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 - 생태주의 작가 최성각의 독서잡설
최성각 지음 / 동녘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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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최성각.

내가 참 좋아하는 작가다.

엽편 소설의 경쾌하고 짜릿한 맛을 알게 해준 <택시 드라이버>나

거위 두 마리와 함께 하는 멋진 감동을 그대로 전해 준 <거위, 맞다와 무답이>로 팬이 되어버렸다.

그런 그가 독서잡설이라는 책을 내놓았다 했다. 표지 사진이 참 인상적이다.

독서란 이렇게 편안한 자세로,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라는 걸 온 몸으로 말하는 사진.

 

서평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책 치고 재미있는 게 드문데 이 책은 술술 잘도 읽힌다.

글이 워낙 맛나기도 하지만 그의 추억을 함께 하고 있으니 내가 개인적으로 참 친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내내 절망이 나를 지배했다.

그가 정말 감동적으로 읽었다고 이야기하는 책들 중에 읽은 거라곤 딱 6권밖에 없었다.

도대체 무슨 책을 읽으면서 산 거냐!

그러나, 모든 것에 후회는 할 수 있어도 때늦은 시작이란 건 없다고 믿는 요즈음의 나는 얼른 절망을 지우고

그 자리에 새로운 도전에 대한 즐거움을 넣어두었다. 장바구니에 쌓이는 책도 더불어 많아진 건 물론이다.

독서라는 건 모름지기 이래야 하는 거 아닐까?

한 권을 읽으면서 새로운 가지를 뻗쳐 다른 책으로 영역을 넓히는 재미가 있는 것 말이다.

 

뒷부분에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환경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암울해서 돌을 매달고 걷는 것처럼 무거웠지만

거울을 통해 본 내 얼굴이 못 생겼다고 해서 외면하고 살 수 없는 것처럼 내가 만든 환경이고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부록에 실린 '우리 시대 환경 고전 17권'과 '다음 100년을 살리는 141권의 환경책' 을 다 읽을 수는 없겠지만

읽고 다른 이들에게 권하다보면 나서서 환경운동을 할 수는 없다 쳐도 인식이 바뀌는 계기는 될 수 있을 것이다.

6명만 건너면 다들 아는 사람이라고 하던데 각자 한 명씩에게 환경에 대한 좋은 책 한 권만 건네도

무려 6명이나  그 책을 읽는 셈이니 괜찮은 방법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잘 쓰여진 문학 에세이를 읽는 것 같다. 더럽고 냄새나는 산업문명에 오염된 하늘 밑에 벌레들이 반드시 읽어봐야 할

한 바가지 석간수 같은 글들이다. '삶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막막한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하늘 밑에 벌레라면 꼭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중략)

'환경운동을 하는 글쟁이'라고 스스로 낮추고 있지만 최성각은 사상가이다.

이 기절초풍하고 혼비백산하는 정신의 대공황시대에 한 점 등불 든 생명사상가인 것이다.

소설가 김성동이 쓴 넘치는 추천사에 작가는 기겁을 했다지만 나도 100% 공감한다.

 

첫 번째 바구니에 넣어두었던 책이 도착했다.

이보 안드리치<드리나 강의 다리>

디 브라운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전시륜 <어느 무명 철학자의 유쾌한 행복론>

이 책을 읽고난 뒤 작가가 쓴 부분을 다시 읽어보면 나는 그와 먼 거리를 떨어져 앉아도 독서토론을 하는 느낌이 들 것만 같다.

벌써부터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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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전 (문고판) 네버엔딩스토리 17
강숙인 지음 / 네버엔딩스토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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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옛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새삼스러울 것은 없겠으나 작가의 말대로 이건 또 다른 형태의 이본이라

이미 운영의 사랑 이야기를 알고 있다고 해도 맛이 다른 이야기를 읽는 즐거움이 있다.

선녀처럼 아리땁고 시도 잘 지었던 궁녀 운영과 그에 꼭 맞게 시문에 능하고 훤칠한 김진사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이야기.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이 살던 수성궁. 우거진 풀만 가득한 그곳에 가난한 선비 유영이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자고

혼자 술병을 차고 찾아온다. 남루한 옷차림으로 시중 들 하인도 없이 나타난 그를 보는 따가운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한적한 후원을 찾아 혼자 술을 홀짝이다 잠이 들었는데 아무도 없으리라 생각한 그곳에서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선남선녀를 발견하게 된다. 그들이 바로 운영과 김진사였던 것.

기쁜 듯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어딘가 모르게 슬픈 그들을 졸라 운영이 이야기를 하고 김진사가 기록하는 글을 따라

우리도 모두 안평대군이 머물던 수성궁으로 날아간다.

빼어난 궁녀 10명 중에서도 으뜸이었던 운영은 수성궁에서 손님으로 왔던 김진사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운영을 사랑하는 안평대군은 그녀가 지은 시 속에 남자를 향한 그리움을 발견하고 의심하는 눈길을 거두지 않는다.

한때의 불장난쯤으로 여겼던 사랑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고 결국 도망치로 작정을 했지만 운영이 가진 재물을 빼돌려

가로챈 김진사 하인 특의 흉계로 모든 게 드러나고 만다. 노발대발한 대군은 궁녀들에게 모두 죄를 묻지만

다른 친구들에게 탈이 미칠까 두려워한 운영의 자결과 식음을 전폐하고 운영을 뒤따라 간 김진사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

슬픈 운명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난 유영은 꿈인지 생시인지 혼란스러웠지만 남겨진 한 권을 책을 들고 그곳을 떠난다.

이렇게 해서 <운영전>은 우리에게까지 알려지게 된 것이다.

 

한문소설인 <운영전>은 작가와 연대를 알 수 없는 작품이지만 소설 안에 지어진 시들이 빼어난 것으로 미루어 학식이 높은 사대부가

지었을 거라는 추정을 하게 한다. 운영이나 다른 궁녀가 지은 시들은 물론이고 김진사가 지은 시들도 많이 소개를 해주고 있는데

운영이 님을 그리워하는 사랑시도 가슴을 울리지만 김진사가 처음 대군에게 지어 올린 시도 아름답다.

 

연기 흩어진 금빛 못에 이슬 기운 차디차고

푸른 한르 물결인 양 맑은데 밤은 어이 이리도 길까.

미풍은 뜻이 있어 주렴을 걷고

흰 달은 정이 많아 작은방에 들어오네.

뜰에 그늘지니 소나무 그림자 드리우고

잔 속의 술이 일렁이니 국화 향기 머물렀네.

완공이 비록 젊어도 술은 잘 마시니

괴상하다 하지 마오, 술로 취하고 또 미치는 것을.

 

이렇게 이야기를 읽는 도중에 시를 만나다보면 유영이 지금 술을 마시면서 운영과 김진사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에

나도 따라 함께 앉아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아마도 화자가 운영인지라 여성스럽고 부드러운 말투 때문이지 싶다.

작가가 바란 것처럼 아이들도 이 책을 읽으면서 고전에 이런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그리 어려운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작품을 시험에 나오는 것처럼 발기발기 찢어서 분석하려고만 하지 말고 작품이 가지는 아름다움에 심취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을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학교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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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에 어린이의 자리를 묻다 아동청소년문학도서관 7
황영숙 지음 / 푸른책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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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어줍지 않은 시를 쓸 때가 떠오른다.

자아도취에 빠져 이렇게 멋진 시를 알아주지는 못할 망정 혹평을 해대는 친구들을 참 많이도 미워했었다.

그러니 그들이 해주는 말 하나하나에 가시를 세워 막기만 할 뿐 받아들이지 못한 내 시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그 이후로 시를 쓰는 손을 놓아버렸으니 손해만 잔뜩 보고 가게 문을 닫은 셈이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는 공으로 먹는 게 아닌지, 내 생각도 조금씩 어른스러워진 덕분에 다른 사람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고

단점을 보완하려고 노력도 하는 지라 지금은 다른 사람의 평가를 편안한 마음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도 있게 되었다.

문닫은 시 대신에 동화나 청소년 소설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고 있는데 동화가 소설이나 시보다 쉽다고 생각한 것은

어디까지나 착각이라는 것을 매번 깨닫게 된다.

 

어린이 책이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동경하는 어른들을 위한 책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혼자 고민하고 있던 차에 이 책을 만났다. <디지털 시대에 어린이의 자리를 묻다>

과연 어린이를 위한 책은 어떠해야 하는가, 지금 우리가 만나고 있는 어린이 책은 정말 어린이를 위한 것인가.

얼마나 어린이들을 치유하는 기능을 하고 있으며, 어린이를 바라보는 시선에 어른들의 시각을 제대로 배제했나.

등등의 물음에 대해 작가 나름대로 고민하고 많이 읽고 공부한 흔적이 역력하다.

 

얇고 가벼운 책이지만 지금 이 땅위에서 아이들과 청소년을 위한 책을 쓰고 있는 기성작가나

이제 막 문단을 두드리려는 신인 작가들 모두 귀기울여 들어볼만한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작가의 생각이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아 읽어내려가는 내내 밑줄을 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청소년 소설에는 고민하고 방황하던 등장인물들이 특별한 개연성 없이 화해 무드에 접어들며 마무리 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이는 청소년소설은 해피엔딩으로 끝나야 한다는 작가들의 강박관념에서 기인한 현상으로 보인다.(중략)

성급한 깨달음보다는 치열한 고뇌의 몸부림을, 섣부른 현실의 변화보다는 현실의 질곡마저 수용하는 자세를 그려 내는 것이

문학적 진실성에 접근하는 길일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청소년 소설은 성급하게 해피 엔딩으로 결말짓기보다는

자아와 세계의 부딪침 속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그 속에서 성장해 가는 청소년의 모습을 담아내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 (33쪽)

 

국내 판타지동화 중에는 환상 세계의 내적 리얼리티를 확보하지 못한 작품이 많아 성찰이 요구되고 있다. (54쪽)

환상 세계의 형상화에 있어서 현실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통일성이다.

여기서 통일성은 작품의 배경에서부터 정서적인 분위기까지 총체적인 것을 의미한다 ((56쪽)

창작방법론에 대한 치밀한 검토와 판타지의 재료가 되는 신화, 전설, 민담의 발굴 등 판타지의 기반을 구축하는 작업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작가 또한 내면의 문학적 욕구가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류에 부응하기 위해 

성급하게 작품을 써내기보다는 환상 세계의 구상에 체계를 다지고 이야기를 궁글리는 숙성의 과정을 가져야 한다. (67쪽)

 

현실주의 동화의 또 다른 과제는 반복되어 나타나는 익숙한 전개 방식을 탈피하고 새로운 형식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주의 동화가 참신함을 구현하지 못할 경우, 자칫 비슷한 갈등 양상에 소재만 변형되는 지루한 변주곡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71쪽)

 

소설화 경향을 나타내는 몇몇 동화에서 드러나는 특징 중 하나는 작중의 어린이가 설정만 어린이일 뿐

어른의 의식 구조와 정서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75쪽) 단순하고 명징한 것을 특징으로 하는 어린이의 내면을

복잡 미묘하고 중층적인 특징을 지닌 성인의 내면으로 그려 내는 것은 리얼리티를 떨어뜨리고 문학적 진실성을 위협하는 요소가 된다 (79쪽)

 

국내 현실주의 동화는 현재 '현실 속 어린이'에는 접근하고 있으나, '어린이 속의 현실'을 구현해 내는 데는 미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현실 속의 어린이'에서 한발 더 나아가 '어린이 속의 현실'까지 담아낼 수 있을 때 동화의 리얼리티는 높이지고 감동은 커질 것이다 (84쪽)

 

우리나라 동화는 외국 동화에 비해 진지하고 무거운 경향을 보인다. 이는 우리나라의 암울한 근현대사와 무관하지 않으나

진지한 주제 의식에 대한 작가들의 의무감 내지 중압감이 한몫하고 있지 않은지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121쪽)

 

서점에 가보면 아이들이 쭈그려 앉아서 읽고 있는 것은  만화가 90%.

매일매일 좋은 책이라고 만들어내지만 왜 아이들은 동화에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가볍게 신경을 건드리는 만화에만 매달리고 있는지 생각해 볼일이다.

빠르게 읽을 수 있는 만화와 의미를 생각해야 하는 동화책과의 단순비교가 불가능하다고 볼멘 소리를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작가가 말한 대로 아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작품들은 아이들도 좋아한다는 것을 잊지 않을 때에

어른들만 좋아하는 '좋은 책'이 아닌 모두가 좋아하는 '좋은 책'이 될 것으로 나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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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생의 사랑 푸른도서관 42
김현화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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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들어 동화와 소설의 개념이 너무 모호해졌다.

게다가 이 작품은 청소년소설보다 더 범위를 확장시켜야 할 것 같다.

작가는 청소년들이 이 작품을 읽고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서 고민하기를,

연이라는 인물 주변에 모여드는 사람들 속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함께 생각하기를 원했으나

푸른책들에서는 동화에 익숙했던 터라 이렇게 어렵고 무거운 작품을 아이들에게 읽힌다는 게 잠시 주춤거려졌다.

고등학생 정도는 되어야 읽어볼 만한 작품이 될 것 같은데 내가 아이들 수준을 너무 무시하는 것일까?

 

조실부모한 연을 업어 키운 황업산이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홍문관 교리가 되어 명나라 사행길을 떠나는 상전을

감개무량하게 쳐다보는 시작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가난하지만 똑똑한 한 인재에 대한 이야기를 마주하게 되나보다..하는 생각에 들떠서 후다닥 읽어내려갔다.

그저 중간치기인 연과는 달리 좋은 배경과 뛰어난 두뇌를 갖고 있지만 벼슬길에 나설 수 없는

여인의 몸으로 태어난 걸 저주하며 갈수록 표독스럽게 변하는 기화가 평생 얽히는데

연보다는 기화가 자꾸만 눈에 밟혀 오히려 기화의 이야기를 더 들었으면 했다.

어쨌거나 기화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뱅글뱅글 맴만 도는 우유부단한 연은 다행스럽게도 인복은 많다.

우선 무슨 일이든 기꺼이 해낼 준비가 되어 있는 노비 황업산이 있고, 기화처럼 가슴에 품은 뜻이 높지만

정치에 나설 수 없어 헛헛해했던 파릉군 이경은 진심으로 연의 벗이 되어준다.

그리고 그녀 애기. 연이 기화를 사랑하는 줄 알면서도 그의 부인이 되어 모든 수발을 다 들어준 여인.

좋은 사람을 만났으되 그걸 깨닫지 못하고, 무엇을 좇는지도 모른 채 살아온 연은

마침내 명나라에서 돌아오는 길에 애기를 잃고 심한 황사 속으로 다시 걸어들어간다.

아직도 제 것인 꿈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헤매는 발걸음은, 그러나 희망이 있으니 좀 가벼워지려나.

 

제목만을 보면 뭔가 고리타분한 옛날 사람 사랑 이야기라는 짐작을 하게 되니 이 책은 제목 때문에 점수가 깎였다.

다양한 군상들이 그 시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고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지고 있으면서 왜 이런 제목을 붙인 건지...

연이 아무런 목적도 없이 황사 속을 떠나는 것으로 맺어버린 끝부분이 영 개운치 않지만 억지로 연결을 시킨다면

꿈도 없이 방황하는 우리 아이들이 남이 시키는 대로 살다가 나중에 허망함을 깨닫게 될 지도 모르니

지금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사는지 한 번쯤 돌아보라는 의미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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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황옥, 가야를 품다 푸른도서관 38
김정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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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야. 비운의 나라.

신라, 백제, 고구려와 더불어 당당하게 세력을 키워가고 있었지만 결국 신라에 복속되어

전설의 땅 아틀란티스처럼 존재조차 희미해진 나라.

그런 가야가 신비의 왕후 허황옥에 의해 두둥! 다시 떠올랐다.

 

부처님의 축복을 받은 태양의 나라 아유타국에서 태어났지만 월지족 아룬 왕자와의 혼인을 피해

먼 동쪽나라로 항해를 시작하는 라뜨나와 락슈마나. 이름도 입에 쩍쩍 붙지 않을 정도록 멀게 느껴지는 아유타국을

어떤 학자는 인도 남동부에 위치하는 아요디아라고 하고 어떤 이들은 어디라고 콕 집어 얘기할 수 없다고도 하지만

김수로왕릉과 아요디아국 유적에서 동일한 것들이 나타난다고 하니 아유타국은 지금 인도의 아요디아국이라고 믿는 게

타당할 지도 모르겠다.

 

짧고 간단한 기록에 살을 붙이고 숨을 불어 넣은 작가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싶다.

겨우 건국신화 몇 개뿐인 빈약한 신화를 가지고 있던 우리가 풍부한 이야기가 있는 신화 한 개를 더 갖게 된 셈이니

남의 밥상을 탐내어 매번 그리스로마 신화를 기웃대던 허기가 조금은 가시게 되었다.

금관가야 9부족의 추장인 9간이 김해구지봉에서 얻은 황금알 여섯 개 중에서 처음으로 사람으로 화했기 때문에

수로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알려진 김수로왕. 하지만 이 책에서 수로는 단야족의 왕자로 한나라의 공격을 받아

예란성이 무너지자 유민들을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왔다가 개라봉(옛 구지봉의 이름)에 이르러 태양신을 모시는  

아홉 부족을 만나게 된다.

부족장들은 철을 다룰 줄 알았던 단야족의 후예인 청예를 받아들여 왕으로 삼는데 이가 바로 수로왕이다.

그리고 아유타국에서 타국을 떠돌던 라뜨나가 가야국에 도착하게 되고 이방인이라고 경계의 눈빛을 보내던 가야국 백성들도

역병에 걸린 이들을 온 정성으로 치료하는 라뜨나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교역일도 거뜬하게 해내고 사람을 치료하는 능력도 있으며 사람을 돌볼 줄 아는 고운 마음씨까지 지닌  

아름다운 허황옥 라뜨나.

 

그러고보면 우리나라는 단일민족이라고 자랑스레 달고 다녔던 팻말을 일찌감치도 버린 셈인데

오히려 그런 낯선 나라 사람과 맺어져 좋은 점들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폐쇄적이지 않고 독창적인 문화를 만들어간 게 아닐까?

허황옥에게도 김수로왕에게도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훗.

이름들이 낯설어 익숙해지는데는 오래 걸렸지만 가슴 뛰는 좋은 작품을 만나서 기분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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