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 발상에서 좋은 문장까지
이승우 지음 / 마음산책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전혀 새로운 것을 만날 거라는 기대를 하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소설을 쓰는 기발한 방법론을 풀어내는 책도 아니다.

그가 수차례 언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있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쉽게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가 하는 이야기가 귀에 쏙쏙 박힌다.

책장 한 모서리 살짝 접는 것도 싫어서 한 장을 넘길 때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려고

발딱 서는 책들을 두 손으로 받쳐들고 읽는, 어쩌면 지극히 결벽증 증세를 보이던 내가

노란 색연필로 군데군데 밑줄까지 치면서 읽었다.

색연필을 잡은 손에 줄을 매달았는지 줄을 긋는 것과 동시에 고개까지 끄덕여

졸지에 마리오네뜨 인형이 되어버린 행복한 순간들.

 

무엇보다 소설을 (나는 소설만이 아닌 포괄적인 '글'로 읽었지만) 쓰려는 사람은

잘 읽어야 한다고. 느리게, 자세히, 꼼꼼하게 읽을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급하게 먹기로 정평이 난 내가 열 번 내지 열서너 번씩 씹을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말했듯 마음을 빼앗기는 책을 쓴 작가를 스승으로 삼아

그의 책들을 여러 번 음미하듯 읽고 그 다음에는 과감하게 던지는 일을

다시 한 번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설계도를 그리지 않은 채 집을 지어 창문도, 계단도, 화장실도 없는 엉터리 집을 지어

세입자들을 불편하게 했던 과오도 반성했다.

 

고독을 이길 힘이 없다면 문학을 목표로 할 자격이 없다.

세상에 대해, 혹은 모든 집단과 조직에 대해 홀로 버틸 대로 버티며

거기에서 튕겨나오는 스파크를 글로 환원해야 한다.

가장 위태로운 입장에 서서 불안정한 발밑을 끊임없이 자각하면서

아슬아슬한 선상에서 몸으로 부딪치는 그 반복이

순수문학을 하는 사람의 자세인 것이다.

 - 마루야마 겐지 <소설가의 각오> 중에서

 

나도 분명 읽었던 책인데 왜 그때는 이런 구절도 몰랐을까?

아마도 '뭔가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읽는 사람' 역할에 치중했던 때문인 것 같은데

뒤늦게 다시 만난 이 구절이 나를 쓰다듬고 지나갔다. 따뜻해졌다.

나처럼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은 예습이든 복습이든 어떤 의미에서건

꼭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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