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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언젠가 배철수가 '나이 마흔이 넘은 사람은 세상을 욕해서는 안 된다.그 나이쯤 되면 세상이 이 꼬라지가 된 것에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얘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언제나 청춘일것만 같았던 나도 마흔이 되었다.
방황하는 청춘들과 시대를 나누어 쓰는 중년이 되었건만,
나는 시대가 이 꼬라지가 된 것에 대한 책임을 느끼기는 커녕,
나 자신의 자아 정체성으로 혼란을 겪고 버거워 하는 상황이다.
나의 청춘은 아날로그로 기억된다.
이 책에 나오는 것처럼 핸드폰 대신 전화나 공중전화를 이용 했고,
E-mail이 아닌 학보에 레포트지를 둘러 편지를 보냈으며,
블로그가 아닌 갈색노트에 일기를 썼다.
이렇듯 이 소설은 나의 청춘을 관통하면서 쓰여져 백배공감을 하며 읽을 수 있었지만,
정작 이 시대의 청춘인 그들이 읽으면서 이 책의 시대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소설 속의 인물들(윤,명서,미루,단)과 윤교수는 또 다른 나와 내 주변의 모습이기도 했다.
민주화운동,독재에의 항거,명동성당에서의 단식투쟁,연이은 사람들의 실종사건,군대간 이들의 의문사,최루탄과 화염병,교수들의 시국선언과 퇴직과 사표...이 모든 것들을 나는 고스란히 겪었다.
아니 이것들이 나를 통과하였다.
사랑에 실패한 청춘들의 이야기로 읽었을 땐 칼날에 베인 듯 가슴이 아렸는데,
다 읽고 되뇌니 그런 청춘들을 이끌었던 윤교수의 분투기로도 읽힌다.
그래서였을까?
사랑에 실패한 영혼을 바라보는 게, 가슴 아픈 일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들의 상처를 보금어 안을 수 있었던 윤교수에게 무한 애정을 느꼈고,
급기야 나도 윤교수처럼 늙어가야 겠다 싶고,
이 시대의 청춘들도 윤교수 같은 중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바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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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마냥 희망적이지만도 않았다.
책을 읽는 내내 안타깝기도 했는데,
"오오~그러는 거 아냐.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 끼리 그러는 거 아냐~"
이 말은 해주고 싶었던 적이 여러번 있었다.
깻잎을 떼어 올려놔 주는 장면에서 였는지,아욱국을 끓여 셋이 함께 밥을 먹는 그 장면이었는지는 모르겠다.
8년만에 전화해서 '내가 그리로 갈까?''내가 그리로 갈게.'라고 얘기하는거나,
100여년 된 시인의 글귀,
천오백년 전 사람들이 돌로 박아 그린 그림 등,
이런 시간을 넘나드는 질문과 화답은 어쩜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비행기가 너무 빨라 몸이 먼저 집에 왔을 뿐이라고.영혼이 비행기의 속도를 따르지 못해 지금 돌아오고 있는 중이라 몸살을 앓는 것일 뿐이니 영혼이 뒤따라 도착하면 나을 거라고.'
'머릿 속 생각을 손이 방해하지 않을 정도는 됩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그냥 바라보면..."따위는 '초코파이'선전할 때나 가능한거라는 걸 알겠다.
염화시중 처럼이나 난해하다.
'좋아해,정윤'
'윤미루 만큼?'
'작은 참새를 손에 쥐고 있을 때...그때의 그 기쁨만큼...'
'윤미루만큼?'
'형들이 참새를 구워서 돌려줬을때...그때의 그 슬픔만큼...'
'윤미루만큼?'
'친구들과 처음으로 참새구이를 먹었을때...그때의 그 절망만큼...'
이 구절이 이 책을 통틀어 가장 기뻤고,슬폈고,절망스러웠다.
나는 그럼에도 손을 내밀 것이고,
누군가가 내미는 손이 있다면...
그 손이 얼음처럼 차가와 화들짝 놀란다 하더라도,그 손을 맞잡을 것이다.
관계는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오고,소통은 따뜻함의 다른 이름이다.
작가의 말을 통하여,
"이 소설에서 어쩌든 슬픔을 딛고 사랑 가까이 가보려 하는 사람의 마음이 읽히기를, 비관보다는 낙관 쪽에 한쪽 손가락이 가 닿게 되기를, 그리하여 이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언젠가'라는 말에 실려 있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꿈이 읽는 당신의 마음속에 새벽빛으로 번지기를.....(378쪽)."
라고 말해주어...나는 이책이 고맙다.
이 시대의 청춘들만 등장하는 게 아니라,
청춘보다 앞서간 이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나아갈 방향을 보여줌으로 내가 따를 수 있게 해주어서...이 책이 고맙다.작가가 고맙고,윤교수가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