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도둑 대도 마이클 피에르 시리즈 1
리처드 도이치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왜 그래?" 
"어깨에 뭐가 묻은 것 같아서." 
"비듬인가?"
"아니, 무슨 부스러기 같은데."
"뭐?" 
마이클은 어리둥절해서는 옷에 거미라도 붙은 듯 몸을 움직였다.
"무슨 부스러기?" 
"심통 부스러기."


하긴 이런 아내라면 목숨을 걸고, 전 인생을 다바쳐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남편이 상처받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남편이 고민을 가지고 그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는 영역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 걸었다는 걸 눈치채고,
그 벽을 부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고, 그때마다 새로운 전략을 구사(33쪽~34쪽)하는, 그런 아내를 위해서라면 말이다. 

뭐, 내 기대가 커서였을 수도 있지만...이 책이 그리 썩 재밌지는 않았다.
먼저 주문한 책이 파본이어서 교환을 했더니, 겉표지가 멋지게 바뀌어 왔다.
위에 살구색 글씨(the thieves of heaven)가 양각처리 되어 도드라졌고, 하늘색 띠지도 두르셨다.
나온지 20일만에 초판 2쇄에 들어가 주셨다니 축하할 일이지만,
백번 양보해도 '댄 브라운을 뒤이은 강렬한 서스펜스의 제왕'이라는 말은 과장되시겠다. 

사실 아내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불의를 정당화하는 남편의 얘기는 구태의연할 정도로 자주 등장하는 단골소재이다 보니, 책의 처음을 읽다가 살짝 맥이 빠졌었다.

책의 처음에서 끝을 미루어 짐작할 수도 있었는데,
그런데도 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던 건 아주 뻔하고 통속적인 내용이 내 주변의 또 다른 나인듯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야할까?
현실과 환상의 세계를 넘나들어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개연성을 잃을 수도 있는 그런 책이었지만, 그렇다고 퉁쳐 버리기에는 아쉬운 뭔가가 나를 붙들었다. 
중반쯤으로 접어들면서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고 감동으로 눈물을 찔끔거렸으며, 급기야 횡격막을 껄떡거려가며 '꺼이꺼이~' 울기도 하였으니 말이다. 
다시말해, 초반의 구태의연함을 견뎌내야 이 책의 숨겨진 보석들을 만날 수 있다.  

내가 이 책이 그저그랬던 이유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애매모호했고 그러다 보니 곳곳에서 개연성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환상의 부족함을 현실의 논리정연함으로라도 메워야 하는데, 대충 얼버무린다는 느낌이 강했다. 

첫부분의 와이어 장면 묘사만 그런대로 봐줄만 하고, 
그의 일터인 보안 업체 장면은 두루뭉술 넘어간다.
그의 친구로 등장하는 부시의 별명 복숭아에 대한 궁금증도 끝에 가서야 나온다.
그가 찬 발찌를 떼어내게 되는 과정에서도,
후반부에 등장하는 여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야기를 얽고섥어 전개시켜 가기보다는, 부연설명을 하느라고 한참을 허비한다.
어떤 부분은 잊혀졌는데 다시 끄집어내 중언부언한다.
이게 대도 마이클 피에르 '시리즈'이기 때문에 필요한 사전포석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모르겠다. 
영화화되고 그리하여 환타지적 요소를 살리면 멋져질 수 있으려나?
 

이 책이 부러웠던 건, 아니,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이 부러웠던 건, 인생이 흔들릴 때 모든 걸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을 가졌다는 거였다. 

그게 아내고 남편이던지, 친구이던지...  

   
  지니는 부시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그녀 역시 말이 없었다. 부시는 이렇게 고된 일과에 시달리다 못해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한 표정으로 퇴근한 적이 셀 수도 없이 많았다. 지니는 이럴 때 그를 몰아붙여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부시가 스스로 말을 하고 싶어 하면 조용히 들어 주는 것이 그녀의 역할이었다. 가슴속의 응어리를 꺼내 놓고 나면 한결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지만, 때로는 그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릴 엄두를 내기까지 몇 주, 때로는 몇 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부시가 지니를 사랑한다는 사실, 그리고 지니 역시 마찬가지라는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서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292쪽)  
   

 

   
  전화를 받은 부시는 지금 이 술집의 소음과 맞먹는 크기로 2분 동안 쉬지 않고 고함을 질러 댔다. 마이클은 묵묵히 그 2분을 견녀 냈다. 상처 입은 가슴은 달리 기댈 데가 없었고, 인생의 그 어느 순간보다 친구가 필요했다. 부시는 신뢰와 믿음과 우정 그리고 진실과 배신과 거짓에 대해 고함을 질러 댔다.(284쪽)
 
   

나는 어떤가 돌이켜보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든 걸 털어놓을 마땅한 대상이 없어서...내 인생은 흔들리면 안되는 건가?
흔들리지도 못하는 인생이 더 무서운 건 아닐까?

한군데 딴지를 걸고 싶었던 부분~

'널따란 서재는 수천 권의 책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마이클은 어떤 책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주의였다. 이 서재의 주인은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239쪽)'   

아무리 죽을똥 살똥 책을 읽어도 일년에 백권을 읽기가 힘든 나로 미루어,
어느 일정한 양을 넘어서는 서재를 발견할때는...
가지고 있는 책으로 그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알 수 있게 되는 건 무리다.
어느 양을 넘어서는 순간, 가지고 있는 책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리저리 가지를 뻗어서... 
우후죽순이 되니까 말이다. 

다시말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책만으로는 그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는 데서 오는 일종의 자조이다. 
선입견에 사람을 가두지 말자, 내가 요즘 된통 당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ㅠ.ㅠ 

이렇게 끝내면, 저런 제목이 어떻게 나왔나 갸우뚱할 수도 있겠다.
모든걸 털어놓을 마땅한 대상이 없어도, 신의 존재를 믿으면 아무 상관없단다. 
다아~~~괜찮단다.(신의 존재를 믿어라, 종교를 가져라, 는 내 몫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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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3-08 09:29   좋아요 0 | URL
아하하, 자기 페이퍼를 읽으면 말이지
어떻게 하면 말투를 살짝 시니컬하면서도 묘하게 이쁜 느낌이 나게 만드는지
참 희안하단 말이징... 크크.

서재 보면 그 사람을 살짝 들여다볼 수 있다에 난 공감 한표요~ 흐흐흐.

양철나무꾼 2011-03-09 01:24   좋아요 0 | URL
ㅎ,ㅎ,ㅎ...시니컬한 거 그거 좋은거 아닌건데...
시니컬하면 멋지지만 우리말로 바꾸면 냉소적인 거잖우~
난 따뜻하고 넉넉한 웃음이 좋더라~~~
살갑게 다가가 붙잡고 부비부비 쪽~이것도 좋고...
난 긍정적이고 따뜻하고 넉넉한 웃음으로 바꾸고 싶어여~ㅠ.ㅠ

잘잘라 2011-03-08 11:14   좋아요 0 | URL
저는 첫인상에 사람을 가두는 편~ ^^
근데 그게 저보다 나이 많은 분들한테서는
첫인상에서 받는 느낌이 단순하지가 않아서
가두고 싶어도 가둘 수가 없어요.

그나저나 궁금해요.
양철나무꾼님이 된통 당한 사연~ ^^

양철나무꾼 2011-03-09 01:31   좋아요 0 | URL
저는 첫인상이나 선입견 말고도...
내 맘대로 사람을 파악해 버리는 나쁜 버릇까지 가지고 있어요.
다시말해, 그 사람이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만 보지 않고,
그 사람이 감추고 싶어하는 걸 끄집어 오픈시켜 버리죠.
헤집고 휘저어 상처를 만들어 놓고는,
오픈시켜야 상처가 덧나지 않는다고 하죠~

이쯤되면 된통 당한 게 이제와서인게 놀라운 일이죠~ㅠ.ㅠ

순오기 2011-03-08 14:10   좋아요 0 | URL
다빈치 코드의 댄 브라운 이름을 팔아 마케팅을 시도했군요.^^
서재를 보고 그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지 않을런지...

양철나무꾼 2011-03-09 01:36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예요, 댄 브라운도 호오가 분명해서 포지티브 마케팅은 아닐거란 생각이 들어요~^^

이 동네 서재는,서재 만이 아니라 서재에 쓴 글을 같이 읽기 때문에 조금은 짐작 가능한 일이구요.
제가 요즘 잘 꾸며진 서재를 종종 보게 되는데 말이죠.
책꽂이에 꽂혀진 책의 양과 독서량과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있습니다여~^^


따라쟁이 2011-03-08 16:37   좋아요 0 | URL
남편이 고민을 가지고 그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는 영역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 걸었다는 걸 눈치채고, 그 벽을 부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고, 그때마다 새로운 전략을 구사(33쪽~34쪽)하는 그런 아내는 못 될 것 같고.. J군은 그걸 조금도 정말 바라지 않더라구요.

그런 사람이 되어주고 싶은 상대는 있어요. 하지만, 전략이 썩 성공적이지는 않더라구요. ㅠㅠ

양철나무꾼 2011-03-09 01:43   좋아요 0 | URL
저는 부부 사이에도 (마음 속으로라도)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있고, 자기만의 방으로 들어가는 것까지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데요.
문을 닫아거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문을 닫아거는 순간, '열려라 참깨'같은 주문을 하나 더 외워야 하잖아요~

저는 이렇게 말로는 잘 아는데,
남편이 나를 향하여 닫아걸면 안달하고 못 견뎌하는 타입이라서 말이죠.
어르고 달래고 빌어서라도 일단 문을 열고 볼 것 같아요~^^

책가방 2011-03-08 16:53   좋아요 0 | URL
대부분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는 있어도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는 영원히 없을 것 같아요. 제가 엄청난 비밀을 하나 갖고 있거든요.ㅋ

양철나무꾼 2011-03-09 01:47   좋아요 0 | URL
그 엄청난 비밀을 갖고 계시다는 걸...영원히 비밀로 하셔야 할 듯~
머리로는 이해해도 막상 닥치면 엄청 서운하잖아요~

전 이럴때 익명의 공간이 도움이 되더라구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칠 수 있는 대나무 숲 정도~?^^

글샘 2011-03-08 21:55   좋아요 0 | URL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는 데서 오는 일종의 자조이다.
요렇게 짐작할 수 없는 것이 마음과 영혼인데, 자조스럴 것까지야 없지 않습니까? ㅎㅎ
뭐, 나는 나니까 말이죠.
쟤의 서재에 뭐가 있든, 조금 부러울 순 있어도,
쟤랑 내가 다르다 생각하고 삽니다. 저는요...

양철나무꾼 2011-03-09 01:59   좋아요 0 | URL
예를 들어 이런 거였어요.
누구네 집에 갔는데 서재에 제가 좋아하는 장르소설이 한가득 꽂혀있는 거예요.
넘 반가운 마음에, 눈을 반짝거리며 이것저것 물어보게 됐죠.
반응이 영 신통치 않은거예요, 급기야 남편이 사모으는 책들이야...이런 대답이 돌아오더군요.
몇 부 안 찍어내는 관계로 나중에 몸값을 올리기 가장 좋은 책들이라네요~ㅠ.ㅠ

또 출판사 사장님들도 책은 전혀 안 읽고 경영에만 목숨거는 분들도 계시구요~

제 멋에 겨워 살면서도...종종 잊어버려요~
'나는 나니까'도 좋고, '나는 나예요, 상관말아요~'도 힘이 되네요~^^

모름지기 2011-03-09 02:41   좋아요 0 | URL
'많이 읽어라, 하지만 많은 책을 읽지는 마라'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씀이 생각나네요.^^
냉소적 카리스마, 나무꾼님의 북피를 향한 중독성..
마고님말씀에 공감 둘이요~~

양철나무꾼 2011-03-09 13:14   좋아요 0 | URL
벤자민 프랭클린, 참 멋진 말을 했는걸요.
외워뒀다가 써먹어야 겠어요~^^
'북피를 향한 중독성'이란 말뜻 모르겠어요.'속닥'
님도 서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죠???

cyrus 2011-03-09 10:07   좋아요 0 | URL
저도 타인의 서재를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나 독서 취향을 알 수 있다는데,,
예외도 있는거 같아요,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반대되는 성향의 사람들도
있었거든요 ^^;;

양철나무꾼 2011-03-09 13:16   좋아요 0 | URL
제 얘기가요~
예외가 너무 많은 게 바로 책이고 사람인 거 같아요.
그래서 이런 말도 있잖아요.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

아이리시스 2011-03-11 01:53   좋아요 0 | URL
저는요, 책만 많고 그래서 내가 알 수 없는 사람이 될까봐 읽은 책은 족족 팔아치우고 있어요. 머리에 남아야지 책이 남으면 소용없다, 이러면서.ㅋㅋㅋ

양철나무꾼 2011-03-11 02:04   좋아요 0 | URL
저는 읽은 책은 책꽂이에 자리 만들어서 꽂구요.
안 읽은 책은 바닥에 덩치로 쌓아놔요.
예전에 책을 엄청 아껴서 다른 사람 빌려주거나 주는 거, 꿈도 못 꿨던 일인데요.
요즘은 가끔 한번씩 책꽂이 정리도 해요~^^

이박사 2011-03-21 23:26   좋아요 0 | URL
오잉 겉표지가 어떻게 바뀌었나요? 전 예전에 구해놓아서...(아는 분과 교환하는데 그 분이 읽고 재미없었다며 미안해 하시면서 주셨다는...) 이번에 읽을 참입니다. 이 책에 대해서 그나마 우호적인 서평은 처음이라서 반갑네요. 이제 막 읽을 참이거든요. 이 책을 시작으로 문학수첩이 분권을 하지 않기 시작했답니다. <살인자의 진열장> 이 분권으로 나와서 망했었는데... 후속작인 <악마의 아이>는 1권으로 나왔지요. 펜더개스트 시리즈가 계속 나와줬으면 좋겠네요. 이제 분권수첩이라고 안부르고 사랑만 주기로 다짐해봅니다.

양철나무꾼 2011-03-23 00:20   좋아요 0 | URL
없었던 띠지도 생기고 표지도 양각처리 되고 그랬어요.
커다란 변화는 아니지만...신선했어요.

타이거타이거와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쟁여놨어요.
타이거타이거는 7년만에 초판 2쇄고,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은 초판 7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