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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과 역사
현응 지음 / 불광출판사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에 태어나 믿고 따를 어른 하나 만나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알기에
좋은 분들을 차례로 보낸 작년에 이어 며칠 전 법정 스님마저 입적하시니 마음이 휑하니 빈 것 같다.
사람들 마음도 비슷한지 법정 스님이 쓰신 책들을 구하는 게 하늘의 별따기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 책을 읽고보니 이런 것들도 모두 마음을 비우지 못한 까닭이다.
얼치기 불교신자인 내가 이 책을 읽은 것도 사실은 아직도 찾지 못한 깨달음에 관한 어떤 비기라도 있지 않을까 하는
허영심에서 비롯된 것이니 남의 말을 할 입장은 못 된다고 하겠다.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이란 생로병사로 대변되는 삶의 문제에 대한 것, 바로 삶에 대한 것으로 세 가지 특성을 지닌다.
삶의 영역 밖에 또 다른 어떠한 존재 형태도 있을 수 없다는 점에 대한 깨달음, 이런 삶의 모습은 실체도 없으며
실재적 존재가 아님을 아는 것, 이러한 깨달음은 점진적인 과정에 의해 이르게 되는 것이 아니라 혁명적인 전환을 통해 성취하는 것이다.
선종에서는 이러한 깨달음의 혁명적인 성취를 돈오(頓悟)라고 표현한다.
그럼 과연 깨달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떠한 실재로부터 해방된 입장, 온갖 실재의식을 떨친 삶을 일러 '아라한'이라 한다. 아라한의 삶에 있어서도 졸리면 잠자야 하고
밥 먹어야 하고 사랑하는 마음, 미워하는 감정 다 나타나되 그 감정이나 생각 그 대상의 속성을 알기 때문에,
즉 원천적으로 비실재임을 통찰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로 인해 최종적으로 고통받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하며,
또 다른 깨달음의 삶은 보살의 삶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데 현실 속에 살되 현실 그 자체에 원천적으로 구속되지 않으며,
구속되지 않으면서도 적극적으로 애정과 정열을 쏟는다.
이 얼마나 어려운 삶이란 말이냐. 나는 감히 꿈도 꾸지 못하겠다.
한 가지 일이 일어나면 거기에 휩싸여 헤어날 줄 모르는 내게 깨달음은 정말 멀고 먼 일이다.
책은 2장으로 나뉘어 '사제에게 보내는 열두 번의 편지' 부분과 깨달음에 관한 2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어렵기는 둘 다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스님들이 서로 격려하며 공부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난 1장을 읽을 때는
조용한 산사에 들러 어려운 이야기를 나누시는 스님 두 분을 가까이서 뵌 듯한 느낌이 들어서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많은 분들에게 호평을 받았던 책이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는데도 나는 아직 진가를 찾지 못했으니 공부를 더 해야 하나보다.
문학평론가이자 시인인 차창룡씨와 시인 이진영씨가 스님의 길로 나선다고 한다.
차창룡씨는 <불교시화기행>에서 '근기가 강하다면 굳이 승가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련만 너무 부족한 것이 많기에 속세의 인연을 접고 떠나기로 했다'는 기사를 봤다. 근기가 강하지도 않고 부족한 것도 많지만 나는 여기 속세에 남아 보살의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