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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로의 특별한 세계 ㅣ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8
프란시스코 X. 스토크 지음, 고수미 옮김 / 보물창고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인상 깊은 구절
올바른 건반은 옳은 소리를 내고, 틀린 건반은 틀린 소리를 내요
*같이 읽으면 좋은 책
토미를 위하여(청소년문학4) - 곤살로 모우레 지음 |송병선 옮김
멀리로 여행을 갔다가 몇 년 만에 집에 돌아온 사람이 제 집을 낯설어하는 것처럼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언제나 과거형으로 쓴 글을 봐서 그럴까? 현재형으로 진행되는 문장들이 너무 어색해서 처음 몇 분간은 쉽게 적응하지 못한 내 눈이 책 언저리만 빙빙 도는 것을 따라 집중하지 못하는 내 생각도 빙빙 돌아다니기만 했다. 작가가 일부러 그리 쓴 것인지 번역하는 사람이 그렇게 해놓은 것인지는 정확히 알 길이 없으나 짜증이 슬슬 나기 시작할 무렵, 마르셀로가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어서 다른 사람과의 소통에 약간의 어려움을 느낀다는 것을 알고 난 후로는 오히려 그런 부분들이 마르셀로의 현재 상태를 잘 나타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간사하기도 하지.
게다가, '나무가 내 옆에서 걷기 시작했다'를 정말 나무인 줄로 착각하고 패터슨을 사람 이름으로 인식하는 오류를 저지르기도 했으나 멋진 세퍼드 '나무'를 만나고 패터슨이 마르셀로가 다니던 학교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길거리에서 마주쳤는데 죽어라고 생각나지 않아서 대충 얼버무리고 헤어진 친구 이름이 어느 한 순간 '파밧!'하고 떠오르듯 강렬한 기쁨을 맛볼 수 있었으니 착각이라는 것도 가끔은 할 만하다.
나도 마르셀로에게 옮기라도 한 것처럼 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로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재스민과의 교감을 통해 서서히 이루어지는 마르셀로의 성장과 함께 법률회사에서 벌어지는 소송을 잘 버무려놓아 이 일이 어떻게 마무리될 것인가 사뭇 긴장되기까지 하니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름 그대로 아투로와 오로라로 부르고 자신을 지칭할 때조차 3인칭으로 부르는 아이. 열일곱살의 마르셀로는 소리는 없지만 언제고 필요할 때면 내면의 음악을 느낄 수 있다. 여름방학동안 패터슨 학교에서 조랑말을 훈련시키게 되길 고대했으나 변호사로 일하는 아버지를 따라 법률회사 우편실에서 일을 해야 하는 가련한 처지가 된다. 거기서 만난 아름다운 재스민과 천천히 친구가 되고 우연히 사진 한 장을 발견했는데 아버지가 소송중인 사건의 피해자임을 알게된다. 그리고 그애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과 아버지가 다칠 수도 있다는 걱정 사이에서 고민을 하게 되고 마침내 내린 결정은 마르셀로를 한 발 더 현실세계에 가깝게 만든다. 확고한 미래를 계획하게 된 마르셀로는 그래서 행복하다.
활자로 박혀 있어 결코 들릴 리 없는 짐노페디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이 들리고, 보이지 않는 법률회사 우편실과 버몬트 재스민의 집이 보인다. 아버지 동업자 아들인 웬델은 지나치게 혐오스럽고 동물적인 근성을 가진 사람으로 묘사되어 순수한 마르셀로의 모습이 더 돋보이는 역할을 해준다. 역시 악인이 있어야 영웅도 빛나는 법이다. 보이고 들리는 이 모든 것들이 이 책을 영화처럼 느끼게 해주었다. 또 한 가지, 인지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친근하게 느끼게 해주었다는 점에서도 높이 평가한다. 자꾸만 까먹는 뇌에 그들은 우리와 가진 것이 조금 다를 뿐이라는 것을 또 각인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