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온통 잿빛이다. 재가 폴폴 날리는 거리, 어둠을 밀어올리며 일어나야 하는 아침.
먹을 것도, 쉴 곳도, 제대로 된 사람조차 찾기 힘든 길 위에 한 남자와 소년이 서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름도 갖지 못한 '남자'와 '소년'은 살아 남아 있다는 게 지겹다.
강물도 까맣고 대지도 까맣고 나무는 다 타고 사람들은 죽고
망가지고 파괴되어 생명을 가진 거라곤 아무 것도 없는 지구.
마지막 생존자들 중에는 인육을 먹는 무리도 있다.
스스로 불을 운반한다고 믿는 것만이 희망인 아들과 아버지.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가 샘과 함께 모르도르를 지날 무렵 맡았던 매캐한 냄새와
점점 무거워지는 반지의 무게에 눌리는 가엾은 프로도의 헐떡거림과
간신히 힘을 짜내 기어가듯 나아가야 하는 그 길의 아픔이 다시 생각났다.
이 부분은 로드와 닮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는 냉정하게 내려다보기만 하고 도움의 손길이라고는
어쩌다 한 번씩 먹을 걸 찾아내게 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리고 마침내 자유를 찾은 아버지와 또다른 세계로 편입하게 된 아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는 건
더이상 아픔을 함께 겪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소년이 운반한 불은 끝까지 잃지 않은 인간성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멸망한 지구가 소생할 수 있는 희망은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