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연못 

                           - 정복여

 

나무들은 제 그늘만큼의 연못을 품고 있다

스스로 빠져서 깊어지는,

멀리멀리 퍼져나가는 잎의 파문들,

저 물결 속으로 뿌리들 자란다

 

동쪽에서 뜨던 해가

서쪽으로 가다 나무 정수리에 올라

그늘이 곧 너의 연못이라고 전한다

그 마음을 받아 못 속을 가는 나무

미처 잘못 떨어진 낮별도 가라앉아

나무는 더욱 깊어지는 바닥을 간다

 

바람이 불어 물결이 휙 쓸린다

나뭇잎 몇몇이 지워지고

그 그림자 받아 안은 바닥의 한 부분이

뿌리의 안쪽에 닿아 있는 것이 보인다

나무들은 저렇듯 뿌리깊어

제 몸을 출렁이는 것이다

 

 

***



삼청동으로 올라가는 길은 걷기 딱 좋았다.

새들도 묵언수행을 하는지 되바라진 놈들만 이따금 존재를 드러낼 뿐

온 사위가 고요하고 부드러운 빛 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선글라스를 안 가져온 걸 탓하며 손으로 차양을 만들며 걸어도

걷는다는 게 그저 좋아 신발을 뚫고 바닥에 닿으려는 내 발가락들의 힘을 받아

사람들이며 가게 구경에 정신없이 돌아가는 눈동자 덕분에 몸주인인 내가

다 어지러울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가게 주인이 주방장에게 아침부터 싫은 소리를 늘어놓았는지

음식은 전체적으로 조금 짰지만 데코레이션만은 아주 훌륭했던

코스 요리. 배 두드리며 달콤한 후식까지 다 먹고나자

삼청동은 그제야 숨어 있던 소리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쾌활하고 에너지 넘치는 바람이 닿는 것들과 모두 하이파이브를 하며

지나는 소리였다.

 

나뭇잎들아, 안녕!

기와조각들아, 안녕!

예쁜 언니 머리카락도 안녕!

이 천은 뭐야, 부드럽군 그래!

오호, 뜨거워. 차 지붕도 안녕!

이야, 넌 거기 숨어 있었구나. 돌멩이!

먼지 좀 닦아달라고 해, 간판!

 

이렇게 바람이 만들어내는 소리 속에서도 특히

나무가 출렁이며 만들어내는 연못 속에 푹 빠져있던 세 시간

어느 가을날의 삼청동은 사진 없이도 잘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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