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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 날아든다 ㅣ 푸른도서관 32
강정규 지음 / 푸른책들 / 2009년 7월
평점 :
오랜만에 용동에 가보았다.
넓히지 않은 좁은 골목, 개축하지 않은 건물들.
가게 이름들도 바뀌지 않아 이십년 전에 다니던 칼국수 집을 찾을 수 있었는데
얼마나 반갑던지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들어가서 한 그릇을 청해 먹었다.
음식 값을 적어 놓은 판도 그대로, 파란 페인트가 떡칠된 계산대도 그대로,
일하시는 아주머니들도 조금 나이 드셨을 뿐 그대로, 둥근 탁자며 낡은 의자도 그대로인데
조개로 맛을 내는 칼국수만은 변해버렸다.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한다고 해도 예전에 내가 좋아하던 그 맛이 아닌 건 분명했다.
추억이나 살아있게 찾아가지 말걸 그랬다고 후회를 하다가 사라진 건 다름 아닌 내 입맛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라져버린 것. 사라지고 있는 것들.
매일 한 시간에 한 종류의 식물들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다 한다.
옛 이야기에 등장하던 그 많던 호랑이는 동물원에서만 볼 수 있고 다듬이 방망이 소리,
찹쌀떡 사라고 외치는 소리, 개울물 졸졸 흐르는 소리, 밭에 김매면서 부르는 노동요들,
두부 왔다고 울려대던 종소리들은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새가 날아든다》는 사라짐에 대한 안타까움을 그려낸 책이다.
<구리 반지>나 <새가 날아든다>에서는 제사 지내는 모습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는데
형식이 중요하지 않다고들 하지만 귀찮고 복잡한 의식을 치러내는 동안 가졌던 경건한 마음도
간편해지는 형식 따라서 사라지고 있음을 경계하는 듯 보인다.
삼거리, 국밥, 구리반지, 낮달 등의 제목도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사라져가는 낱말들이며,
<삼거리 국밥집>이나 <새가 날아든다>에 등장하는 판소리를 듣는 듯한 유려한 가락은
한바탕 걸게 굿판을 벌여 놓은 듯하여 <섬진강>을 보는 듯도 하고 나긋나긋해진 <오적>을 보는 느낌도 드는데
이 또한 쉽게 볼 수 없는 것들이며, 곳곳에 녹아 있는 전쟁이나 고향 이야기는
작가들이 별로 다루지 않는 서서히 사라져가는 소재들이다.
《돌》이나 《짱구네 집》속 <하얀 나비>와 연결되는 <낮달>은
재채기가 나오기 전 간질간질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아름다운 첫사랑에 대한 느낌을 담고 있는데
하루 만에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고 금방 헤어지는 요즘 사람들은 느끼지 못할 아련함이다.
거기에 덧붙여야 할 건 사람을 그리워하는 일이다.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소통은 점점 없어지니 외로움은 짙어지지만
진심으로 사람을 그리워할 줄은 모른다.
새가 조끼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듯 해체된 가족들이 따뜻하게 다시 모여 살기를 바라는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이런 것들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붙들어 보여주고, 들려주고, 지켜주고 싶은 것들이
한 데 뭉쳐 있는 게 바로 이 책이다.
동화라기보다는 소설이라고 해야 더 어울릴 듯한데,
글이 맑고 단정하기로는 으뜸이라 동화 같은 느낌을 주지만
아이들은 글감이나 사용된 낱말들이 낯설어서 어려워 할 것 같고
차라리 순수함을 잃어버린 어른들에게 주는 동화라고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