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의 제왕
이장욱 지음 / 창비 / 201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80년대 분위기를 풍기는 약간 어설픈 듯한 제목과 '이장욱'이라는 이름이 주는 낯설음은, 이 소설집 첫 머리를 장식하는 <동경소년>을 보는 순간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시로 등단을 한 사람답게 문장이 깔끔하기 그지 없다.
 몇 차례 밝힌 적이 있지만 나는 단편을 그닥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아주 기똥차게 멋진 작품이라면 짧은 이야기 속에 몽땅 다 담겨있으니 여운이 길어 괜찮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읽으려는 순간 끝나버려서 짜증이 나기 때문이다.

 단편작품에 후한 점수를 주지 않는 나로서는 엄청나게 점수를 많이 준 셈인데 <동경소년>을 읽고난 뒤  '우리나라에 이런 작품을 쓰는 사람이 있었어?' 하고 다시 한 번 책날개에 있는 작가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게 만들 정도로 몽환적인 독특함이 있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어둠이다. 아니, 작가 식으로 말하자면 '아르마딜로 공간'이다.  종로 3가역에서 내려 낙원상가를 지나 걸어와야, 포항 고래고깃집과 파라다이스 성인오락실과 파고다 기원과 대성목공소를 지나 낙원 아래의 돼지머릿집들을 신중하게 지나와야 만날 수 있는 곳이라는 '아르마딜로 공간'은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곳이자 시간과 공간이 겹치는 곳이다.

 시간과 공간이 겹치기에 삶과 죽음도 한 데 엉켜있다. 어느 것이 현실이고 어느 것이 상상인지 구분할 수 없는 묘한 공간은 단순히 <아르마딜로 공간>에 한정되지 않고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나타난다.

 

 <동경소년>에서는 자꾸만 투명해져서 만질 수도 보이지도 않는 소녀 유끼가 죽였다는데도 붉은 센서가 작동하면서 자동문이 열리고 우산이 둥둥 떠가는 것으로 여전히 존재함을 알려준다.  <괴물>에 나온 송강호 아버지가 변희봉이었던가? 김인문이었던가? 를 결국 찾아보게 만든 이야기 <변희봉>은 묘하게 헷갈리게 만드는  '밴희봉' + 프로야구가 한 데 섞인 비빔밥으로 여기서도 공사중이라 야구시합을 할 수 없는 데도 동대문 운동장쪽에서 야구공이 하나 날아와 떨어진다.

 목란역 주변 낡은 여인숙에 꾸물꾸물한 날 이상한 손님들이 도착하고, 해병대 출신 김상태가 수상한 사람들을 위해 도청장치가 되어 있는 곳 202호로 안내했지만 시끄러운 소리에 올라가보니 그동안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했던 사람들이 몽땅 함께 앉아있었다는 <곡란>.

 불면증에 시달려 스위치를 끄듯 몸도 그렇게 끌 수 있기를 바라는 여자는 신경정신과를 찾지만 그곳 의사 역시 불면증에 시달리고 그 의사가 잠을 잊기 위해 밤마다 해대는 걸레질을 참다못해 아들은 가출을 한다. 그리고 아파트 경비로 일하는 노인은 역시 죽은 사람이라는

<밤을 잊은 그대에게>.

  전직 교수였던 '옹'은 아내 무덤을 찾아가는 가려고 버스정류장에 앉아있다가 홀린 듯 택시를 타고 미친 듯한 택시 기사 덕분에 오줌까지 싸고야 만다. 그리고 무덤에서 만난 친구는 '옹'의  아내를 사랑했노라고 고백하지만 모든 것이 '옹'이 만든 영화와 겹쳐 어느 것이 현실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한동안 한국단편 문학의 일관된 주제에 염증을 내며 팽개쳐두었기에 이 책에서 좋은 인상을 받은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종로3가에 가면 '아르마딜로 공간'을 만날 것만 같은 느낌이 들게 만드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