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석원'의 '먼동'
"저 멀리 밤하늘에는 작은 별들이 총총하고 당나귀는 섬에 올라서서 장미꽃을 지고 있지요.당나귀는 몸집이 작지만 고집이 세고 힘도 세서 척박한 곳에서 잘 삽니다.그놈은 공연히 힘이 센 바람에 무거운 짐을 자초하는 것 같아요.얼굴이 참 매력적이라 그리기 시작했는데,내가 당나귀를 닮았다고 남들이 말하더군요.내가 닮고 싶은 모습이 당나귀이기도 하죠.저도 당나귀처럼 힘든 게 있습니다.장손이라 남달리 꿋꿋함을 강요받기도 하고......꽃은 그런 당나귀에게 주는 아찔한 선물 아닐까요.순간순간이 다 감동이라 느낄 때가 있는데,화려한 장미꽃은 그때 가장 어울리는 선물입니다."

책 세권을 동시에 읽었다. 

나는 책을 빨리 읽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책 세권을 거의 동시에 읽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책 세권을 어제,오늘 사이에 읽었다.
물론 정독이나 통독 수준은 아니고 슬렁슬렁 넘기는 수준이었지만 말이다.

1.꽃피는 삶에 홀리다. 














난 손철주의 글을 좋아한다.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그림 보는 만큼 보인다>를 통하여 그의 필력에 흠뻑 취했던 터였다.

내가 아는 지인이 있다.
이 사람을 거의 일주일에 5일,매번 한시간 정도 만난다.
내 일에 상대방이 하는 말을 들어주는 것도 포함되어 있는지라 상대방이 얘기를 하게끔 유도를 하는데,이 지인은 아무런 자극 없이도 이야기를 술술 잘 풀어놓는다.
고백하자면 어떤 날은 이 지인이 오는 게 기다려질 정도였다. 

그런데 웬 걸...오늘 손철주<꽃피는 삶에 홀리다>를 읽다가,
이 지인이 해 준 얘기 중 참 많이 손철주의 이 책과 겹친다는 걸 알게 됐다.
순간,마음이 '철렁'도 아니고 '쿵'하고 내려앉았다.
 
한참을 그러고 앉았다가 마음을 수습하고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다행이다.
그래,더 이상 홀릭하기 전에 이쯤에서 '딱!'끊겨서 다행이다.
(난 한번 빠져들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인간이 아니었던가~ㅠ.ㅠ )

우리는 중늙은이다.이야기는 남녀상열지사로 치닫다가 금방 회한의 나락으로 떨어진다.저 젊은 여자들의 물오르는 푸르름을 뒤로하고 우리는 조락한다고 했다.청춘은 축복이고 여자는 은총인데,축복과 은총을 넘보는 우리의 눈길은 추파라고 했다.닿을 수 없는 것은 아득한 것이 아니라 머쓱한 것이라고 했다.(18쪽)

 

불문곡직하는 직설은 사람을 찌른다.깜짝 놀라게 해서 제압하는 방식이다.거기 비해 완곡함은 뜸을 들이면서 애두른다.듣고 읽는 이가 비켜갈 큼을 준다.그렇다고 완곡함이 곡필인 것도 아니다.잘못된 길로 접어들도록 하는 게 아니라 화자와 독자의 교행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준다.곱씹어볼 말이 사라지고 상상의 여지를 박탈하는 글이 군림하는 세상은 살풍경하다.말과 글이 세상을 따라갈진대 세상을 갈아엎지 않고 말과 글이 세상과 함께 아름답기는 난망한 일인가.아마 아닐 것이다.막힐수록 옛것을 더듬으라 했다.물태와 인정이 극으로 나뉘는 세상에서 다산은 선인들이 왜 산을 바라보며 즐기되 그 흥취의 반을 항상 남겨두는지 궁금했다..그는 미인을 만났던 사람이 적어놓은 글에서 그 까닭을 발견헸다.그가 본 글은 이러했다."얼굴은 아름다웠으나 그 자태는 기록하지 않는다."(23~24쪽)

 서정주의 시<뻔디기>를 읊는 과정도 누구는 서글프다고 하고 누구는 처연해서 아름답다고 한다.

예수의 손발에 못을 박고 박히우듯이
그렇게라도 산다면야 오죽이나 좋으리오?
그렇지만 여기선 그 못도 그만 빼자는 것이야
그러고는 반창고나 쬐금씩 그 자리에 부치고
뻔디기 니야까나 끌어달라는 것이야(44쪽) 

 

부시의 말은 잽도 없다.불문곡직,스트레이트 펀치다.
......
그의 말에 미국인은 통쾌할까?엉킨 삼밭을 단칼에 베는 쾌감이 혹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섬세의 정신'은 보이지 않는다.씹히는 여운도 없다.갈 데까지 가버린 말로선 등돌린 사람과 말길 트기 어렵다.말의 절정을 즐기려고 해도 전화가 필요한 법이다.
말본새가 일도양단인 걸 보면,그는 폭탄주도 잘할 것 같다.폭탄주의 진수는 원샷에 있다.단숨에 들이켜는 광경은 보는이를 장쾌하게 만든다.그러나 그것을 '음미'라고 부르진 않는다.자고 나봐라.속만 쓰리다.(52쪽)

 

나는 알 것 같았다.마라톤 완주는 한 적이 없지만 달리는 나에게 펼쳐지는 풍경은 기억한다.죽을 힘을 다해 한 발짝씩 옮기는 마라토너에게 스쳐가는 풍경은 아무런 부축이 되지 못한다.달리는 자에게 풍경은 무자비한 침묵이다.추호의 위로도,일말의 동정도 보여주지 않는다.풍경은 마라토너의 고독을 뼈저리게 한다.달리는 자들끼리의 맹렬한 소외감도 무섭다.그때 스쳐가는 풍경은 아름답다기 보다 서럽다.빈사의 상태에서 보이는 풍경은 그러나 서러워서 아름다운 것이다.달리는 자의 살인적인 지루함과 고단함,이를 지켜보는 풍경의 무서운 침묵.침묵을 이기지 못하는 인생은 낙오한다.그것이 마라톤의 본색이다.(88쪽) 

 

나는 약 안 먹고 버티련다.삶은 고치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다.그것이 직방이다.(99쪽) 

 

옛 화가는 붓으로 달을 그리지 않는다.구름을 묘사해 달을 드러낸다.동양화의 달은 안 그려도 보인다.그림 속의 달을 보듯 나는 가난을 본다.이 말을 요즘 아이들은 어렵다고 한다.(103쪽)

 지인을 딱 끊겠다고 하고 돌이켜보니,햇수로 꽉 채운 4년이다~ㅠ.ㅠ 

2.한시미학산책 














이 책은 옛날에 한번 읽었었다.
한참을 두고 띠엄띠엄 읽었었는데,읽었던 기억마저 사라져 버렸었나 보다.
내가 닮고싶어 하는 누가 '정민'을 좋아한다고 했던 게 떠올라 구했는데,
첫 페이지를 펼치자 어렵게 읽었던 옛날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이규보의 '논시(論詩)'도 읽어볼만하고,
이규보의 '축시마(逐詩魔)에 이은 '최연'의 축시마(시 외에 아무것도 눈에 뵈는 게 없는 현상이다)를 보며 여러 증상들을 자신에게 비추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네가 오고 나서 술이 어리 취한 것 같고,바보가 된 듯 멍하게 신음하고 구슬퍼하며 병든 사내가 되고 말았다.네게서 벗어나려고 일 년 내내 애를 썼지만,너를 떠나려고 산에 올라가면 너는 어느새 나를 따라 노닐고,바다로 들어가면 너는 어느새 나를 찾아내고 말았다.사물과 만나서는 눈길로 쏘아보며 많이 취하고도 그만두지 않았다.내 이목의 총명함을 빼앗아 보고 듣는 것을 어지럽게 만들었다.쑥대머리가 되어도 빗질하지 않고,마음이 거칠어도 다스릴 줄 모른다성글고 게을러 의논을 자초하고,교만하고 건방져서 허물을 불러들인다.칭찬은 여러 사람의 뒤에 있고,꾸짖음은 다른 사람의 앞에 있게 하니,내가 굶고 내가 가난한 것이 모두 너 때문이다.(269쪽)

 나는 이렇게 슬쩍 바꾸고 싶다.
내가 굶고 내 맘이 가난한 것이 모두 네 덕이다.

17자 시,16자 시의 변용도 재미있다.

마음은 말없는 가운데 있어              意在不言中
고개를 푹 숙이고 눈웃음 짓네.         低頭丢眼風
오늘 만약 옷지 못하게 되면             今日來不得
난 몰라                                                    紅   

끝부분, 연암의 <답창애2>는 내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연암은 과감하게 '다시 눈을 감아라'라고 얘기하고,정민도 그렇게 얘기한다.
나는?
나라면 장님이 눈을 떠 천지 사물이 맑게 보인다면, 
다시 눈을 감고 집을 찾아가는 대신 새로운 길을 개척하겠다.
뜬 눈으로 보는 세상의 천지사물을 흠뻑 보고 느끼고 새로운 길을 가겠다.
뭐,그렇다는 얘기이다. 

정민은 유독 '이규보'를 사랑했나 보다.
이 규보의 문장들이 가득이다. 

3.미르몽의 원더풀 트위터 라이프 













이 사람은 1만 팔로워를 거느린 상위10위 안에 드는 트위터란다.
난 이곳 알라딘 서재만 건사하기도 버거운 고로,당분간 트위터를 할 일은 없을 듯 하지만,
(하긴 사람일은 또 모르지...)
7개월만에 1만 팔로워를 거느렸다는 건,뭔가 대단한 듯 해 읽어보게 되었다.
책장은 술술 잘도 넘어간다.
알아서 책장이 쉬이 넘어가는 건 그렇다 치겠는데,
튀윗이 뭔지 모르니 이렇게도 쉬이 책장이 넘어가는구나,ㅋ~. 

<트위터 예절10문10답>이라던가,<팔로워를 늘리는 비법>등은 블로그에도 비슷하게 적용되는 예인 것 같다. 

결론적으로 팔로워를 늘릴 수 있는 요령을 정리한다면,먼저 나를 매력적인 대상으로 소개해 놓고,상대에게 먼저 다가가며,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그러나 팔로워를 늘리기만 하고 이를 통해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큰 착각이다.팔로우는 명함을 주고받는 행위와 같다.즉 관계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는 뜻이다.팔로우를 받았다고 해서 관계를 진전시키는 것을 게을리한다면,오히려 관계를 맺지 않는 것만 못 하게 된다.나를 주목하지 않는 팔로워가 수천,아니 수만이 있다 한들 그 무슨 소용이 있으랴.공허한 숫자만이 남게 될 뿐....따라서 다음과 같은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진짜 팔로워를 늘리는 비법'으로 마치고자 한다.
진짜 팔로워를 늘리는비법.팔로워들에게 성심과 친절함으로 다가가라.(309쪽)

 

여러가지 천기누설 급 비법이 담겨져 있다는 데,나름 유용할 듯~^^


양다리를 걸치는 사람은 어떻게 그럴 수 있나 모르겠다.
실상 세 남자를 만난 것도 아니고,
세 남자가 쓴 책 세권을 동시에 읽었을 뿐인데도 머릿 속이 뒤죽박죽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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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11-07 18:50   좋아요 0 | URL
<꽃피는 삶에 홀리다>에 실려있는 글들은 바늘처럼 저를 찌르네요. 좋은 책을 소개받았어요. 그런데 왜 나무꾼님께서는 그 지인을 딱 끊으시려고 하세요?

양철나무꾼 2010-11-09 00:50   좋아요 0 | URL
'꽃피는 삶에 홀리다'도 좋고,손철주님도 좋아요.^^
묶기도 하고 끊기도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죠~
말은 이렇게 해도 쉽지 않을거예요.

비로그인 2010-11-07 18:51   좋아요 0 | URL
앗 맨 위 그림.

어제 읽던 책 <예술가들의 대화> 에 실려 있는 그림이라 눈에 익었는데 여기서 다시 보게 되네요 ^^

한국화를 전공했으면서도 유화로 작업하는. 두 작가들의 대화식 구성으로 되어 있는 책 내용을 살펴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기도, 약간의 의문부호도 머릿속에 떠올리며 읽었습니다.


음.. 한시에 대한 양철님의 생각도 재밌고 양철님이 전하시는 천기누설도 꽤 재밌네요. 저도 트윗은 당분간(세상이 자꾸 떠밀면 언젠간 해야겠지만..) 안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암튼 거리가 있겠지만요 ㅋ

양철나무꾼 2010-11-09 00:55   좋아요 0 | URL
사석원의 그림,너무 좋아요.
손철주가 얘기하는데,사석원의 그림을 일컬어 '카드그림'이라고 비하하는 사람도 있었대요.
그래도 굴하지 않고 꿋꿋히 그림을 그렸다죠.
금강인가(?)따위의 그림도 참 좋았어요.

다 맘에 들어 하나쯤 데려다 키웠음 좋겠는데,다 <개인소장>이라네요.
도록이라도 알아보려구요~^^

프레이야 2010-11-07 20:04   좋아요 0 | URL
꽃피는 삶에 홀리다, 매력적이네요.
특히 마지막 인용문이요.
그나저나 이틀에 3권, 아무리 슬렁슬렁이라도 대단하시네요.
전 그게 잘 안 되더라구요.ㅎ

양철나무꾼 2010-11-09 00:56   좋아요 0 | URL
위의 두권은 전에 정독했던 책들이구요~
마지막 권은 뭔말인지 모르니 술술~넘어가더라구요.^^

쟈니 2010-11-07 21:44   좋아요 0 | URL
닮고 싶어하시는 분이 멋진 분이신가 봅니다. '정민'님의 책을 이제 막 읽기 시작했어요. "19세기 조선 지식인의 생각 창고 - 홍길주의 수여방필 4부작" 양이 두툼해서 아마 다른책도 읽으면서 이 책을 읽을 거 같은 느낌이 듭니다. 예전에는 한문 서적에 크게 마음이 동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많이 끌리네요. 한시미학산책 맘에 품어둡니다. 월요일이 시작하네요~ 한주 즐겁게 시작하세요!

양철나무꾼 2010-11-09 01:00   좋아요 0 | URL
닮고 싶어하는 분,쫌 멋지죠~^^

정민님도 좀 멋진데,책을 다시 내면서 번역을 대대적으로 손 보셨더라구요.
우리말 문장이 지난번보다 더 입에 달라붙어요.
우리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전 힘들고 바쁜 월요일이었답니다~^^

감은빛 2010-11-08 01:01   좋아요 0 | URL
한번에 세 남자를 만나시다니. 재주가 좋으신대요.
<한시미학산책> 좀 끌리는 군요.

양철나무꾼 2010-11-09 01:00   좋아요 0 | URL
뭣 모르고 한번은 만났는데,두번은좀 힘들 듯~^^

'정민'님이 대세인걸요~!!!

oren 2010-11-08 14:39   좋아요 0 | URL
[정민의 세설신어]라는 신문 칼럼을 보고 참 글이 좋다 싶었는데, 이 분의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군요. 저도 언젠가 한 번 사서 읽어봐야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양철나무꾼 2010-11-09 01:02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저도 좀 놀랐어요.
정민님을 참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는군요.

좋은 글이라고 칭찬해주셔서,감사합니다.^^

세실 2010-11-08 23:58   좋아요 0 | URL
저두 꽃피는 삶에 홀리다 매력적인 제목이 참 끌려요^*^
저도 알라딘 관리하기도 벅차서 트위터는 생각도 안하고 있지만 또 모르죠. ㅎㅎ

양철나무꾼 2010-11-09 01:04   좋아요 0 | URL
손철주님,참 선비같이 한량같이 사는 분 같아요.
이분이 이렇게 살 수 있는 건...책 곳곳에 드러나지만,부인의 몫이 큰 것 같아요~^^

저,이 책 읽으면서 손철주님에게 황홀해 하지만 말고,
남편을 손철주 같이 만들 수 있도록 내조의 묘를 운용해야 겠다,생각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