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푸른책들' 이 기특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만들어내는 건 다 큰 어른들이 하는 일이니 내가 건방진 말을 한 것 같지만 나는 그저 덩어리 '푸른책들'에게 칭찬을 해주고 싶다는 것이다. 남들이 외면하는 시집을 뚝딱뚝딱 신나게 잘 만들어주니 그게 마음에 들고 거기에 들어있는 시들이 또 마음을 쿵쾅쿵쾅 움직이게 만드니 그또한 좋다. <빵점 아빠 백점 엄마>에는 다섯 명의 시인들이 쓴 좋은 시가 가득하다.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다가 푸핫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코끝이 간지러워 씰룩씰룩 코를 매만지기도 했다. 이장근, 이정인, 김현숙, 안오일, 오지연. 이렇게 다섯 명의 시인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방에 갇힌 날 - 이장근 숙제 다 할 때까지 방에서 나오지 마라 쾅! 방문이 닫혔다 방에 갇혔다 형아, 다 했어? 아니. 형아, 얼마나 남았어? 다 해 가. 방문 앞에서 조르는 동생 동생이 거실에 갇혀 있다 우리 아들은 결코 맛보지 못할 이 광경에서 나는 가슴이 찡했다. 혼자 자라서 이런 정겨운 추억 하나 못 만들어준 게 미안했지만 나처럼 시로 만나면 되지..하는 생각이 드니 또 금방 마음이 편해진다. 참으로 간사한 마음이다. 11월도 벌써 중순이다. 올해 계획했던 일을 반도 못 했지만 남은 시간동안 새로운 마음으로 할 일이 생겼다. 바로 하루에 하나씩 시를 옮겨 적는 일이다. 예쁜 노트를 하나 사서 펜으로 하나씩 정성껏 써 볼 작정이다. 그러다보면 잠자고 있던 내 시들도 언젠가는 나타나지 않을까? 노트를 사러 달려가려는 내 발이 꼼지락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