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이면 (보급판 문고본)
이승우 지음 / 문이당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여름이기도 했지만 이 나른함의 정체는 책에서 오는 게 분명했다.

요즘 들어 딱히 마음에 드는 작가도 없었고, 비슷비슷한 주제를 다룬 동화,

가벼움이 하늘을 찌르는 책들 사이에서 난 잠시 길을 잃고 방황을 하고 있었다.

이해하기도 어려운 책을 들고 고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더위라는 강력한 무기 앞에 주저앉고 말았기에

8월 읽은 책 목록에 올라간 건 딱 세 권.

한 달에 평균 12권 이상은 읽으리라 결심했고 그럭저럭 지켜왔는데

완전히 목표를 이탈하고 비상등에 불이 켜졌다.

 

그러다가 아직 못 읽은 책들 사이에서 내 손에 잡힌 게 바로 이 책 <생의 이면>이다.

제1회 대산문학상의 타이틀이 붙은 작은 문고판.

작가인 '내'가 그럭저럭 유명세가 붙은 박부길이라는 작가의 이력을 들춰내어

그의 생을 문학과 연결시켜야 하는 곤혹스러운 일을 맡게 되는데

그의 작품을 들여다볼수록 과거의 그가 너무도 선명하게 보여

작품속의 주인공들은 그대로 과거 박부길의 삶을 드러낸다.

책을 읽어갈수록 온통 고통뿐인 과거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박부길의 시간들을

내가 훔쳐보는 것만 같아 관음증 환자가 된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남들이 보기엔 정말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조차 내면으로 들어가보면

남들에게 꺼내 보일 수 없는 고통이 한 가지씩 자리하고 있는 것처럼

아버지에 대한 죄의식을 안고 살아야 했던 박부길도 그러하다.

액자소설은 아니지만 소설 안에 작가 박부길의 소설들이 즐비해서

색다른 맛을 느끼게도 하고 그의 내면을 너무나 세밀하게 밝혀나가면서도

결코 지루하지 않아서 오랜만에 행복하게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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