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은 역사다 - 전선기자 정문태가 기록한 아시아 현대사
정문태 지음 / 아시아네트워크(asia network)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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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은 있고 없는 차이일 뿐, 뉴스는 역사였다.

우리가 현장의 역사를 가져본 적이 없었을 뿐.

우리한테는 그런 '현대사'가 없었다는 뜻이다.

오늘을 책임지지 않겠다는 태도, 반역이었다.

 

그게 아시아 현대사로 넘어가면 더 절망적이다.

기록자도 연구자도 없다. 현장은 남의 일이다.

'아시아' '뉴스' '현장' '기록'을 묶어내는 고민,

기자의 몫이라 여겼다.

'오늘'이 실종될 낌새를 붙들어 매고 버팅기기,

기자 숙명이라 여겼다.

그걸, '역사'라 믿으며.

(저자의 말 중에서)

 

모든 책에는 저자가 책 속에서 하고 싶었던 말을 뭉뚱그려 놓은 '저자의 말'이 있기 마련이고

나는 그것을 제일 먼저 읽는 일이 드물다. 어떤 때는 책이 풍기는 향기를 내가 맡기도 전에 그건 장미향이니, 그건 허브향이니

하고 알려주는 일이 심심치 않게 있기 때문인데 이번에는 어쩐 일인지 가장 먼저 읽어야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게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작가가 쓴 이 말이(기자라고 해야 더 어울리겠지만 지금은 책을 쓴 사람으로 보니까) 가슴을 세게 한 방 치고 지나갔다.

'오늘;이 실종될 낌새를 붙들어 매고 버팅기기라..모든 기자들이 이렇게 고민해서 만들었을 그 기사 한 줄, 사진 한 장을

바쁘다는 이유 하나로 대충 읽거나 아예 읽지 않고 버리거나 하는 요즘의 나를 반성했다.

군인들이 총부리를 겨누는 위험한 현장에서 뉴스를 취재하고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오늘'을 충실히 살았던가?

내가 살고 있는 이 '오늘'이 대단한 뉴스거리라거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하루는 아니지만

모든 역사라는 것들이 그런 작은 것들이 모여 있는 실체라는 사실에서 볼 때 나는 직무유기를 한 셈이다.

 

잘 알려진 대로 E.H.카는 '역사란 결국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 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다."라고 정의했는데

사실이 사실로 인식될 수 있는 것은 내가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열고 있을 때뿐이다.

잠깐 눈을 감거나 귀를 막았을 때 사실이 왜곡된다면 나는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다.

그 사실들을 토대로 우리 다음 세대들은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며

사실 그대로 다음 세대에 전해주는 일 또한 우리가 해야 할 일인 것이다.

우리나라 국경 위로 장벽을 치고 혼자서만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세계 정세는 어떻게든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전선기자 정문태가 인도네시아, 아쩨, 동티모르, 버마,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타이의 생생한 현장을 우리에게 소개하는 까닭이다.

이름도 외우기 어려운 사람들 떠우꾸 까마루자만, 사나나 구스마오, 훈 센, 키우 삼판, 탁신 친나왓...

복잡하고 슬프고 어두운 그들의 역사가 과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으로 우리나라 역사 위에 겹쳐 보이는 것은 슬프다.

키우 삼판이 기자와의 인터뷰 중에 "언론을 믿을 수 없어. '이렇게' 말하면 '저렇게' 쓰는 게 언론이잖아."

하는 대목이 자꾸만 떠오른다. 우리에게도 믿을 만한 언론이 별로 없는 까닭일까?

눈 크게 뜨고 귀 열어두고 살아야 한다. 입까지 열고 살아야겠지만 여전히 두려운 세상이다.

나처럼 소심한 사람들이 뒷 일 걱정 안 하고 할 말을 해도 되는 세상에 살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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