다면 동물에게 제공되는 복지는 식물에게도 제공되어야 마땅하다.
그랬을때 식물의 입장에서 채식주의자는 마찬가지로 위협적이다.
차라리 '우리 땅에서 난 우리 농산물을 골고루 적당히 먹는다.'가 내 취지엔 맞는다.
그런 책으로는 개신교 목사님이신 '임락경'님이 쓰신 것들이 있다.
쉽고 재밌게 되어 있어 읽고 이해하기 쉬우니, 자연 따라 하기도 쉬워 실생활에 적용이 용이하다.
단, 가끔 삼천포로 새신다.
가끔 틀리거나 잘못된 이론이나 건강 상식들이 있지만...애교로 봐 드릴 수 있겠다, ㅋ~.

*요즘은 친구 만나면 보신탕집 가고, 사철탕집, 영양탕집 찾아간다. 게다가 집에서도 수시로 치킨 사다 먹는다. 그 많은 영양을 우리 몸에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
지나친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
......
골수암 환자가 있었다. 무슨 음식을 평소에 많이 먹었냐고 물었더니 개고기를 끊이지 않고 먹어왔다고 한다.
...... 몸에 좋다고 한 가지 음식을 몇년 동안 계속해서 먹다 보면 병이 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44~45쪽)
*그래도 혈당 수치가 떨어지지 않으면 흥부전에서 치료법을 찾아보자. 놀부는 흰 쌀밥에 고기를 먹고 땀을 흘리지 않아서 당뇨병에 걸렸다. 성욕이 없으니 아들딸이 없었다. 반면 흥부는 잡곡과 채소를 먹고, 땀을 많이 흘려 일하니 아들 딸이 열여섯 명이다. 당뇨병환자들은 흥부가 먹던 음식을 먹으면 된다. 흐니 쌀밥은 놀부, 불고기는 놀부, 잡곡밥은 흥부, 시래깃국은 흥부.....(148쪽)





지금 아들이 맛을 향하여 반짝반짝 빛나는 감성을 지녔더라도, 아직은 더듬이를 그쪽으로 뻗어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감성은 바람에 가끔 나부끼는 깃발이나 맑은 날 가끔씩 내어 말리는 흰 빨래처럼 간직하고 있고, 그 감성에 걸맞게 이성과 지성을 끌어올려 갈고 닦아 주었으면 좋겠다.
맛에 대해서, 반짝반짝 빛나는 감성'만'을 지녔을때 우린 다른 이름으로 '먹보'라고 부른다.
부디 맛을 향하여 감성과 이성과 지성의 조화를 이룰 정도로 연마한 후에, 더하여 감성을 옵션으로 지닌 보석쯤으로 반짝 반짝 계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내 염원에도 불구하고, 어제 아들은 내게 이런 음악을 대답으로 보내왔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