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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1kg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ㅣ 사거리의 거북이 6
로젤린느 모렐 지음, 김동찬 옮김, 장은경 그림 / 청어람주니어 / 2008년 11월
평점 :
평행봉에서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다가도 두 팔을 벌려 좌우로 흔들어주면 그대로 다시 평행 상태가 될 수 있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도 우리는 비틀거리다가 한참이 지나면 고요한 상태를 되찾을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은 단지 우리를 갈라놓을 뿐이다. 아무리 보고 싶어도 더 이상 미련을 가질 수 없다.
그리고 차츰 숨을 쉴 수 있도록 망각이 도와주기 위해 찾아 온다. 고맙게도.
알리스도 역시 오렌지 1kg를 보면서 엄마를 떠올리겠지만 여전히 잘 살아갈 것이다.
아름답고 세련되고, 고민이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들어주고, 솔직하고 분명하게 조언해줄 줄 아는 사람.
한 마디로 완벽함 그 자체였던 엄마와 열두 살 행복한 알리스에게 찾아온 엄마의 폐암은 온 가족을 짓누르는 무거움이었다.
한 자락의 생명도 남아 있지 않은 엄마의 몸을 바라보는 것은 견딜 수가 없었다.
훨씬 나중에 그 무서운 장면을 목도하도록 한 아빠의 뜻을 알게 되었다.
적어도 나는 죽음의 얼굴을 본 것이다. 죽음은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엄마는 이미 알고 있었기에 죽음을 품위있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 후 내가 천착한 것은 엄마의 품위였다. 나를 계속 살아가게 한 것은 엄마였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심지어 죽음이 눈앞에 와 있다 할지라도 오렌지를 사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삶은 계속되니까. (51쪽)
행복했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엄마가 사라진 후 알리스는 힘든 시간들을 보내지만 결국 살아간다.
아빠도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만큼 치유되고 알리스와 비르지니, 그리고 아빠는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어쨌거나 삶은 계속 되기 마련이니까.
어렸을 때는 죽음 이후의 세계가 너무 무서웠다. 죽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하는 고민도 많이 했고
영원히 캄캄한 어둠 속에 갇혀 있을 것 같은 그 기분이 너무 싫어서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설이 참 마음에 들었다.
내가 지금 이 생에서 살고 있는 것들을 모두 잊을 지라도 다시 태어나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처럼
매력적인 말이 또 어디 있을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건 그때부터였고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요즘 다시 두려워진다.
아이를 두고 죽는 일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알리스처럼 힘든 삶을 살 아이가 눈에 밟혀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가 없어도 살아지겠지만 그런 아픔을 주고 싶지 않은 게 엄마의 마음이니까.
알리스의 시선으로 끝까지 담담하게 말하고 있는 이 책에 많은 점수를 주지는 않았다.
엄마를 잃은 아이인데 이렇게 담담할 수 있을까? 힘들다고 말은 하지만 내게 느껴지는 건 너무 적었다.
죽음을 다룬 것 중에도 울림이 많은 책들이 많은데 이건 달랐다.
주인공은 어린 여자아이인데 어른의 시선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