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숲을 보며
-유하
시푸른 청개 가실 날 없네
잘 날 없는 바람 매질에
분주히 등 굽혀가며
등 굽혀가며
시푸른 청개 가실 날 없네
그러나 그 어떤 삶이 있어
저리도 옹골차게 울창하리
구부러짐으로 온전할 줄 아는
청개든 지혜여
나도 대숲으로 가 대숲처럼
온몸으로 구부러지는 법 배우고 싶네
청개들도록 울창하고 싶네
*청개: 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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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궁..하는 소리에 깨어 창밖을 내다보니 건너편 지역에 정전이 되었는가
이른 아침이라 분명 불빛이 하나둘 쯤은 보일 터인데 버리고 간 집마냥
온통 다 시멘트 색깔들이다.
작은 일에도 활들짝 놀라기를 잘하는 내 간은 벌써 십 리 아래로 도망가버려
내것인지 남의 것인지 감각도 없다가 다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반복되자
아예 집을 나가버렸다.
무슨 일인지 궁금하긴 하나 딱히 물어볼 곳도 알아낼 방도도 없어
그저 내 집 전기가 여전히 흐르고 있음에 감사하며 인터넷을 켰다.
새로운 소식이 없는 걸 보니 큰 일은 없는 것 같군.
안도하며, 잠을 더 자려고 했지만 제 주인을 닮아 소심한 잠도
겁이 많아 도망가버려 살금살금 걸어가 커피 한 잔을 내려들고
영화 한 편을 봤다.
The Music Never Stopped
20년 전 집을 나간 아들이 뇌종양에 걸렸다는 소식이 어느 날 들려오고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에 치명적인 손상이 있어 20년 전 그때 이후 일들은
물론 지금 방금 일어난 일들도 전혀 기억을 못하는 상태.
아들이 하고 싶어하던 음악을 반대하던 아버지는 음악으로 치료가 가능하단 걸 알고
그 이론을 써낸 교수에게 부탁을 하게 된다.
전혀 반응이 없던 아들은 그때 좋아하던 음악을 들으면서 아버지와 조금씩
대화를 하게 되고 자기가 듣던 음악만이 진정한 음악이라 했던 아버지는
아들이 왜 그런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그 음악은 어떤 뜻을 가졌는지를
알아간다.
그러다가 아들이 제일 좋아하던 그룹 공연 티켓을 극적으로 손에 넣게 되어
둘이서 공연장을 찾아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맞는 아버지의 죽음. 결국 아들은 공연장에서 보낸 그 시간을 기억하며
아버지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린다.
이 시를 읽는 순간 그 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아들을 이해하기 위해 자기가 아끼던 음반을 갖다 주고 그 당시 아들이 즐겨들었던
음반으로 바꾸어 노래와 가사를 모두 익히던 사람.
부모 말고 어떤 누구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집 나간 아들의 생사도 몰라 애를 태우다가 겨우 찾은 아들이 뇌종양에 걸려
방금 전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걸 보면서 가슴이 찢어지고
심장이 언제 멈출지 몰라 의사가 만류하는 공연에 아들과 대화하고 싶다는 이유로
찾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부모님이다.
나는 아직 이런 경지에까지 이르지 못해 늘 아들과 부딪히고 있지만
청개들어도 좋으니 언젠가는 울창한 대숲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