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백년 전 악녀일기가 발견되다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6
돌프 페르로엔 지음, 이옥용 옮김 / 내인생의책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오래 전에 읽었던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는 상당한 충격을 던져준 작품이었다.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7대조 할아버지의 여정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어
인종 차별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한 작품이었는데 거기에 그려진 흑인 학대와
모멸감, 멸시 들이 너무 생생해서 그들과 함께 분노를 삼켜야 했다.

<2백년 전 악녀일기가 발견되다>는 아주 가볍게 바닥을 차면서 사뿐사뿐 걸어가는  여자 아이의 모습이 그려지는 책이다.  열네 살 생일이 되면서부터 시작하는 마리아의 일기에서 흑인 노예들은 사람이 아니라 물건 그 자체이다.마리아는 다른 사람들이 그렇듯 노예를 부리거나 심술맞게 대하거나,
채찍질을 하고 상처를 입히는 일을 서슴지 않을뿐더러 죄책감을 갖고 있지도 않다. 그게 잘못인 줄 모르는 것이다. 어른들이 하는 대로 흉내를 내고 생각할 줄 모르는, 쩌면 어른들이 키우는 또 다른 노예.
맞거나 학대 받지 않고 반대로 좋은 음식에 좋은 옷, 좋은 대우를 받는 것만
다를 뿐이다. 생각하는 걸 금지당한 사회.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이 정당화되는 사회.
바꾸어야 할 것을 알면서도 그게 여태까지 우리가 가져 온 풍습이라는 나쁜 포장으로 둘둘 뭉쳐 바꾸지 않으려고 하는 고집.
지금으로 말하자면 결혼식을 할 때 양쪽 집에 보내는 예단이 그렇다.
흑인 노예가 낳은 아이는 그저 노동력을 가져다 줄 물건이니 ‘그것’으로 불릴 뿐이며 나무 궤짝에 넣어져 아무렇게나 방치되어도 당연한 것이고,
우는 소리가 거슬리면 몇 분 간 물속에 넣었다 꺼내면 되고,
노예가 마음에 안 들면 쉽게 팔아버리면 된다.
아버지가 마음에 들어 하는 노예 때문에 속이 뒤틀리면 그녀 얼굴에 하이힐을 박아넣고 낄낄거릴 수 있어야 진정한 백인이고 그들을 다스리는 마님인 것이다.
노예. 누가 그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고 허락해주었던가.
누가 사람을 팔고사도 된다고 허락해주었던가.
힘이 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그들.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서는 노예의 감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그들이 모두 마리아로 발현된다.
그러니 마리아는 굳이 악녀라는 이름으로 덮어씌우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어떤 것이 진실이며 참이라고 교육을 받았을 때
그것을 따를 것이냐, 따르지 않을 것이냐를 판단하는 것은 배우는 사람의 몫이다.
당당하게 거부하는 하나의 몸짓이 역사를 바꾸어 놓았으며,
다르게 생각하는 힘이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렇게 놓고 볼 때 마리아는 스스로 생각하려 하지 않았으므로 잘못이고
인간에 대한 감정 자체가 메말랐으니 악녀라는 호칭이 지나치지 않다. 

노예를 인간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것. 그들을 착취했던 그 기간 동안 작가는 ‘누구나 거대한 역사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는 사실을. 나는 하얀 피부 때문에 피부색이 검은 사람들에게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된다. 맞는 말이다. 나는 노예무역으로 큰 덕을 봐 잘 살게 된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역사란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해야만 한다는 것을, 역사는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가르쳐준다’고 한다.
항상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잘못을 시인할 줄 알아야 발전이 있는 거라고.
교육이라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만든 책이다.
인종차별을 이토록 가볍게 다루면서 치를 떨게 만드는 책도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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