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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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화면을 가득 채운 건 중년의 한 남자.

지금은 웃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숙자로 거리에서 뒹굴던 사람이었던 그를 

인문학과의 만남을 주제로 한 강좌에 나가게 한 것도,

다시 보통 삶의 굴레 속으로 들어오게 만든 것도 <그리스인 조르바>라고 했다.

몇 달에 걸쳐 이 한 권을 읽으며 그는 아무렇지 않게 내팽개쳤던 자신의 삶을 추스릴 수 있었고

그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너무나 유명하지만 아직까지도 읽지 못한  책은 이렇게 해서 내 손으로 넘어왔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불교에 심취한 적이 있다고 하더니 그 인연의 끈이 나에게까지 이어진 것이다.

 

전철안에서 며칠이고 이어진 독서는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조르바가 어찌나 천연덕스럽게 망나니 짓을 하는지, 온통 욕으로 이뤄진 그의 말을 읽으면서

폭소를 터뜨린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웃음을 억지로 참느라고 입술을 실룩거려야만 했다.

 

"무슨 생각을 하시오?"

그가 그 큰 머리통을 내저으며 다정하게 물었다.

"당신 역시 저울 한 벌 가지고 다니는 거 아니오? 매사를 정밀하게 달아보는 버릇 말이오.

자, 젊은 양반, 결정해버리쇼. 눈 꽉 감고 해버리는 거요."

사람을 꿰뚫어보듯 이런 대사를 날리는가 하면,

 

"저게 무엇이오?"

그가 놀라도 크게 놀라면서 물었다.

"두목, 저기 저 건너 가슴을 뭉클거리게 하는 파란 색깔, 저 기적이 무엇이오?

당신은 저 기적을 뭐라고 부르지요? 바다? 바다? 꽃으로 된 초록빛 앞치마를 입고 있는 저것은?
대지라고 그러오? 이걸 만든 예술가는 누구지요? 두목, 내 맹세코 말하지만, 내가 이런 걸 보는 건

처음이오!"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이런 대목도 있고,

 

"확대경으로 음료수를 들여다보면 (언젠가 기술자 하나가 가르쳐 줍디다) 물에는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쬐그만 벌레가 우글거린답디다. 보고는 못 마시지....... 안 마시면 목이 마르지....... 두목. 확대경을 부숴버려요. 그럼 벌레도 사라지고, 물도 마실 수 있고, 정신이 번쩍 들고!"

이렇게 도통한 듯 보이는 건 예사다.

하지만, 진짜로 보여주고 싶은 건 조르바가 하는 걸쭉한 입담인데 그건 책에서 확인해보시길!

 

조르바는 실제 인물이라고 했고 크레타 섬에서 갈탄광을 채취한 것 역시 작가가 직접 겪은 일이다.

이 둘의 모습을 온전히 만날 수 있는 이 책에 나도 폭 빠져버렸다.

책에서 인생을 찾으려는 '나'와 인생에서 초탈해버린 조르바.

자유 그 자체였던 조르바에게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매력을 느낀 건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닐까?

크레타 섬에 있는 그의 비명엔 이렇게 새겨져있다고 했다.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에게 있어 조르바는 어쩌면 종교와도 같은 의미였을 것이고

한 노숙자의 삶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었던 것도 자유인 조르바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언젠가 크레타 섬에 갈 수 있다면 니코스 카잔차키스 무덤에 조문을 오는

조르바의 딸을 만날 수 있을까?

조르바를 꼭 닮았을 것만 같은 나이든 그녀를 만난다면 아버지에 대해 얘기해달라고 조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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