괭이 씨가 받은 유산 미래의 고전 17
조장희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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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꿈틀거리는 짐승, 벌레, 물고기와 스스로 움직일 줄 모르는 초목이나 목숨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어찌 짐승이나 벌레, 물고기를 죽이면 살생이요, 초목을 베는 건 살생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짐승이나 초목이나 배고픈 만큼만 취하는 건 살생이 아니요, 분수 밖의 욕심이나 심심풀이로 취하는 건 
짐승이건 초목이건 모두 살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둠 속에서도 번쩍번쩍 불을 뿜어내는 고양이 눈이 무서운 것은 어릴 때부터 각인된 두려움이다. 방학 때면 내려가곤 하던 할머니댁 마루 밑에서 빤히 쳐다보던 그 눈은 한참동안이나 내 꿈을 지배하고 내 두려움의 대상이 되곤 했다. 지금은 조금 나아져 가끔씩은 어린 고양이들을 쓰다듬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식당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며 먹을 것을 찾는 어미 고양이나 덩치가 큰 수고양이는 여전히 무서워서 슬금슬금 피하게 된다.
 

 마주쳤으면 틀림없이 겁을 냈을 게 뻔한 덩치 큰 수고양이 미요는 이른바 완벽한 애완고양이로 주인 아줌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살지만 어느 날 집에 놀러 온 주인 아줌마 친구에게 이끌려 지하실에서 쥐를 잡아야 하는 운명에 놓인다. 된장국에 말은 밥이나 생선국에 만 밥을 먹지 못해 냉장고를 기웃대다가 엉겹결에 도망나오게 되고 결국은 시장에서 생선가게 털보에게 붙잡혀 쥐를 쫓아내는 역할을 맡는다.

할머니를 따라 절에 갔다가 고양이가 되겠다고 맹세를 하고, 생선을 훔치러 왔던 나나에게 반해 매일 청어를 한 마리씩 갖다주기도 한다. 결국 나나에게 도둑질을 시켰던 두목과 싸워 모든 고양이들을 해방시켜주는 영웅이 된다. 

 
지금부터 그 누구도 너희의 두목이 아니다. 네 두목은 바로 너다. 너 자신이다! (189쪽)

떠나기 전에 한 가지 맹세할 게 있다. 내 말을 따라 맹세하기 바란다. 나는 고양이가 되겠다고 맹세해라! (190쪽)

 
 이리도 멋진 말을 던지니 나나가 안 반할 수가 없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유산으로 매일 생선 한 마리씩을 받을 수 있게 되었지만 괭이가 된 미요는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으니 털보의 색시가 된 미순이 누나는 생선 값을 저금해서 나중에 동물 고아원에 갖다 준다고 한다. 기르던 동물들도 싫증이 나서 갖다 버리거나 해꼬지를 하는 사람들 이야기만 듣다가 동화속이나마 이렇게 착한 사람을 만나니 체증으로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작가가 전해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짖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성대 수술을 하거나, 새끼를 낳는 것이 귀찮아서 수술을 시키고 의향도 물어보지 않은 채 염색을 하고 털을 깎고, 싫증이 나서 갖다 버리는 일은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미요가 생선가게에 가기 전까지의 상황이 매끄럽게 느껴지지 않는 건 지나치게 훈계조이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내가 사람인 탓이다. 
어쨌거나 괭이씨가 된 미요. 자동인형 신세에서 벗어나 진짜 고양이가 된 미요야,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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