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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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을 넘겼을 때 나는 이 책이 장편이 아닌 단편이었던가 하고 어리둥절했다. 분명 첫 장에는 남편 헨리가 운영하던 약국에서 일하던 데니즈와 올리브 이야기로 시작을 하건만 그 다음 장부터는 낯선 이들이 바닥에 자갈 깔리듯 득시글거린 탓이다. 자살을 하기 위해 고향을 찾아왔던 제자 케빈 코울슨, 헨리와 올리브가 자주 가던 웨어하우스 바 & 그릴'의 칵테일 라운지에서 피아노를 치던 앤절라 오미라, 며느리가 된 수잔, 마을 식료품 주인말린, 레즈비언 딸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는 케니슨 부부 이야기 등 등장인물이 몇 명인지 셀 수도 없어 이름을 기억하기도 버거웠다.  

 하지만 읽어갈수록 이야기가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하는데 어느 한 장면 빠짐 없이 올리브가 숨은 그림찾기처럼 등장하여 소리도 없이 부드럽게 맞물리는 그 느낌이 참으로 근사하다. 그렇지만 주인공치고는 꽤 괴퍅한 인물이어서
올리브는 어느 누구의 기억에도 상냥하거나 심지어 공손하다고 말하기 어려웠지만 그해 6월 이후로 그녀의 이런 면은 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190쪽)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이런 평가를 받지만 퉁명스러움 속에 감춰진 인간성을 볼 수 있게 만드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툭툭 던지는 말들 때문에 혼자 낄낄거린 게 한두 번이 아닌데 특히 헨리가 죽은 뒤 쓸쓸하게 지내던 올리브가 산책하다 잭 케니슨을 만나 "당신 죽었소?"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박장대소를 해버렸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 크리스토퍼가 수잔이라는 위장병전문의와 고작 6주 만에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는 모든 다 아는 척 하는 수잔이 싫었다. 그래서 철부지 엄마처럼 보이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
올리브는 책상 위 서랍을 열어 며느리의 속옷 중 컵이 작고 섬세하며 번쩍이는 하늘색 브래지어를 둘둘 말아서 커다란 핸드백에 집어넣었다. ..매직을 들고 벽장 속 베이지색 스웨터를 펼쳐 한쪽 소매 밑에 매직을 찍 그었다. ...그리고 뒤축이 닳은 짙은 색 로퍼를 한 짝 핸드백에 구겨 넣었다. (131쪽)
정말 대책 없는 엄마다.

언제였는지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내게 그런 걸 물어본 사람이 있었다. 

“인간의 모성이라는 건 본능일까요?”
곰곰 생각해보았으나 본능이라고 한다면 모든 사람들이 모두 그러해야 한다는 뜻일 텐데 안타깝게도 나는 모성이 본능이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같은 일이 동시에 겹쳤을 때 아이에 대한 것보다 내 일이 우선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건 변함이 없어서 모든 부모들이 아이를 사랑하는 건 맞는 이야기지만, 아이를 낳은 책임감에 따른 의무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더 지배적이다. 게다가 일을 갖고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많이 좌우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래도 육아에만 전념하는 엄마와 일을 병행하는 엄마는 해야 할 일의 분량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나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애로운 어머니상에서 한 발 빗겨 서 있는 셈인데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던 올리브도 그런 엄마였던 것 같다. 아들 크리스토퍼에게 '엄만 성질이 불같아요. 일분은 이랬다가 일 분 후에는 또 마구 화를 내고 아주 피곤해요. 주변 사람들을 지치게 해요.' 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나중에 아들이 나한테 이런 말을 할 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 들어서 사실 이 부분에서 살짝 찔리기도 했다. 올리브의 말처럼 어떤 일을 떠올릴 때 누구나 같은 기억을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비슷한 기억을 갖게 되면 좋겠다.

특별한 주인공 올리브는 물론 한 마을에 사는 여러 인물들의 표정을 머리카락 한 올 빠짐 없이 그려낸 듯한 이 아름다운 작품은 근래 보았던 작품들 중 단연 최고다. 2009년 퓰리처 상을 수상한 작품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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