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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로 간 터줏대감 ㅣ 눈높이 어린이 문고 91
전다연 지음, 전병준 그림 / 대교출판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선생님, 이 책으로 공부하면 안 될까요?”
3학년 녀석이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왜?”
“이거 너무 재미있어요. 애들은 이런 얘기 모를 걸요? 오늘 배운 삼신할미도 여기 나와요.”
<아기를 주시는 삼신할머니>를 배우고 난 참이었다. 붉은 바탕에 꽃 그림이 화려한 표지도 마음에 들고
들려주듯 구수한 입말도 그렇지만 삼신할미에 대한 많은 연구와 조사를 통해 제대로 된
삼신할미 탄생 이야기를 볼 수 있는 책이었는데 삼신할미를 보자 이 책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그럼, 선생님이 먼저 읽어보고 결정할게. 좋지?”
“네. 빌려가세요.”
앞니가 하나 빠져 술술 새는 웃음으로 정헌이는 내게 책을 내밀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보라고 권해준 적은 있지만
거꾸로 아이들이 읽어보라고 내민 책은 처음인지라 기분이 묘했다.
달밤에 뭐가 그리 좋은지 활짝 웃는 모습으로 달려가는 가신들이 책 표지에 가득하다.
가끔 텔레비전에서나 보게 되는 옛집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되고, 부엌을 맡아보는 부뚜막신,
문을 지키는 대문신, 집을 지키고 보호하는 성주나리, 자손의 탄생과 건강을 돕는 삼신할미,
땅을 맡아 다스리는 터주대감, 뒷간(변소)을 지키는 측간각시가 눈에 보이듯 그려져 있다.
권영감네 가신이었던 이들은 자기들을 섬기기는커녕 부뚜막에 떠놓은 맑은 물이 담긴 종지를 깨뜨리고,
대청마루 한 구석에 쌀을 담아 둔 성주단지를 깨드리고, 가신을 섬기는 마음에서 놓아둔 상을 엎어버리고,
마구 욕을 해대는 권영감 아들이 하는 짓이 괘씸해서 화장실에 빠뜨리는 일을 저질렀고 그 일로 인해
서낭신, 용왕신, 산신,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다른 집을 지키는 가신들의 동의 아래
천 년 동안 땅 속에 묻히는 벌을 받게 된다.
천 년이 흐른 뒤 깨어났지만 권영감네 집을 다시 찾을 도리가 없어 찾아든 가까운 건물이 단단초등학교였다.
아이들 수백 명이 북적대는 공간에서 우왕좌왕하던 가신들은 그곳에서 권영감 자손인 창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도서관에서 책을 마구잡이로 섞어 놓은 뒤부터 말썽꾸러기로 낙인찍힌 창수는 자신이 하지 않은 일마저도
뒤집어쓰면서 점점 소외되고 우울한 아이로 변해간다. 수족관을 깨뜨려 창수를 범인으로 만든 터줏대감,
창수를 괴롭히던 승준이를 혼내주려다 오히려 창수가 한 짓이라고 믿게 만든 측간각시는 모두 창수를
돕기 위한 방법을 찾다가 단단초등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분개한다.
아이들의 급식실을 우연히 찾았다가 다 상한 재료로 아이들 음식을 만들라고 하는 강사장을 혼내주고
아이들에게 사행심을 조장하는 오락기를 들여놓은 키키문구점 주인을 반성하게 만들어주면서
가신들은 잠시나마 뿌듯해한다.
가신들이 몽땅 떠나버린 도시를 슬퍼하던 가신들은 외국 신들의 이름은 줄줄 꿰면서
가신들이 하는 일이나 이름도 모르는 아이들을 위해 그들의 이야기를 써줄 사람을 찾아 떠나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러기 전에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
반 친구들에게 소외되었던 창수를 도와주고, 독일에서 돌아와 숲이 그리운 솔미의 청에 따라
학교에 숲을 만들어주면서 얼핏 창수에게 모습을 드러낸다.
글로 전해지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창수에게 가신들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었던 것.
그리고 가신들은 자신들을 알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퍼뜨려줄 사람을 찾아
눈이 하얗게 내린 초가집 속으로 들어간다.
결말이 조금 싱거운 부분도 없지 않지만 우리에게 존재하던 많은 신들이 기억 속에서 사라진 지금
아이들에게 아폴론이나 비너스, 아도니스 같은 이름보다 친근한 측간각시나 부뚜막신이 존재했음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책이다.
어렸을 때 곰인형이 살아 있다고 믿고, 나무나 꽃들에게도 말을 건넸던 그 순수함을
아이들이 떠올릴 수 있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