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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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세자의 이름만 듣고도 눈이 붉어지던 심약한 임금은 이제 당신을 대신하여 눈시울을 적시는 늙은 대신들에게 노엽고 의심스러운 시선을 던진다고 했다. 세자가 적의 땅에서 무엇을 하느냐. 그가 누구를 만나느냐, 그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일일이 말로 되어 나오지 않는 임금의 불안이 오히려 대신들을 두렵게 만든다고 했다. 상의 뜻을 알겠느냐. 세자는 조선의 소식을 가져오는 사신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모르겠구나. 몰라서 송구하다. 그러나 입 밖으로 내서는 안 되는 말들이었다. 세자는 말을 아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항상 남보다 느리게 말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27쪽)
 

 정녕 그러했으리라. 처음에는 적국으로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야만 하는 애끓는 부정(父情)이었던 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아들에 대한 부정(不定)으로 변했던 것이다.  적국에 볼모로 잡혀간 세자와 고국에 남아 소식을 기다리는 임금. 세자는 어느덧 아들이 아니라 언제 나의 자리를 치고 올라올지 모르는 경쟁 상대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가여운 임금과 세자.

 

 '백 튜더 퓨처' 처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영화가 심심치 않게 등장을 했지만 그때마다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비록 한 가지 사건은 바꿀 수 있을 지라도 그로 인한 또다른 영향은 피해갈 수 없다는 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소현세자가 살아 효종 (봉림대군)대신 왕위를  이어받았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좀더 개방적인 나라가 되어 발전하는 속도가 빠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다.

소현세자가 돌아와 죽임을 당하고(물론 정확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독살설이 유력한 관계로) 세자빈이 사약을 받고 아이들이 귀향을 떠나게 된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임금의 나약함과 나라의 힘 없음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양쪽의 눈칫밥을 먹으며 힘겹게 지낸 세월동안 몸도 마음도 피폐해진 소현세자의 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 책은 읽는 내내 힘들었다. 그만큼 생생하게 그려낸 작가의 역량이 돋보이지만 한 가지 고백을 하자면, 내가 생각했던 소현의 이미지와는 너무도 달랐다. 좀더 강직하고 봉림대군처럼 날 선 모습을 기대했기에 심약한 듯, 어찌보면 꽤나 우유부단한 듯 보이는 행동들에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내가 기대했던 모습은 영웅이었음을 안다. 뜻을 펼쳐보지 못하고 죽은 영웅은 왠지 더 안타깝기에 상상속에서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사료를 꼼꼼히 조사하고 비교적 정확히 그려낸 듯한 김인숙의 <소현>은 그래서 더 값지다.  

 

 


말을 아껴야 할 때고, 생각을 해야 할 때고, 누구에게도 의지해서는 안 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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