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레 먹힌 꽃나무에게
-이성복
나도 너에게 해줄 말이 있었다
발가락이 튀어나온 양말 한 구석처럼
느낌도, 흐느낌도 없는 말이 있었다.
아, 너도 나에게 해줄 말이 있었을 거다.
양말 한 구석에 튀어나온 발가락처럼
느낌도, 흐느낌도 없는 말이 있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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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을 늘 편한 걸로 신는 습관이 있어서
스타킹을 사기보단 양말을 사는 편인데
많이 걸어서 그러지 양말이 쉽게 뚫어지는 것 같길래
지난 겨울에는 아예 똑같은 양말이 세트로 들어있는 것으로 장만을 했다
내 서랍 속에 가지런히 들어 있는 회색 양말을 보면 마음이 이상해진다
양말들은 서로를 기억할까?
같이 포장되어 한 켤레씩 들어 있을 때 짝이었던 양말이 보고 싶을까?
만약 내가 짝을 잘못 골라 신으면 기분 나빠할까?
뭐, 이런 쓸데없는 생각이 많이 드는 편인데
어느 날인가
양말을 휙 뒤집어 벗는데 엄지발가락 쪽에 구멍이 난 게 보였다
엄마 같으면 전구 넣고 기워주셨을 테지만 바느질에는 영 소질이 없기도 하고,
당겨서 꿰맨 자리가 불편하기도 해서 과감히 그걸 버리기로 했다
한 짝을 버리고 나니 짝 맞춰 뭉쳐놓은 사이로
한 짝만 쓸쓸하게 남아 있는 게 너무 안쓰러워
돌돌 말아 두 짝이 있는 것처럼 해주었다.
그 양말은 기뻤을까?
제 몸이나마 따뜻하게 감싸 안고 있었으니....
봄이다.
예전에는 새싹이 움트면서 초록빛이 나무를 휘감는 걸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그 움직임에 나도 맞춰 괜히 기운이 나곤 했었는데
나이가 든 모양이다. 봄인데 괜히 서럽다.
구멍 난 양말에 비죽 나온 발가락처럼 괜히 몸이 움츠러들고
내 정신도 움츠러든다
누군가가가 내 양말을 나 몰래 버린 모양이다.
쓸쓸해서 내 몸을 도르르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