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난 상상의 나래를 펴고, 창작의 열정에 불 지피며 살아온 인물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쓰고 나니 뭐, 대단한 인물이라도 되는 것 같지만...그런 건 아니고, 
난 맛난 음식을 레시피 대로가 아니라 상상력을 동원해서 만드는 걸, 어떤 수예품이나 공예품도 메뉴얼대로가 아니라 내맘대로 만드는 걸 즐긴다. 
그러니까 상상력을 동원해서 손을 꼼지락거리는 게 내가 가진 재능이라면 재능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직업을 그만두면 꿈꾸고 있는 제2의 직업 중 퓨전 음식점과 수예품점 등은 꼭 들어간다.
먹는 것에도 목숨을 거는지라 하루 세끼에 간식, 머릿속에선 늘 먹을 게 떠나질 않으며,
누군가 독특한 디자인의 옷을 입으면 나도 비슷하게라도 만들어볼 욕심에 마음이 분주하다. 

남편은 이런 날 향하여 너처럼 사소한 것에 목숨거는 여자는 처음 봤다며 혀를 내두르지만,
난 어떤 특별하고 대단한 일 말고도, 일상생활을 하기 위해서 행해지는 사소한 일들이 모여 삶이 된다고 맞서고 있다.

남편은 내가 맛집을 찾아다니고, 새로운 레시피에 광분하며, 특이한 디자인에 눈을 반짝거리는 걸 이상하게 생각한다.
(내가 주거에는 좀 약하다.)
남편은 의식주는 삶을 위한 보조 수단처럼 생각하는 사람이다.

때문에 내가 지금 직업을 작파하고 번역 일을 하고 싶다고 할 때도 좋아하지 않았지만,
어떤 것도 구체화되지 않았으니 그냥 넘어가고 있다.
아직 남편과는 음식을 만들어대고, 뜨개질을 하고 하는 것만 갖고 싸우면 된다.
남편은 내가 노동의 댓가로 받는 액수만을 가지고, 고임금 노동력을 그깟것들을 하면서 쓰는 건 낭비라고 툴툴거린다.
 
고임금을 받을 노동력이라고 하여 내가 하고 싶은 음식을 만들고, 뜨개질을 하는 데 쓸 수 없다면...
직업의 개인적인 의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난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하고 만다.
요리를 하고 수예품을 만드는 일 뿐만 아니라,
요리를 하고 설겆이를 하고 수예품을 만들고 뒷마무리를 하고,
그로인해 더러워진 몸을 씻고 지친 몸을 쉬고 하는 그 모든 일들이 모여 나를 이룬다.
삶이란 이렇게 사사롭고 사소한 일상이 모여서 이루어진다.

어제 누구에게 받은 메시지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실은 그동안 내가 하고싶었던 일, 그러니까 꿈이랑 관련하여 슬럼프를 겪고 있었던 것도 맞고, 그래서 그 누군가의 격려가 참 힘이 되고 했었던 건 맞고, 참 고마운 일이었던 것도 맞다.
그런데 그 분 글의 한구절에 어제부터 연연해 하고 있다.(또 예민하다고 한소리 듣겠다,ㅋ~.)  

   
  하기 싫어서 뜨개질이나 와플구이에 눈 돌리는 건지 몰라도 ㅋ  
   

나에게 있어, 뜨개질이나 와플구이는 숨쉬는 것과 마찬가지인 또 다른 일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언제부턴가 내가 하고 싶다고 했던 일, 그러니까 꿈이랑 관련하여 하기 싫어 하거나 움추러 들었었는데 모르고 있었나 보다. 

어짜피, 원더우먼이 될 수도, 원더우먼을 꿈꾸지도 않지 않나?
모든걸 다 끌어안고 뭉개지 말고,
우선 순위를 정하여 포기할 것은 적당히 포기할 줄 아는 것도, 삶을 살아가는 지혜가 아닌가 싶다. 

 

 

 

 

 
현문우답
백성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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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04-22 17:45   좋아요 0 | URL
구구절절 와닿습니다. 그 중에서도 '모든걸 다 끌어안고 뭉개지 말고'는 어디다 모니터 옆에 좀 써붙여놔야겟어요. 히유~ 배고파요. 뭘 좀 먹을때가 됐네요. ㅎㅎ

2011-04-23 1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1-04-22 18:06   좋아요 0 | URL
그래도 작은 일 하나하나가 모여 나를 이룬다는, 꿈이 가득한 양철댁님은 멋져요..
흐린 금요일 저녁이네요. 주말 잘 보내시기를.

sslmo 2011-04-23 10:48   좋아요 0 | URL
쌀쌀한 날씨가 팔뚝에 소름을 돋게 하는데...
그 소름 돋음이 생경하게 느껴져 싫지 않은 아침이예요.
토욜 아침 잘 보내고 계신가요?^^

아참참, 꿈 얘기 하니까 '어느섬의 가능성'이란 소설이 생각났어요.
혹, 님은 읽으셨을 수도 있겠다 싶네요~^^

순오기 2011-04-22 18:33   좋아요 0 | URL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기지 못하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고 하던가요?^^
모든 걸 다 끌어안고 뭉개지 않는 삶에 박수치고 싶어요.

sslmo 2011-04-23 10:44   좋아요 0 | URL
아~그런 말 있는데...박수칠때 떠나라~(이건 아닌가요?(,.))
실은, 하기 싫은 일을 후임자를 못 구해 1년여를 밍기적거리고 앉았다 보니 드는 회의이고 자괴감이었어요~

2011-04-23 14: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23 15: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가방 2011-04-22 21:31   좋아요 0 | URL
(코끼리에게 날개 달아주기)에 이런 구절이 있더군요.
((하고 싶은 일 한가지를 하면서 살아가기 위해, 하기 싫은 일 열 가지를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제게는 공감가는 글귀였답니다.
누군가는 하고 싶은 일 열 가지를 위해 하기 싫은 일 한 가지를 하기도 하겠지요.
하기 싫은 일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원동력이 된다면.. 두가지 일이 공존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sslmo 2011-04-23 10:37   좋아요 0 | URL
이외수님의 글쓰는 스타일이 골방에 가두고 몰아붙이시는 스타일이라죠~
이외수님의 하기 싫은 열가지는 뭐고, 하고 싶은 한가지는 뭘까요?
님의 하기 싫은 열가지는 뭐고, 하고 싶은 한가지는 뭘까요?
한가지, 한가지 맞교환은 안 될까요?^^

첫눈 2011-04-22 22:34   좋아요 0 | URL
저도 한때는 너무 바쁜 일상에 (양철댁님 표현으로는 돈버는 기계^^)
내가 앵벌이쯤으로 생각되던 때가 있었어요 ^^
지금 전업주부 3개월차 들어서니..
통장잔고가 시원섭섭해져서 다시 일해야 할 것 같아요.
앵벌이라기 보다는....시원하게 돈좀 써보고 싶어요.
허리를 너무 졸랐더니 숨쉬기 힘드네요 ^^

sslmo 2011-04-23 10:31   좋아요 0 | URL
저도 전업주부 3개월 차 정도되면 통장잔고가 시원섭섭해질까요?
어쩜 전 3주를 버티기 힘들지도 몰라요~

전 직장에만 매어있다보니...실은 돈 쓸줄도 몰라요.
알라딘에서 책 사보고, 와플기 사고 정도가 다예요.^^

하긴 요즘 전업주부가 아니라도, 허리 띠 졸라매게 하는 세상이잖아요.
어떻게 해야 숨통이 좀 트이려나~ㅠ.ㅠ

루쉰P 2011-04-23 00:06   좋아요 0 | URL
헤헤 저도 사실 와플이나 뜨게질은 아니더라도 그와 비슷하게 광분하는 일이 많아요. 똑같은 소설인데 번역자가 다르다고 수집하는 경우나, 어느 동네를 가도 헌책방은 없는지 한 번 둘러보는 경우처럼요. 물론 이런 부분들에 대해 이해 받기는 힘든데, 그런 부분들이 모여서 저를 만드니 말이죠. 양철댁님의 '꾸준함은 재능보다 힘이 세다'는 말은 정말 공감 100%에요. 사실 살다 보면 무엇인가를 포기하고 가야할 때는 반드시 온다고 봐요. 취사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이 정말 올바른 선택이고 정답이라고는 그 누구도 딱 부러지게 말해 줄 수 없어요. 다 자신이 감수하고 자신이 느끼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타인이 주는 정답 따위 신뢰하지 않아요. 내가 제대로 즐기고 있는가 행복한가! 어떤 불안정한 타인의 눈에 휘둘려 사는 내가 아닌 내 눈으로 세상을 보고 내가 살아가는 그런 인생을 저는 항상 꿈꿔요. ^^

sslmo 2011-04-23 10:27   좋아요 0 | URL
요즘 세계문학전집이 재출간 되는 게 붐 아닌 붐이잖아요~
저는 전작에 비해서 그리 다를 것도 없는 번역으로 이리저리 재출간되는 건...좀 슬퍼요~ㅠ.ㅠ

전 똑같은 소설인데 번역자가 달라서 수집하지는 않고요~
어느 한 번역가의 전작은 꼭 사서 모아요.

그래서 그런 말이 있잖아요~
양손에 움켜쥐고 넘어지면 코가 깨진다아~~~^^

루쉰P 2011-04-23 21:29   좋아요 0 | URL
하기사 전 너무 독특한 체질인 듯, 한 번역가의 전작을 다 사시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궁금하네요. 타당성이 있으시면 저도 양철댁님 라이프 스타일로 변화를 줄려구요. 푸훗.

sslmo 2011-04-24 01:50   좋아요 0 | URL
한 번역가의 전작을 사는 이유는...뭐, 제가 그 번역가를 좋아하기 때문이죠~^^
제가 일상에선 전혀 그렇지 못한데, 책이랑 관련하여선 작가, 번역가에 홀릭하면 물불 안가리는 경향이 있습니다여~

루쉰P 2011-04-26 00:37   좋아요 0 | URL
아 그러시군요. 사실 저도 좋아하는 작가만 사는 독서 취향인지라. 저도 물, 불 안 가리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 몰입해서 그 작가가 쓴 것이 취향이 안 맞을지라도 사 놓고 보는 스타일이죠. ㅋㅋㅋ

sslmo 2011-04-26 01:12   좋아요 0 | URL
몰입하고 물불 안가리는 게 있다는 것, 어떤 의미로는 삶의 활력소잖아요~^^

글샘 2011-04-23 00:53   좋아요 0 | URL
소음인이에요. 소음인... ㅎㅎ
차근차근 발전하는 걸 기뻐하는...

sslmo 2011-04-23 10:23   좋아요 0 | URL
리뷰 하나하나 쓰는 재미,
문학 교실 하나하나 쌓이는 재미를 아시는 님도 소음인?^^
굿모닝이요~


글샘 2011-04-23 19:28   좋아요 0 | URL
꾸준함도 재능의 하나예요. 소음인의 재능. ^^
(뭐, 공자 앞에서 문자쓰는 거 같지만...)
태음인처럼 관계를 중시하는 사람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재능이죠.
아마, 쫌생이처럼 볼 걸요. ㅋㅋ

sslmo 2011-04-24 01:53   좋아요 0 | URL
ㅎ,ㅎ...전 쫌생이가 좋아요.
다투지 않고도 햇살이나 먼지 같은 것들을 넉넉히 품어가질 수 있으니까요~^^

꿈꾸는섬 2011-04-23 16:44   좋아요 0 | URL
전 양철댁님의 사사로운 것에 애정을 갖는 마음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요.
제가 잘 하지 못하는 뜨개질을 잘 하시는 것도 재능보단 꾸준함이었던 거군요.ㅎㅎ
일상의 사사롭고 소소한 것들이 큰 행복을 줄 수 있는거 맞잖아요.^^

sslmo 2011-04-24 01:56   좋아요 0 | URL
꿈섬님의 댓글을 읽으니 제가 왠지 예쁘고 사랑스러운 여자가 된 것 같아서 '우쭐'해요~^^
와플메이커는 벌써 싸서 집어넣었고,
뜨개질은 '엉.뚱.'해야 할 수 있는 것 맞잖아요~^^

마녀고양이 2011-04-23 20:16   좋아요 0 | URL
양철댁, 내가 어제 그대의 꿈을 꿨어요.
아침에 문자 넣으려다 그만뒀지만. ^^
님이 책을 출간했더라구, 그걸 난 31800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구매했는데
글쎄 양철댁 님께서 째째하게 나한테 사은품을 안 줘서 삐지는 꿈을 꿨어요. 아하하.

책을 내더라도, 너무 비싼 책 내지 말아주세요, 알았죠?

sslmo 2011-04-24 02:00   좋아요 0 | URL
공부한다고 해서 두문불출해도 놔두었더니, 홈쇼핑을 너무 많이 본 거 아니심???
왠지 39800원 삘이 나는 것이...

최소 100부, 적어도 10부는 사준다고 큰소리 치더니...겨우 한 권 사은품 갖고 삐지기는~
내가 꿈 해몽을 해보자면 개꿈이심~^^

노이에자이트 2011-04-23 22:34   좋아요 0 | URL
제목이 인상적입니다.누구나 자기 직업이 아니라도 아끼며 소중히 하는 일이 있지요.

sslmo 2011-04-24 02:0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전 자기 직업을 아끼고 소중히 하지 못하는 병폐를 가지고 있어요.'속닥~'

숲노래 2011-04-24 01:50   좋아요 0 | URL
뜨개질, 밥하기, 빨래... 모두 숨쉬기와 마찬가지인, 아니 숨쉬기처럼 아주 마땅한 삶이에요..

sslmo 2011-04-24 02:0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된장님~
마땅한 걸 자꾸 들먹이니 좀 쑥스럽고 부끄러운걸요~^^
전력 질주 후 숨을 몰아쉴때나 숨 쉴 수 있음의 고마움을 깨닫게 되죠.
이렇게 한번씩 일깨우고 각인하는거죠.

BRINY 2011-04-25 09:50   좋아요 0 | URL
네, 네, 꾸준함. 저에게도 절실하게 필요한 덕목입니다.

sslmo 2011-04-25 15:09   좋아요 0 | URL
BRINY님, 안녕하세요~^^
저도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조변석개형 인간이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