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김중혁답다. 김영하 이후 다시 만난 신선하고 발랄한 작가. 문제가 발생하면 풀기보다는 엉뚱한 해답을 내놓고 시치미 떼기 -가령 달리는 기차 안에서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는데 기차에는 존재하지도 않은 0호차에서 빨간 제복을 입은 특별기동검표반 44번이 나타나 순간적으로 구해준다던지- 볼교라는 걸 창시해놓고 그럴싸하게 구라(?)를 풀어내기 -우주는 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형제님, 주위의 자연을 한번 둘러보십시오. 모든 것이 볼이고 원입니다. 이것이 우주의 원리죠. 하지만 인간들을 보십시오. 인간들은 끊임없이 사각형의 물건들을 만들어냅니다. 수많은 모서리를 만들면서 우주에다 흠집을 내고 있습니다..- 등이 특기다. 어쩌면 이 작가는 밥 한 숟가락을 먹다가, 혹은 코를 한 번 후비다가, 술을 한 잔 마시다가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을 몽땅 엮어 이 책을 만든 건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인 모노가 자신이 만든 '헬로, 모노레일' 게임을 그대로 현실에서 하듯 주사위를 던져 여행지를 선택하고 급작스럽게 일정을 변경하는 일 따위가 볼교를 위해 가출을 해버린 고갑수 씨가 믿는 볼을 닮았다. 어디로 튈 지 모른다. 우연은 남발하고 현실에서 절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들은 난무한다. 그런 면에서는 로알드 달을 닮았다. 그런데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화가 난다거나 짜증이 나는 일은 없다. 어떤 숫자가 나오든 상관없다. 어디로 가든 상관없다. 주사위는 공평한 거니까. 1의 반대쪽에는 6이 있고 2의 반대쪽에는 5가 있고 3의 반대쪽에는 4가 있으니까. 이제는 내가 던질 차례다. 작가가 한 말처럼 이제는 독자의 몫이 된 거다. 내가 어떻게 읽든 그뿐이다. 재미있게 읽었다 나는. 그럼, 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