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고를 때 나는 딴 짓을 하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시를 제외하곤 축약을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내가 원작 그대로가 아니라 조금씩 줄이고 편집한 이 책을 왜 골랐던고. 첫장을 넘기면 나타나는 기획위원의 말을 읽으면서 내 실망감은 깊이 모를 구덩이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제 아무리 훌륭한 고전이라고 해도 독자가 읽고 소화할 수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지나치게 방대한 분량과 길고 어려운 문장은 책을 읽으려는 청소년들의 의지를 꺾을 뿐 아니라 좌절감마저 불러일으킨다. ....발표될 당시의 원문을 그대로 옮겨 오는 대신, 작품이 본디 지닌 맛과 재미를 고스란히 살리면서 우리 청소년들이 읽고 소화하기 쉽게 분량을 조절하고 글을 다듬었다. 오 마이 갓! 이게 무슨 이론서도 아닌데 지나치게 어려울 일은 또 무엇이란 말이냐. 단언컨대, 읽을 때가 안 된 글들을 읽으려면 당연히 어렵지. 고전을 읽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이거야 말로 독서퀴즈를 위해 핵심 내용만 추려놓은 가짜 책을 읽는 거와 뭐가 다르지? 지금은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청소년소설류도 넘쳐나는 판국이다. 고전은 그 다음에 읽으면 된다. 조금씩 천천히. 여기까지가 책을 읽기 전에 생각한 것들이다. 책이야 술술 읽히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자크와 다니엘의 우정이라는 것도, 회색노트에 담긴 그들의 교환일기가 지니는 뜻도, 가출하고 난 뒤 여정도. 울리는 감동 없이 그저 이야기만 따라간 눈이 허무했다. 뒤에는 잔뜩 이것저것 붙여놓은 해설이 더 화려하다. 원작을 제대로 읽어본다면 느낌이 다를까? 성장통을 겪는 아이들의 마음이 다가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