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큰>은 흥미로웠다.

리암 리슨의 눈빛이 마음에 들었고, 딸을 향한 애틋한 사랑도 좋았다.

자동차 추격신이나 격투신도 흥미진진했지만.

하지만 딸을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는 하나

사람들을 무차별하게 마구 죽이는 행위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부상만 입혀도 될 일을 복수를 위해 다 죽이다니.

마치 <라이언 일병 구하기> 때와 같이 목에 걸린 뭔가가 내려가지 않고 계속 남아 있다.

라이언 일병을 구하기 위해 수많은 병사들을 희생시키고,

킴을 구하기 위해 갖은 범법과 살인을 마다하지 않고도 유유히 빠져나가는 아버지를 보는 건 찝찝하다.

딸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모든 아버지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은 뻔한 일이지만

기운 넘치는 람보보다는 뭔가 좀 부족하고 서툴러도 법을 지키는 한도 내에서 활약하는 아버지를 보고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인신매매범을 두둔하자는 건 아니다.

그래도 똑같은 행동을 하는 건 나도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라는 걸 보여주는 셈이니

정의실현이라는 미명 아래 무늬만 다를 뿐 똑같은 옷을 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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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4-27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미류나무님..메피스토입니다.^^
저도 저 영화를 보면서..와 저렇게 다 쓸어버려야 하나 했는데..
영화를 보고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아마도 아버지의 전직이 전직이니만큼
후환발생이 전혀 발생하지 않을 "멸절"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싶더라구요.
살려뒀다간 언젠가 자신뿐이 아닌 자신의 딸에게도 분명 걸림돌이 될만하니까요.
그래도 통쾌한 영화 속에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부인할 수 없더라구요..

미류나무 2008-04-24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메피스토님 ^^
그래서 저도 생각했답니다. 딱히 뭐라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래서 아버지 직업을 그렇게 설정한 거구나. 너무 작위적인데? 이러면서요..ㅎㅎ 하긴, 그래야 그림이 되긴 하겠죠? 굉장한 걸 기대하고 보는 영화가 아니니까 우리는 즐긴 것으로 만족을 해야겠죠?
 

복슬복슬 탐스러운 하얀 털에, 얌전하고 조용한 성격.

그 무리 뒤를 조용히 따르는 자그마한 체구의 양 모는 강아지 한 마리.

그리고 풀밭과 나른한 고요.

이런 것들이 내가 양을 떠올릴 때 함께 따라오는 이미지들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본 양은 마구 엉킨 듯한 잿빛 털과 무시무시한 먹성

먹을 때 드러나는 아랫니의 음험한 기운과 엄청한 냄새로 숨쉬기가 힘들었다.

현실과 상상은 이렇게 차이가 많이 난다.

어떤 것들은 그저 상상으로 그치는 게 좋을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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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을 떠도는 벌 한 마리

- 이윤학

 

 가을도

이젠 얼마 남지 않았다,

생각하고 있는데

벌 한 마리

좁아터진 방,

유리창을 떠돌고 있다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날갯소리

그 터는 소리, 유리창을 잔뜩 물들인 햇볕,

보다 넓은 감옥을 보기 위해, 가끔

열곤 하는 저 유리 창문

열어주고 싶지 않다

 

저러다, 언젠가, 창틀에서

우연히 발견되겟지 하면서,

날갯소리 나는 곳을 바라본다

 

벌은 악착같다,

유리창에 바짝 붙어 있다

항문을, 침을, 안으로 오므리고

무수한 날개로 유리창을 치고 있다

 

**

어제 다시 꺼내 읽은 아지즈 네신의 <당나귀는 당나귀답게>라는 책 속에는

'위대한 똥파리'가 나온다.

집안에 갇힌 젊은 파리 한 마리가 아직은 훤한 밖으로 나가기 위해 유리창으로 열심히 돌진하자

다른 파리들은 어리석은 행위라고 끝까지 말리지만 젊은 파리는 아무 것도 안 하고 앉아있는다고

뭔가가 바뀌지 않는다면서 끝까지 유리창에 부딪히기를 되풀이한다.

그러다가 글도 읽을 줄 아는 우리의 젊은 파리는 그집 아들 녀석이 펼쳐 놓은 책속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유리창을 뚫고 지나가기 위해선 광속과 같은 속도가 필요하단 걸 읽고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유리창으로 돌진하다 결국은 납작하게 짜부러지고

다른 파리들은 그런 젊은 파리를 자유를 위해 싸운 위대한 파리로 부르자고 한다.

아지즈 네신은 사회풍자로 유명한 사람이니까 깊이 보면 냄새가 물씬 풍기지만

그런 건 제쳐두고,

벌 한 마리를 못 나가게 잡아두는 이윤학의 손짓에서 젊은 파리가 연상되었다는 말이다.

자유를 찾아 투쟁한다기보다는 그냥 본능적인 거겠지만

두 녀석이 어쩌면 그렇게 악착같이 나가려고 기를 쓰는 건지.

누군가가 가두어둘수록 발버둥치는 건 동물들의 공통된 습성인가보다.

아이들도 그렇고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자유를 갖기란 젊은 파리의 경우처럼 참 어려운 것일뿐더러

자유를 찾는다해도 그걸 지켜나가기가 어렵다.

사는 건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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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 에드워드 윌슨 지음, 사이언스 북스 펴냄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책이지만

왜 그리 말이 많은지 한 번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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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갈의 아이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11
낸시 파머 지음, 백영미 옮김 / 비룡소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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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신문에서 조그맣게 난 기사가 눈길을 끌었는데 한 산모가 자연분만하라는 조산원의 말만 믿고

출산예정일이 한참 지났는데도 뱃속에서 아이를 그대로 키웠다가 산소 부족으로 사산했는데

법원에서는 아이가 출생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므로 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뭐 그런 기사였다.

엄마 뱃속에서 열 달을 다 채우고 갖출 건 다 갖춘 상태인데도 산도를 통해 나오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니, 인간 복제를 허용하는 건 문제도 아니겠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갖게 한다.

 

아일랜드라는 영화에서는 인간 복제가 현실화된 미래 세계를 그리고 있는데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또다른 자신의 장기를 이용하면서

결국 또다른 나를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은 채 희생시킨다.

<전갈의 아이> 마크도 마약왕인 '엘 파트론'의 클론이다.

모든 클론들이 합법적으로 태어나자마자 (암소의 뱃속에서 자란후 꺼냈다는 게 맞는 표현이지만)

뇌를 손상시켜 거의 지능이 없는 채로 살아가다가 때가 되면 주인의 장기를 대체하게 되지만

유일하게 엘 파트론의 클론들은 누릴 수 있는 한 모든 것들을 누리며 살게 된다.

마크도 정상적인 교육은 아니지만 교육을 받고 요리사인 셀리아의 지극한 보살핌을 받지만

알라크란 가문의 모든 사람들, 그에 속한 하인들에게 동물과 같은 대우 속에

자신은 과연 누구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그러다가 경호원인 탬린에게서 클론과 엘 파트론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고

마침내 엘 파트론이 죽었을 때 셀리아와 탬린의 도움으로 도망을 친다.

그리고나서 험난한 여정 끝에 다시 돌아온 알라크란가에는 놀랄 일이 마크를 기다린다.

 

머리에 칩을 이식해 명령한 대로 움직이게 만든 로봇 같은 인간들인 '이짓'의 등장은

한 마디로 충격이었다. 목이 말라도 명령이 없어서 그대로 죽어버릴 정도라니.

하긴, 요새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 '이짓'과 크게 다를 것도 없다. 명령한 대로 어쩌면 그리도 잘 움직이는지.

복제에 성공한 사례들은 속속 보도되고 어디선가는 불법적인 인간 복제가 이뤄질 지도 모른다.

엘 파트론이 돈으로 세상을 움직였듯, 누군가도 엄청난 돈으로 무엇인들 못할까.

누군가 내게 '넌 사람이 아니고 가축이야' 라고 한다면 난 인간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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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라 2024-11-18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평을 본건 흔하지 않는 일이다. 작가도 작가지만 평을 쓴 이와 얘기해 보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