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아이단과 비밀의 문 기사 아이단 시리즈 1
웨인 토머스 뱃슨 지음, 정경옥 옮김 / 꽃삽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고등학교 1학년, 시험이 끝나  홀가분한 마음으로 보러 갔던 영화 '엑스칼리버'는 18세 불가 영화였다.

무슨 배짱에 교복까지 입고 갔지만 학생지도를 다니시던 선생님께 들킬까봐

상영시간 내내 두리번거리며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지금도 생각난다.

평소 모범생이었던 내가 유일하게 교칙을 어긴 순간이었는데 왜 그리도 전설이나 중세 이야기라면

사족을 못 쓰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누군가처럼 나도 전생에 궁전에서 살던 공주였을까?

어쨌든 창을 들고 말을 타고 투구와 갑옷을 뒤집어 쓴 기사는 어릴 때부터 내 우상이었다.

최면에 걸린 사람들은 특정한 단어에도 반응을 한다더니 내가 그꼴이다.

'기사'라는 단어에 침까지 질질 흘리며 다가들었는데 거기다 내 기준으로 판타지 소설 중 으뜸인

<반지의 제왕> 계보를 잇는다는 말에 완전히 쐐기를 박았다. 꼭 봐야지.

 

기사 아이단은 여러 모로 <반지의 제왕>을 닮았다.

프로도가 이끄는 아홉 명의 반지 원정대가 모르도르 화염 속으로 반지를 버리러

긴 여정을 떠나는 것처럼 열두 명의 기사가 엘리엄 왕의 명령을 받아 미스가드로 떠나는 것,

모르도르의 굴 속에 큰 거미 실롭이 프로도를 기다리고 있던 것과

맹독을 가진 커다란 뱀 팔론이 아이단이 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는 것이 닮았으며

미스가드의 튼튼한 성은 아름다운 하얀 성 미나스 티리스를 연상시켰고,

반지를 버리러 가는 길에 사우론의 강력한 눈길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길이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카라드라스 고개였듯, 이들이 간 길도 춥고 황폐한 땅 그림워크였고

반지가 가진 힘에 눈이 멀어 배반을 하려 했던 보르미르가 있었듯

기사 아이단에게도 다른 편으로 넘어간 배신자 액스리엇이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해리포터가 섞여들었다.

14살 아이가 왕의 부름을 받아 며칠 만에 기사로 탄생하는 과정은

고아 해리가 자신도 모르는 힘을 사용하여 여러 가지 일을 해결하는 것과 닮았다.

앨리블의 세계와 인간 세계가 하나였다가 둘로 나뉘면서 나와 꼭같은 글림스가

앨리블의 세계에 있다는 설정 또한 도플갱어를 떠올리게 하여 그다지 신선하지는 않지만

그 많은 것들을 잘 버무려놓았다는 건 인정해야겠다.

 

어떤 책이든 읽는 시기가 책에 대한 가치 판단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내가 만일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 같은 책을 읽지 않은 채

이 책을 제일 먼저 봤다면 상당히 끌렸을 테지만 아쉽게도 나는 이 책을 제일 늦게 읽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책이 가장 늦게 나온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그 계보를 이었다는 <반지의 제왕>은 아이들이 읽기에 만만한 책이 아니지만

<기사 아이단과 비밀의 문>은 청소년이 읽기에는 아주 적합한 책이다.

판타지에 열광하는 아이들에게는 그야말로 딱인 책이다.

<반지의 제왕> 계보를 이었다는 포장지보다는

 '판타지의 제왕을 탐내는 '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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