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고등학교때 국어선생님을 참 좋아했었습니다. 
아니,좋아하는 줄 알았었습니다. 

국어선생님은 대학졸업 후 처음 오신 학교가 저희 학교였었고,
처음 담임 맡은 학급의 반장이 저였죠. 
철이 좀 늦게 들어서 책만 파던 아이였던 저는,
뭐,솔직히 첫눈에 그 분이 좋았다거나 그런 건 없었습니다.
전 학교 안팎의 행사 여기저기에 불려 다녔었고, 
그런 곳에 신참 선생님이 따라붙은건, 
어른들의 시선엔 당연하게 보였겠지만,
아이들은 '얼레리 꼴레리'하며 눈을 흘기더군요. 

근데,선생님이 쪼콤 멋졌던 건 인정해야 할 것 같아요. 
얼굴은 큰손의 사위가 되어 세간을 시끄럽게 했던 탈렌트 누군가를 닮았었고, 
디스코 바지에 발목부츠를 신는 등 옷 입는 센스도 우리들 기호에 딱이었죠. 
체육대회 날 검정폴로티에 흰 진바지를 입고 운동장을 누비는 모습은 한마리의 얼룩말을 연상시켰으니까요. 

이 국어선생님이 그렇게 저에게 글을 쓰라고 하셨었습니다. 

근데,그해 가을 선생님이 결혼을 하시게 됩니다. 
선생님과 '얼레리 꼴레리'라고 했던 아이들에겐 굉장한 이슈였고,
전 순식간에 순애보의 주인공(?)이 되었죠.
 
신혼여행을 다녀오시고 신고식을 하던 날이었습니다. 
왜 애들이 신혼여행 첫날 밤 얘기를 들려 달라고 조르잖아요.
그때 선생님은 이런 조건을 내거셨었어요.
"상아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첫날 밤 얘기를 들려주겠다." 
상아의 노래를 들어본 적도 없을테니,부를 수는 더 더욱 없으리라고 생각하셨겠죠.
그때 제가 벌떡 일어나서 '상아의 노래'를 불렀고,
첫날 밤 얘기를 들으면서 한시간 땡땡이 칠 수 있었죠.
    <상아의 노래>
바람이 소리 없이 소리 없이 흐르는데
외로운 여인인가 짝 잃은 여인인가
가버린 꿈속에 상처만 애달퍼라
아아아 아아아아 못 잊어 아쉬운
눈물의 그날 밤 상아 혼자 울고 있나

가버린 꿈속에 상처만 애달퍼라
아아아 아아아아 못 잊어 아쉬운
눈물의 그날 밤 상아 혼자 울고 있나 

그리고 2학년이 되었고,그 선생님과 마주치고 싶지 않아 이과를 선택했죠. 
대학을 졸업하고,
전공을 밑천 삼아 어찌어찌 밥벌이하고 무난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글샘과 마기님의 글들을 보고,그때가 다시 떠오르는 것이 감회가 남다르더군요. 
그동안 글을 쓰는 것과는 아주 멀어진 삶을 살아 오고 있었지만,
제 안에는 그런 욕구가 계속 꿈틀거리고 있었나 봅니다.

다들 나름대로의 이유로 이곳에 블로그를 꾸미겠죠. 
제 경우엔 인생의 2막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싶어서 였습니다. 

제 인생의 2막에서 전 장르소설 번역가가 되고 싶습니다.
장르소설,이쪽 분야가 아주 열악하여 제대로 된 번역이나 번역물이 나와주기 어려운 현실이거든요.
그런 계획을 갖고 있는 저에게 이 곳은 여러모로 배울 게 많은 곳입니다.


어려운 용어,시뮬라르크,시뮬라시옹을 지금부터 한번 써먹을려구요. 
인터넷에서의 관계는 좀 애매한 것 같아요. 
현실은 아니죠.그렇다고 가상이라고 할 수도 없구요.

글샘님과 마기님의 관계가 어떻다 하더라도 이 곳 인터넷에서의 관계일 뿐이죠. 
전 이 두분의 선생님과 제자의 관계가 참 좋아보였습니다.
아울러 이 관계가 이 둘에 의해서가 아니라,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정형화 될까봐 참 조마조마했었습니다. 

제 입장에서 보자면,글샘의 시 특강은,
개략적으로 한번 보고,구체적으로 파고들어 분석하고,그 둘을 적절히 아우르고 하는 것이,
제가 번역을 하는 데 있어서 해야하는 작업과도 너무 닮아 꼭 필요한 것으로 하나라도 놓칠 수 없는 것이거든요. 
마기님의 경운,문체에서 영향을 받는다고 봐야 하는데,
이 분이 가지고 계시는 비트는 힘은,어떤 때는 냉소의 모습으로,어떤 때는 유머의 형태로 표출되더군요.

제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를,
저의 고등학교 시절에서 찾으셔도 좋고, 
인생의 2막과 관련하여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제 입장은...뭐,커밍 아웃하고 제대로 도움을 받고 싶어서 입니다만~. 
글쓰기 관련,번역 관련 어떤 책을 보고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 지,
또 제가 쓴 글들에서 뭘 고치고 손봐야 하는지,알려주고 귀뜸해 주시면 고맙고 달게 받겠습니다.

하지만,'그냥 하던 일이나 하지...','그 나이에 뭘 새로 시작한다고...'
이런 비난은 사절입니다.
아니,싹 무시하겠습니다. 

마기님이 답시를 쓰셔서  글샘의 시 특강이 계속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시작된 글이 너무 늦고 너무 길어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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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윤기'의 <대숲의 주인이 되다>
    from 양철나무꾼 2010-08-02 02:44 
    대숲의 주인이 되다 일금 7천원에 산 대나무 한 그루가 3.5년 만에 숲으로 자란 세월의 기적 35년 전 이를 알았더라면 내 인생의 ‘2부 순서’는 얼마나 황홀했을 것인가 ▣ 이윤기/ 소설가·번역가 20대, 30대, 40대, 50대를 살고 있는 연하의 친구들을 위해 이 글을 쓴다. 마음에 사무치는 바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쓴다. 사무치는 바가 있다면 내 연하의 친구들이 맞을 40년, 30년, 20년, 10년 뒤의 겨울은
 
 
꿈꾸는섬 2010-07-19 17:34   좋아요 0 | URL
오~~멋져요. 인생의 2막을 준비하신다는게 정말 멋져요.^^
근데 상아의 노래, 전 처음 봤어요. 어떤 노래일까 궁금해요.^^

양철나무꾼 2010-07-19 22:40   좋아요 0 | URL
궁금하다셔서,가져왔지만...하품하실수도~^^
가사랑 순애보와의 연관관계를 살펴주셔야 하는데...ㅋ~.

꿈꾸는섬 2010-07-19 23:42   좋아요 0 | URL
송창식님이 부른 노래군요. 양철나무꾼님이 어찌 불렀을까 제 맘대로 상상해요.^^
양철나무꾼님 너무 친절하세요.ㅎㅎ 노래 잘 들었어요. 그 옛날 국어샘이 좋아하실만 하셨겠어요.

양철나무꾼 2010-07-20 10:05   좋아요 0 | URL
해맑게 감정이입 안하고 동요처럼 불렀습니다.
지금도 모든 노래의 동요化,이건 자신 있습니다여~ㅋ.

비로그인 2010-07-19 21:52   좋아요 0 | URL
양철님과 저, 하이파이브 하자는 글이로군요?!
으음~~
어느정도 번역을 해보신 경험이 있으시다면...원서와 여러가지 번역서를 같이 비교해보시는 것도 도움이 되겠죠.
으윽~~간단한 번역 알바를 한 적이 있었는데, 진짜 장난이 아니더만!!!
울 양철님 홧팅!!!!

양철나무꾼 2010-07-19 22:42   좋아요 0 | URL
저 고딴 어려운 말은 모르고라~
서로 윈윈하자는 얘기죠~^^
도랑치고 가재잡고...ㅋ~

라로 2010-07-19 23:21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도 예사로운분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는데,,,역쉬!!
아는게 없어 번역에 대한 도움을 못드려 죄송하지만, 님의 새로운 출발에 화이팅을 외칠께요~~~.

양철나무꾼 2010-07-20 10:09   좋아요 0 | URL
예사롭지는 않은데,좀 예스럽죠?^^

번역이라는게...번역할 언어만 제대로 하면 되는게 아니고,
전방위 '예''술'이기는 라더라구요~
어려울수록 도전하고자 하는 무모한 똥고집을 가지고 있어서요.
님의 화이팅을 제 맘대로 번역하자면..."날아볼까?...오우~케이!"

글샘 2010-07-22 21:43   좋아요 0 | URL
음...이 글을 읽고 나니... 잠수를 타고 싶다는 욕구가 목구멍을 넘어 숨구멍을 콱, 막는데요. 시뮬라크르... 마기님과 제가 특강을 하고 답시를 쓰고 하는 광경을 보고 이런 상황을 짚어 내셨군요.
맞아요. 마기님은 제 진짜 제자도 아니고, 제 특강이 그렇다고 마기님 한 분만 읽으시라고 하는 것도 아니긴 합니다만, 처음 시작은 정말 마기님을 위한 특강이었다구요.^^ 제가 마기님 정말 좋아하거든요. ^^
저도 실제 수업에서 그렇게 열강을 하지도 못하는데요, 오히려 알라딘에 쓰는 특강이 더 열강이 되는 거 같은... ㅋㅋ 시뮬라시옹...을 체험합니다.
그러다가 마기님이 콜! 하셔서... 네 번까지 왔는데... 밑천이 딸린다는... ㅠㅜ

제 글이 도움이 되셨다면... 특히 하시고 싶은 일을 불끈 하시고 싶도록 불을 지폈다면, 마기님과 저한테 한턱 쏘시죠? ㅎㅎㅎ
님의 새로운 출발에 무한한 존경의 마음을 담아 박수를 보냅니다. 꼭 출발하실거죠? ^^

양철나무꾼 2010-07-20 10:35   좋아요 0 | URL
신라 김수로왕의 후손이심?
김수로왕의 부인이 배타고 인도에서 왔다던가 했던거 같은데...ㅋ~

제가요,아가미가 퇴화하여...쫓아 잠수하여 특강 들을 수 있는 신체조건은 안되는데 어쩌죠?

번역료가 장당 4000원이라고 하는데,거품이 좀 있어서...아직은 한턱을 낼 수준이 결코 안되는고로~
만수무강 하셔야 합니다.언젠가는 꼭 한턱 낼 날이 있을겁니다.꼭요~^^

글샘 2010-07-20 20:41   좋아요 0 | URL
전 까먹는 법이 없습니다. '언젠가는' 적어 놓겠습니다.

마녀고양이 2010-07-20 10:12   좋아요 0 | URL
나무꾼님.... 역시 역시... 멋질줄 알았다니까.

그런데, 국어선생님의 결혼이 나름 맘에 아팠나봐여? 이과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게.. ㅋ
인생의 2막. 환경의 손길에 의해 어느 정도 선택당해 살았으니, 이제 2막은 하고픈 것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을 저도 합니다. 우린... 정말 비슷한 생각을 하는군요! 쪽!

양철나무꾼 2010-07-20 11:06   좋아요 0 | URL
국어선생님의 결혼이 맘 아팠다기보단...
제가 갑자기 순애보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 싫었어요~
때문에 '상아의 노래'를 불렀던 걸,나름 순애보의 주인공이 되길 거부하는 투쟁쯤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 이 페이퍼 쓰면서...님 생각이 나서 울컥 했었는데,
그 이유가...언젠가 따라쟁이님 페이퍼에 뭔가 댓글을 썼었는데,
그때 장르소설을 쓰신다고요?하고 덧글을 달아주셨어요.
그때 속으로 귀신인갑다~했어요.

사람은 누구나 그런 거 같아요~
아니,저는 저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무한 애정을 느낀답니다~^^

같은하늘 2010-07-20 17:41   좋아요 0 | URL
이렇게 멋지신 분을 제가 진즉 몰라뵜네요.^^
서재에 들어오면 너무 훌륭한 분들이 많아서 저도 뭔가를 해야할 것만 같아요.
근데 너무 오래 방콕해서 뭘 해야 할까나? -.-;;;

양철나무꾼 2010-07-20 20:58   좋아요 0 | URL
많은 분들이 저의 무한한 가능성(미욱한 현실)에 응원을 해 주셔서 용기백배입니다.
같은하늘님,감사합니다~^^

루체오페르 2010-08-29 11:19   좋아요 0 | URL
여학생들의 선생님에 대한 로망은 남자들이 볼때는 뭔가 신기하기도 하고 낭만적이기도 하고 그렇습니다.ㅎㅎ

2막, 지금부터 대나무를 심고 계시니 분명 대숲의 주인이 되실 겁니다. 아자!

양철나무꾼 2010-08-30 16:50   좋아요 0 | URL
ㅎ,ㅎ...감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