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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8 제너시스 ㅣ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7
버나드 베켓 지음, 김현우 옮김 / 내인생의책 / 2010년 3월
평점 :
책을 덮고 난 후에야 비로소 표지 그림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벽이 둘러쳐진 바닷가, 그리고 오른쪽으로 바람에 나부끼는 붉은 빛 머리카락들.
나라마다 다르게 출간된 표지 그림들 중에서도 유독 쓸쓸해보인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표지인데 책 내용을 제대로 담아낸 느낌이 들어서 좋다.
2058년의 지구. 인류가 멸망에 가까워지자 플라톤은 지금의 뉴질랜드에 해당하는 섬을 외부세계와 철저히 격리시킨 채 '공화국'을 만들어낸다. (뉴질랜드가 고향인 작가의 나라 사랑이 대단한 모양이다) 감정을 배제하고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철학자들이 모여 있는 최고기관인 학술원에 들어가려는 아낙시맨더가 네 시간동안 면접을 받는 과정을 문답 형식으로 그려내고 있지만 결코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책이다.
만물의 근원을 '혼돈'이라고 주장했던 아낙시만드로스, 아테네 민주정치의 전성기를 가져온 대정치가 페리클레스, 이성(理性)만이 파악할 수 있는 영원불변하고 단일한 세계를 이루어, 끊임없이 변천하는 잡다한 감각세계의 사물과는 구별된다는 이데아를 설파했던 플라톤, 구약성서 제 1권인 창세기를 뜻하는 제너시스.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하나같이 철학자들의 이름을 빌려왔으니 그 뜻을 알면 작가가 주려고 했던 중의적인 느낌을 이해하기도 쉽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 미리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 계급으로 나뉜다. 각 계급은 수요에 의해 충당되는데 계급에 맞게 적응할 수 있도록 수면학습이 행해지고, 때로는 산소 공급을 제한하여 두뇌 활동을 억제시키기도 한다. 모든 인간들은 자신의 계급으로 태어난 걸 다행스럽게 여기며 아무런 불안감도 없이 그저 주어진 일을 하면서 평온하게 살아간다. 늙지도 않고 격정을 맛보지도 않은 채.
<2058제너시스> 역시 주민들은 게놈 해독을 거친 귀족, 노동자, 군인, 기술자, 철학자로 분류되었다.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부모와 떨어져 양육되었고 성장과 관련된 정보는 외부에 제공되지 않는다. 생후 1년이 되면 모든 아이가 검사를 거쳐야 하고 결과에 따라 특정 계급에 배치되거나 제거된다. 신분 상승도 가능하지만 철학자 계급만큼은 선택받은 극소수에게만 허락되었다.
이런 비슷함 때문이었을까? 읽는 내내 나는 여기서 <멋진 신세계>의 버나드를 발견하려고 애를 쓴 것 같다. 상층계급에 속하면서도 육체적으로 열등한 버나드. 환경에 순응하지 못하고 언제나 고독하며 열등감에 사로잡힌 이 청년을 발견하기를 나는 간절히도 원했던 것 같다. 그리고 마침내 그와 닮은 쌍둥이를 여기서도 만나고야 말았다. 충격적인 결말. 결코 이야기해서는 안 되는 그 결말 때문에 허탈했다.
하나같이 디스토피아를 그려내는 미래소설들. 인간에 대한 경고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강렬한 오한이 파고 든다. 닮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그 미래에 있지 않다는 것이 행복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